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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21:31
그냥 숫자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이 아니라 전후 좌우 기동전술을 했다고 하던데 맞나요
일부는 후방의 도주로를 차단해서 포위당한 느낌을 줘서 사기를 저하시키고 모랄빵을 줬다고 하는 말도 있더군요 미군이나 연합군은 공격하는거 조심히 하는데 국군이면 무조건 공격했다고 하고요 625 전쟁 마지막 전투도 중국군의 집중적인 공격에 밀려버린감이 있는거 같더군요
22/06/19 23:57
2차대전 때 독일군도 그렇고 당시 공격지점에 있었던 사람들의 회고만 보고서 인해전술이라는 이상한 이미지가 붙어버린 것이지 사실 공산군의 기동은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공격 측은 방어 측의 3배의 전력을 갖춰야 이길 수 있다는 건 상식인데 동시에 공격 측은 어디를 공격할 지 고를 수 있다는 것도 상식이죠. 이걸 안다면 당연히 공격할 때에는 상대방의 가장 약한 지점을 골라 전력을 집중하여 뚫는 것을 시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 겁니다. 중공군의 전술은 위에서 쓴 것처럼 상대방 전선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확인한 다음 그 부분을 집중 공격하여 뚫어서 후방으로 진출하는 것이었고 그렇다보니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간의 파도"가 뭔지 실감 했을 수 있겠지만 전선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양측의 머릿수 차이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적 전선을 돌파하고 적군의 후방까지 진출한 부대는 아직 후퇴하지 못한 적 병력들을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에 주력합니다. 이 와중에 적군이 포위당했다고 지레 겁먹고 사기가 떨어져서 와해되면 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투하쳅스키 : "그러나 심리적 와해의 확대가 적군의 남은 전력에 퍼진다면, 그 결과는 기본적으로 결정적인 부분인 섬멸의 결과다.") 목표는 적군의 물리적 실체를 포위하여 섬멸하는 것에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51년 이전에는 한국군의 훈련도가 개판이었고 무장도 유엔군보다 훨씬 안 좋았기 때문에 중공군 입장에서는 훈련도 무장도 좋은 유엔군을 공격하기보다는 둘 다 열세인 국군을 공격하여 전선을 돌파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겠죠
22/06/19 23:58
중공군 특기가 야간우회기동이였죠
그래서 인해전술로 포위된것처럼 만들고 모랄빵 만들고 후퇴하는걸 뒤치기 하는게 특기였고 초반에 들어온 중공군이 전투경험 많은 베테랑들이기도 했구요 국군을 우선적으로 터는건 인천상륙작전이후 북으로 밀고올라갈때 브레이크없이 밀고올라가다 부대들간의 전선이 늘어지고 국군,유엔군사이에 간격이 벌어지면서 틈이 발생했는데 이사이를 찌르고 들어가 후방으로 우회기동 앞뒤옆으로 적들이 보이니까 바로 모랄빵나서 후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가장 빨리털리는게 국군이여서...
22/06/19 22:34
군대에서 들은건지 지인한테 들은건지 기억이 안나는데
총이 부족해서 1개분대 10명이라치면 일렬로가서 맨앞이 쏘고 죽으면 2번이 받아서 쏘고 하던식으로 했다던데 맞는얘기일까요
22/06/19 23:12
https://namu.wiki/w/%EC%A4%91%EA%B5%AD%20%EC%9D%B8%EB%AF%BC%EC%A7%80%EC%9B%90%EA%B5%B0#s-5
정확한 답은 될 수 없겠지만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뭣보다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개편했을 뿐 인민해방군, 즉 국공내전에서 이긴 정규군이었죠.
22/06/19 23:45
아마 그 얘기의 원조는 독소전쟁 초반 소련군 얘기에서 온 거 아닐까 싶은데 소련군이 정말 최악까지 떨어졌던 때에는 개개인에게 들려줄 무기도 없어서 그런 비스무리한 상황이 벌어졌던 적은 있습니다. 물론 아주 잠깐 동안의 상황이었고.
한국전쟁 때의 중공군의 경우에는 별로 가능성 없는 이야기인 게 2차 국공내전 때 공산군 측은 소련군이 노획한 일본군 무기를 템뿌리기 한 걸 받아서 잘만 써먹었던 데다가 국민당과 내전을 거치면서 국민당군의 미제 장비를 흡수해서 오히려 무장은 갈수록 충실해졌습니다. 한국전쟁에서도 무장 상태가 미군보다는 못했다 뿐이지 꽤 충실했고요. 오히려 그러한 사례가 발생했던 상황은 월남전 때 베트콩들 얘기가 아닐까 싶은데 베트콩들은 게릴라라는 특성상 무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무기는 악착같이 수거해 갔습니다
22/06/19 23:09
한마디로 칼바람에서 워모그두른 탱커들고 물었다가 빠졌다가
피스톤질을 계속하면서 상대 스펠마나피를 빼놓고 웨이브쌓아서 다이브쳤다는 말이군요
22/06/19 23:49
근데 이건 2차대전 때 소련도 비슷하게 했습니다. 소련도 원래는 1파에서 공격하는 부대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계화된 부대가 공격한 다음 2파로 중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를 가진 기갑부대가 구멍을 뚫은 다음 3파로 기계화 부대가 구멍 내로 돌진하면서 구멍을 넓히는 방식이어야 했는데 독소전쟁 자체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발발한 데다가 소련군도 미숙했고, 2차대전 내내 조급하게 계속 몰아치는 것에 집착하다보니 1파의 공격을 알보병들이 수행해서 피해가 쓸데 없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죠.
그런데 원래 한번 찔러봐서 상대방 전선의 약점을 캐치해낸 다음 그 약점으로 우르르 몰려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들어가서 포위하는 것이 공산권 기동전의 기본입니다. 딱히 인권을 경시하는 건 아닙니다. 만약 소련군이었으면 제1파의 공격을 기계화된 제대가 공격해서 인명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겠지만 중공군은 그럴 여력이 안 되어서 알보병이 수행하느라 인명피해가 더 컸을 수는 있었겠지만
22/06/20 03:20
전 이거 고등 때 간략하게 국사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맨날 인해전술 총알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말하던 시절(90년대)이라 충격이었어요. 모택동의 일본군 대국민당군 전술에 대한 이야기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저것과 비슷하고 낭림산맥을 이용한 은밀이동, 기만과 기동전이 핵심이라고. 저렇게 숫자만 보여주고 상대전력이 세다 싶으면 주병력은 밤중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버린대요.
이런 거 너무 길게 말하면 위험하다면서 마지막에 여운을 주시는 바람에 나중에 찾아보게 됐죠. 재밌는 선생님이셨는데 맨날 진도 맞추느라 본인의 100프로 실력을 못보여주셨음.
22/06/20 10:33
뭐 장비와 보급품 문제만 있었을 뿐.. 국공내전과 항일투쟁으로 완전 실전력이 최고로 올라온.. 그리고 지들딴엔 분명 명분도 있었을테니... 중공군은 강한군대였겠죠..
22/06/20 11:03
중공군 인해전술을 저글링 블러드 수준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던데 말도 안되는 헛소리죠. 애초 전체 병력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고 효율적으로 화력 집중을 잘 한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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