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5/24 01:39:14
Name salyu
Subject [일반] 동생을 떠나보내며
2002년 봄, 하얀 얼굴을 하고 눈이 부시게 둥근 두 눈으로 바라보는 동생이 생겼다.
언제나 약하고 겁이 많던 동생은, 자그마한 소리, 자그마한 손길에도 무서워하며 떨며
곧잘 내 품으로 들어와 얼굴을 부비대었다.
그런 동생이 귀여웠던 나는 언제나 괜찮다며 안아주며 재웠고
어느샌가 둘째 동생과 함께 자는 그 녀석을 웃으며 바라보게 되었다.

2004년 여름, 우리 가족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의 해가 되던 그때, 동생의 눈이 어느샌가 탁해지기 시작하며
원근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게 걱정되어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은 동생이 유전병이 있으며, 고칠 수  없는 녹내장이니
당장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며 다른 쪽 눈 마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다른 한쪽 눈이라도 살리고 싶다면 적출 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라 하셨고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 가족은 적출 대신 약물 치료를 선택했지만

동생은 모든 빛을 잃었다.

빛을 잃은 동생은 문밖을 나갈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저 낯선 바람, 낯선 향기가 느껴질때마다 주저앉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우리는 미안함과 사랑을 담아 동생을 안고 밖을 느끼게 해 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때 마다 동생은 우리를 마치 다 안다는 마냥 웃어주고 손을 내밀어 주었고
우리는 가슴으로는 울 지언정,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다.

2007년 여름,
그러한 동생을 둔채 나는 타향살이를 시작했고, 동생은 나의 빈자리를 채워 부모님에게 사랑을 주었다
가끔 돌아갈때 마다, 내게 나는 향을 어떻게 그렇게 기억하는지, 오빠가 왔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동생,
그 덕에 언제나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고 행복했고, 보고싶었다.

시간이 지나 2017년 봄,
어느샌가 훌쩍 지난 14년이라는 시간앞에 동생은 힘겨워하고 아파했고,
집에 돌아가도 반겨 줄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와 철푸덕 무릎에 앉아 잠만 자던 동생이지만, 너무 사랑 스러웠고
이별이 다가옴을 알면서도 나는 애써 무시했다.

그러던 어제 엄마는 울면서 전화를 하셨고 동생이 경련을 일으키며 숨을 못쉰다고, 어떡하면 좋냐고 우시면서 전화하셨다.
나는 애써 침착히 울지말자고 말을 하지만, 내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내 마음과도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 갈 수 없는, 내 사랑하는 동생을 보고싶지만 볼 수 없는 지금의 마음이
동생에게 전해졌으면 하고 기도했고, 제발 주말까지 버텨달라고 또 기도했다.

그렇게 너무도 사랑하던 동생은 별이 되었다.

아픈 손가락이던 동생이 그 곳에서는 빛을 보며 건강했으면 좋겠다.

사랑해 루루.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빠니쏭
17/05/24 01:50
수정 아이콘
행복했을 겁니다...
아이오아이
17/05/24 01:55
수정 아이콘
한쪽 눈 시력을 완전 잃고 남은 한 쪽 눈도 빛의 유무정도만 볼 수 있는 14살 동생을 데리고 있는 입장에서 언젠간 저에게도 다가올 일이라서 이런글을 읽으면 덜컥 겁이나네요.
분명 행복했을겁니다. 루루도...
곧미남
17/05/24 01:56
수정 아이콘
어떠한 위로의 말도 지금 허한 마음은 채워주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힘내시길 저도 작년에 하늘나라로 간 녀석이 1년 2개월이 되도 가슴에 콱
신지민커여워
17/05/24 02:15
수정 아이콘
저도 제 동생 순둥이를 2년전에 보낸 기억이 나 너무 마음이 아프내요. 그때 되서야 못해준것들만 생각나고 자책하게 되더라구요...
언젠가 하늘에 가게되면 같이 산책하고 품에 안을수 있길 바래봅니다. 루루가 좋은 곳에서 있길 빕니다.
17/05/24 02:25
수정 아이콘
제 말티즈도 작성자님과 비슷한 시기에 키워서 재작년에 강아지 나라로 갔습니다.
사람이 다 그런건지 못해준 것들이 계속 생각났던 순간이 많았죠.
끝무렵에도 심장문제로 경련이 자주 있어서 안락사를 해야했고
병원에서 저 혼자 그 상황을 지켜보고 회사로 가는길에 그렇게 감정이 강렬한 파도처럼 움직였던 적이 없던거 같습니다.
작성자님 힘내시길...
유부초밥
17/05/24 02:26
수정 아이콘
아....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루루도 좋은 가족만나서 행복한 삶이라고 느꼈을겁니다.
Carrusel
17/05/24 02:27
수정 아이콘
저도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던게 떠올라 가슴 아프네요..
이제 다시 빛을 찾은거라고 생각하시고 마음 잘 추스리길 바랍니다.
유애나
17/05/24 03:10
수정 아이콘
그래도 14년동안 행복했을겁니다.
힘내십시오.
덕베군
17/05/24 03:34
수정 아이콘
앓던 병의 후유증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제 발걸을 소리를 들으며 산책했었는데 ...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어쩌나 길바닥에 주저 앉아 펑펑 운적이 있었는데
마지막을 함께 해주지 못해 또 펑펑 울었고
생각해보니 혼자 가는 길이 얼마나 무서웠을까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가끔 생각나네요
그래도 잘보내신거 같아 다행입니다
잘가 루루
Mighty Friend
17/05/24 04:29
수정 아이콘
저도 작년에 2002년 2월에 태어난 고양이 보냈어요. 루루는 님이랑 가족분 덕에 행복했을 거예요. 명복을 빕니다.
17/05/24 06:42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가슴이 먹먹하네요
17/05/24 08:27
수정 아이콘
하이고...남일 같지 않네요.. 힘내세요
17/05/24 08:55
수정 아이콘
리플 남겨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17/05/24 09:39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루루도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했을 거예요.
녹용젤리
17/05/24 10:09
수정 아이콘
3년전 동지를 떠나 보낸후로 동지의 새끼도 암으로 떠낫고 나머지 남은 애들도 나이가 15살이 넘어선지 깨어있는 시간보단 자는시간이 더 많네요.
그래도 언제나 힘을주는 그놈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힘내시구요 다시 salyu님을 찾아 올겁니다.

혹시나 시간이 되신다면 A Dogs Purpose영화를 찾아 보세요. 뻔하디 뻔한 이야기 였지만 저는 많은 위안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미나가 최고다!
17/05/24 10:43
수정 아이콘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그래도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 받고 또 사랑을 남겨주고 천사가 되려고 좀 빨리 갔다고 생각해요.. 힘내세요!!
17/05/24 12:10
수정 아이콘
무지개 건너편에서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을거라 믿어요ㅜㅜ
SarAng_nAmoO
17/05/24 12:20
수정 아이콘
행복했을겁니다. 분명히요.
17/05/24 16:50
수정 아이콘
저번주에 한달된 강아지를 분양받았는데 이름을 공교롭게도 루루 라고 지었네요
ㅠㅠ잘키워볼게요 루루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2027 [일반] Active X 문제. [19] 삭제됨4534 17/05/24 4534 1
72026 [일반] 친구에게 암호화폐를 설명한 이야기 [28] 삭제됨7286 17/05/24 7286 0
72025 [일반] 비트코인 오피니언 리더,선동가였나 선지자였나. [111] 고통은없나12648 17/05/24 12648 3
72023 [일반] 금연 성공! [63] 산타의선물꾸러미6730 17/05/24 6730 20
72022 [일반] 동생을 떠나보내며 [19] salyu7337 17/05/24 7337 39
72021 [일반] 위풍당당한 우리 킹의 입국장면이 화제입니다.gif [160] 아이오아이24580 17/05/24 24580 62
72020 [일반] 우당탕탕 연애 정복기 (5) [25] 껀후이5528 17/05/24 5528 2
72019 [일반] 파워블로거의 꿈(?) [32] Timeless7940 17/05/23 7940 15
72018 [일반] 참치회를 집에서 저렴하게 먹어보자. [71] aRashi17419 17/05/23 17419 67
72017 [일반] 알파고는 왜 가끔 이상한 수를 두는가 [46] 아케이드12953 17/05/23 12953 15
72016 [일반]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에 대한 독일/해외 축구팬들의 반응 [19] 삭제됨8218 17/05/23 8218 5
72015 [일반]  "경기도, 남북으로 나누자"…자유당 '경기북도' 설치법 발의 [101] 군디츠마라13460 17/05/23 13460 1
72012 [일반] 클라우드 펀딩/크라우드 펀딩, 정보격자/정보격차, 不동층/浮동층 [31] the3j5762 17/05/23 5762 2
72011 [일반] 조선왕조의 왕이 한 말 중 가장 멋졌던 말 [10] 바스테트9788 17/05/23 9788 1
72010 [일반] [전자담배] 아이코스가 국내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34] 황약사13470 17/05/23 13470 1
72009 [일반] 인공지능이 다시 한 번 사람을 이겼습니다... [154] Neanderthal17062 17/05/23 17062 4
72008 [일반]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 [36] 삭제됨15465 17/05/23 15465 56
72007 [일반] 리서치뷰, 문재인 대통령 잘한다 87.0%, 조원씨앤아이 추가(국민의당 꼴지 추락) [83] 로빈15129 17/05/23 15129 15
72006 [일반] 고려말 홍건적난 이후 [13] 로사7052 17/05/23 7052 13
72004 [일반]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에서 폭발로 최소 20명 사망(내용추가) [37] 군디츠마라11722 17/05/23 11722 0
72003 [일반] (일상, 사진)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다 보면 [38] OrBef11113 17/05/23 11113 16
72002 [일반] 정몽주 "피눈물을 흘리며, 신이 하늘에 묻겠습니다." [36] 신불해15449 17/05/23 15449 89
72000 [일반] 윤석열 지검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43] 카카롯뜨13937 17/05/23 13937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