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3/08 00:25:57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그런 사람이니까. |
어느날 새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직장인 벅스서버에 접속해서 여러 유저분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채널 분위기가 상당히 이상해서, 내지는 내게 시비수가 걸린 날이었던지
별의 별 시비성 발언이 다 나왔고
명색 운영진이라, 성질대로 화도 못내다 보니
난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아... 정말 채널 지키기 힘드는군요 라는 혼잣말 비슷한 말을 치자
회색 귓속말 한줄이 떴다.
-힘내세요 다비님...
원래 온라인엔 얼굴 안보인다고 막사는 것들이 제법 된답니다 --;
그 자신 게임하느라 바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나 오랜시간 내 넋두리를 다 들어주었고
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욕먹는 건 좀 못참거든요...라는 말을 하자
헉... 그럼 정민이 바보~!라고 하면 저 혼내실 건가요? 라는 답이 왔는데...
그 메세지가 화면에 뜨는 순간, 난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참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게이머로서 불운하다 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 어쩌면, 그는 굴러온 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그런 기질도
얼마쯤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가 그것이 싫기 때문에' 말이다.
조금만 참으면 될 걸,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걸
그 새를 못이기고 울타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가
쌈싸먹힘을 당하더라도 일단은 덤비고 본다는...
꽤나 오랫만에 본 오늘의 게임에서도
그는 아직도 그런 '성질'이 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따라 그가 안스러운 건
단지 경기에 졌다는 이유가 아니라...
2경기 시작전, 마우스를 쥔 채 전에 없이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던
전혀 '그답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당당한 것으로 따지자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역시 승패의 중압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거였을까.
힘내라는 말은,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한다고 그는 말했었다.
그래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의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난 그에게 힘내라는 말따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아는 그에게는, 적어도,
연민이나 걱정 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만큼 강한 사람이니까.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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