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쩌다 나온 피지알에 대한 와이프와의 대화.


나 : 내가 거의 유일하게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어. 근데 거기 규정이 정말 웃긴것들이 있다. 아마 한국의 모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일하게 있는 규정일 거다. 그건 바로 자음금지.

와이프 : 자음금지? 그게 뭔데?

나: 우리 채팅할 때 보통 '크크크' 이러면서 자음으로 '키읔 키읔 키윽' 이렇게 쓰잖아.

와이프 : 응

나 : 그게 금지됐다는 거야.

와이프 : 아니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럼 키읔 키읔 키읔을 어떻게 표현해?

나 : 밑에 ㅡ 받침을 무조건 써야돼. (손으로 크크를 쓰며) 정말 말 그대로 크크크 이렇게 되게.

와이프 : ??? 도대체 왜??

나 : 글쎄...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이트가 한 20년 정도 된 사이트인데, 그 당시에 사람들이 자음만 가지고 말하는 게 일종의 한글파괴다 해서 자음만 쓸 수 없게 했어.

와이프 : 그럼 사람들이 자음만 쓰지 않는 걸 다 지키면서 그 사이트를 하는 거야? '키읔 키읔 키읔'대신 정말 받침을 써가며 '크크크' 이러면서?

나 : 아니.. 그게 아니라, 사이트가 시스템적으로 자음만 쓸 수 없도록 막아놨어. 자음만 쓴 단어가 하나라도 있으면 글쓰기가 안 돼.

와이프 : -_-;;; 아니 그게 뭐야. 그럼 사람들은 그렇게 자음을 쓸 수 없는 걸 참으면서 그 사이트를 하는 거야? 그럼 혹시 글을 퍼오거나 할 때 자음만 있는 게 있으면 글을 못 올리는 거겠네?


나 : 응 그치. 하나하나 다 찾아서 자음만 있는 걸 수정해야할 거야. 더 재밌는 건 자음은 안 되는데 모음만 쓰는 건 가능해. 그래서 흔히 ㅠㅠ 이런 한글을 가지고 표현하는 우는 이모티콘 표시는 또 된다는 거야.

와이프 : (여기서 빵터짐) 아니 크크크 자음은 안 되는데 또 모음은 돼? 대체 왜???

나 : 이건 나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 추측하기로 한글이 자음만 가지고는 글씨 표현이 안 된다면 이응은 어차피 묵음이고 모음을 가지고는 한글을 표현이 가능해서 아닐까... 하는데 정확하진 않아.

와이프 : 진짜 골때리는 사이트네. 크크 자음은 안 되는데 모음은 되는 건 대체 뭐야??

나 : 뭐 당시 인터넷 문화가 보급되던 시절이었으니 한글파괴를 막자는 취지였을 거야. 근데 웃긴 건 얼마전 유행했던 야민정음 알아? 멍멍이를 댕댕이 이렇게 하는 거.

와이프 : 응

나 : 그건 아무런 규제없이 쓸 수 있어.

와이프 : (여기서 또 당황) 아니 그럼 이미 취지 자체가 적용이 안 되는 거잖아.

나 : 응 그래서 그걸 여기사람들은 사이트 문화라고 불러. 정말 아무도 반발을 안 해. 또 하나 재미있는 건 그걸 4월1일 만우절에는 시스템적으로 풀어서 자음만 쓸 수 있게 해줘.

와이프 : -_-;;; 그날은 한글파괴를 해도 되는 날인 거야?

나 : 그래서 이건 그냥 규제가 아니라 사이트 문화래.

와이프 : 그럼 세상 모든 규제를 특정날에 풀어주면 그건 규제가 아니라 문화가 되는 건가? 내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나 : 아마 이 사이트 유저를 제외한 다른 어떤 사람들도 모두 이해하지 못할 걸. 솔직히 나도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니까.

와이프 : 사람들이 정말 아무도 반발 안 해?

나 : 응. 아무도.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전혀 없어. 공론화도 안 됐던 거 같아.

와이프 : 그거 사람들이 별로 없는 사이트인가?

나 : 아냐. 기본적으로 글이 올라오면 조회수가 수천건이야. 아무리 인기없는 글도 천건은 넘어. 물론 그 이유는 글자수 제한이 있어서 글을 쉽게 못 써서이기도 해.

와이프 : 또 뭐가 있어? 글자수 제한은 뭐야?

나 : 게시판에 글을 쓰려먼 글자수를 몇 자 이상 써야한다 그런 게 있어. 아주 예전엔 글자수가 아니라 몇 줄 이상. 뭐 이랬던 거 같기도 하고.. 보통 커뮤니티가 의미없는 글들이 너무 많으니까 글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취지인 거 같아.

와이프 : 음.. 자음금지보다는 그래도 이건 이해하려면 할 수도 있는 범위인 거 같다.

나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재미있는 건 여기에 질문 게시판이 있는데, 질문게시판에도 글자수 제한이 있어. 질문을 하려면 무조건 100자를 채워야해.

와이프 : (또 다시 당황) 그럼 만약 질문 내용이 100자가 안 되면 어떡해?

나 : 글 자체가 업로드가 안 돼. 쓸모 없는 내용을 채워서라도 100자를 넘겨야해.

와이프 : -_-;;;; 그럼 질문할 내용 이외에 의미없는 말이라도 채워 넣어서 100자를 넘겨야 한다는 거야?

나 : 응 정확해. 근데 또 웃긴 건 유머게시판이라고 있어. 거긴 또 글자수 제한이 업어.

와이프 : 아니 왜???

나 : 글쎄.. 유머는 한 마디로도 웃기면 괜찮다는 취지인가... 사실 나도 몰라. 아마 사이트 대부분의 유저들도 정확한 이유는 모를거야.

와이프 : 아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사이트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나 : 응 뭐 나만해도 가니까. 사이트 자체의 매력은 있어. 글자수 제한이 있다보니 다른 사이트처럼 내 글이 빠르게 넘어가지 않아서 글을 하나 쓰면 꽤 오랫동안 읽힌다는 장점도 있고.

와이프 : 그래도 내가 들어본 커뮤니티 중에서 진짜 가장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이 아무런 불만없이 지킨다는 게 젤 이해가 안 되네.

나 : 그래서 솔직히 나도 여기 사람들이 무슨 규제완화니 표현의 자유니 이런 걸 강조할 때마다 좀 이해가 안 되긴 해. 그걸 주장하는 사이트에서 시스템적으로 막아놓은 것을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사는 사람들인데... 개인적으로 사이트 규제에 대해서도 좀 공론화 했으면 하는 바람이있어.

와이프 : 그럼 오빠가 하지 그래?

나 : 나도 나이들어서 운영진과 싸우며 그걸 바꿀만큼의 열정과 의욕이 없어서 그냥 참고 쓰는 거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같은 마음이 아닐까 해. 의외로 나이많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거든. 뭐 그걸 넘어 완전히 적응의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사이트 문화라고 부르는 거 같고..

와이프 : 와 진짜 내가 들어본 사이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사이트 규제로 이렇게 어이없고 웃어보긴 처음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