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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2/25 18:26:53
Name 알테마
Subject 멕시코는 왜 이렇게 되었나? 마약 카르텔의 탄생 (수정됨)
저는 어린시절 멕시코를 월드컵으로 접했고 우리보다 축구를 잘하고 잘사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정치사를 공부하며 느낀건 조직범죄로 나라가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는건가 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최근엔 영화 '시카리오'와 넷플릭스의 '나르코스'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멕시코의 국내 상황에 대해 어느정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너무 지엽적이지 않은 선에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멕시코를 프랑스 식민주의로 부터 해방시킨 베니토 후아레스를 계승하는 '제도혁명당(PRI)'은 20세기 70년간 멕시코를 이끌었습니다. 장기집권을 통한 정치안정, 지방과 군부에 대한 정부의 완벽한 통제, 철저한 6년단임으로 독재자 출현 방지를 통해 멕시코는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1968 올림픽과 1970 월드컵 개최는 멕시코의 선진국 진입 신호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도혁명당의 장기일당독재 속에는 엄청난 정경유착과 부패가 존재했습니다.

제도혁명당과 정부는 멕시코의 범죄조직을 통해 정치자금을 지원받거나 검은돈을 세탁했고 반대파 탄압에 이들을 이용했습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공권력은 범죄조직을 4가지 대원칙을 바탕으로 '관리' 및 '통제'하에 두고 있었습니다. 범죄조직은 오히려 공권력에 종속화되어 정부의 비호가 없으면 생존하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4가지 대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리화나를 비롯한 마약의 국내소비를 증가시켜서는 안된다.
2. 마약과 관련된 대규모 폭력사태를 국내에서 일으키지 않는다.
3. 마약조직은 제도혁명당의 권위에 복종한다.
4. 마약조직은 연방정부의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멕시코 최초의 카르텔은 1980년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에 의해 만들어 졌습니다. 시날로아 주 경찰 출신이던 가야르도는 멕시코 내의 10여개의 플라자-한국식 표현으로 구역, 나와바리-의 보스들을 한데 묶은 뒤 유통망을 조직해 자신이 카르텔의 조정자이자 리더가 되었습니다. 가야르도와 플라자 보스들은 멕시코 연방보안국(DFS)의 비호아래 평화로운 공존과 함께 엄청난 부를 쓸어담았습니다. 창립을 주도한 멤버들이 시날로아 출신이라 시날로아 카르텔로 불리기도, 근거지가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여서 과달라하라 카르텔로 불리기도 합니다.

1984년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멕시코 군의 연합작전으로 가야르도의 사촌이자 카르텔의 핵심 권력자 '라파엘 카로 퀸테로' 통칭 '라파'의 마리화나 밭이 모조리 불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라파는 후아레스의 플라자 보스인 '아마도 카리요 푸엔테스' 통칭 '아마도'와 카르텔의 미래사업을 놓고 경쟁관계였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마리화나 생산업 vs 남미에서 생산되는 코카인 유통업 입니다. 라파는 전자의 대표이고 아마도는 후자의 대표였으며 이들이 카르텔의 2인자를 놓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리화나 밭이 모조리 불탄 라파는 격분했고 아마도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그는 DEA 요원 엔리케 '키키' 카마레나를 납치한 뒤, 잔인한 고문으로 아마도가 배신한 증거를 찾으려 했습니다. 키키 요원은 고문 끝에 사망했고, 이 사건으로 워싱턴 정가와 전미의 여론이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법무부 산하의 소규모 기관이었고 일반인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DEA는 이후로 많은 권한을 갖게 되고 대규모 조직화가 됩니다.

키키 사건 이후 미국의 압력으로 카르텔을 비호하던 멕시코의 DFS가 해체되었고, 가야르도를 비롯한 주요 카르텔 보스들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라파는 체포되었고 가야르도는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DFS의 수장이었던 미겔 나사르는 비밀리에 가야르도와 접촉, 제도혁명당 대통령 후보였던 카를로스 살리나스와 그의 형 라울 살리나스의 자료를 비롯한 극비 자료들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 자료들의 내용 중 하나는 라울 살리나스가 가야르도의 카르텔이 아닌 또 다른 조직 걸프 카르텔의 배후라는 것이었습니다. 도피 생활 중이던 가야르도는 제도혁명당과의 딜을 통해 자료를 넘겨주는 대신 암묵적으로 사면 받았습니다. 그는 카르텔로 복귀했고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멕시코 마약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다음 글로 이어 쓰겠습니다.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10-13 14:29)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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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아저씨
20/02/25 18:31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연재 부탁드리겠습니다.
Daniel Plainview
20/02/25 18:44
수정 아이콘
최근 보고 있는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2 내용이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0/02/25 18:5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다음 내용은 멕시코 시즌2 내용인가 보군요..
멕시코의 문제는 저게 현재진행형인게 문제.....
콜롬비아는 이미 아작 난 상황인걸로 얼핏 본거 같은데..그래서 드라마도 나름 쌈박하게 끝냈고..
알테마
20/02/25 19:07
수정 아이콘
멕시코는 이후에 등장할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 대실패로(칼데론 본인은 성공이라 했지만) 가야르도 이후 난립한 마약 카르텔들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가야르도의 시기까지만 해도 멕시코 정부가 카르텔을 충분히 통제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이러한 밀월 관계 때문에 미국의 불신과 분노를 더 크게 키우긴 했습니다.
20/02/25 19:08
수정 아이콘
가야르도가 난 놈은 난 놈이었나 본데..하필 측근이 dea에를 건들여가지고는..
이런 상황이 될 바에야 통제와 관리를 통해서 유지하는게 결과론적으로는 나은게 아니었나 싶은..
알테마
20/02/25 19:19
수정 아이콘
멕시코가 저때 쯤 모라토리엄 이후 미국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건 대통령의 중남미 마약 카르텔 소탕의 강력한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가야르도와 라파 개인에겐 엄청난 악수였습니다.
묘이 미나
20/02/25 19:50
수정 아이콘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2 다 보고 나무위키로 멕시코 카르텔 쭉 봤는데 여기는 답이 없더군요 .
수장을 잡으면 다른 수장이 튀어나와서 하던짓 반복 .
에스코바르 이후 최대 마약왕이라는 구스만 잡았더니 아들놈이 가업 이어받아 상황은 변하는게 없슴.
구스만 아들 체포해서 이송하다 총격 받아서 풀어주고 이송하던 경찰은 이후 시내에서 총탄세례 받고 사망;;;;; 개막장
결국 미국이 마약 수요를 줄이지 않는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근절은 택도 없어보입니다.
알테마
20/02/25 20:0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캘리포니아에서 마리화나 합법화가 이루어진 후 마리화나의 가격이 폭락해 멕시코의 마리화나 생산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몰락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카르텔들의 주력 사업인 코카인(특히 저가의 크랙 코카인)과 헤로인, 메스암페타민은 너무나도 강력한 중독성 때문에 절대로 합법화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를 포함해 인해 마약의 국내소비시장을 건드리진 못하고, 단속해 봤자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이들의 특성상 피라미만 검거되고 끝납니다. 그래서 미국민보단 만만한 해외의 마약 생산지나 유통루트를 타격하는 전략을 꾸준히 취해왔습니다.

1970년대 터키산 양귀비로 시칠리아 마피아가 헤로인을 제조한 후 프랑스 마르세유 갱단을 통해 미국시장에 유통했습니다. 프렌치 커넥션이라 불린 이 루트를 미국이 프랑스 정부와 손잡고 소탕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영화 대부 1편의 발단인 터키인 솔로조)
Jedi Woon
20/02/25 20:27
수정 아이콘
바로 윗 동네에 거대한 소비시장이 있는데, 그 노다지를 보고만 있을 사람은 없죠.
알테마
20/02/25 20:47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멕시코의 카르텔들은 하부 조직원들에게 마약을 국내에서 판매하는걸 엄금하고 있는데, 이것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이유는 국경만 넘으면 가격이 스무배로 뛰기 때문입니다.
20/02/25 21:47
수정 아이콘
멕시코 카르텔이 생각보다 젋은 조직이네요? 마피아 삼합회 이런건 역사가 백년이 넘는다는데
알테마
20/02/25 22:02
수정 아이콘
카르텔의 근간이 되는 지역 마약조직(플라자)은 오래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마리화나의 생산지가 멕시코였기 때문인데, 현대 카르텔은 일반적인 마피아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조직입니다.

누아르 영화의 영향으로 마피아나 중국계 삼합회 일본계 야쿠자가 유명해졌지만, 이들을 모두 합해도 미국에 마약을 직접 유통하는 멕시코 카르텔 중 하나만도 못합니다.
박정희
20/02/25 23:19
수정 아이콘
삼합회나 야쿠자는 카르텔처럼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는 없으니 세력도 약하지 않을까 싶네요.
박정희
20/02/25 23:18
수정 아이콘
마약 카르텔도 그렇지만 좌우파 게릴라 문제도 적당히 봉합한 상태로 현재 진행중이죠.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사파티스타 관련한 책을 10여년 전에 읽었는데 이분들 아직도 멕시코 남부를 통치하면서 오히려 최근에 세를 늘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카르텔처럼 폭력과 불법을 아무렇게나 저지르는 분들이 아니어서인지 멕시코 정부에서도 암묵적으로 못본척 하는 걸로 압니다.
20/02/25 23:32
수정 아이콘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 2 보고 있어서 그런지 잘 읽히네요. 크크
20/10/19 12:10
수정 아이콘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죠
신은 멀고 미국은 너무 가깝다

미국 내 마약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멕시코의 혼란은 계속 될 거라 봅니다.
문제는 미국 내 마약 소비가 줄어들 정도라면 전세계가 혼돈에 휩싸여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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