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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15 18:42:24
Name 김연우2
Subject 가을의 강림(降臨) 1편

1.
  묵묵했다. 아니, 내가 묵묵히 했다.
무엇을?
술잔을 말이다.
나는 그저 술잔을 묵묵히 기울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이리도 내 마음은 복잡한걸까? ... 아니... 복잡하다기보다는 쓸쓸하다는게 더 맞는표현이 아닐까?

  내가생각해도 나는 은가히 미친 x다. 죽자사자 연습해도 모자랄 판에 포장마차 구석에 앉아서 술잔이나 기울이다니... 그것도 상대는 임요환, 전 2개대회를 석권했던 이 시대 최강을 프로게이머인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의 승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사람들중에 내가 포함되있다는 사실조차 나는 부정 할수 없다. 나를 상대할 선수, 그선수는 바로 임요환이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엔 막연히 연습때 집중이 잘 안되고 무력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화가나서 이곳을 찾은것이었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지금 숙소로 들어가봤자 퍼잘것만은 분명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역시 사라질것 같지 않았다..

  ...제길! 내가 어째서 그런자식이랑 결승전을 치뤄야 하는거지? 그런 인간같지도 않은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내가 도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거야!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무엇을 짚으며 안주삼아 먹고있는지도 나는 몰랐다. 한참을 고뇌하던 내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 프로게이머 김동수씨 아닙니까? 반갑습니다, 저 팬입니다. 같이 자리해도 되겠습니까?

  ... 뭐야 또 이자식은.. 후훗, 그래도 날 응원해 주는 녀석이 없지는 않았군. 잘됬네, 그냥 같이 회포나 풀지 뭐...

  "아예.. 앉으시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는 쉴새없이 떠들었다. 요즘 스타판이 어쩌네 저쩌네.. 임요환이 최고네 어쩌네... 고음의 기집애 같은 목소리였다. 이런.. 이런 남자답지 못한 인간은 너무 싫다... 얼굴을 들어 그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매우 희미했던 나의 시야... 마치 조작된것만 같았던 그 모습에 나는 조금씩 내 앞의 사람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런데 누구신지.. 통성명이라도 하죠."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하하하! 당신 정말 웃기는군요.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거는 조금뒤에 당신이 알게 될테니. 중요한건 내가 왜 당신앞에 있냐는 거지요."

  ... 너무도 놀라웠다. 고음의 여자목소리 같았던 그의 목소리는 매우 중저음의 위압적인 목소리로 변한것이었다.

  "... 뭐야 당신?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거야?"
  
  "장난이라뇨.. 지금 x빠지게 연습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 술판벌이고 있는 당신이 지금 장난질을 하고있지 않습니까?"

  회의감이 들었다. 그의 말이 틀린말은 아니었다..

  "... 후훗.. 연습 그까지꺼 죽도록 하면뭐해.. 질게 뻔한데.. 너 내 상대가 누군지는 아는거냐? 임요환이라는 작자다..! 그 인간같지도 않은놈 상대할려고 연습하는게 미친짓이라는건 왠만한 사람, 아니 프로게이머라면 다 안다구."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흐흐흐.. 만약.. 당신이 임요환을 이기게 된다면? 그때는 어떡할거지?"

  ".. 말같지도 않은 소리하고있네.. 뭐 어떻게 운좋다 보면 이길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력으로는 그자식을 절대 이길 수 없어."

  "실력.. 그 실력이라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당신같은 인간들에겐 말인가? 웃기지도 않는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자신을 질거라고 패배감을 느끼는 너에게 가림토라는 칭호는 걸맞지 않다! 실력이 아닌 너의 잠재되어있는 힘으로 그를 제압하는거다, 가림토!!!"

  ...가림토..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왜이리도 친숙한 느낌이 드는걸까?

  ".. 고맙지만... 이봐, 연습으로 때워도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다구.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대의 최강은 임요환이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렇다면 내가 부정하도록 하지. 나는 당신과 같은 프로토스이기 때문에."

  ...! 뭐지, 이느낌은?  
난생 처음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내앞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나와 같은 자세로, 앉아서 내게 말을 하고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할수도 없을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후후... 이거 설마 꿈인건가? 그래.. 꿈으로 여기는거다..

  "프로토스..? ... 크크크, 그래그래 다 좋아.. 뭐 꿈이라면 나쁘지는 않은 꿈이군. 내 생애에 프로토스라는 종족과 만날 날이 오다니 말야."

  "가림토, 어째서 너는 지금 이토록 고뇌하고 있는것인가? 너는 프로토스다. 스스로에 대한 긍지를 가지는 것이 프로토스라는 종족이란 말이다."

  ".. 나 인간이거든? 게임상에서의 종족이 프로토스 일뿐.. 그리고 말도 안되는 소리좀 작작해라! 내가 고뇌하는 이유는 내가 앞에서도 입아프도록 설명했잖아! 상대는 임요환이라고!!!"

  "후... 아쉽군. '신' 인 나에 필적하는 능력을 지녔던 가림토스... 니가 이토록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그래서, 너는 이대로 포기할 텐가?"

  "크큭.. 신... 프로토스에 신이라는 것도 있었나..? 글쎄.. 뭐 연습한 티는 내야하니깐 조금 노력은 해볼께."

  "게임상에서의 종족이 프로토스 일뿐이라... 그런 생각 자체때문에 너는 그를 이길수 없다고 생각하는거다. 너는 게임상뿐만이 아니라 너 자체가 가림토, 프로토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 긍지와 사명감! 그것을 갖게된다면... 너에게 좋은 일이 있을텐데..?"

  .... 그렇게 몇시간을 얘기했다. 놀라운것은, 성질 좀 더럽지 않은 내가 어느 순간 부터인가 그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서히 정신을 차리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것 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에게서 나는 포스(force)는 나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 두려움이 일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겁니까? 지금의 기세로보나, 모든 사람들의 평판으로 보나, 내가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구요!!"

  "... 믿음을 가져라. 너의 동료들을 믿고, 너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어라. 그리고 너 자신을 믿어라, 프로토스라는 종족으로써. 너를 믿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거다. 상대는 임요환이 아닌 김동수다. 너 스스로를 넘었을때, 그때도 과연 너까짓것이   스스로를 자괴할수 있을정도로 염치없는 인간이 될수 있을까?"

  "흐흐.. 말 한번 참 멋드러지게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당신도 나를 믿는 사람들중 한사람입니까?"

  "... 물론. 프로토스의 부흥을 이끌어줄 존재인 너를 믿는다. 하지만 방금 네가 한 말중에 틀린 말이 하나있군. 넌 아직도 나를 인간으로 보는 모양인데... 흐흐.. 기억은 봉인되겠지만, 나는 앞서 말했듯이 너에게 강림(降臨)한 프로토스의 신이다. 너는 반드시 황제를 이기고 가림토로써 등극할 수 있을것이다. "

  ....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이런, 아직 겨울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감기에 걸려버린건가?

  "후훗, 감기에 걸리신 모양이지, 가림토? 그까짓 감기야 너 스스로 극복해 내리라 믿는다. 흠... 그러고 보니 가을이로구나. 꽤나 낭만적인 계절이지 않은가, 가림토? 가을이라는 계절 말이다. 어쩌면 우리같이 쓸쓸한 프로토스에게 가장 어울리는 계절을 가을이라고 볼수도 있겠지... 그래.. 가을... 가을을 기억해라, 가림토. 이때마다 프로토스들은 너를 회상하며 강해질테니깐 말이다. 2001년 가을은 가림토의 계절이었다는것을 너의 후배들은 기억하게 되겠지... 그럼 이만... 다음 가을에 다시 강림하도록 하지.
.... 이미 '신' 은,  '나' 는  가을을 전설로 기억했으니깐."

  그가 일어났다. 아니, 사라졌다. 희미했던 시야이긴 하지만, 한순간에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나는 알수있었다.. 가을.. 그가 마지막까지 읊조렸던 가을이라는 단어.. 왠지 이 단어를 새롭게 내가 가꿔내야 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번 가을을 나의 계절로 만드는거다...!

  .. 하지만 나는 일어설수 없었다... 과음으로 깊은 수면에 빠져든 나를 자애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프로토스가 있었다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며칠뒤....




김동수,
[2000년 12월]  2001 스카이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 후훗, 어때? 내말이 맞았지? 내가 강림(降臨)했다니깐..."




by 김연우2

    



p.s. 처음쓰는 소설입니다. 아마 4~5편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부족한 필력으로 쓰는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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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무엘
06/09/15 18:51
수정 아이콘
흠.... 상당한 필력이시네요.^^
그런데 왠지 아구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듯한 이 느낌은..;;
김동수 '선수'가 프리챌배에서 우승한 것은 봉준구를 상대로 해서 였죠. 1.07시절, 극강의 포스를 내뿜던 저그를 플토가 결승에서 꺾은... 임요환 선수는 아직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입성하지 못하였고...
김동수 선수가 우승한 그 다음해, 첫 리그인 한빛배에서 임요환 선수가 혜성같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해 말, 2001년 세번째이자 그해 마지막 스타리그인, 11월에 끝난 01 SKY 배에서 김동수 선수는 우승을 차지하죠.
06/09/15 21:08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제로벨은내ideal
06/09/15 22:10
수정 아이콘
켁 2001 스카이가 되야합니다 ㅋ. 재밌네요. 왜 그는.. 이 추리소설 시리즈 때문에 찾게 된 pgr... 김연우2님의 소설을 기대할게요.
껀후이
06/09/15 23:54
수정 아이콘
2001스카이는 진짜 스타 좋아하시면서 글 올리기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번쯤 소설로 쓰고 싶은 소재같아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최강 황제와 돌아온 가림토 김동수의 도전, 그리고 승리.. 하핫.. 오바 즐이죠 ;
김연우2
06/09/16 13:18
수정 아이콘
아이쿠.. 이런 잘못올렸군요.. ㅜㅜ 죄송합니다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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