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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7/27 22:09:34
Name aur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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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인물] 레몽 아롱, 불멸의 자유주의자


[레몽 아롱, 불멸의 자유주의자]

프랑스 국회 채널에서 제작한 다큐를 보았습니다. 레몽 아롱의 일생을 그린 다큐로 그의 유년기부터 죽음까지의 일생을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사상계를 주름잡았던 사르트르와 동급생이었고, 심지어 사르트르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던 수재였습니다. 젊어서 그는 독일철학에 심취했었고, 나치가 집권한 독일에 가보고 그곳의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전체주의에 대한 확고한 반감을 갖게 되었고, 이와 같은 입장을 평생동안 간직하게 됩니다.

프랑스가 점령당했을 때 그는 런던에 가서 자유 프랑스를 위해 일했지만, 드골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드골의 인기가 한창일 때도 그가 "보나파르트의 그림자"를 연상케하는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레몽 아롱은 진정한 자유주의자였습니다.

프랑스 지식인 사회가 소련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스탈린을 지지했던 (지금와서 보면 정말 바보 같지만...)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으며, 소련 체제가 나치만큼이나 악랄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젊었을 적 아롱은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련에 찬동할 수 없었고, 공산주의적 일당독재에 찬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르트르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르트르는 강제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레몽 아롱은 이에 전혀 찬성할 수 없었죠. 심지어 사르트르는 레몽 아롱에게 “자네는 공산주의를 믿지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롱은 사르트르의 견해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아롱은 국제정치, 전쟁과 평화라는 거대한 주제에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한 학자였습니다. “국가간의 전쟁과 평화(Paix et guerre entre les nations)”라는 걸작을 남겼죠. 그는 키신저와도 자주 대화를 나눴으며, 키신저는 아롱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를 방문하면 꼭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아롱과 접견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아롱은 소련이라는 전체주의에 맞서 미국을 지지했지만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이 칠레의 피노체트를 지원하는 것 또는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것 모두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친하게 진했던 키신저의 정책들도 가감없이 비판했습니다.

한편 그는 1968년 파리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소위 "68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모두 없애고자 했으나, 그 대안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롱은 이들이 사회가 사회로 기능할 수 있게하는 최소한의 권위와 제도을 파괴한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당시 68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은 마오이즘이나 트로츠키즘 등, 지금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오히려 그릇된 사상을, 단지 "서구 부르주아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지했었죠.

그 결과 아롱은 프랑스 대학생들로부터 "사문난적" 취급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주의의 원칙을 유지했고 정열적으로 이를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솔제니친 등의 반체제 인사가 유럽에 오고, 소련의 인권상황이 더욱 잘 알려지게 되자 사르트르 등 지식인도 결국 소련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년의 사르트르는 수십년간 적대한 아롱과 다시 회동하여 소련의 인권탄압에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을 돕는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물론 그는 끝까지 소련과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눈 앞에 실존하는 피해자들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레몽 아롱은 훗날 이 순간을 가장 기뻐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프랑스 학자들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레몽 아롱 본인의 인터뷰 자료등을 폭넓게 활용한 다큐멘터리인데, 참 유익합니다.

단점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는 점인데, 구글 자동번역(물론 한계는 있다만)을 이용해서라도 꼭 시청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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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7 22:53
수정 아이콘
토니 주트 저 <지식인의 책임>을 읽으면서 알게 된 인물인데 사상적으로나 인생사로나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더군요
21/07/27 22:53
수정 아이콘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메르카바
21/07/28 02:36
수정 아이콘
사회사상사 강의록으로도 유명한 사회학자이기도 합니다. 부르디외가 아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Respublica
21/07/28 08:39
수정 아이콘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의 저작들을 읽어볼 생각이 들게 되네요.
아스라이
21/07/28 11:24
수정 아이콘
(수정됨) [ Plutôt avoir tort avec Sartre que raison avec Aron. - 사르트르와 함께 틀리는 것이 아롱과 같이 옳은 것 보다 낫다 ]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이 정도의 맹목적인 비토를 전 사회적으로 받았던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자적 양심에 기반해 평생 소신을 꺾지 않은 점은 정말 높이 살 수 밖에 없죠. 심지어 오늘날 돌이켜보면 그가 훨씬 더 옳았기도 하구요. 물론 미국&기득권의 지원을 등에 업었기에 물질적으로 쪼들릴 일을 없었단 점은 감안해야 겠지만요. 학자도 먹고사니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부류의 인간은 아니니까요. 크크

https://namu.wiki/w/%EB%A0%88%EB%AA%BD%20%EC%95%84%EB%A1%B1

나무위키에 그의 일생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동하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antidote
21/07/28 12:48
수정 아이콘
역사의 뒷편에서 지난날을 회고할 때 결국 아롱이 더 옳은 쪽에 가까웠죠.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속담과 같이 듣기 싫은 소리가 결국 맞아들어가는 경우였다고 봅니다.
아스라이
21/07/28 14: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개인적으로 나이가 참에 따라 머리에서 빨간물이 빠져가는 중입니다만 , 한편으로 68혁명과 소련의 공산체제를 덮어두고 부정하는 게 과연 마냥 옳은 건가 싶은 회의는 한 켠에 남아 있습니다 . 서민 입장에서 미완과 실패로 규정되는 상기 두 역사적 이벤트의 덕(?)을 톡톡히 보며 살고있다 생각되서요 . 좀 더 나아가서 , 원래 혁명이란게 결국 그런거 아닌가 싶습니다 . 분명 지극히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일이지만 , 길게 보면 핵심가치의 일부나마 역사를 향해 관철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뭐 그런 인식... 헌데 , 다분히 이율배반적이죠 . 역사의 진보를 위해 제가 제2의 소련시민이 되는 희생을 치르고 싶진 않으니까요 . 도도한 역사의 물결 안에서 일개 개인의 위치를 정초시키는 게 참 어렵단 당연한 사실이 해가 갈수록 무겁게 다가옵니다 .
아스라이
21/07/28 14: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 . 본문과 별개로 항상 해독제님께서 재밌는(?) 게시물마다 달아주시는 양질을 댓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무심하게 , 때론 냉소적인 어투로 써진 단문안의 상당한 통찰이 항상 큰 지적 자극을 줍니다 . 이번 기회에 감사드린단 말씀을 전합니다.
Respublica
21/07/28 13:54
수정 아이콘
나무위키 읽고 왔는데 굉장한 통찰을 가진 사람이네요. 사르트르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제가 책도 몇권 볼 정도로 핫하다고 해야하나요...
반면에 그의 라이벌인 아롱은 상대적으로 생소하지만... 그의 사상은 어쩌면 훨씬 더 견고할 것 같습니다.
아스라이
21/07/28 14: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 딱봐도 대단한 레몽빠의 시각에 의해 쓰여진 글이라 어느 정도 걸러서 봐야 겠지만 , 확실히 매력이 팍팍 느껴지는 학자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죠 . 크크.
Tanworth
21/07/28 12:20
수정 아이콘
진보적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의 흑역사는 쉽게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도 메를로 퐁티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침을 주도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게 되었지만, 사르트르는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은 못버렸죠.
당대 인기와 영향력은 사르트르 > 카뮈 > 퐁티 > 아롱 순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아롱 > 카뮈 > 퐁티 > 사르트르 순으로 현명한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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