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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2/21 13:19:14
Name IntiFadA
Subject [연재] 빙의(憑依) : 귀신들림(5) - 귀신들림
빙의(憑依) : 귀신들림 1편 보기
빙의(憑依) : 귀신들림 2편 보기
빙의(憑依) : 귀신들림 3편 보기
빙의(憑依) : 귀신들림 4편 보기


빙의(憑依) : 귀신들림



                                                                       7


'후우... 후우...'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러쉬거리가 엄청나게 먼 맵이다. 예전의 레가시 오브 차나 아쉬리고를 연상케 할 정도로
러쉬거리가 멀고, 이런 맵에서 저그의 선택은 당연히 12드론 앞마당. 테란은 빠른 테크로 승부하든지, 아니면 더블 커맨드
를 선택하는 정도가 가능한 대한이라는 것이 이런 맵에서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이미 무너졌다. 상대는 전진 8배럭 이후 벙커링이라는 극단적인 초반 올인 전략을 선택했고, 상대의
선택은 적중. 그의 앞마당에서는 이미 완성된 벙커가 해처리를 향해 불을 뿜고 있다. 부랴부랴 건설하던 콜로니도 마린과
SCV의 공격에 파괴되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본진 언덕위에서 떨고 있는 몇 기의 저글링 뿐.

그는 서둘러 본진에 성큰 콜로니를 건설하며 생각한다.

'아직 끝은 아니야...'

'상대도 초반 올인 전략이니만큼 매우 가난한 상태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저글링을 모아서 상대 진영에 타격을 주고
러커까지 진행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은 있을거야.'

'설사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어.'

그의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손은 평소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눈은 승리를 향한 의지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바라는 상황은 상대가 자신의 앞마당을 깬 것에 만족하고 벙커로 그의 앞마당을 조이면서 적당히
멀티를 하거나 테크를 올리는 것.

바로 그 실낱같은 방심의 허를 찔어 발업저글링 1부대 반 정도로 승부를 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상대는 꾸준히 마린을 모으고 본진에서 SCV를 더 데려와 8마린 8SCV로
그의 언덕을 공략한다. 이대로 끝내버리겠다는 것. 그는 막 완성된 성큰 콜로니와 몇 기의 저글링으로 교전을 벌였지만
8마린 8SCV의 화력은 마린메딕 1부대에 버금가는 막강한 것이었다.

하나 남은 성큰마저 깨어지고, 상대는 그의 본진 미네랄 필드 뒤쪽으로 벙커를 건설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불과
4기의 저글링. 단 한줄기의 희망마저 남지 않았다.

'이렇게 무너지다니...'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이렇게 질 수는 없어.... 지고 싶지 않아..'

'이기고 싶어... 이기고 싶어... 이기고 싶어... 이기고 싶어....'

본능적으로 GG를 눌렀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이 자리를 떠난다면 다시는 게임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다시는 대회의 예선조차 통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난 이겨야 해... 난... 난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이야...'

그의 눈가가 뿌옇게 흐려온다. 눈물? 그는 눈을 비비지만 뿌연 눈가가 가시질 않는다.

'어? 뭐지?'

그는 아래쪽을 바라본다. 키보드가 어디에선가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들고 있다. 그는 덜컥 겁이나서 자리를 움켜쥔다.
문득 벙커링에 패하고 죽어간 수많은 게이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뭐야... 나... 이대로 죽는거야?'

그는 말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인다.

'싫어... 안돼... 죽으면 다시 게임할 수 없잖아...'

'난 이렇겐 못끝내. 이렇게 패배자로 끝낼 수는 없어. 난...'

그는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책상 모서리를 움켜쥔다.

'아냐...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난... 난 반드시 이겨야 해. 이겨서 올라갈거야...'

'난.... 이길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어...'

그는 한 평생 가장 강렬한 염원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뿜어내며 조용히 정신을 잃었다.




                                                                        8



"헉...."

지석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몸은 여전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열에 들떠 있었다.
지석은 혼미한 와중에도 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손...
이 손이 피에 젖어 있었는데...

"꿈.... 이었나?"

지석은 혼잣말을 한다. 그런가보다. 누군가가 죽는 꿈.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죽어가는 꿈. 그런 꿈을 꾼건가...

'누구지...?'

문득 지석은 의문에 빠진다. 아직도 생생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강렬한 염원까지.
자신의 일도 아닌 생면부지의 인물의 꿈을 꿨을 뿐 아니라 그 느낌조차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되는 상황이 지석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석은 일어나서 방문을 연다. 아직도 열이 있고 어지러웠지만 섬뜩한 기분에 더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다. 지석은 방문을
열며 은영을 찾는다.

"엄마? 어...?"

어둡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건가? 방 바깥쪽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있다. 지석은 의문에 빠진다. 지석의 집은 도심
한복판의 아파트다.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이렇게 어둡지는 않은데...

지석은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손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는다. 그러나 좀체로 스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 십수년을
살아온 집임에도...

"뭐야... 스위치가 어디 있는거야...?"

어쩐지 무서워 일부러 소리높여 말하던 지석은 갑자기 한줄기 푸른 빛이 어둠을 잡아째듯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갑작스런 빛의 칼날에 채 놀라기도 전에 집안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바로 몇 걸음 앞에 누군가가 우뚝 서있다. 지석을 바라보며...

"누구...."

"누... 누구세요?"

막 소리를 치려던 지석은 간신히 소리를 삼키며 묻는다. 어쩐지 소리를 질러서는 안될 것같다. 소리를 치면 무언가가
깨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상대는 대답이 없다. 지석이 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였다.

  - 똑............ 똑............. 똑.............

일정한 간격으로 나는 물방울 소리. 지석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이동한다.

손. 그 시선의 끝에는 어둠속에 서 있는 자의 손이 있었고, 그 손끝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그것이 피임을 인식한 순간, 지석은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 사내. 누군지 알 수 없는 꿈속의 그 사내. 지석은
소스라치게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석은 그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걸어잠근 지석은 잠시 문에 귀를 대고 가만히 서 있는다. 이제 열은 가신듯한 기분이지만 여전히
그는 땀으로 흠뻑젖어 있었고, 지금은 공포에 떨고 있기까지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전달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지석의 의식은 조금씩 침잠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지석의 생각과는 달리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지석의 공포는 서서히 의문과 지루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직도 문을 열만한 용기는 생기지 않았지만, 꼼짝할 수 없게 온몸을 죄여오던 섬뜩함은 상당히 가신 상태였다. 문득
지석은 자신의 얼굴위로 흐르는 액체를 느낄 수 있었고, 문에서 몸을 돌려 거울을 바라본다.

"으아아악 ---- !"

지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단발마의 비명의 지른다.

거울속에서는 꿈속의 그 사내가 피에 젖은 얼굴을 숙인채 우뚝 서있었다.



                                                                        9



은영이 집에 도착한 것은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동네 약국이 마침 정기휴일이라 조금 먼 약국까지 갔다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버렸다. 은영은 걱정스런 맘으로 복도를 달려 열쇠로 문을 연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은영은 뭔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다.

"지석아...?"

은영은 불안한 마음에 지석을 부르며 집안에 들어서다가 바닥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조각이 잔뜩 깔려 있었다. 은영은 곧 그것이 현관에 걸려있던 거울의 파편임을 발견한다.

"지... 지석아!"

은영은 덜컥 겁이나 더욱 큰 소리로 지석을 부르며 신발도 벗지 않은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은 엉망이었다. 집안에 있는 유리란 유리는 몽땅 깨진 듯 온 바닥이 유리조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곳곳에 피자국마저
남아 있었다. 은영은 거의 넋이 나간 상태로 정신없이 지석을 찾았다. 지석의 방은 깨진 거울조각과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지석은 거기에 없었다.

집안 곳곳을 뒤지다가 안방으로 들어간 은영은 마침내 지석을 발견한다. 지석은 오른손에 아끼는 야구배트를 든 채로
거울앞에 서있었다. 거울은 이미 산산히 깨져 있었고, 지석의 양손과 얼굴에서는 적잖은 양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석아!"

은영은 놀라 지석을 향해 다가가다가 멈춘다. 알 수 없는 위화감. 무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은영의 발걸음을 막아선다.

지석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영을 바라본다. 지석의 눈에는 핏발이 맺혀 있었고, 그 눈빛은 어쩐지 낯설게
보인다.

"난..... 누구지?"

지석의 낮은 목소리. 평소 지석의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음성으로 지석이 중얼거린다. 은영은 자신이
들은 지석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석아, 그게 무슨..."

"난... 누구냐?"

이번엔 깨진 거울조각을 바라보며 지석이 말한다. 은영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심정으로 지석의 팔을 잡고 흔든다.

"지석아, 정신차려.... 악!"

지석의 거칠게 뿌려치는 손길에 은영은 바닥에 넘어지고 만다. 바닥에 깔려있던 유리조각을 손으로 짚어 손에서 피가 나고
있지만 은영은 그것조차 느끼지 못한채 초점을 잃은 눈으로 지석을 바라보고 있다.

"으아아 ---------- 악!"

갑자기 지석이 머리는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지석의 손에서 떨어진 야구배트가 바닥을 구르는 사이 지석은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른 높은 톤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파... 머리가 아파... 아아악....."

"나가! 내 안에서 나가! 너 누구야!"

"지... 지석아...."

"지기 싫어. 이렇게 질 수는 없어. 지지 않을 거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난 이길거야. 이길 때까지 여기서 일어나지 않을거야!"

"지석아!"

"아아악!!"

"엄마...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지석의 목소리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톤이 바뀌고 있었다. 한번은 소프라노의 비명처럼 공기를 잡아찣는 듯한 높으로 톤으로,
또 한번은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저음의 톤으로. 하지만 어느쪽 톤으로 말할 때에도 무언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며
고통에 사로잡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다.

지석은 한동안 바닥에 엎드린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고, 은영 또한 말을 잃은채 멍하니 앉아있다. 두 사람 모두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극도의 피로와 절망감이 두 사람으로부터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여력을 앗하간 것으로 보였
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지석이었다.

"크아아악 --!"

사람의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짐작할 수도 없는 괴성을 지르며 지석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화장대 위의 깨진
거울조각과 벽을 사정없이 난타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것인지 주먹과 얼굴에서 적지않은 피를 쏟아내면서도
지석은 알 수 없는 파괴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은영은 이미 공포와 놀람, 그리고 비탄에 사로잡혀 더 이상 놀랄 여지도 없이 질려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발작하는 지석을 뒤로한채 바닥을 엉금엉금기어 전화기로 다가간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든 채 119를 누르는 그녀의 등뒤로 모든 힘을 다 소진한 지석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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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라는 용어를 쓰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긴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가장 최근의 편이었던 4화를 쓴지 꼬박 1달 - 의도한 것은 아닌데 거의 정
확하게 한달이네요 -_-;; - 이 지났고, 임요환 선수가 듀얼에서 탈락하고 팀달록이라는 새로운 라이벌전이 등장하는 등
프로게임계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음.....

그 사이 상당히 바쁘긴 했습니다만, 바빠서 못올렸다는건 핑계라고 해야할 듯합니다. 다만... 글이 써지지를 않더군요.
파우스트 때에도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는데... pgr에서 연재하던 중에 그 고비를 못넘기고 몇 달인가를 쉬다가 결국
다른곳으로 옮겨서 완결을 봤었지요...

어쨌거나...

여전히 바쁘긴 바쁘고, 비축분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일단 최악의 고비를 한 번 넘겼으니 다시 열심히 써보렵니다.
혹시 읽어보시고 조금의 재미라도 느끼신 분이 있다면.... 리플로 응원해주심 대략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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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05/02/21 13:59
수정 아이콘
전 파우스트 시절부터 님의 팬입니다.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화이팅!
빙의된 주인공은..갑자기 스타리그 데뷔라도 하려나요? 제 꿈같은
얘기네요..^^
Wittgenstein_TheMage
05/02/21 14:02
수정 아이콘
저도 파우스트 읽을 때부터 IntiFadA님의 팬입니다^^
이 글도 갈무리해가며 읽고 있었는데 한 달 가까이 올려주시지 않으시길래 .... 포기하고 있었지요-_-;;
이번 회도 정말 재밌네요. (분위기에서 퇴마록이 연상되네요. 이제 퇴마사들이 찾아올 차례인가요?^^;;;;;;;;)
화이팅입니다.
FreeComet
05/02/21 14:46
수정 아이콘
너무오래기다렸어요 ㅠㅠ 글이 보이자마자 바로클릭했습니다.
전 내용이 가물가물해 앞의 글도 다시한번 읽어보고 왔답니다 -_-a
다음글도빨리올려주세요~
아케미
05/02/21 20:28
수정 아이콘
아니아니!! 너무 오래 걸리셨잖습니까!!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점점 무시무시해지는군요. 다음 편은 좀더 빨리! 아시죠?
ChRh열혈팬
05/02/22 01:19
수정 아이콘
파우스트부터 다 봤습니다..

무.. 물론 많이 건너 뛰며 봤습니다-_-; 정말 숨막히는 심리소설입니다^^
테라토스토커
05/02/22 15:43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다가 생각난건데..
제 옆집 친구 동생이.... 일명 빙의라 하는 귀신들림을.. 겪고 있습니다..
분명 한 두어달 전까진 멀쩡했는데....
친구 할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헛소리도 하고... 사람이 달라졌죠..
이런거 믿지 않았는데.. 직접 겪고나니.. 무척 무서운....
그냥 이 제목 보고 떠올라서.. 끄적여 봤습니다..
친구 동생이.. 빨리 쾌유하기를.. 바래주세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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