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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8/22 17:32:47
Name 퉤퉤우엑우엑
Subject [소설] 殲 - 5.Dream
잠에서 깨어, 머리맡에 있는 시끄러운 자명종을 껐다.
원래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라서 아직은 많이 졸리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은 빨리 갈 이유가 있었다.

어제 태일의 모습을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낯익은 모습이라는 걸 느꼈을 때부터 인가.
뭔가 물어보고 싶어졌다. 태일 본인에게, 좀 억지스럽더라도 내가 왜 그런지도 묻고 싶었다.

반정도는 무의식 중에서 자명종을 맞춰서인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 버렸어. 아직 6시.
그래도 다시 잠들었다간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그냥 이 시간에 일어나자.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그렇다고 해봐야 빵조각에 우유일 뿐이지만.

토스트를 한입 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겼다기 보단, 기억을 하려 애썼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기억 하려 애썼다.

집에서 쓰러졌었다. 두통이 심해져서 그런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내가 쓰러졌다면 두통이 심해서 그랬겠지.
거기에서 또 기억은 끊어졌다가 난 침대에 누워있었고, 태일은 그 옆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고 했지.
그런데 그 전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쓰러지고, 침대에 누워있었고, 태일이 보고 있었다. 단 3가지 밖에 모르겠어.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7시를 향하고 있다. 태일을 만나려면 지금이 더없이 좋은 시간이겠지.
생각하고, 마지막 남은 우유 한모금을 들이킨 뒤 싱크대에 올려놓고 일어섰다. 이번에도 '다녀오겠습니다'란 인사는 빼놓지 않고.


공원 외곽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드문드문 한두명만 지나갈 뿐이다. 아침이니 그렇겠지.
어제는 이대로 가서 만났었지만(다행히 그건 기억하고 있군) 이번에도 만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뭐, 만나지 않는다면 교문에서 기다리면 되겠지.


학교에 도착했다. 그 때까지 태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에 붙어 있는 시계로 지금은 7시 반정도. 교문에서 기다려보자.


40분이 됐다. 아직까지 태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50분이 지났다. 태일과 닮은 사람은 몇명 정도 본 것 같지만 그래도 그는 아니다.


8시. 이제 슬슬 시계를 자주 쳐다보게 된다. 빨리 와야 할텐데...


8시 10분.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자. 더 이상은...

"......선배...!"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초한선배...!"

창문에서 나는 소리 같다. 뒤를 돌아서 창문을 보았다. 정확히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여기요...!"

아아, 1학년 교실, 이라면 당연히 1층이겠지. 그러고보니, 난 태일의 반조차 모르고 있다.
1층을 쭉 둘러봐도 머리만 삐죽이 내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뭐지?

"여기...!"

2층을 올려다 보았다. 역시나. 오른쪽 끝에서 머리만 내밀고 소리를 질러대는 한 사람이 보였다.
이미 교실에 있는건가.
그렇다면, 난 지금까지 여기서 뭐하고 있던거지?

"이건 뭐..."

이성으로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보다 몸의 본능이 빨랐다. 내 몸은 어느새 달리고 있다. 지각을 면해야 한다는 것도 학생의 본능이라면 본능이랄까. 3층의 왼쪽에서 두번째. 뛰어야해.


교실에 도착하고 얼마 있지 않아 아침조회가 시작된다.
별로 잘 듣는다거나 하는 시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들끼리 떠들 수 있는 시간도 아니어서 혼자 여러 생각을 한다.

우선 태일에 대한 문제부터. 내가 왜 기억을 하지 못하는지를 묻는 건 궤변일지라도,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아낼 수 있겠지.
그러고보면 이렇게 생각을해도 두통이 일지 않으니 그렇게 이상하거나 나쁜 일, 즉, 그 악몽이라든가 하는 일은 아니었나보다.
그런 일만 아니라면 별로 큰 일이 있을것도 없겠지. 태일에게 묻지 않으려는 건 아니지만.



점심시간이 되어,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1학년 교실로 내려갔다.
오른쪽 끝이었지. 아마도 1학년 중에서 재수없게 2층에 있는 반에 걸린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 12반이라든가...

"어디가는 길이에요?"

계단에서 코너를 돌다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놀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몇계단 아래에는,

"막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잘됐네요. 특별히 다른 일 없으면 얘기 좀 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참 운도 좋지. 정확히 같은 길로 가다가 만나다니.


2층 복도로 내려갔다.
태일은 복도에 있는 창문가에서 밖을 보고 있다.

"그래, 너부터 물어봐. 뭔데, 할 얘기가?"
"아니요. 할 말이 있다면 먼저 하세요."

내가 물으려 했던 말을 정리해 본다. 그래, 어제 있었던 일, 이었지.

"어, 그, 어제 무슨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무슨일이라니요?"
"그러니까 내가 쓰러진 것말고 그 전에 특별한 일 같은 거. 기억이 나질 않아서 말이야."
"특별한...일이요?"

먼 하늘을 보던 눈을 조금 아래로 내리며 생각하는 듯 하다. 가까이에서 보고 있어서 그런지 이 녀석, 부러울 정도로 잘 생겼어.

"저한텐 딱히 특별한 일이 있진 않았는데요. 선배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고."
"그렇긴 하지. 그래도 뭔가 날 찾아온 이유라던가 하는 거 말야."
"아, 그 이유라면 조금 특별하겠네요. 선배랑 닮은 사람이 미친듯이 뛰어가서, 혹시나 하고 왔는데 쓰러져 있었어요."
"나랑 닮은 사람...?"
"네. 그 외에는 선배가 하루에 두번이나 쓰러졌다는 것에 비하면 전혀 특별하지도 않아요."

나와 닮은 사람이 미친듯이 뛰어갔다고...
뭔가, 살짝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글쎄. 기억이 아니라 상상이려나.

"이제 제가 묻고 싶은 거 물어봐도 되겠죠?"
"아, 응."

그러고보니 어제 뭔가를 말하려다 말았던 태일이 기억났다. 아마 그걸 물어보려나.

"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지는 모르겠는데, 선배. 어제 어디 나갔었어요?"

어제...
어제 어디 나갔었냐는 질문인가. 어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잠깐만."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어제 어딘가에 나갔었나?
......
......
......
뭔가 나갔던 것 같기도 해.
맞아. 내가 어제 했던 일 중 기억나는 것부터 천천히 기억해보면 되겠지.

어제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서 집에 있었다...그리고...
두통이...있었던 것 같아...
그 후에...뭘했지...?
밖에 나갔었...나...그래, 어슴푸레 기억이 나는 것 같아.

"어딘가에 나가긴 했던 것 같아."
"어디에요? 어디에 갔어요?"

어디에 갔느냐고 하면,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문을 연 부분은 정말 희미하게 기억은 나지만.

"기억 안나. 아무것도."
"조금만 더 생각하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잠깐, 그런데 왜 이런 걸 묻는거야?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잖아."

별 생각없이 중얼거렸다.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뇨.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선배는 정말 아침에 뉴스라던가 신문이라던가 하는 건 보지도 않아요?"

어제 뭔가 큰 일이 있었나? 이 동네에서?

"무슨 일인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거군요."
"몰라. 빨리, 무슨 일인데?"
"어제 공원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사인은 외적인 손상은 없어서 부검을 해봐야 겠지만. 새벽에 발견 됐대요."

뭔가, 두통이 느껴졌다.

"그래서 선배가 공원 쪽에라도 갔으면 뭐라도 보지 않았을까 해서 물었는데, 아무것도 기억 못하나 보네요. 고작 어제일인데도."

공원에서 사람이 죽었어...? 왜 죽은거지? 누구에 의해서?

"선배 요즘에 많이 이상한 거 알아요? 정신을 잃지 않나, 기억도 못하지 않나."

두통이 점점 심해진다. 견디기 힘들만큼.

"새삼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선배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구요."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의식이 같이 흐려졌다.
몸은, 곧장 앞으로 내동댕이 쳐-



"선배?!"

툭, 하고, 태일이 내 몸이 쓰러지는 걸 막았다.
아직 두통은 거의 가라앉지 않았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선배, 일어나 봐요!"

흐릿한 시야에서 앞에 있는 태일의 목걸이가 보였다.
중앙에는 파란 수정 같은 것이 있고, 그 주변을 금빛을 띈 무엇이 감싸고 있다.

"정신차려요! 선배!"

거슬려.
저 목걸이, 맘에 들지 않아.

"......!"

무언가 소리를 지르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저 목걸이.
지금 당장 쥐어뜯고 싶어. 이유 따윈 없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아.


순간, 기억이 떠오른다.
문을 열고 난 공원으로 갔어.
공원으로 갔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그리고는 내가 본 것은,

피 (血).

그래. 피.

그리고 내 앞에 죽어있는...어느 사람과,


바로 저, 목걸이─


오른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목걸이로 오른손을 뻗었다.
당장 저걸 잡아서 뜯어버리고 아무 곳에나 집어 던져─라고 안에서 소리친다.

오른손이 목걸이에 거의 근접했다. 이제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

탁, 하고 태일에게서 떨어졌다.
태일이 밀친 게 아니라 내가 태일에게서 떨어졌다.
뭐...야. 난 방금 뭘 한거...지...?

"선배, 왜 그래요...?"

크게 놀란 듯 태일이 조심스레 말한다.
어느새 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다. 왜지?
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거고, 방금 목걸이에 들은 감정은 또 뭐인거야.

"그...그 목걸이...어디...서, 구한거야..."

짧은 문장을 굉장히 어렵게 입 밖으로 만들어 내 물었다.
숨이 가쁘기 때문이거나 혹은 나 자신에게 놀랐거나.

"갑자기 목걸이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냥......

"이만 올라가 볼께. 양호실은 안 가도 괜찮아."

말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다리가 떨리고 있어 계단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았지만, 무조건 올라갔다.
뒤에서 누군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그 시선은 한둘이 아닌 듯 했다─개의치 않았다.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차라리, 기억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며, 힘없이 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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