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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12/21 23:31:48
Name 아스칼렌
Subject 불꽃과 영원
네이버 백과사전을 참조한 결과 '불꽃'의 구조는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산소가 가장 많이 유입되는 가장자리에서 거의 완전한 연소를 일으키는 '겉불꽃',
미처 연소하지 못한 가연성증기가 많은 부분으로 제일 환한 빛을 발하는 '속불꽃',
마지막으로 기체가 아직 타지 않은 불꽃의 중심부위 '불꽃심'

불꽃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스타 판의 한 남자가 걸어온 길은 재미있게도 위 세 가지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겉불꽃' 은 변길섭의 우승 시기였던 2002년도와 닮아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시기였다는 점이 세 부위 중 가장 온도가 높은 '겉불꽃'과 어울린다고 할 수 있으며, 무색(無色)에 가까워 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겉불꽃의 특징이 월드컵에 묻혀 존재감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그의 우승대회 2002 네이트배 스타리그를 떠올리게 만든다.  같은 해의 스카이배 스타리그가 '영웅의 신화'를 탄생시켰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변길섭이 제일로 뜨거웠던 시기와 이 나라에서 월드컵의 열기가 제일이었던 때가 함께 겹쳐 있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어진다.

변길섭이 정점에 올랐던 네이트배를 기준으로 하여 그 전과 직후의 시기는 '속불꽃'에 빗댈 수가 있다. 겉불꽃보다 약간 덜한 온도이지만 제일 환한 색조를 보여주며 '불꽃'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의 주인공, '속불꽃'.  변길섭은 자신의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명장면들을 이 시기에 만들었다.  네이트 배 이전의 경기들이 그에게 불꽃이라는 별명을 처음 선사 했다면 네이트배 이후의 경기들은 변길섭의 불꽃을 완전히 고유의 것으로 정착시킨 명장면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특히 뜻이 깊다고 할 수 있는데, 2004년도에 열렸던 아이옵스배 스타리그 16강 D조 4경기, 절대로 뚫지 못할 거라던 해설자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던 대 조용호전의 5성큰, 합의 7성큰 뚫기와 SKY 프로리그에서 조용성을 상대로 6성큰+2성큰을 뚫었던 장면, 2004 EVER 스타리그 16강에서 성큰밭을 절대 뚫지 못할 거라던 김태형 해설을 민망하게 만들었던 변은종과의 경기 등이다.  
'변길섭은 불꽃러쉬' 라는 이미지가 이미 한참 굳어져 미리 대비를 하고 나온 저그들에게 자주 깨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넉넉하게 준비 된 성큰밭을 미친 듯이 뚫어내며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대에게 '나의 불꽃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뜨겁다!' 라고 일갈하는 것 같았던 시기, 황홀한 불꽃테란의 색채.

'불꽃심'은 변길섭의 어떤 시기와 맞춰 빗댈 수가 있을까? 한동안 개인리그, 프로리그 나눌 것 없이 어디에서도 이름을 찾기 어려웠던 변길섭의 이름은 2007년 올해 가을 갑작스럽게 온게임넷 스타 챌린지에서 나타났다. 그는 1경기에서 초반에 유리해진 상황을 발판으로 삼아 마지막 피날레를 자신의 불꽃 스타일로 장식하는 멋진 출발을 하여 승자전에 안착했으나 요즘 저그의 무서움 중 하나인 뮤탈 뭉치기에 대한 대비나 저그의 뮤탈 견제 타이밍이 지난 후 이루어지는 중장기 운영을 대비하지 못한 듯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진출자를 가리는 최종전에서 순전히 자신의 방심과 실수로 인해 진출티켓을 놓치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그 어렵다는 PC방 예선을 돌파했으면서도 방송 경기에서 그렇게 무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예선 돌파 이후에 소속팀인 KTF의 숙소에서 퇴출당한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약간 둥글둥글 해진 듯 한 인상과 더불어 보여준 그 경기력은 슬프게도 불꽃의 온도가 가장 낮은 부위 '불꽃심'과 겹쳐보였다. 마치 작은 유리병 속에서 산소를 차단당한 채로 버티고 있는 불꽃처럼, 심만 남은 모습으로 금방이고 꺼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고나 할까.

무엇이 환하게 타올라야 할 불꽃을 심만 남겨지게 하였나? 보통 프로게이머 생활을 오래한 게이머들이 그렇듯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게이머 생활에 대한 염증이 커지며 열정을 잃어버린 탓이었을까? 소속팀에서 아무 이유 없이 거의 방출과 다름없는 절차를 밟았다는 상상은 하기 힘드니, 적어도 그가 프로게이머로써 꽤나 오래도록 게임과 연습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다면 그 무섭다는 신예들을 누르고 PC방 예선을 돌파해버린 원동력은 무엇인가? 흔히 말하듯 화광반조라는 표현에 쉽게 손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스타첼린지 이후 변길섭의 행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들려오지 않으나 왠지 미련이 적어 보였던 그의 얼굴 표정을 상기하건데 이미 변길섭은 자신의 마지막 불꽃을 첼린지에서 모두 태웠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은퇴를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러나 젊은 영혼이여.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동년배들은 아직 학업도 끝마치지 못한 나이에서 자신의 길을 마무리 짓는 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올드' 라 불리우는 비슷한 연배의 다른 게이머들 중에서도 아직 마음껏 활약을 하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기나긴 부진과 존재감의 상실 속에서도 그대를 지켜보며 응원해 온 팬들의 마음은 또 어찌하겠는가.

젖은 나뭇잎 사이에 파묻혀 숨을 연명하다 기어코 거대한 산불을 일으키고 마는 작은 불씨처럼, 변길섭의 열정과 능력 또한 그렇게 잠복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얼마 전 그가 보여준 위태로운 불빛은 겉불꽃과 속불꽃을 모두 잃어버린 채 태워낸 마지막 화광반조가 아니라 마침내 스스로 둘러친 유리벽을 열고 조금씩 산소를 연소하기 시작한 부활의 신호탄이라 믿고 싶다.

끝없이 빛나고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태양에도 수명이 있듯이 그렇게 세상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없을 것이나 적어도 변길섭, 그의 불꽃은 아직 꺼질 때가 아니다. 그는 보란 듯이 타올라야한다.  

영원할 것처럼 화려하게, 다시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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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첼린지 이후에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하여 이제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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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밥팅z
07/12/21 23:45
수정 아이콘
한때 저의 로망이었던 변길섭선수의 불꽃러쉬...
베틀넷에서 따라하다가 망쳐버린 경기도 많았지만,
변길섭 선수의 대 저그전 불꽃은 정말 기억에 남는군요.
토스전이 좀 약했던것 같고, 테테전은 수준급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펠레노르에서 최연성선수를 잡는 등, 전성기가 좀 지난 후에도 개인리그에서 모습을 보였던것 같은데요.
어쨌든 올드에 대한 글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만드는군요.
보름달
07/12/22 00:07
수정 아이콘
착한밥팅z님// 전성기때는 저그전이 가장 강하기는 했지만, 2004년 이후의 변길섭선수는 프로토스전의 성적이 다른 종족전보다 좋았습니다. 오히려 저그전은 2006년 TvsZ 승률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좋지 못했죠(솔직히 2004년 이후로 변길섭선수가 저그에 강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중반만 넘어가도 운영이 많이 안 좋았기 때문에) 프로토스전은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고요. 테테전은 최연성선수의 전성기 시절에 많이 이겨서 주목을 받았지만 전체적인 성적은 그저그런 수준이었습니다. 변길섭선수의 프로토스전은 항상 저평가 받는 것 같군요. 반대로 저그전은 실적에 비해 좀 높게 평가받는 것 같구요. 스타일의 영향인듯....
보름달
07/12/22 00:13
수정 아이콘
글쓰신 분께 // 아이옵스 스타리그는 2004년 말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시기상으로도 에버2004 다음에 열렸구요.
아스칼렌
07/12/22 00:15
수정 아이콘
전에는 코카콜라배가 2002년에 열렸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수정하겠습니다. 스타리그를 쭉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뒤죽박죽이로군요.
07/12/22 00:55
수정 아이콘
데뷔한지 얼마 안되서 파란을 일으키던 윤용태 선수를, 러시아워에서 마치 껌 씹듯이 쉽게 이겨버리고서는..
인터뷰에서 "저 정도 하는 토스는 얼마든지 있어요." 라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때 변길섭 선수가 부활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눈물이 납니다.
07/12/22 02:18
수정 아이콘
변은종 선수와의 경기는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네요. 맵은 머큐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태형 해설이 "이건 진짜 안됩니다, 진짜 힘들어요. 안됩니다." 라고 서너번은 외쳤는데, 성큰밭을 박살내버리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면서 "어우... 제가 다 민망하네요." 라고 혀를 내둘렀던 그 경기...
생방으로 보아서 더욱 화끈했던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착한밥팅z
07/12/22 07:41
수정 아이콘
보름달님//그런가요? 아무래도 저그전에서 보여주는 그 특유의 임팩트 때문에 제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나 보네요.
2006년 같은 경우에는 워낙 변길섭 선수의 기량이 떨어져 있을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그나저나 변길섭선수 근황을 아시는분 있나요?
07/12/22 15:34
수정 아이콘
크으, 전 김원기 선수와의 롱기누스가 생각나네요. 불꽃을 연상시키게 하는 빨간색 문양의 테란으로 물 흐르는 듯한 운영으로 전성기 때의 경기력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활을 기대했는데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소식조차 들리지 않고있는데 뭐하고 있나요 변길섭 선수...그리고 변은종 선수와의 경기에서 성큰밭 뚫기는 러시아워 아니었나요?
보름달
07/12/22 15:45
수정 아이콘
Joker_님// 머큐리 맞습니다. 타일셋이 같아서 헷갈리신듯....러시아워 경기는 프로리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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