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미국 시인이 있습니다. 영시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라고 하지만 문외한이 저 같은 사람은 솔직히 그녀의 시 한 편 제대로 읊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후대 학자들이 재미난 연구를 좀 했었나 봅니다. 그녀가 시를 쓰는 양태를 좀 분석을 했더니 그녀는 봄과 여름에 더 많은 시를 썼고 상대적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시를 적게 썼습니다. 그런데 이건 시의 작품수를 계절과 비교해 봤을 때 나오는 결론이고 그녀가 쓴 시의 질을 계절과 비교해 보면 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녀의 시들을 질적으로 평가해서 작품의 질이 높은 시들이 주로 어느 계절에 창작되었는지를 분석해 보면 높게 평가되는 시들은 봄이나 여름 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쓴 시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즉, 에밀리 디킨슨은 봄과 여름에 더 많은 시를 썼지만 더 좋은 작품들은 가을과 겨울에 더 많이 탄생되었다는 겁니다. 음,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드는데요?...--;;
2.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경우도 보면 그의 작품들에는 어떤 황량한 느낌과 쇠락한 느낌을 전달할 때 종종 비가 배경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영시 못지않게 영소설에도 문외한인 저가 읽은 디킨스 소설은 [위대한 유산]하나 뿐이라서, 그리고 지금은 세부적인 내용들이 잘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은 못 됩니다만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디킨스가 살았던 시기는 소빙하기(the Little Ice Age)라고 알려진 시기의 가장 날씨가 안 좋았던 때라고 합니다. 비도 자주 내리고 극단적인 추위와 폭풍우가 1860년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게 아마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3. 역시 영국의 작가 메리 셸리가 쓴 고딕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역시 안 읽었지만(--;;;) 그 명성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이마에 나사 박힌 이미지로만 남아 있지만 아무튼 우리 피지알 회원님들에게도 잘 알려진 캐릭터일 것입니다. 이 소설 역시 이 소빙하기와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1816년 여름 마리 셸리는 영국의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남편인 퍼시 셸리, 그리고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바이런과 함께 스위스로 여름휴가를 갑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녀가 이렇게 여름휴가를 갔을 때 쓴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스위스로 여름휴가를 떠나기 1년 전인 1815년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화산폭발이었다고 회자되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었고 그 여파로 1816년 여름은 “여름이 없던 해”라고 기록이 될 만큼 그때까지 기록으로 봤을 때 유럽에서 가장 추웠던 여름이었다고 합니다. 연중 뿌연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스위스로 여름휴가를 갔지만 스위스에서도 계속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마리 셸리와 그녀의 일행들은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빌라 안에서 계속 난로에 불을 피운 채 추운 여름을 보내야만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 바이런이 각자가 유령 이야기 한 편씩 쓰자고 제안을 했고 이때 마리 셸리가 쓴 이야기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었습니다.
4. 시애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티모시 이간이라는 사람이 한번 조사를 해봤다고 합니다. 시애틀은 원래 미국에서도 비가 많이 오기로 유명한 도시인데 이간은 시애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서 언제 주로 작품을 활발하게 쓰게 되는 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이간과 인터뷰를 한 작가들은 주로 "우울한 겨울날 해가 별로 비추지 않고 날씨가 우중충할 때가 가장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덴버에 살다가 시애틀로 이사를 온 제니 쇼트리지라는 작가는 이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덴버에 있을 때는 자신의 첫 소설을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는데 (덴버는 미국에서도 연중 날씨가 화창하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시애틀로 이사를 와서는 겨우(!) 15개월 만에 두 번째 소설을 완성했다고 말했습니다.
위의 네 가지 경우들에서 추론해 볼 때 PGR에서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 대충 나온 것 같습니다.
일단 봄, 여름 날씨가 좋을 때는 글 올리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부터 글을 써야 합니다. 바로 요즘이지요. 그리고 늦가을이나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맑고 볕이 잘 드는 날 보다는 비나 눈이 오고 으슬으슬 춥고 우울한 날에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춥다고 방에 보일러를 틀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PGR에 글쓰기 최소 두 시간 전부터 방 안의 보일러를 전부 끄고 여름 끝났다고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둔 반팔 티와 반바지를 꺼내서 옷을 갈아입고 방 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어올 때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키보드를 두드려야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우리 모두 올 겨울에는 이런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서 피지알에 좋은 글들을 올려 보도록 합시다.
(그런데 보일러 온도를 너무 올렸는지 방안이 후텁지근하네요...--;;;)
본문은 Cynthia Barnett의 책 [Rain: A Natural and Cultural History]의 내용을 참고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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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씨도 태백산맥을 썼을때 극한상황에서 썼던걸로 아는데 역시 겨울에 옷을벗고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써야하는군요.
음.. 네안님 쓴글은 아직 겨울도 아직 아니고 추운곳에서 쓰신게 아니니 좋은글이 아니겠군요!
하지만 추천은 누르구갑니다. 딱히 글이 좋아서 그러는건 아니에요 츤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