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 선수와 김정민 선수의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 경기를 앞두고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방송에서 쓰인 황제와 귀족이라는 이미지의 차용은 그들이 테란에 있어서,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전체에 있어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여실히 반영해주는 모습이다.
임요환선수는 황제이다. 황제는 최고이다. 황제의 요건은 군주의 그것과 같다. 마키아벨리즘에 굳이 기대지 않더라도, 군주는 사랑받을 필요,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 군주는 두려움의 대상이며, 경외의 대상이다.
황제는 제국의 군주이다. 제국은 정복을 통해 생산을 연속시키는 국가조직을 의미한다. 제국의 군주는 끊임없이 정복함으로써 자신이 제국의 군주임을, 황제임을 증명한다.
황제를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다. 어쩌면 다수가 좋아할 수도 없다. 정복자에게 적이 없을수 없다. 정복자에게 비판과 비난이 따르지 않을수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황제이다. 넓은 영토를 제물로 삼아 비난마저 최고의 지위를 증명하는데 쓰는 처절한 절대자. 그 황제가 지금 임요환선수다.
물론 임요환 선수는 사랑받는 게이머이다. 나 역시 그를 좋아하고, 수많은 여성팬들이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가 수없이 많은 의혹과 부정, 비난을 견디지 않고 모두 물리치고 부수며 정상을 유지하는것이 아닌 정복하는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그의 이미지는 역시 황제일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황제는 드라마의 필수조건이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만화인 리니지 에서처럼, 그리고 수천년 계속된 영웅서사시의 구조처럼, 우리는 도전할 황제를, 절대자를 필요로 한다.
절대자에게는 선악의 개념이 불문명하다. 황제가 되기 위해, 정복을 위해 때로는 피도 흘리고 인간의 마음을 몇번이고 잘라낸다. 철저한 벽처럼 느껴져야만 가능한 최고라는 이름. 그러한 절대자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가질수 있는 또 하나의 존재는 그에게 달려드는 귀족이다.
복수, 사랑, 운명, 민족. 이유는 역시 무엇일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이더라도 좋다. 다만 황제라는 절대자. 모두가 그를 겨누지만 결국 꺼꾸러지고 아직도 서 있는 그 절대자를 향해 비수를 겨누지 아니하고, 같은 옷과 같은 말을 타고, 오히려 피에 덜 젖은 반짝이는 검을 꺼내는 귀족이 우리 앞에 섰다.
황제를 두려워하는 혹은 그에게 핍박받은 사람들, 혹은 황제의 권위에 반하는 사람들. 전혀 반대로 황제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 욕심의 눈빛, 증오의 눈빛.. 그러한 일체의 눈빛들은 결국 기대로 모아진다.
그 기대를 받을 수 있는 귀족은 단 한사람으로 한정되기에 가치있다. 황제라는 절대자. 도전조차 상상되지 않기에, 암살이 아닌 정면에서 맞닥뜨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것 같기에 황제인 그에게 최후의 누군가로서 이름이 전해질 만한 단 한사람. 최선의 귀족.
절대와 최선의 대결은 그 자체로서 이야기의 종결이다. 누가 승자가 되었든 그 승자는 이미 절대자를 넘어선 영웅이며, 전설과 신화의 주인공이다. 최선마저 꺾어버린 까마득한 절대자,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갈라버린 최선의 귀족. 어느쪽이건 우리에겐 희열을 안겨주는 영웅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보다 더 짜릿한 극적 전개를 수천년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아직도 그러한 영웅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이 만나기로 한 넓은 곳. 나는 이미 그 어딘가의 수풀에 몸을 맡기고 숨을 죽인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