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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13 15:44
저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코엔 형제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봅니다. 다만,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분명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달리, <파고>의 경우에는 얼핏 보면 평범한 스토리지만 면밀히 영화를 검토한 관객은 섬뜩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분석해보는 재미는 더 있지 않나 싶어요.
15/01/13 15:49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전문 평론가 신가요~? 아이러니 라는 단어를 정말 잘 풀어낸 영화였습니다. 오래 간만에 영화를 다시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15/01/13 15:51
아뇨 그냥 영화 좋아하는 매니아에요 흐흐; 아이러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고>도 훌륭하지만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가 더 교과서적이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15/01/13 16:03
군대 휴가 나와서 포스터의 강렬한 모습(설원 위의 총잡이)에 빠져서, 보았습니다.
처음 경찰서장의 어이 없는 모습에 실망하다가, 이야기의 진행이 되면 될수록, 뭐랄까, 건조한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분쇄기 신은 참~ 좋았습니다. 보고 나서 인생 뭐있냐는 생각으로 복귀했습니다. 흐 흐
15/01/13 15:55
깨시민이나 베충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깨시민이 너무 억울할 것 같습니다. '오유나 일베나 그게 그거'라고 하는 양비론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파고>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일베'의 그림자를 느꼈는데, 저는 결론이 많이 다르게 나더군요. 개어의 비정형성에서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악의와 그로인한 공포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있다니...'라는 점이죠. 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집니다. 주유소 편의점에서 황당한 논리로 주인을 협박하는데, 그 논리에 이성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너무나 무의미하죠. 애거나 안톤 시거의 폭력성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그들이 '미친놈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노인을...>의 보안관은 충분한 연륜을 쌓았음에도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비록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친놈들을 어찌 이해하겠습니까. 이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공포의 핵심이었던 거죠. 언급하신 <파고>의 '실화의 장난질'은 이러한 공포를 더욱 배가시킵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픽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은 섬뜩함의 정도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코엔 형제 영화들의 치밀한 플롯은 영화를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공포는 더 무시무시해집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정말로 현실에 등장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아마도 <시리어스 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한 폭풍같은 자연재해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비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채로 삶을 송두리째 부셔버리고 마니까요. 일베의 비상식적인 행보와 주장은 이 '미친놈들'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실제 일베유저였던 후배와 이야기를 해본적이 있습니다. 5.18이 북괴가 선동한 폭동이라는 그의 주장에 그들이 좋아하는 팩트를 들이대며 틀린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 보았자 논점일탈, 물타기 등을 시전하며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을 지속하더군요. 뻔히 보이는 상식을 어떻게 그리 왜곡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니 이해는 영원히 불가능 하겠죠. 그들의 이런 '이해할 수 없음'이 인터넷에 머문다면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현실로 뚫고나온 순간 무시할 수 없는 공포가 됩니다. 그런 '미친놈들'이 우리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싼다는 것은, 그들이나 우리나 다름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코엔 형제는 이 지점에서 오는 공포를 스크린에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5/01/13 16:04
그런 해석은 이 영화에서 유독 마지를 둘러싼 장면들을 강조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왜 마지는 임산부로 설정되었는가. 왜 칼이 TV를 두드리는 쇼트가 '투구벌레가 새끼에게 벌레를 먹이는 다큐'를 임산부 마지가 바라보는 쇼트로 전환되었는가, 왜 하필 마지와 남편이 지렁이와 햄버거를 교환하고 햄버거 대신 지렁이를 보여주면서 '맛있겠다'는 대사를 하는지 등등을 말이죠. 또한, 마지막에 마지가 개어를 압송하는 장면에서도, 마지가 도덕적인 설교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개어가 폴 버니언 동상을 슬쩍 쳐다보는 시선을 따라가면서 카메라 시점이 이동하면서 [개어의 시선]으로 장면을 진행시킵니다. 마치 마지의 설교는 아무 의미가 없고 개어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듯이 말이죠. 이렇듯, 단순히 '어떤 미친 놈들'에 대한 공포에 초점을 맞추었다기에는 포괄되지 않는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장면과 장치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15/01/13 16:20
마지가 임산부인 점도 그 공포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동한다고 봤습니다. <세븐>에서 트레이시(기네스 펠트로우)가 '이런 곳에서 아이를 낳아서 기를 자신이 없어요.'라고 하소연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내가 이런 미친놈들하고 살아갈 자신은 있긴 한데, 그들 사이에 아이를 낳는 것은, 싸질러 놓는 것 같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딸이 없는 저에게 고영욱은 조롱의 대상이지만, 딸있는 아버지들에게 고영욱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처럼요.
하지만 영화는 (특히 코엔 형제의 영화는) 단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분석하신대로 계급적 상징들을 활용하는 면도 있고, 이를 통해 개어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이러한 해석들에는 매우 동의하는 바이고, 그것을 짚어낸 분석력과 풀어낸 필력에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양비론적 결론과 이어지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러한 계급적 동질성이 단순히 동질성에 머물지 않고 공존하는 공포로서 한 번 더 해체했던 것이죠. 이것이 아니더라도 그 동질성에 무언가 더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5/01/13 16:33
등장 인물들의 계급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 양비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구조'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죠. 염상섭의 <두 파산>이 양비론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작품인 것처럼요. 특히, <파고>의 엔딩은 본문에서 이야기했듯이 마지가 남편과 침대에서 TV를 보며 잠을 청하는 장면인데, http://i.imgur.com/AfNfDTS.png 로 이건 너무 의도가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범인들 붙잡아 놓고 자신들은 잘 되어 가고 있다며 안심하고 있지만, 정작 범죄자들과 잠자는 구도가 똑같으니까요. 그저 흉악범들과 공존하는 공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엔딩을 저런 식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었겠죠. 이것은 '우리 중 누구도 세파의 개같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문제의식으로는 충분할 수 있어도, 답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죠. 그야 영화가 해답까지 제공할 의무는 없습니다만, 약간 아쉬움을 느낌직은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갈망, '우리 중 누구도 운명 앞에서 떳떳할 수 없다면, 무엇이 해결책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안톤 쉬거에게 "동전(운명)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당신이 결정하는 거야."라고 일갈하는 칼라 진 모스의 대사로 말이죠.
15/01/13 17:10
'우리 중 누구도 세파의 개같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해석은 확실히 공감이 갑니다.
여기서는 양비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제목이라던가 본문의 '깨시민이나 베충이나, 전라도민이나 경상도민이나, 민주당빠나 새누리당빠나, 평소 하는 짓은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표현에서 양비론적인 뉘앙스를 느껴 댓글 남겨 보았습니다. 특히 일베처럼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먹고 자고 하는 동물적인 공통점 밖에 없는 인간이라 부르기 아까운 존재들에게 다른 이들과 동급의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지라... 양비론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논의를 이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해석에 대한 비판에 답변을 드리자면, 단순히 흉악범과의 공존이 공포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폭력성보다 '이해할 수 없음'이 공포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음'은 범죄자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구조적 부조리로 확장된다고 보고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시리어스 맨>과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가 상당히 노골적이라고 봅니다.) 제가 보는 이 부조리(또는 불가해)가 구밀복검님이 언급하신 '세파의 개같음'과 어느 정도 통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15/01/13 17:27
예. 그리고 그 <불가해함>, <노인>으로 상징되는 전통과 도덕을 무력하게 만드는, 신들이 사라지고 우연이 지배하는 이 땅에 남겨진 근대적 약육강식 질서의 실체가 자본이나 국가나 시스템 따위위 허깨비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개개인들 그 자체임을 보여준 것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보네요.
15/01/13 16:07
참 좋은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전부 찾아보던 시기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쓸쓸함, 외로움 같은 끝맛이 남더군요. 그 중 <파고>가 제일 그랬습니다. 아직도 눈 덮인 영화 속 배경이 떠오르네요.
15/01/13 17:32
사실 본문에서는 배경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습니다만, 미국 중북부 분위기와 하얗게 눈 덮힌 쇼트들이 의미하는 바도 간과할 부분은 아니겠죠. 참 여러 측면에서 곱씹어볼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15/01/13 16:22
코엔형제 영화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에요.
오래전에 보고 충격받고 한동안 멍했고 영화라는 쟝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영화지요. 리뷰 보니까 다시 보고 싶어요. 정말 이런 리뷰라니!!! 어떤 리뷰가 되었던 리뷰를 보고나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는데 다시 보고싶게 만드시는군요. 정말 잘 봤습니다.
15/01/13 16:40
감사합니다. 사실 글 쓰는 페이스가 워낙 늦고 한 편 쓰려면 엄청나게 뜸 들이는 타입인지라 어지간하면 리뷰 같은 것도 하기 싫어하고 그냥 남이 쓴 글 댓글이나 달곤 하는데, 오랜만에 다시 본 파고는 처음 봤을 때 이상으로 너무 인상적이라 자연스럽게 '이것만은 꼭 리뷰를 해야만 하겠다'라는 충동이 들더군요.
15/01/13 17:21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처음에 뜨는데 그것도 구라라고 인터뷰를 했죠. 코엔형제가 장난끼가 참 많은거 같아요.
얼마전 골든글러브에서 드라마 <파고>가 상을 수상했던데,(그래서 드라마 <파고> 리뷰인줄 알았습니다.) 영화 <파고> 저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15/01/13 17:30
감사합니다. 드라마 파고도 보고 싶은데 아직 못 봤습니다. 사실 드라마까지 보고 리뷰를 남겼어야 하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인내심이 부족한지라 영화보다 분량이 많은 드라마는 잘 못 챙겨 보겠더군요. 한 편에 끝나는 영화가 좋습니다 하하.
15/01/13 17:42
영화 <파고>는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저한테 여러가지 의미가 많습니다. 부세미야 말할것도 없고, 조엘 코엔과 결혼하여 계속 코엔형제 영화에 출연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인상적인 엑센트와 능청스런 연기는 마치 우리나라 충청도 사투리와 말투를 듣는 것 같았고, 이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또 굉장히 인상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하죠. 또 막 러시아에서 넘어와 연극 위주로 활동하던 피터 스토메어를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된 작품이 <파고>인데, 역시 독특한 러시아 악센트와 강한 외모, 뛰어난 연기력 때문에,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일겁니다. 또한 선한 인상으로 어리숙하지만 하는 행동은 악랄한 주연 윌리엄 마시의 캐스팅은, 코엔형제의 뛰어난 캐스팅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15/01/13 17:35
잘 봤습니다. 저도 같은 영화를 봤는데 매우 흥미로운 글이에요!
특히 동물과 인물을 연관시키는 부분에서 감탄했습니다. 구밀복검님의 리뷰를 자주(번거로우시겠지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5/01/13 17:41
저도 같은 바램이...
이렇게 정성스럽고 날카로운 리뷰는 정말 돈내고 봐야하는거 아닌가 미안하기까지 해서 많이 써달라고 못조르겠어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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