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게에 라스트 오브 어스 연재글을 올려줌으로써 제게 대리체험의 기회를 주신 은하관제님께 감사드리는 의미로...
그냥 갑자기 떠오른 좀비물을 하나 써 봅니다.
좀비물이지만 좀비는 안 나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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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적으로 오른손이 식칼을 집어 든다. 문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누구야?”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곧 목소리가 들린다.
“교환하지 않을래요?”
여자다. 젊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리게 들리는 목소리다. 물론 어린 여자라 해서 방심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방심한 놈들은 이미 죄다 뒤져서 저 세상으로 간 지 오래다. 하기야 이런 세상에서는 그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침을 꿀꺽 삼킨 후 나는 묻는다.
“혼자야?”
“혼자예요.”
의미 없는 문답이다. 혼자가 아니라 한들 내게 파악할 방도는 없다. 문을 여는 순간 생존자들이 득달처럼 밀려들어 나를 죽이고 이 집을 차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무나 흔해빠진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을 연다.
여자가 서 있다. 비교적 작은 키에 짧은 머리는 떡이 졌다. 생존자 대부분이 그렇듯 지나칠 정도로 말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굴은 봐줄 만하다. 생존하느라 고생한 흔적이 얼굴에 역력하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내 나이의 절반이나 되었을까. 등에 짊어진 가방은 아마도 등산가방인 듯싶다.
여자의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금 더 문을 열어젖힌 후 속삭이듯 빠르게 말한다.
“들어와.”
여자가 들어오고 나는 문을 닫는다. 도어락이 자동으로 돌아가며 잠긴다. 여자가 감탄하듯 말한다.
“세상에. 건전지가 있어요?”
“아직 몇 개 있지.”
나는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여자를 집 안으로 데려온다. 여자는 집안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들어온다. 나는 식탁의자 하나를 빼낸 후 탁탁 두드려 여자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반대쪽에 앉아 묻는다.
“뭘 교환하려 하지?”
의자에 앉는 여자의 얼굴은 다소 긴장되어 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짜증이 솟구치는 걸 느낀다. 지나치게 자주 보아온 표정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할지도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도 글렀군. 나는 생각한다.
여자가 더듬거리며 부끄러운 듯 입을 연다.
“내, 내 몸이랑 교환.......”
“싫어.”
나는 거칠게 말을 자른다. 여자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친다. 아마도 이런 즉각적인 거절이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친절하게 여자의 마음까지 배려해 줄 기분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들고 있는 식칼로 여자의 등 뒤를 가리킨다.
“그 가방이나 열어봐.”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 곧 체념하고는 둘러맨 가방을 끌러 뒤집는다. 식탁 위로 물건 몇 개가 떨어진다. 그다지 많지 않아서 살펴보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공책 하나. 플라스틱 빈 병 두 개. 커터 칼 하나. 책 두 권. 지우개 하나. 나는 헛웃음을 터뜨린다.
“무슨 등교하는 학생 가방인가? 이런 시절에?”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요.......”
여자의 말꼬리가 스러진다. 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친다.
“피차 알만 한 처지에 헛소리는 말자. 이것밖에 없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잖아.”
“하지만.......”
나는 내심 약간 감탄한다. 여자의 연기는 그 정도로 봐줄 만하다. 목소리가 떨리면서 가녀린 표정을 짓는 모양새가 저 솜씨로 꽤나 여러 남자들을 홀렸지 싶다. 아마도 꽤나 효과적인 전략이었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만두라고.”
나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한다.
“첫째. 너한테는 좋은 일이겠지만 나는 네 물건에 관심이 있어. 그러니 교환해도 좋아. 둘째. 난 네 몸 따위에는 관심 없어. 게이니까. 그러니 작작 해 두라고.”
“게이라고요?”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기다린다.
“씨발.”
여자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가면이 사라진다. 여자는 거실 바닥에 침을 뱉더니 팔짱을 끼면서 나를 노려본다.
“안 그래도 고자인가 싶었는데. 엿 같네.”
“나한테는 좋은 일이지.”
나는 되받는다.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몸을 사고 먹을 걸 내주는 건 솔직히 이쪽이 너무 손해잖아? 뭐 남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런 거래가 매우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렇기에 이런 여자들이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는 거다. 지금처럼 지옥 같은 세상이 되어서조차 남자들이 성욕은 여전히 왕성했다. 어쩌면 그건 종족을 보전하려는 본능에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생물학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니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하튼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존재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법칙은 지금도 아주 잘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뭘 바꿀 건데요?”
여자가 말한다. 나는 식탁 위를 가리킨다.
“책.”
“......이걸?”
여자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책을 집어 든다. 그리고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본다.
“이런 시절에 시집이 필요하다고?”
“안 되나?”
나는 되묻는다.
“요즘 같은 시절이니까 시집이 더 필요할 수도 있잖아.”
“뭔 개소리야.”
여자가 비웃듯 입술 한쪽을 치켜 올리더니 양손을 벌려 보인다.
“여하튼 교환한다면 좋죠. 난 식량을 원해요.”
“누구나 그러지.”
나는 되받은 후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부엌이 그 의미를 잃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그럼에도 부엌에 식량을 저장해 두는 건 오랜 습관 때문일 것이다. 찬장을 뒤적거리면서 나는 툭 내뱉는다.
“그나저나 반말하다 존대하다 엉망이군.”
“남이사.”
여자가 투덜거리는 동안 나는 물건을 꺼내들고 여자에게 돌아가 손을 내민다.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참치캔? 두 개? 정말요?”
심지어 하나는 야채참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책을 가리킨다.
“책 두 권에 참치캔 두 개. 어때?”
여자의 눈에 일순간 교활한 빛이 스친다. 여자가 즉시 맞받는다.
“두 권에 세 개.”
“좋아.”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뒤로 돌아선다. 그리고 찬장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덕분에 나는 간신히 공격을 피한다. 커터칼이 내 옷을 베어내고 옆구리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혼신의 힘을 실은 공격이 빗나간 탓인지 여자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그 사이에 나는 팔꿈치로 여자의 뒤통수를 내려찍는다. 일말의 사정도 봐 주지 않고서.
여자의 몸이 무너지면서 젖은 이불처럼 바닥에 늘어진다.
확실하게 해 두기 위해 여자의 머리를 힘껏 걷어찬다. 여자는 잠시 꿈틀거렸을 뿐 이내 다시 축 늘어진다. 나는 재빨리 여자의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을 얻는다. 나는 손에 들린 물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리고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열어본다.
세 개비.
우그러진 담뱃갑 속에 담배가 세 개비나 들어있다.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찬장에 올려놓는다. 그런 후에 여자의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다시 수색에 착수한다. 그러나 더 이상은 나오는 게 없다. 나는 아쉬워하면서 일어선다. 그리고 식탁 위로 시선을 던진다.
윤동주. 백석.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데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불과 서너 해 전만 하더라도 누가 공짜로 줘도 안 읽을 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다르다. 겨울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무수히 많은 책들이 땔감으로 사라져 갔다. 그렇게 지구가 태양 주위를 세 번 돌고 나자 책이란 무척이나 희귀한 물건이 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무려 참치캔 하나 이상과도 교환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시집을 펴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서쪽으로 뉘엿하게 기울어지고 있다.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눈을 반쯤 뜬다. 나는 읽고 있던 시집을 내려놓고 일어나 여자에게 다가간다.
“정신이 드나?”
여자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간신히 내게 초점을 맞춘다. 이내 입술이 벌어지더니 육두문자가 흘러나온다. 나는 욕설을 무시하면서 재차 말한다.
“남의 집에서 그렇게 오래 자는 거 아니야. 이제 슬슬 집에 가지 그래.”
여자가 한참 동안 홀로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그리고 한동안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마침내 투덜거리듯 말한다.
“고마워요.”
“뭐가? 머리통 박살내지 않은 거?”
“날 안 죽인 거.”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왜죠?”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대답한다.
“원래 사람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야.”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친다.
“요즘 그런 말 하는 사람 처음 봐요.”
“그동안 꽤 운이 없었나 보군.”
“......그렇지는 않아요.”
여자가 말한다.
“아직 살아있으니 운이 좋은 거죠.”
나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인다. 죽일 필요가 없는 것 같았기에 죽이지 않았다는 설명을 굳이 늘어놓진 않는다. 만일 죽여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했을 거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경험도 있다. 세 번. 아니, 네 번.
나는 잠자코 여자에게 턱짓한다. 그러나 여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말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 하루 재워주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자다가 죽긴 싫으니까.”
“누구한테요?”
“모두 다.”
나는 말한다.
“너한테든, 아니면 좀비 놈들에게든.”
여자가 입술을 재빨리 핥더니 비굴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안 죽일게요.”
“그걸 어떻게 믿지?”
여자는 말문이 막힌다. 그 모습을 보다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픽 웃고 만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대신 조건이 둘 있어.”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뭐죠?”
“첫째. 자는 동안 이걸로 널 묶어둘 거야.”
나는 서랍에서 수갑을 꺼내든다. 여자가 인상을 찌푸린다.
“뭐야. 집에 왜 수갑 같은 게 있어요? 미친 거 아냐?”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다시 말한다.
“둘째. 재워주는 값은 받을 거야. 정당한 교환이지.”
“뭐든 가져가요.”
여자는 턱 끝으로 식탁 위를 가리킨다.
“어차피 다 필요 없는 것들이니까.”
“거기다 담배 세 개비를 추가하는 조건으로.”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여자는 빈 바지주머니 위를 몇 번 어루만지더니 욕설을 내뱉는다.
“씨발. 내 담배.......”
“싫으면 밖에서 잘 곳을 알아보던지.”
나는 창밖으로 저물어 가는 해를 가리킨다. 여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양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낸다.
“좋아. 이걸로 교환 완료.”
나는 더 이상 가스가 돌지 않는 도시가스 파이프에다 여자를 비끄러맨다. 낡아빠진 이불 하나를 던져준 후 낡은 소파 위에 몸을 눕힌다.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 할 일은 충분히 했다. 이제는 자야 할 때다.
하지만 내가 잠들기 직전, 거실을 가득 매운 어둠 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그럴 걸 알고 있었어요?”
“아마도.”
나는 대답한다.
“대체로 비슷한 패턴이더라고.”
“그런데 왜 문을 열어준 거죠?”
물론 이유는 있다. 언제나 그렇듯.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그건 네가 알 바 아냐.”
저편에서 들려오는 욕지거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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