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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4/26 08:46:45
Name 은장식
Subject [일반] [초한지]간이 세개는 되는 듯한 유방과 소심남 항우 (수정됨)
* 본문에 나오는 대화는 창작입니다

팽성대전 직후. 유방은 기록상 20만의 병력을 잃고 형양성에서 동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영포가 배반해서 항우가 회군했고, 잔류하던 추격군들 또한 한신과 관영의 활약으로 패퇴하여 당장의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신하들:그나마 영포를 배반시켜서 다행이네요, 항우가 당장 오진 못하니 그 사이에 막을 준비를 해야겠죠?
유방:무슨 소리야? 지금 그걸 할때가 아니잖아.
신하들:???
유방:내 뒤통수를 치고 항우한테 붙은 녀석들 있잖아? 그것들을 죽여야지. 시간 있을때 최대한.
신하들:걔네들을 한꺼번에 치자고요? 당장 항우가 영포 때리다 말고 오면 어쩌게요?
유방:두려운가?
신하들:...흥분돼서 그래. 폐하!
유방:그럼 조참이랑 한신 너희는 위표 처리하고, 관영이랑 근흡이는 왕무랑 정처를 정리해. 나는 번쾌랑 같이 폐구에 있는 장한을 치운다!


사상 최대의 대패에서 간신히 죽을 처지를 모면한 유방은 그 직후에 곧바로 배반자들을 제거하는 대규모 공세에 들어갔고, 워낙 예상밖의 타이밍이었기에 누구 하나 변변찮은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삼도천으로 떠났습니다.
병력이 최소한 3분할은 되었으니 형양으로 항우가 오면 꼼짝없이 다 뚫려서 붕괴될지도 모르는 올인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는 동안 항우는...


항우:용저가 영포한테 질까봐 너무너무 불안하다. 영포를 확실하게 처리한다음에 유방한테 가든지 해야 안심이 되겠어

...불안해서 초나라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때는 안읍전투와 정형전투의 사이. 제후왕 정리 작업도 대강 일단락되고. 형양에서 항우와의 승부를 준비할 즈음입니다.
배반자들 제거 작업은 대략 정리되었으며, 형양에서 참호 등을 파면서 곧 올 항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근데 또 유방은 좀이 쑤셨던지...

유방:좋아좋아. 귀찮은 녀석들은 대충 처리했고. 한신이도 북쪽에서 잘 하고있네. 아주 만족스러워.
신하들:그럼 이젠 형양성에 계실거죠?
유방:? 무슨 소리야? 짬 있을때 뭐라도 더 해야지. 내가 참호 파는걸 멍하니 구경해서 뭐해?
신하들:더 할게 뭐가 있던가
유방:한신이 뚫어놓은 대나라랑 조나라 바깥쪽이 지금 빈 땅이잖아. 거기를 털고 올게. 근흡아. 군장 챙겨라!
진여:야 이 정신나간 놈아!


한왕이 한단을 함락시킬 때 종군하여 별동부대를 이끌고 진격하여 평양(平陽)을 함락시키고 자신은 평양의 수상(守相)을 참수했다. 근흡의 부하 장수는 도위(都尉)와 군수(郡守) 각 1명씩을 참살하고 업성(鄴城)의 항복을 받았다. 조가(朝歌)와 한단(邯鄲) 공성전에 참여하여 별동대를 이끌고 조군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한단군 관할의 6개 현의 항복을 받고 오창(敖倉)으로 돌아가 주둔했다.


또 형양을 비우고 조나라까지 가서 삥을 뜯고 돌아왔습니다.(...) 군사 하나. 쌀 한톨이 급한 처지였으니 전략적으로는 틀린 건 아니긴 한데, 정작 항우는 뭔가 뒷전 취급이라고 할지...

항우:아무리 그래도 난 너무 안중에 없는거 아니야? 나 진짜 당장 거기로 가버린다?
유방:어~오던가 말던가~


물론 이때도 항우는 형양으로 못갔습니다(... 영포가 열심히도 버티고 있어서 아직 불안했거든요.



이후 형양에서 버티고 버티던 유방이었지만 결국 성고까지 돌파당하고 말았습니다. 몰래 한신에게 가서 군사를 뺏어오긴 했지만 총사령관이 자리를 비웠다는 건 사실상 그동안은 방어를 포기했다는 뜻이고. 장수들도 굳이 성고에서 결사항전하지 않고 하나둘씩 빠져나와 군사를 몰고오는 유방에게로 합류했습니다. 한발짝만 더 물러나면 관중인 절체절명의 상황. 회전으로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

항우:이놈 유계야! 군사 좀 가져오니 자신이 붙더냐? 그럼 한판 제대로 싸워보자!
유방:이 어르신은 멘탈로 싸우지 힘으로 싸우지 않느니라.네 고향이 지금 어떻게 되고있게?
항우:??
유방:내가 팽월이한테 군사를 2만정도 보태줬거든. 걔가 아마 신이 나서 깽판을 부리고 있을걸? 덤빌테면 덤벼봐. 나 정도는 죽이겠지. 한나라랑 초나라랑 어느 쪽이 먼저 다 죽는지 엘리전으로 붙어볼 자신 있으면 해보실?
항우:...야, 너 인의군주라며!
유방:인의군주 그거 나중 애들이 멋대로 갖다붙인거야. 사기에서 내가 착하다고 하는 녀석들이 몇이나 되나 세봐라. 그리고 내가 이러고 살아도 너보다는 나아!

이 상황에서 유방은 오히려 방어에 쓸 군사를 쪼개서 팽월에게 지원. 초나라 후방을 뒤집어 엎으면서 항우에게 둘중 어느 쪽이 먼저 다 죽는지 엘리전을 벌여볼 테냐. 아니면 네 집에 갔다올 테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항우가 미친척 돌격해왔으면 병력까지 쪼갠 유방이 버티기는 만무했을 테니 그 경우 유방 자신은 거의 죽었다고 봐야 했을텐데 이쯤 되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우는 차마 엘리전은 택하지 못해서 회군하고 맙니다.

유방:두려운가?
항우:시끄러 이 독종아!



나약하고 겁많은 유계와 상남자 항우라는 이미지는 어디서 나온 걸까 희한해지는 일화들입니다(... 둘이 캐릭터를 바꿔 가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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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6 08:54
수정 아이콘
그리고 내가 이러고 살아도 너보다는 나아!

팩트다
귀여운호랑이
19/04/26 09:02
수정 아이콘
항우랑 비빌려면 백기, 조조 정도는 나와야죠.
19/04/26 09:03
수정 아이콘
졸라 쎈데 소심하고 쪼잔한 새가슴 항우와 가진거 개뿔도 없는데 호기와 허세만 가득한 상남자 유방이네요.
유방이후 중화는 허세 좀 있어도 호방한 스타일을 미덕으로 여기게 된거 같습니다. 크크크
마음속의빛
19/04/26 09:05
수정 아이콘
(수정됨) 400년 뒤에 오나라 때도 산월에 시달렸던 걸 생각해보면, 초나라에서 항우가 움츠려있던 데에는
영포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사실 초한지 신하들이 유방에게 인재 이야기를 할 때,
항우가 사람 대할 때 예의가 바르고, 인재를 아끼는데 다만 땅 주는데 인색하다.
우리가 그런 쪽으로 잘 해주니 뻔뻔한 놈들이 우리쪽으로 온다는 식의 대화가 있던데
다시 생각해보면, 초한지만 읽으면 도무지 항우의 어디가 그렇게 높은 평을 받게 해주는 지 알 수가 없더군요.

아마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지 않을까 싶네요.
19/04/26 10:14
수정 아이콘
사실 팽성전 - 형양전 사이의 항우의 그 느리고 굼뜬 나무늘보 행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한번 팽성이 들쑤셔진 항우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보는 의견이 제일 큰 편이죠. 영포가 걸림돌이라기에는 영포는 용저 주은 둘에게 신나게 두들겨맞기만 해서....

전 그래서 범증의 능력이 과대평가되었다고 보는 편입니다. 물론 60만 거지떼가 몰려와 사방을 들쑤셔놓은 후유증이 적을리는 없지만 저 시기 유방이 패잔병 몇만 명 가지고 해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할 말이 없거든요. 초가 기껏해야 내부 재정비하고 형양까지 보급로를 뚫는 사이 한은 장한 위표를 정리하고 진여도 털어댄 뒤 외교전으로 팽월과 영포까지 흔들고, 관중에서 또 지원병 받아서 군 재건하고.... 저 시기 양측 행동력 스택을 비교하면 한 3배수 차이는 난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은장식
19/04/26 10:18
수정 아이콘
유방네가 아무리 팽성에 난리를 쳐놨어도 항우가 3달동안 죽이고간 관중에 비할리도 없고 말이죠.
김연아
19/04/26 10:30
수정 아이콘
범증은 유방 죽이라고 하다가 실패한 이후에는 특별히 잘 한 게 없죠;;;;
김연아
19/04/26 10:29
수정 아이콘
초한지를 자세히 까보다보면, 삼국지보단 수호지 느낌이 물씬 나요.

왜, 유방이 중국을 대표하는 군주인지, 왜 수호지가 인기인지, 뭔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랄가요.

그나저나 유방이 인의군주된 건 나관중 때문인 것 같은데...
이리떼
19/04/26 11:33
수정 아이콘
크 멋져요
만주변호사
19/04/26 12:52
수정 아이콘
유방 이 인간은 진짜 보멸 볼수록 상남자 그 자체네요
계층방정
19/04/26 13:48
수정 아이콘
항우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전장, 전선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항우에게는 꽤 심각한 불안요소인 것 같습니다. 하긴 그 자신의 전투능력은 중국사 전체를 따져봐도 손에 꼽을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냐마는, 자기 부하들마저도 자기에 비하면 영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니 부하들에 대한 불신으로 저절로 이어지고요. 그렇다고 모든 전선을 다 자기가 챙길 수도 없고... 다중전선을 극도로 꺼리다 보니 저런 소심해 보이는 행적이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광주보라
19/04/26 18:39
수정 아이콘
잃을 게 많았던 항우. 유방과 근본적으로 달랐기에 더욱더 신중하게 싸워야했던 입장이 아닐까 싶어요. 유막둥이는 원래의 배짱도 두둑하지만, 이미 본인 스스로도 갈데까지 가즈아- 이 정도로도 이미 놀라운 신화를 질주하는, 그야말로 기세가 하늘을 뚫을 마인드를 그 당시 갖고 있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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