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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30 17:00:34
Name redder
Subject [기타] 게임 속 자유도의 의미에 관하여

게임은 아직까지 주류 매체가 아니다. 금융회사나 공기업에 지원하는 이가 이력서 취미란을 게임으로 채우는 것은 2015년 현재 기준으로 아직까지는 용기있는 행위다. 어설프게 지능계발이라는 표어를 붙여 가며 스스로를 변호해야 했던 80년대 오락실 시절부터 폐인집합소의 오명을 들어쓰고 있는 PC방까지, 그리고 그나마도 싫어 집에서 게임하는 이들에게 따라오는 히키코모리라는 이미지까지 게임과 게임 환경에 대한 사회의 이해는 늘 부정적이었다.

게이머들은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게임 좀 그만하라는 연인과의 말다툼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쏟아내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콘텐츠들의 댓글란에서 게이머들은 게임의 위상을 잡기 위해 싸우고 주장하고 떠들어 왔다. 그리고 이런 말과 글은 조금씩 축적되면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진과 커뮤니티의 설립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에는 많은 언명이 포함된다. 게임은 예술의 일종이라는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논란을 부르는 주제가 대표적이고, 그밖에도 게임만이 갖는 다른 매체와의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글을 쓰는 나 또한 게이머의 한 사람이고, 길지 않은 연재 속에서 게임만의 특이점을 강조해 왔다. 그중 가장 여러 모로 자주 쓰이는 개념은 게임의 자유도라는 개념이다.


게임에서의 자유도는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면 다른 매체와 달리 사용자의 의지가 보다 자유롭게 콘텐츠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으로 묶을 수 있다. 수용이 아닌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의 매체적 특징이 갖는 근본적인 차별점이다.


게임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좋은 예시가 소설 <삼국지>와 고에이 게임즈의 턴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의 비교다. 게임의 원작이 되는 고전소설 <삼국지>는 실제 일어난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저자의 윤색을 거쳐 고정된 이야기를 갖는다. 반면 게임 <삼국지 시리즈>는 실제 인물과 배경을 가져다 쓰되, 플레이어가 군웅할거 시대의 한 인물이 되어 천하통일을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원작소설에서 관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유비의 충신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조조를 플레이하며 관우를 선봉장으로 세울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제갈량과 사마의를 모두 신하로 부릴 수도 있다. 소설 <삼국지> 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만한 드림팀의 구성도 가능하고, 소설의 결과와 다르게 뜬금없이 지방군주 엄백호가 천하를 통일하는 장면도 그려낼 수 있다.

  
▲ KOEI의 삼국지 시리즈 최신작인 <삼국지 12>. 국내 정발이 되지 않아 일본 공식 홈페이지의 스크린샷이다. 시리즈의 명성과 걸맞지 않게 혹평을 받은 최신작.

다른 매체에서는 그려내기 힘든 이러한 자유로움은 게임의 특징이자 매력임이 분명하다. 나 또한 게임을 접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게임만의 매력을 설명할 때 이 자유로움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자유도라는 단어로 이 생각을 설명하려 해 보면,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게임의 자유도에 대해 열정을 튀기며 게임 초심자에게 설명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아 정말 게임은 자유로움이 구현된 장르구나!’인 경우는 기억나지 않는 수준이다. ‘정말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을 자유도라고 부르는 게 잘 맞는 설명인 걸까?’라는 의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이 자문에 대한 설명과 탐구이다.



자유도는 정말 자유롭다는 단순한 의미가 전부일까

딱딱하게 자유라는 단어의 원론적 의미를 파헤칠 필요는 없다. 높은 자유도로 큰 인기와 칭송을 얻은 대작 게임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2011)을 통해 질문에 답해 보자.


2011년 GOTY(Game Of The Year) 1위에 빛나는 롤플레잉게임 <스카이림>은 놀라운 수준의 자유도 구현으로 이름높은 게임이다. 바이킹을 모델로 한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대륙 북반부인 스카이림 지역에서 벌어지는 제국 중심과 변방의 대립, 원시 용과의 갈등 등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풀려 나온다. 그런데 이야기를 푸는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다.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인게임 스크린샷. 높은 자유도로도 유명하지만, 화려한 그래픽도 빠지지 않는 수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게임 내 정치상황에 대한 플레이어의 선택과 개입이다. 플레이어는 스카이림 지역에서 대립하는 두 세력인 제국군과 스톰클록 군으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는데, 어디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스토리와 배경 도시가 변화한다. 그리고 이 선택에서 게임은 어느 한쪽에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두 세력의 갈등은 시로딜 제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변방인 스카이림의 지역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데, 자부심 강한 노르드족의 스톰클록 군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원하는 제국군이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억압하는 것에 부당함을 느끼고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노르드 고유민족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다. 반면 제국군은 당연히 스톰클록 군의 이러한 저항을 반란으로 취급하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스카이림에 등장한 상태다. 어느쪽도 각자의 명분이 살아 있기에 선택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에 달린다. 게다가 두 세력 어디도 선택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다.


서사에서의 선택만이 이처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이림>의 자유도는 서사 뿐이 아니라 게임 내 여러 상호작용에서도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도둑 길드의 수장이 어느 마을 촌장의 결혼반지를 훔쳐와야 네가 원하는 물건을 주겠다고 이야기하면, 그 해결 방법이 꼭 가서 훔쳐오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도둑을 설득해서 그냥 받거나, 돈주고 사거나, 아니면 도둑을 죽이고 빼앗는 방법도 있다. 밤에 몰래 마을 촌장의 집에서 직접 절도해도 상관없고 촌장을 죽여도 되며, 촌장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잠시 반지를 빌리는 법도 가능하다. 전적으로 게이머의 선택이다.


단순한 아이템과 오브젝트 또한 자유도 구현의 대상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가방 안에 사과가 있으면 보통 먹어서 체력을 회복하는 용도로만 쓰이는데, 스카이림에서는 활용도가 폭넓다. 가방 안의 사과에 독을 발라서 길에 던져 놓으면,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나 병사가 사과를 주워 먹고 죽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개의치 않는 시나리오 상의 자유로움, 퀘스트의 수행에 있어 수단을 제한하지 않는 방법론상의 자유로움, 아이템 하나 마을주민 하나도 일회성 용도로 구현되지 않은 상호작용의 가변성은 <스카이림>을 역대 최고의 RPG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플레이어는 <스카이림> 안에서 자유로운가? 그 자유로움은 정말 자유로움 그 자체로 비롯되는 즐거움인가?



자유도라는 이름 안에 숨어있는 다양성

시나리오상의 선택지가 다양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아니다. 스톰클록 군과 제국군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도울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플레이어가 제국군의 황제가 될 수는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스카이림>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도는 자유도라기보다는 선택지의 확장에 가깝다. 베스킨라빈스 31의 매장 진열 아이스크림에 신메뉴가 추가되었다고 해서 선택의 자유가 폭넓어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방법론에서의 자유도 또한 자유도라는 단어보다는 다양성이 더 적합해 보인다. 아이템의 다양성도 결국 사과로 사과파이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러나 <스카이림>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점 지적이 결코 아니다. 다양성과 자유도는 다른 개념이라는 이야기다. 다양성은 선택지의 1/n에서 n값을 키우는 것이고, 자유도는 n값을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게임의 자유도를 이야기할 때 큰 납득을 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비게이머들 또한 다양성과 자유도의 차이를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림>의 독사과 이야기를 신나게 비게이머에게 해 주면 이런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사과로 누구 뒷통수라도 맞추면 화내는 캐릭터도 나와?”


그러면 시나리오가 중심이 되지 않는 게임은 어떨까? 도구와 환경만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플레이어의 역량에 맡기는 이른바 샌드박스(sandbox. 미국 등지에서 뒷마당에 놀이터로 설치하는 모래를 채운 상자에서 기인함) 게임의 대표주자, <마인크래프트>(2011)를 살펴보자.


특별한 스토리 없이 주인공 캐릭터와 땅, 돌, 광석 등 마치 레고 블록과 같은 요소들과 이 요소들을 가공할 기술 등만이 주어진 게임 <마인크래프트>는 별도의 목표라고 부를 만한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게임은 그저 플레이어가 자원들을 모아 짓고 싶은 건물을 짓거나 무한정 땅을 파들어가거나 하는 데서 재미를 준다. 자유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스카이림>에 비해 양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 *<마인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들이 직접 구현한 <에반게리온>의 사도 침공 장면. 하나하나의 블록을 플레이어들이 직접 쌓아올린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 border="1" alt="" "border-width: 0px;"> 
▲ 게임북=책으로 되어 있으나 스토리 분기로 선택지에서 ‘A선택시 X페이지로 이동’ 등이 포함된 책. 비주얼노벨=일본에서 주로 제작되는 게임으로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선택지가 없이 정해진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장르.

가장 우측일수록 상상의 질료성이 높으며, 이는 각 장르가 가지는 추상성과 비례 관계다. 게임북부터 롤플레잉까지는 거의 서사가 고정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갈수록 정해진 서사가 없이 플레이어의 상상에 의해 플레이가 진행됨을 볼 수 있다.


상상의 질료성을 구현하는 방법은 결국 훌륭한 추상화다. 추상(推象, abstraction)을 통해 배제된 상의 영역을 플레이어의 상상력에 맡겨 버림으로써 플레이어의 상상력은 보다 넓은 놀이공간을 얻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자유도는 상상의 질료성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상속의 자유로움을 매체의 자유로움으로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인데, 이 상상 속이라는 극도로 추상화된 영역을 다시 현실로 잡아당겨 오는 것이 다양성의 구현이다. 이를테면 상상에 최소한의 뼈대를 잡는 작업이다.


게임의 기본은 룰에 의한 상호작용이다. 앞서 상상의 질료성을 순서대로 그린 표에서 최우측에 위치한 레고는 사실 게임이 아닌데, 그건 레고 놀이에는 룰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그 룰의 현실적 부과라는 한도 안에서 보장하는 자유로움이다. 그리고 이는 상상의 질료성과 달리 구체적일수록 자유로워진다. 갑자기 게임 안에서 만난 적을 싸워 죽여야 하는 단순경로와 설득, 뇌물, 협박, 회피 등의 선택지가 부여된 다양한 경로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게임 설계상에서 좀더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된다.


게임에서의 자유도란 이 두 가지 개념, 구체적일수록 자유로운 다양성과 추상적일수록 자유로운 상상의 질료성의 조합에서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자유로움이라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진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스카이림>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한 것인데, 하나는 발생할 수 있는 상식적인 확률을 넘어서는 경우의 수를 배제(추상)하고,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플레이어가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구현한 경우다. 이를 통해 무한대의 가짓수를 가진 자유로움은 '현실적으로 개발 가능한' 가짓수의 구현으로도 재현이 가능해진다. 반면 <마인크래프트> 는 아예 서사성을 배제하고 추상을 통한 상상의 질료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구현했다.


(단 여기서 언급하고 가야 하는 것은 물리적, 경제적 한계다. 다양성의 구현은 게임에서는 다 돈이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게임 내 오브젝트에 현실과 동일한 수준의 물리적 속성을 부여하면 시스템에 부하가 걸리고, 개발 스케줄은 늘어지며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들어간다. 물리적 한계가 보다 명확한 인디 게임의 경우에는 그래서 다양성보다는 상상의 질료성에 기대게 되며, 블록버스터 류의 게임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다양성을 선보이는 전략을 취하곤 한다.)



자유도, 게임을 대변하는 개념이나 게임의 전부는 아닌

자유도는 게임을 말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의미있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게임의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요소이다. 서사의 전개에 있어 단선적인 흐름을 고집하는 일본형 롤플레잉 게임들은 자유도라는 관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잘 못만든 게임은 아니듯이 말이다. 다만 다양성과 상상의 질료성이 어우러져 서사까지도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길 수 있는 콘텐츠는 게임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며, 게임을 대표할 수 있는 차별점으로서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다만 자유도라는 개념이 최근 출시되는 몇몇 게임에서 단지 할게 많은 게임 정도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자유도가 발생하는 본질인 인간의 상상력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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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icWolf
15/01/30 17:04
수정 아이콘
으아... 지난 글도 좋았는데, 이번 건 개인적으로 그걸 뛰어넘네요.
시간/자유.. 둘다 엄청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니.. 왜 추천이 하나밖에 안 박혀.. 추천수에도 자유도 좀...
15/01/30 17:36
수정 아이콘
선택지가 많은것을 자유도가 높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를 압도당한다 라고 하더군요.

적은 선택지안에서 유저가 누릴수있는 자유가 충분하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15/01/30 17:37
수정 아이콘
사실 어느 정도의 메인 뼈대 자체는 존재하지만 이런저런 할 게 많은게 좋지 무작정 오픈월드에 던지면 재밌어 할 사람 많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좀만 선형적이면 풍부한 서브퀘가 있어도 일단 까는 그런 경우도 개인 블로그 등에선 간간히 보이던데 사실 자유자유 하면서 뭐가 자유로운거냐 하면 말 못하는 사람도 많죠...
15/01/30 18:09
수정 아이콘
자유도가 높은게 뭔지 정확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자유도가 최악인 게임은 얘기할 수 있습니다.
파판13..
눈뜬세르피코
15/01/30 19:07
수정 아이콘
게임성만 따지면 게임북만도 못한 비쥬얼노벨들도 어쨌든 게임의 탈을 쓰고 있는걸요 흐흐 파판 정도면 뭐...
안스브저그
15/01/30 18:11
수정 아이콘
지난번 시간글도 그렇고 이번 자유도 글도 그렇고 재미있게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고 즐기던 게임이라는 장르의 발전을 흥미롭게 풀어주시는것 같아 읽는동안 머리가 즐겁습니다. 언젠가 학부에서 게임의 서사구조와 사회문화의 관계에 대한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 내용이 떠오르네요. 다음 소재는 무엇이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유도에 관한 얘기를 하니 최적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개발자의 입장에서 자유도를 높이는 것도 유저가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또 유저의 입장에서 높은 자유도 속에서 찾아낸 최적화라는 것도 희열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나 최적화 된 선택지만 추구하면 물론 획일적인 게임양상으로 번지므로 높은 자유도가 실제로 구현되려면 최적화가 존재하되 그 보상이 다른 선택지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아야 하고 그것이 게임 밸런스라고 보고 게임밸런스가 좋으면 나름대로의 명작 소리를 듣는것 같습니다.
15/01/30 18:14
수정 아이콘
전 개인적으로 오픈월드나 샌드박스 같은 게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표가 없는 게임이나 할게 너무 많아버리면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물론 스카이림이나 근래나온 세인츠로우나 뭐 그냥 신나게 때려부수고 이러면서 즐기긴 했지만 정말 딱 그런 수준으로 즐겼습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거나 목표가 아예 없어도 힘들어요;;
人在江湖
15/01/30 18: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구밀복검
15/01/30 19:35
수정 아이콘
제가 읽어 본 스카이림 리뷰 중에서는 이게 가장 마음에 와닿았고 구구절절 공감이 갔습니다.

http://deadly-dungeon.blogspot.com/2011/11/blog-post.html?showComment=1321972580537#c756408389651583442

...이건 뭐 게임 시작하자마자 타이버셉팀 급 전설적 영웅이 되어버렸습니다. 폴아웃3의 악몽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메인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벌써부터 발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너는 이제 커다란 사명을 짊어졌으니 당장 회색수염을 만나서 수련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미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영웅이 되어버렸으니 그걸 팽개쳐놓고 마을에서 노닥거리는 게 이제는 불가능해져버렸습니다. 도대체 인트로의 그 선택은 뭐였죠? 저는 이게 메인퀘인지도 몰랐습니다. 서브퀘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천천히 배경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 완전히 롤러코스트예요. 한 번 타면 내릴수가 없어요. 목적지조차 내가 정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엔딩을 보고나면 남는 것은 '관광' 뿐입니다. 더 이상 내가 주인공이 될 수가 없어요. 커다란 목적도 없고 숨겨진 계획도 없습니다.] 끝내주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뭐합니까. 그걸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줘야죠.

...오블리비언부터 스카이림까지 베데스다 게임들은 사실상 메인퀘가 없는 게임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메인퀘가 그냥 서브퀘나 마찬가지죠. 전체 게임에서 하는 역할로나 분량으로나요. 그렇다고 이 게임들이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을 추구하는것도 아니죠. 부나 명성을 추구하는 데 크게 의미가 있는 게임도 아니니까요. 물론 퀘스트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그 세계 자체를 맛보는 재미는 있지만 저는 그것보다 더 큰 걸 원해요. [궁극의 목표와 동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제대로 끝내고 싶습니다. 마침표를 딱 찍고 야! 내가 주인공이었다! 내가 해냈다! 이런 상쾌함과 뿌듯함을 얻기를 원합니다.]게임이 단지 즐거움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 되려면 최소한의 뼈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아래 링크에서는 게임의 자유도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을 행하죠.
http://deadly-dungeon.blogspot.kr/2011/09/rpg-rpg.html

위에 따르면 게임에서 의미하는 자유도는

1) 이동의 자유
2)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의 자유
3) 문제 해결 방법의 자유
4) 플롯의 자유

로 나뉘어 지는데, 1번과 2번만 충족된다고 해서 자유도 높은 게임이라고 할 수 없으며, 4번까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죠.

[게임의 최종 목적은 엔딩이므로 가장 중요한 자유는 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자유]이다. 하나의 퀘스트가 아무리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한들 그 퀘스트 하나로 엔딩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퀘스트는 엔딩을 보기 위한 필수 조건을 구성하는 한 부분일 뿐이다. 이 엔딩에 필요한 필수 조건들이 서로 유기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정해진 한 가지 방법이 아닌 플레이어의 판단에 따라 다른 진행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게임의 목적(엔딩)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자유인것이다.

사실 퀘스트라는 단어의 의미부터가 좀 왜곡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퀘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은 퀘스트의 가장 작은 단위를 떠올린다. 심부름하고 돈 몇 푼이나 아이템을 받는 등의 잡일하고 보상받기 말이다. 그런데 퀘스트란 말은 좀더 크고 중요한 일에 어울리는 단어이다. 예전 게임들의 제목을 보면 '퀘스트'가 들어가는게 상당히 많다. 퀘스트RPG의 기틀을 세운 울티마4의 부제도 '퀘스트' 오브 아바타이며 폴리스 퀘스트, 킹스 퀘스트, 퀘스트 포 글로리처럼 제목에 퀘스트가 들어가는 시에라 어드벤쳐 시리즈들도 넘쳐난다. 당연히 이 제목들의 퀘스트는 소소한 잡일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목적, 엔딩을 향한 어떤 중요한 여정]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울티마4의 퀘스트는 아바타가 되는 것이며 킹스 퀘스트의 퀘스트는 왕국을 구하거나 가족을 구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RPG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개별 퀘스트의 질만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진짜' 퀘스트는 잊혀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서양RPG에서 '자유도가 높다' 라던 말의 의미는 이동이 자유롭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서브 퀘스트가 많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문제 해결의 다양성을 지칭한것도 아니었다. 바로 엔딩을 향한 플롯의 구조가 비선형적이라는 의미였다....이것이 본인이 현재 서양에서 만들어지는 RPG들이 일본RPG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일본RPG와 서양RPG를 구분하던 유일한 철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먼저 4번이 있었고 1~3번은 4번을 떠받치는 기둥으로서 발전해왔었던 요소였다. 서양 제작자들이 이제 와서 4번을 제거한 이유는 그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더이상 플레이어의 자율을 존중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의 제작자들이 이상적인 게이머를 상상하고 그들을 위해 게임을 만들었다면 현재의 제작자들은 현실적인, 아니 현실 이하의 게이머를 위해 만든다. 게이머를 자율성을 포기한 개돼지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15/01/30 20:41
수정 아이콘
고갤 아이돌 섹시우스님 글이네요.
15/01/30 20:52
수정 아이콘
사실 고갤서 섹시우스 막 까긴 했지만 섹시우스의 말 자체는 어느정도 공감은 가는데, 노골적으로 어그로 끌어대는 것 때문에 싫어하는 경향이 강했죠 크크 옛날 고갤이 원래 좀 츤츤거리는게 심하기도 했고
201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섹시우스 옛날글 퍼와서 이건 맞네 아니네 하면서 지들끼리 싸우기도 하더군요;
15/02/02 11:07
수정 아이콘
'진짜 퀘스트' 개념에 대해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퀘스트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디씨 고갤은 잘 몰랐는데 찾아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스터충달
15/01/30 22:43
수정 아이콘
스카이림과 자유도에 관해 한 가지 생각해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5편째를 맞이하면서 엘더스크롤 제작진이 대거 교체가 됐었는데요.그러면서 게임 컨셉의 변화가 왔습니다. 이전까지는 D&D에 기초한 플레이의 자유도에 촛점을 맞췄다면 스카이림은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에 촛점을 맞췄죠. 그 결과는 퀘스트 진행의 직선화로 나타나게 되었고, 많은 팬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본문의 개념을 적용해 보자면 선택의 다양성도 줄어들었고, 서사를 스스로 구축하는 상상의 질료성 부분도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브젝트나 NPC와의 상호작용이 증가 되었고, 무엇보다 그럴듯함(핍진성 혹은 리얼리티)이 엄청나게 높아졌죠. 그래픽의 발전이라는 환경을 십분 활용하며 플레이어에게 판타지 속에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재밌는 점은 이를 통해 플레이를 하면서 '자유롭다'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이죠. 이러한 자유로움은 본문에서 말하는 자유도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유도가 높아졌다기 보다 감각이 확장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물론 PC에서 시청각(가끔 촉각)을 뛰어넘는 감각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함의 증가로 인해 공감각적으로 다른 감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죠. 스카이림의 노선 변화는 이러한 조금은 다른 변주의 자유로움을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5/02/02 11:05
수정 아이콘
저도 스카이림 처음 돌리면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보고있노라면 확실히 판타지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죠. 저는 심지어 디아블로 2때도 중간에 비오는 소리가 들리면 왠지 밖에 비가 온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당시 놀던 PC방이 어두컴컴 눅눅해서 더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감각이라고 표현하신 부분에 대해서 좀 정리하고 있는데, 정리가 되면 다시한번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마스터충달
15/02/02 14:21
수정 아이콘
또 글로 써주세요!!
라됴헤드
15/01/31 00:49
수정 아이콘
스카이림을 하다가 황제를 살해할수없다는 걸 알았을때 몰입도가 확 떨어졌었네요 각각의 퀘스트가 유저에게 제공하는 갈등과경험이 스카이림의 장점이라 봅니다. 자유도면에서는 뭐 별거없다고 보구요.사실 폴아웃 베가스가 근래 게임중에서 선택과 결과 라는 '자유도'에서는 가장 만족할만한 답을 내주고 있는게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스 노 로 제한된 문장 선택을 벗어나 실제 플레이어의 행위자체가 게임의 플롯과 결말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라 좀더 납득할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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