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는 현재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전통적 극우
대부분 윤석열의 계엄령에 동의하거나 최소한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탄핵은 반대하고 계엄의 필요성에는 동의합니다. 강경한 지지자는 윤석열이 억울하게 탄핵 당했다고 생각하고 윤석열을 향한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극우 유튜버, 전광훈, 전한길 등을 비롯하여 극우 기독교 세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윤석열 정권 시기에는 방어하기 어려운 이슈가 많아 주로 양비론과 물타기로 일관했습니다.
반면 온건한 지지자는 요즘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주변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꺼리고 온라인에서도 댓글을 거의 달지 않습니다. 하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가 있거나 야당에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곧바로 등장해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2. 국민의힘 지지자
1번 유형(전통적 극우)은 국민의힘 지지자(2번)의 하위 집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성향 유권자 전체가 1번은 아니지만, 1번이 아닌 2번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굳이 따로 분류를 한 이유는 동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공 + 지역주의 + 극우 기독교 등이 결합되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1번 집단과, 반민주당 성향이 더 우세해 민주당의 대척점에 있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집단이 다릅니다. 대부분 양자가 결합되어 있고 엄격하게 분리해 내기는 어렵지만 분명 서로 이질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두 집단을 구분하기 힘들어도, 내란이나 탄핵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서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탄핵 심판 직전 갤럽의 여론조사(4월 첫째 주)에서 탄핵 반대 여론은 무려 37%였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35%)과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37%)은 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국힘 지지층보다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이 높은 역전 현상이 발견됩니다. 이것은 국힘 지지층이라 답하기가 꺼려져 스스로를 중도층이라 대답한 사람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중도'의 개념을 고려할 때,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유권자가 중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탄핵에 반대했던 여론(37%)은 대선 때 김문수가 얻은 득표율(41%)과도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교차 검증을 위해 추가로 살펴본 리얼미터의 경우 탄핵 기각(직무 복귀) 여론이 무려 43%에 달합니다.
즉, 윤석열이 탄핵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국민의힘 지지율(35%) -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37%) - 대선 김문수 득표율(41%) 을 보면 대략적인 극우 세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완전히 겹치는 동일한 집단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도, 매우 높은 개연성을 가진다는 것까지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윤석열의 탄핵을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유권자는 합리적 보수, 온건 보수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합리적 보수 지형은 매우 협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대선에서 김문수를 선택한 41% 의 유권자 전부가 탄핵에 반대하는 극우는 아니지만, 절대 다수가 그렇다는 점은 데이터가 시사하는 강력한 경향성이며 그렇지 않은 유권자는 극히 드물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통념이 아닌 여론조사 데이터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또 다른 양상이 관찰됩니다. 상당수의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윤석열의 계엄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합리적 보수'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탄핵 반대 여론(37%)과 국민의힘 지지율(35%)의 유사성은, 이러한 '비판적 보수'가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규모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다양한 성향의 유권자가 모인 공간에서 자신이 극우로 몰리는 것을 피하려는 심리, 혹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위장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윤석열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1번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현실이 차마 떳떳하게 얘기할 수 없는 '샤이 보수'와 '위장 중도'의 존재를 늘린 것이죠.
윤석열이 탄핵 당하고 대통령이 바뀐 현재에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어났고, 버려진 권력인 윤석열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 여론조사 내용은 또 다르게 나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지점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내란 행위를 용인하고 계속 탄핵에 반대해 오다가,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오니 그제서야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체념과 수긍에 가깝지, 윤석열의 불법 계엄에 대한 진심 어린 비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거의 40%에 육박하는 이 유권자들은 그때도 지금처럼 보수 대통령의 내란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를 옹호할 가능성이 높고, 이 부분은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증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윤석열의 계엄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고 탄핵까지 찬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모든 문제들은 윤석열 개인의 잘못일 뿐 국민의힘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경선 기간 한동훈이나 안철수 정도를 밀었던 경우가 많죠. 대선 전에는 어떻게든 이재명과 민주당의 집권을 막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대선이 끝난 지금은 친윤 세력과 단절하고 새 인물을 중심으로 결집해 국민의힘이 정권을 되찾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번 선거에서 김문수를 뽑았던 국민의힘 성향 유권자들은 극우 세력인 코어 친윤 성향이든,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한 가장 강한 보수 세력을 뽑는 유권자든, 그 동기와 관계 없이 거의 무조건 국민의힘을 뽑는 유권자들입니다. 고령층 유권자들은 전자가 대부분이고, 젊은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후자의 비중이 높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3. 이준석 지지자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이준석을 지지했던 많은 유권자들은 그동안 여러 이슈들을 겪으면서 상당수가 지지층에서 탈출했습니다. 2~3년 전에 비해 지지자 수가 급감해서 화력이 많이 죽었습니다. 지지를 철회할 사람들은 이미 떠났다는 의미이며, 이는 전체 지지자 수는 줄었지만 핵심 지지층의 결속력은 더 강해졌음을 시사합니다. 아직까지 지지할 정도면 대부분 강성입니다. 얼마 전 대선 기간을 돌이켜보면 더 극단적이고 과격해진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토론의 젓가락 발언과 명태균 사건 관련 압수 수색으로 현재 이준석의 정치적 입지가 좋지 않아 활동이 다소 위축된 상황입니다.
과거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 지지했던 유권자의 일부는 중도로 빠지고 일부는 국민의힘으로 편입됐습니다. 이번 대선 때 잠시 붙었던 정치 혐오층과 무관심층은 예상대로 선거가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그러고나서 남은 이준석의 지지율이 약 3~4%정도죠.
이미 강성만 남아있기 때문에 지지율이 여기서 더 떨어지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명태균 사건, '시끄러 인마' 계엄 해제 불참 사건, 개혁신당의 허은아 당대표 축출 사건 등 굵직굵직한 부정적인 이슈들이 계속 터져 나와도 작년 초 창당 직후의 지지율도 3%, 총선 때 받은 비례 득표율도 3.61%, 지금도 3~4%인 것이죠. 지지율이 오르지도 않지만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원래 이들은 이준석이 국민의힘에서 축출당하기 전까지 윤석열 임기 초 김건희 이슈, 청와대 용산 이전 등 국민 여론이 매우 안 좋은 이슈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윤석열 정부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었습니다. 여가부 폐지 공약에 환호하고 이준석이 절대로 팽당하지 않을거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검찰공화국 개추'를 외치던 유권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준석이 윤리위 징계를 받고 당대표에서 쫓겨나자마자 갑자기 돌변합니다. 태도를 급격히 전환해 윤석열 정권의 강력한 안티 집단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들은 국민의힘의 정치적 노선에 반대한다기보다 '이준석을 쳐낸 국민의힘' 에 대한 원한이 깊은 것에 가깝습니다. 언젠가 이준석이 친정으로 복귀하는 시기가 오면 이준석을 따라 '무언가로 이름을 또 바꾼 (구)국민의힘' 에 대부분 흡수될 것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4. 온건한 중도 / 중도 보수 성향
정권 초기부터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에 진작 윤석열 지지층에서 이탈해 중도층으로 편입됐습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 실망해 윤석열을 뽑았으나, 윤석열 정부는 실망을 넘어 강한 분노를 느끼는 상황입니다. 일부는 민주당 지지층이 됐고 일부는 중도층으로 잡히지만 선거 때는 동일하게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 투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마지막까지 고심하다 다시 국민의힘으로 돌아가거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개혁신당으로 갑니다.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중도층 민심이 완전히 국민의힘으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에 대선뿐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역대급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념적 선명성보다는 경제, 복지 등의 이슈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유권자들입니다.
전체 1~4번 유형의 성향이 전부 다르지만, 4번이 1~3번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국민의힘의 부정적인 이슈에 대해 물타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괜찮아 보이는 점은 괜찮다고 얘기하고 비판할 점은 비판만 합니다. 특히 4번과 3번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지난 대선에 대해 '이재명 막았도르', '이낙연이었으면 찍었도르' 등 갖가지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고, 자신의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도 무조건적인 양비론을 펼치는지, 지난 대선 자신의 선택을 성찰하는지 여부가 1~3 번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민주당이 잘못하면 그대로 비판하되, 국민의힘의 잘못에 민주당을 지속적으로 끌어와 논점을 흐리지 않습니다.
4번 :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윤석열 완전히 잘못 뽑은 것 같다 1~3번 : 다시 돌아가도 이재명은 못 뽑지. 아 그러게 누가 이재명 후보로 내랬냐고 크크크
대략 이 정도 차이입니다. 진짜 중도층과 자칭 중도층은 옆구르기하면서 봐도 확연히 티가 납니다. 4번 유형은 자기반성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1~3번 유형은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자칭 중도층은 1~3 번 유형의 유권자 중에서도 가장 극단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3 번의 온건한 유권자들은 이러한 행태를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20대 대선 다시 투표한다면…이재명 50.3% 대 윤석열 35.3%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134874&ref=blueroofpolitics.com
지난 22년 7월의 여론조사입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묻는 상당히 재미있는 걸 조사했었습니다. 대선 때 0.7% 차이로 이겼던 윤석열은 몇 개월 만에 15% 차이로 여론이 뒤집힙니다. 이 때 이미 '진짜' 중도층의 거의 대부분은 윤석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으며, 자신의 지난 선택을 재고하거나 번복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의 50%는 이번 대선 이재명의 득표율과 비슷하며, 다시 돌아가도 윤석열을 뽑는다는 35%는 세 달전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던 37% 와 거의 비슷합니다. 이들 유권자 집단은 서로 겹칠 가능성이 매우 높죠.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처럼 윤석열을 찍었던 유권자들은 크게는 1,2번 / 3번 / 4번 집단인 세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물론 편의상 분류일뿐, 유형 간 경계가 때로 불분명하며 실제로는 연속적 스펙트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유형 간 이동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2022 대선이 상당히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번 대선과 다르게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대형 이슈가 없었다는 점, 사실상 양자 구도로 진영간 대립이 정직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염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유권자 지형을 파악하기에 용이합니다.
문제는 미래입니다. 1~3번이 똘똘 뭉쳐 한 명의 후보를 지지해도 4번이 이탈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데 그마저도 두 정당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4번의 상당수는 국민의힘에 분노해 민주당 후보에 표를 줄 가능성이 높고, 남은 일부를 다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나눠 갖게 됩니다. 그 결과가 이번 대선입니다.
앞으로의 특검에서 내란 사건과 지난 국민의힘 공천 비리 의혹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이루어지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추가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됩니다. 특검이 확실한 몇 명만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할지, 아니면 대대적으로 전선을 넓힐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명 정치인들이 명태균 사건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각각 연관된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정치적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이렇게 악재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고, 내년에 예정된 지선은 새 정부 임기 초기에 열리는 선거라 보수 정당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합니다.
대선이 끝난 현재, 선거를 승리한 정당은 허니문 효과와 승리 효과로 지지율에 거품이 끼어 있고, 반대로 패배한 정당은 실망 효과로 지지율이 빠졌을 뿐,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유권자 지형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대통령 지지도와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회복됩니다. 4번 유형의 유권자들은 이제는 여당이 된 민주당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지 지지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란과 탄핵, 대선 패배로 인해 국민의힘의 현재 당내 상황은 참혹합니다. 계엄 해제에 불참하고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던 친윤들이 여전히 당을 장악하고 있고, '윤 어게인' 전광훈의 여파는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정선거론자 모스 탄에 열광하고, 강성 지지층의 법원 폭동에도 정치인들은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심지어 크게 상처 입은 정당을 치유하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할 국힘의 마데카솔은 전한길입니다. 국민의힘이 처한 인물난과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 진영은 당분간, 어쩌면 꽤 오랫동안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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