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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1 21:12:52
Name 한니발
Subject DAUM <1> 下
고개 숙이지 않는 자

「Run away, Run away, I’ll attack
   Run away, Run away, Go chase yourself
   ……
   Your promises (promises, promises)
   I promise you (promise you)
   I promise you (promise you, promise you...)」
                   - 30seconds to mars, 『attack』中



  2007년 5월 11일.
  용산 상설 경기장은 박정석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와 기립 박수갈채로 뒤흔들렸다. 장장 584일만의 스타리그 승리에 대한 반응이 그것이었다. 박정석은 한 때 오직 그만의 것이었던 드라군 드라이브로 변형태의 2팩 조이기를 막아냈고, 현란한 무당 리버와 무당 스톰으로 테란의 자원줄을 말렸으며 마지막에는 캐리어까지 이끌어내며 변형태를 압도했다. 프로토스의 모든 것 - 이것이 이 날 박정석 한 사람을 향해 바쳐진 찬사였다.
  영웅, 영웅, 영웅……. 사람들은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풀이하면서 박정석을 향해 환호했다. 그 가운데, 다만 희미한 미소를 띠고 박정석은 자신의 자리에 서 있었다.
  영웅이라는 그의 두 번째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던가.
  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5년을 거슬러야 한다.



  올드 프로토스 팬들에게 있어 SKY 2002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이 마법의 가을에 박정석은 4강에서 홍진호를, 결승에서 임요환을 쓰러뜨렸다. 임요환에게는 전설과의 두 번째 싸움이었고, 패배였다. 사이오닉 스톰이 포비든 존에서 황제의 꿈을 용서 없이 불살랐다. 낭만 시대는 비로소 박정석이라는 이름의 프로토스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순간, 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은 환희가 아니라 당혹이었다.
  그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은빛 신성의 탄생이 아니라 제국의 완성이었다. 전승 우승과, 3회 우승. 바로 임요환의 신화가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승부의 끝을 알리는 불꽃이 올랐고, 승자와 패자가 걸어 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요했다.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산발적인 박수는 어색하기만 했다.
  인터뷰가 끝을 향해 가는 도중에도 그러한 분위기는 깨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인터뷰를 마치고, 그대로 결승이 마무리되기 직전 -
  그 때 갑자기 엄재경 해설 위원이 입을 열었다.

  "왜 프로토스는 황제가 없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많이 있는데. 프로토스라는 종족에는 원래 황제는 없습니다. 프로토스는 영웅이지요……프로토스에는 황제가 없고, 영웅이 있을 뿐이고. 박정석 선수가 영웅으로 -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박수는 이전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마지막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그들 앞에 선 승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선, 기어들어가는 부산 사투리로 '이제 부산에 돌아가 어머니의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청년을 그들의 뇌리에 새겼다. 이후 10년 동안 몇 번이고 그들 가슴에 불꽃을 지필, 프로토스의 영웅을 그들은 그 때 비로소 기억했다.
  박정석은 그 때도 다만 희미한 미소를 입에 띠고, 자신이 서야 할 자리에 오롯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두 번째 이름, '영웅'은 굴종치 않는 자를 의미한다. 또한 굴종치 않을 자를 의미한다. 그와 같은 길을 걸어올 수많은 후학들의 필두에 서서, 그들에게 꺾이지 아니했고 아니할 등을 보여주는 자를 의미한다.
  박정석의 후학들은 음지에서 자라났다. 그들은 대개 두 가지 부류 중 하나로 여겨졌는데, 잊혀질 패자나 환영받지 못할 승자가 그것이었다. 그들은 느린 걸음의 소유자였으며 위대한 누군가의 패도에 있어 걸림돌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에게 리그-브레이커라는 이름을 붙였다.
  존재 자체로 리그에 해악이 되는 자들.
  그들이 가져갈 몫은 승리, 패배, 축하, 위로가 아니라 조롱, 모멸, 동정, 그리고 무관심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아니하였고, 다만 묵묵히 감내하며 그들 자리를 지킬 뿐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앞선 자로부터 굴종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었다.

  뒷날 알려진 바에 의하면 SKY 2002는 온게임넷의 마지막 승부수였다고 전해진다. NATE의 치명적인 흥행 실패로 존폐 위기에 몰린 스타리그가 힘을 짜내어 내딛은, 어쩌면 마지막일수도 있었던 한 걸음이었다. 알려졌다시피 그 마지막 한 걸음은 길이 남을 성공을 거두었고, 스타리그는 그로부터 10년을 더 이어왔다.
  그 곳에 임요환이 있었다. 하지만 또한 박정석이, 이름 없는 한 명의 리그 브레이커가, 당신들의' 영웅'이 있었다. 박정석의 후학들이 보고 자란 등은 환영받지 못한 승자임에도 다만 담담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의 것이었다.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이 걸어갈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이의 것이었다. 그래서 박정석의 후학들은 그들의 앞선 자로부터 굴종을 배우지 못하였다. 그들이 배운 것은 침묵을 지키며 반석(磐石)이 되는 법이었으며,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주춧돌이 되는 법이었다.



  D조에서 김준영이 치러내야 했던 세 경기는 모두 기습전이었다. 송병구는 전진 로보틱스, 한동욱은 치즈러쉬, 신희승은 전진 3팩이라는 승부수를 띄워 김준영을 노렸다. 물론 그 모두는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후반 운영의 강자로 널리 알려진 김준영을 대적하기 위해 각자가 준비한 비장의 일격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일찍이 '패배하는 에이스'로서, 한빛이 패한 그 수많은 에이스 결정전들을 도맡았었다. 그의 출전은 항상 예측되었고 그는 항상 간파당한 상황에서 싸웠다. 그는 그렇게 완성된 흠집투성이의 대기 - 진창을 두려워 않고 큰 길을 걷는 자였다.



  송병구 또한 대 김준영전을 제외한 나머지 두 경기에서는 모두 급습을 당했다. 한동욱은 전진 배럭, 신희승은 2배럭 이후 앞마당 바카닉이라는 기략을 짜냈다. 허나 송병구 또한 느린 걸음의 대기이자 박정석의 후학이었다. 일찍이 신 3대라는 이름에 짓눌렸으나, 그에 굽어 자라기보다는 깊은 뿌리를 내리고 그 이름에 걸맞도록 천천히 곧기를 택한 거목이었다.
  김준영과 송병구는 그들을 노린 그 모든 기책들을 떨쳐내고 박정석의 뒤를 따라 8강에 합류했다.
  그들은 결국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아니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치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대인도 아니고 거목도 아니었으며, 그리 따분한 길에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무뢰한이라 불렸고, 스스로도 그러길 바랐다.

"요즘 너무 평화로웠다. 그래서 힘이 잘 안 나는 것 같다. 일이 터지고 위기가 닥쳐야 힘이 나는 편이다. …적수가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나를 자극시켜 줄 누군가가 등장해줬으면 좋겠다."
                                                                                                               - 변형태, 2007.5.25 DAUM 스타리그 16강 3주차 경기 후



  변형태는 이번 조지명식에서 박정석을 지명하면서, 박정석에게 라이벌이 되어달라고 부탁한 바 있었다. 변형태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가 바랐던 박정석은 '천왕'의 일각이자 '영웅'인 박정석보다는 '리그 브레이커' 박정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변형태에게 있어서 '리그 브레이커'란 대중에게 모멸당하는 자 따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뒤엎고 어지럽혀 리그를 박살내는, 그런 유아독존 무뢰한의 의미였으리라. 실제로 박정석이 SKY 2002에서 이룩한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기도 했다. 임요환과 홍진호 - 테란과 저그의 위대한 양각 구도를 무너뜨리고 다시 한 번 삼각 구도를 완성시킨 것. 이는 일찍이 김동수가 실행했고 이후 수많은 프로토스들이 이어가는 반역의 전통이었다.
  변형태는 박정석에게 참패했음에도 서경종과 원종서를 제압하고 8강에 합류한다. 영웅과 무뢰한은 꽤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짝이지만, 어쨌거나 변형태도 송병구, 김준영과 마찬가지로 '고개 숙이지 않는 자'였다. 그 또한 박정석의 후학이라면 후학일 것이다. 다만 변형태가 쫓는 '영웅'의 등은 인내하는 구도자의 그것이 아니라 반역아의 그것이었을 것이며, 실제로 그것이 지금 변형태에게 더 필요한 멘토이기도 했다. 변형태가 내딛을 8강 -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마재윤이었으니까.

  그러나 구도자도, 반역아도, 어느 쪽도 결국 '영웅'의 등임을 - 변형태가 깨닫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해와 비와 반딧불이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 신형원, 『개똥벌레』 中



  DAUM 스타리그 16강에 탈락자에는 다음의 영구 제명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원종서, 김성기, 신희승.
  또한 8강 진출자에는 다음의 영구 제명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재윤, 진영수.

  2010년 10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2부는 피고들의 스타크래프트 리그 승부조작 혐의 및 불법 사설 도박 참여를 인정하고 각각 죄질에 따른 형량을 선고하였다.
  이 일련의 흐름은 세 개 공중파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뒤이어 배구, 축구, 야구 등 국내 스포츠의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 수사로 이어지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 거리에서 만난 이들과 우연히 만난 옛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중
  우연히 E-SPORTS에 대한 말을 꺼내면
  그들은 '아, 그 조작?'
  하고 그 모든 것을 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말을 접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아이의 열정으로 이 판을 살아왔고 선수들을 응원했고 지탱했다
  이제 10년이 지나 우리의 머리는 조금 굵어졌고 이제부터 조금씩 이 판의 숨겨진 병폐를 살펴볼 눈을 갖게 되었다
  ……
  ……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여전히 아이의 분노와 아이의 열정일지언정 조금씩 말을 내딛기 시작했었다
  그 모든 것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런 희망을 갖고 싸웠다
  지금까지와 지금과 앞으로의 그 모든 것 그것을 당신의 위대한 손은 '조작' 한마디로 줄였다
  증오한다"



  0.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한 프로게이머의 이야기이다.

  그는 2002년에 데뷔했다.
  프로게이머로서 생활하며 남긴 통산 전적은 82승 105패이고, 최고기록은 2005 2차 듀얼 토너먼트 1R 진출이다.
  스스로 밝힌 프로게이머 인생 최고의 순간은 "내가 이기고 팀도 이겼던 모든 순간"이며, 그가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은 이스트로estro이다.

  여기까지 말해도 당신이 떠올려내지 못했을
  그의 이름은 조용성이다.



  1.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몇 명이나 조용성이란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는 서경종처럼 혁신적인 무언가의 발견자도 아니었고, 이재호처럼 조용하되 꾸준하지도 못했으며, 한동욱처럼 찾아온 일순을 불사르지도 못했다.
  그는 거대한 이야기 앞에 깜박이며 흩어져야 했던 수많은 반딧불이들 중 하나였다. 무엇이 모자랐을까? 재능? 기회? 어쩌면 수려한 외모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조용성은 대성하지 못한 선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좌절했고, 떠나갔다는 그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이다. 언제나 어디에나 어느 곳에나…….

  하지만, 지금 나는 그를 기억한다.

  그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나는 조용성이란 저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 어떤 위대한 업적도 남기지 못한, 어디에나 어느 곳에나 있는 저그, 조용성은 어떻게 이 이야기에 남았는가?
  뻔뻔하지만, 나조차도 그의 인상적이었던 경기를 쉽사리 꼽지 못한다. 그래도 그의 마지막 경기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다. 2007시즌 STX와 이스트로의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 2008년 1월 5일. 이스트로는 이 날도 3:0으로 대파 당했고, 조용성은 블루스톰에서 김윤환에게 패배함으로써 이스트로의 연패에 일조했다.
  이스트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팀이었다. 한 번의 드라마도, 반전도 허락받지 못한 팀이었다. 다른 팀에서 방출당한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두각을 나타낸 몇 안 되는 선수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팀을 떠나기가 부지기수였으며, 그래서 잔인한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선수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팀이었다. 조용성은 그런 팀의 그저 그런 저그였고 결국 그렇게 은퇴하려던 참이었다.
  이지호 감독은 그런 팀의 감독이었고 그런 선수들과 그런 팬들의 감독이었다.
  그 날도 기자들은 그다지 이변도 아니었던 이스트로의 완패를 뒤로 하고 취재를 끝내려던 참이었다. 돌아선 그들의 발걸음을 잠시 잡아끈 것은 그런 뜬금없는 타이밍에 쭈뼛대며 무대로 올라오는 뻔뻔한 패장이었다.
  그는 약팀의 감독들이 늘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말들, 그러니까 팬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서 죄송하고, 다음 시즌에는 분발해서 더욱 잘하겠다는 등의 판에 박힌 인사치레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더욱 뜸을 들인 후, 퍽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저랑 3년을 함께한 친구인데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 기억해 주십시오


  그 다음에 그가 무슨 말을 했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는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몇 번이고 울먹이며 말을 멈췄고, 그 때마다 사람들의 박수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며, 그러자 그가 마침내 용기를 얻어 한 일이 무대 위에 올라 우스꽝스런 춤을 추는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지호 감독은 조용성에게 군생활의 힘든 모퉁이마다 자신의 우스꽝스런 춤을 떠올리면서 웃으라고 말했다. 춤을 마친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멋쩍게 웃으면서, '용성아, 군대 잘 갔다와라!" 씩씩하게 외치고는 자리를 내려왔다. 은퇴 경기까지 참패 밖에는 안겨줄 수 없었던 감독이 선수에게 줄 수 있었던 건 그런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때도 그랬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저게 뭐하는 짓인가"하고 뚱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그렇지만 - 기억에는 남는다.
  뜬금없이 무대 위에서 어설픈 춤을 추던 감독이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 사람들과
  담담하게…하지만 행복하게 웃으며, "팀이 이기고 내가 이겼던 모든 순간이 너무 좋았다"며, 그렇게 떠나간 무명 저그가 있었다고.
  누군가의 기억에.




  -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김택용의 3.3이 이끌어낸 것이 혁명의 새벽이라면 조용성의 이야기는 반딧불이, 그러니까 개똥벌레의 불빛일 것이다. 새벽이 동터오면 반디의 불은 사라져버린다. 본래부터도 아른아른, 깜박깜박했던 희미한 반짝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에나, 어느 곳에나 있는 작디 작은 빛인 것이다.
  지난 밤, 또 지난 밤, 또 그 지난밤에는 얼마나 많은 반딧불이들이 그 빛을 반짝였을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갔을까…….



2.

  한 여름밤, 개똥벌레 불빛을 쫓아 물가의 풀섶을 헤치는 아이들은, 첨벙첨벙 뛰어다니며 깜깜한 허공에 손을 휘두르면서 어떻게든 그 작은 불빛을 손에 쥐어보려 애를 쓴다.
  그러나 좀처럼 잡히질 않는다. 툴툴대고, 짜증내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작은 손에 불빛이 살포시 들어오면, 그러면 아이들은 두 손을 동그랗게 모으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레 손 안의 불빛을 살핀다. 살짝 입을 벌린 채 그 희미한 불빛에 마음을 빼앗기다가, 이윽고 동그랗게 모은 그 두 손을 소중히 제 품으로 가져가 안는다.
  그 고사리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금세 나풀대며 날아갈, 그리고 다시 동터오는 햇빛 속에 잊혀질, 그 미약한 불빛을 제 맘과 기억에 아로새기듯 소중히 제 품에 안고, 그리고, 그 순간 그 반디는 아이의 달빛이 되고 별빛이 된다.

  장대비로도 누르지 못하고
  먹구름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그 유년의 기억 속에서 영원한 새벽이 된다.



  3.

  기억해주십시오.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용성이가 우리와 함께했다는 것을.

  이지호 감독의 춤은 그렇게 들렸다. 이지호 감독과,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와, 나는 풀섶을 헤매던 아이들이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지호 감독의 춤을 들을 수는 없었던 것처럼, 몇몇의 반디도 결국 우리 손에 닿지 못했고, 그들은 영원히 떠나 밤의 허공 속으로 사라져 먹구름이 되고 장대비가 되어 떨어졌다. 그 이지호 감독조차도 불운했던 이스트로가 키워냈던 단 한 명의 4강리거를 그렇게 잃었다.

  하지만 또 다른 몇몇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별이 되고 달이 되었다. 그리고 또 몇몇은, 품속에서 하늘로 올라 새로운 해가 되었다.
  그는 그 무엇으로도, 설령 '위대한 손'이라 해도, 결코 덧칠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
  이만 다시 이야기를 잇도록 하자.

  이 이야기에 끝에, 본래 한 마리 반디였던 해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 DAUM <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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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 삼부작 2부 DAUM 시작합니다.
참고한 글들, 이미지 출처는 마지막에 한꺼번에 밝히겠습니다.
->

혹 논란이 있을까봐 참고한 글들은 매화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스타에 대해 게임 내적으로는 거의 무지한 탓에, 게임 보는 눈이 있으신 분들의 글을 보고 그 견해를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Pain님의 글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1편에 도움받은 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축제를 선택한 OSL, 투기장을 포기한 MSL」 - Judas Pain
「3.3 혁명의 진정한 의미」-  不平分子 FELIX  
「이영호 선수에 대한 분석글(스갤펌)」 - Artstorm
「조용호, 기억하고 계십니까」- Judas Pain

위 글들은 모두 PGR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글들입니다. 시간 되시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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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12/10/11 21:19
수정 아이콘
조용성 선수의 은퇴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지호 감독도, 이스트로도 전부 잊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를 만큼 흘렀으니 그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결코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 그때의 자신이 떠올라 왠지 부끄러워지고 왠지 미안해지네요.
사실은 부끄러워 할 것도 미안해 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역시 부끄럽고 역시 미안합니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저의 마음에 가슴 먹먹함으로 자리해주셨던 모든 분들이 잘 되길 기원합니다.
또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신 글쓴 분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네요.
12/10/11 21:21
수정 아이콘
기억나네요 이지호감독의 춤 ㅠㅠ

SO1에 이어 Daum이라...... 정말 온겜은 하늘이 돕는구나를 다시한번 느낀 리그였죠...... 시즌 시작할때 중계권 사태라던가 이런걸로 많이 뒤숭숭한 상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끝까지 기대하겠습니다
My Worst Nightmare
12/10/11 21:24
수정 아이콘
저에게 최고의 스타리그로 기억되는 다음 스타리그..
스타카토
12/10/11 21:25
수정 아이콘
다른 어떤 이벤트보다....감동적인 이벤트였습니다...
그것도 감독의 춤..
정말...정말 눈물나게 웃기는데..왜그리 슬픈건지...
저에게 있어서 그보다 소담할수 없는 은퇴식이었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인 은퇴식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얼린피카츄
12/10/11 21: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을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었네요.

하..이지호 감독과 조용성 선수의 근황이 궁금해지네요..
오렌지샌드
12/10/11 21:40
수정 아이콘
참 많은 감동을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들로 좋은 기억까지 잊을 뻔 했지만, 장대비로도 먹구름으로도 덮지 못하는 멋진 경험들이었어요.
RookieKid
12/10/11 21:40
수정 아이콘
나이는 어리지만 낭만시대라 불리는 시절의 스타리그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써...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상 편도 하 편도 추천 하나씩 드리고 갑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Tristana
12/10/11 21:46
수정 아이콘
나름 이스트로 팬이었는데...
조용성 선수 은퇴때 군대에 있어서 그 장면을 티비로 보진 못했지만 감독님 참... ㅠ
역시 한니발님 글 정말 좋네요. 추천 드리고 갑니다.
sprezzatura
12/10/11 21:55
수정 아이콘
daum 스타리그 8강 2회차가 막 끝났을때, 커뮤니티 반응은 "망해도 제대로 망했구나"였죠.
당시의 아이콘이었던 마XX 탈락, 3.3혁명으로 가장 핫 했던 김택용 탈락,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박정석 탈락, 얼굴에 실력까지 급상승해 한창 주목받던 진XX 탈락,

그들 대신 올라갔다는게 만년 16강 리거 김준영 송병구에, 갓 데뷔해서 날빌 두 번으로 올라간 중학생 이영호,
전대회 3위였지만 그만큼의 대중적 인기는 끌지 못했던 변형태까지. 폭망도 이런 폭망이 없었죠.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대단한 4강 멤버지만, 당시로선 떨어진 선수들의 주가가 워낙 높았었으니)

헌데 이 대회가, 특히 결승전이 역대급 레전드가 될 줄은......
12/10/11 22:06
수정 아이콘
저도 임선수 팬이지만 대인배의 결승을 보면서 엄청난 떨림이 오더군요. 다음배 스타리그는 정말이지 레전드 입니다.!!
자제좀
12/10/11 22:18
수정 아이콘
잊지못할 기억들이네요..앞으로도 없을..
검은별
12/10/11 22:28
수정 아이콘
그 당시 이스트로, 플러스 등 약체팀을 참 좋아했었는데 다시 떠올리게 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올려주세요~
박근혜
12/10/11 22:37
수정 아이콘
저 이스트로팀의 마지막경기를 라이브로 봤었던게 기억나네요... 누가 우승해서 울면서 인터뷰하는거 볼때보다 더 슬펐던 기억이 나네요.
12/10/11 23:23
수정 아이콘
낭만의 시대를 추억할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m]
프링글스양파맛
12/10/11 23:33
수정 아이콘
헐... 이렇게 재미있는 글 읽게해놓고 다음화에 계속이라니.....ㅠ
12/10/12 01:32
수정 아이콘
우선 감사합니다.
이때가 아마 제가 고3이였을 땐데.. 공부하다가 그냥 마루에 나와서 쉬는데 우연히 온게임넷 중계를 하더군요.
그래서 1경기부터 5경기까지 다 봤습니다. 골수 G.O. 빠였음에도 당시 김준영선수를 응원하게 되더군요.

특히 마지막 게임에선 변형태 선수가 다 이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두기씩 쌓이는 울트라..
잊지 못 할 스타리그입니다.
12/10/12 08:58
수정 아이콘
조용성 선수의 은퇴식이 있던 그날 경기를 생방으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토요일이었나, 일요일이었나 정말 볼 게 없어서 이스트로 경기라도 보자고 해서 보았고,
역시나 이스트로는 별다른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당연한 패배.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이어졌던 이지호 감독의 퍼포먼스.

그때에는 그 퍼포먼스가 조금 낯간지럽고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군대가는 선수에게 저런 거라도 해주다니
참 따뜻한 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나이가 먹어서 그런거겠죠
12/10/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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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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