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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1/19 22:42:01
Name silence
Subject 친구야, 방금 정석이의 경기를 봤다.
방금 정석이의 경기를 보았다.

네가 좋아할 홍진호와의 경기였다.

평소와 다르게, 이번 승부의 경우..

너무나 불리한 맵에 불리한 종족과의 싸움이라..

긴장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패배는 확정적이었다.

먹휴리 라고 불릴만큼 최악의 플토대 저그의 벨런스를 자랑할 뿐더러.

이어지는 레퀴엠에서도 그리고 또이어지는 비프로스트3, 펠레노르.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머큐리.

단 한가지 맵도 플토에게 유리한 맵은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홍진호 였다.

여전히 최강의 저그라도 불리우는 그였다.



그렇게 시작된 1경기.

너무나 쉽게 박정석은 승리를 내 주었다.

정말 체념한 듯이 보일 정도의 올인 빌드로, 대각선이라는 핸디켑을 극복하지 못하고,

GG를 내 주었다.


그리고 내리 두경기를 어찌 어찌 따내면서.

그리고 그나마 유리한 펠레노르맵에서 초중반 유리하게 상황이 흐를때..

어쩌면.. 이라고 그의 승리를 꿈꿨다.


하지만.

그리 쉽지 않더라.

어쩌면 마지막 경기에 대한 부담감이었을까.

그의 멀티는 저그의 병력에 막혔고, 그나마 많던 병력도 그 한번의 전투로 거의 잃어 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막막할 정도로 아무런 대책도 보이지 않는 싸움을 보면서.

차라리 빨리 공격해 오지 않는 홍진호 선수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5경기.

초반 홍진호 선수는 너무나 쉽게 박정석선수를 조여버렸고.

그나마 활약한 닥템 두기를 압세워 겨우 앞마당 미네랄 멀티만을 먹은 상황..

너무나 암울했다.

승리를 바라는 마음을 품기도 힘든 그때.

거짓말처럼..

그 탄탄해 보이는 연탄조이기의 럴커와 저글링. 그리고 뮤탈과 스컬지까지 있던 저그의 병력을.

하이템플러의 스톰과 꾹참고 모은 한방으로.

기적적으로 뚤어 버렸다.

그리고 몇번의 위기를 겪었으나...



결국은..

홍진호 선수의 GG를 받아냈다.


소리를 지르고 욕이 나올만큼.

무언가 울컥한 경기였다.



팬이라고 이름 붙인 나조차 포기할만큼 암울한 상황에서.

오직 자신을 믿었던 그가 승리했다.




내가 스타방송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가 질거라고. 모두가 너무 힘들다고 믿고 있는 그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당연한 기대를 깨트리고.

침묵이 아닌 함성을 지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선수들이 있어서.

나는 이 취미를 포기할 수가 없다.



지난 며칠간.

지난 몇 주간.

응원하던 선수의 패배로.

혹은 잘 되지 않는 일들로.



그렇게 수많은 핑게 만을 낳았던 나의 나태함들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구나..

나는 나를 얼마나 믿었던 걸까?

나는 내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던 걸까.



그래 나는 알고 있다.

이 마음 마져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어제의 내가 그랬듯이 내일의 나라는 것도 별 볼일 없이 살아가겠지.

하지만..



나는 잊지 않고 싶다.

오늘의 경기를.

아니, 오늘의 경기를 보던 나를 말이다.

부끄러움인지. 기쁨인지. 혹은 슬픔인지 모를 마음으로 울컥할 수 밖에 없었던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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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04/11/19 22:46
수정 아이콘
와닿네요..
그래도너를
04/11/19 22:46
수정 아이콘
오옷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좋은 시 (맞나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04/11/19 22:49
수정 아이콘
정말 오랫만에 로긴하게 만드신글....
제가 플토유저인 탓도 있겠지만..
멋지심미다 silence 님도... 박정석 선수도... 그리고 홍진호선수도...
내 머리 속의
04/11/19 22:55
수정 아이콘
이거...정말 네 가슴을 쿡-_-찌르네요...
04/11/19 23:03
수정 아이콘
님의 글을 여기서도 볼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봐도 역시 감동이네요..

팬이라면서도 박정석 선수를 믿지 못했던 제 모습이..
맵탓을 들며 100번 중 2번 이기기도 힘들다고 후배에게 강변하던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핑계로 나 스스로의 나태함을 변명하고 합리화 해왔을까요..
스스로를 믿고 준비하여 마침내 폭풍조차 막지 못할 한방을 보여준
박정석 선수!!..정말 최고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역시 스타방송을 보는 이 취미를 결코 포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스플래시토스
04/11/20 01:01
수정 아이콘
터리님의 말에 진심으로 동감합니다....
오버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만 오늘 박정석 선수의 승리는
저에게 애타게 응원하는 선수의 승리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박정석선수의 오늘 승리뒤에 감춰진 그 뼈를 깎는 노력들...
정말로 암울하다는 그 맵들에서 이길 수 있는 그 미약한 가능성을 믿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박정석선수보다 인생 더 많이 살았지만...오늘만큼은 박정석선수에게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인생의 큰 교훈을 배운 날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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