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밤이 깊자 함께 뜰을 거닐었는데, 갑자기 별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 죽었구나.]
그리고 노인은 또 탄식했다.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어찌할꼬?]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행랑 속에 있던 책에 그 날짜를 적어두고 노인에게 물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화를 피할 수 있습니까? 부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강릉이나 삼척 쪽으로 피난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다음 날 선비가 석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평구에 들러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날짜를 물어보니 과연 별이 떨어지던 그 날 밤이었다.
그 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을 생각해내서 아내를 데리고 삼척으로 피난을 가서 온 집안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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