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엄 웹스터는 권위 있는 미국 영어 사전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즘에야 종이 사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다 웹에서 사전을 이용하고 있지만 저 같은 아재 세대들에 있어서는 한 때 영어 공부 좀 해보겠다고 큰 맘 먹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 빨간 표지의 두꺼운 메리엄 웹스터 사전을 구입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뭐 구입 후 활용(= 냄비 받침...--;;)을 어떻게 했느냐는 논외로 치고서라도 말이죠...--;;
전통의 사전 명가...메리엄 웹스터...
그런데 이 메리엄 웹스터 사전을 놓고 미국에서 사전 전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어떤 단어들을 사전에 수록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철학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대충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어휘들과 의미들을 그대로 가공하지 말고 사전에다 수록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올바른 언어생활을 유도하기 위해서 정제된 어휘나 의미들만 수록할 것인가를 놓고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일은 1961년 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Unabridged 사전이 출판되었을 때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사전은 이전에 메리엄 웹스터에서 출판한 사전들과는 좀 많이 달랐습니다. 이 사전은 기존의 사전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의 의미를 최대한 많이 사전에 싣자는 목표 아래서 만들어진 사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속어라든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어휘들, 또 기존의 어휘에 예전부터 수록된 의미들 외에도 새롭게 발생한 의미들을 아주 많이 보강해서 사전에 수록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특히 한 사람이 이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American Heritage라는 미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는 잡지를 출판하고 있던 James Parton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이번에 출판된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기존에 이 회사에서 출판된 사전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엄격하고 품격 있는 기준들은 다 무너지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거의 문맹 수준의 사람들이나 쓸 법한 어휘들과 의미들까지도 적절하게 제어되지 못하고 무작정 다 수록이 된 형편없는 물건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전의 교육적 가치가 의심스러운 무책임한 제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그가 취한 첫 번째 행동은 사전을 출판한 메리엄사의 주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말로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아예 회사를 통째로 사 버린 후 자기가 싹 따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가 보기에 메리엄사는 사전 출판에 대한 "올바른 새로운 지침들"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회사를 인수하면 문제가 되고 있는 third edition은 절판 시키고 second edition을 다시 시장에 내보낸 후 바로 fourth edition 준비 작업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의 생각대로만 흘러가질 않았습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실패로 돌아가자 Parton은 전략을 수정합니다. 이번에 그가 한 생각은 "그렇다면 이참에 내가 제대로 된 사전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잡지를 출판하고 있던(=동종 업계) 그의 입장에서 자신이 사전을 출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영어 관련 전문가들, 예를 들어 작가들이나 대중 연설가들 그리고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을 꾸리고 그 심사위원들에게 문제가 되는 어휘들이나 의미들에 대해서 과연 이러한 어휘들이나 의미들이 사전에 수록할만 한지 아닌지를 찬반 의견을 묻고 찬성이 과반 이상인 어휘들이나 의미들은 사전에 수록하고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하는 어휘나 의미들은 과감하게 사전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사전이 바로 1969년에 출판된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AHD)였습니다. 이 사전은 그때까지의 사전들과는 다르게 어떤 어휘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빈도로 사용되는지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고 어휘들에 대한 올바른 사용 지침들을 사전에 포함시킴으로서 원래의 취지대로 대중들이 올바르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이폰이 나오자 갤럭시가 나온 것처럼 지금은 위의 두 사전들 모두 꾸준하게 개정판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절판되는 일 없이 순조롭게 출판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AHD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심사위원단을 통한 어휘 선정이라는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5th edition은 CD도 준다는...--;;
저는 개인적으로 국가기관이나 단체가 일반인들의 언어 사용에 지침 내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별로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그때의 시대상, 사회상을 반영해서 본질적으로 창의성이 있는 인간들이 다양한 어휘나 쓰임새를 만들어 내면서 쓰는 것이기에 이를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하려 한다거나 지나치게 사용에 제약을 두고자 하는 행위는 언어 사용의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나운서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바른 말 고운 말"류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시각이 부정적인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서로 다른 철학에서 나온 사전들이지만 저 두 사전을 다 구비해 놓고 서로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