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지난 2006년 초 ‘초콜릿폰’을 들고 유럽시장의 문을 두드렸을 때다. 당시 LG전자의 휴대전화를 일컫는 ‘LG모바일’이란 브랜드는 늘 삼성전자에 뒤진 그저그런 중저가 제품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초콜릿폰’은 특유의 깜빡거리는 빨간색 램프와 미끈한 디자인으로 일명 ‘돈 되는’ 유럽시장에서 LG모바일의 이름을 알리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덕분에 ‘초콜릿폰’의 뒤를 이은 ‘샤인폰’(나오미 켐밸폰) 역시 459유로라는 가격으로 유럽 내 오픈마켓에서 날개돋힌 듯 판매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보수적인 유럽인들의 사고라는 선입견을 깰 수 있는 ‘임팩트’(충격)만 있다면 과거의 브랜드는 언제든지 충분히 잊혀질 수 있고 오히려 이미지 변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떠 오르는 먹잇감, 유럽을 잡아라.”
대표적인 IT 상품인 휴대전화의 뒤를 이어 한국산 온라인 게임이 이제 유럽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브로드밴드 보급률을 자랑하는 유럽시장은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기본 인프라는 자동적으로 구축해놓은 셈이여서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일본과 중국, 북미를 휩쓴 게임한류가 ‘알토란’ 같은 유럽 대륙에 불어닥치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 NHN, 한빛소프트 등 대표적인 한류 게임기업들은 4억5700만명에 달하는 유럽인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하나둘씩 공략 채비를 갖췄다.
2006년 기준 유럽의 게임시장은 229억달러로 이는 전세계 게임시장의 약 31%를 차지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아케이드게임과 비디오게임(콘솔)이 주축(박스 기사 참고)을 이루고 있지만, 지난 2004년부터 브로드밴드 보급률이 상승하면서 온라인 게임의 연간 성장율 역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용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일본이나 잠재 성장성을 지닌 중국과는 달리, 유럽 대륙의 최대 이점은 전 지역이 20%를 넘나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브로드밴드 보급률이다.
시장 조사기관인 DFC의 발표에 따르면 유럽 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오는 2009년에는 18억5700만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액션·어드벤처 위주이던 장르 역시 ‘리니지’나 ‘길드워’ 같은 전략형 MMORPG 부문의 강세도 점쳐지고 있다. MMORPG는 월정액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로도 높은 가능성을 내포했다.
현재 유럽 내 온라인 게임 서비스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Ⅱ’, ‘길드워’, ‘시티오브히어로’가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액토즈소프트의 ‘미르의 전설’,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한빛소프트의 ‘헬게이트 런던’ 등이 진출했거나 진입을 앞둔 상황이다. 특히 아직 걸음마 수준인 여타 기업에 반해, 맏형 격인 엔씨소프트는 이미 한국과 북미에서 습득한 서비스 노하우를 유럽 시장에 고스란히 전이시키고 있다.
‘길드워’의 경우 지난 5월 이후 북미를 제치고 유럽이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지난 2004년 첫 상용화 이후 ‘길드워’는 올해 8월 중순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400만개가 판매됐다. 금액 기준으로 1200억원을 호가한다. 여기에 유럽 시장의 기여도는 남달랐다. ‘길드워’의 유럽 매출은 올 상반기에만 94억원을 넘어섰다. 아이템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부분 유료화가 아닌 패키지만으로 달성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수치다.
엔씨소프트 유럽법인의 더크 매츠거 마케팅 이사는 지난 2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게임전시회인 ‘GC2007’에서 “패키지 판매와 온라인 스토어를 통한 물량 공급이 유럽 내 매출을 견인했다”면서 “수익 확대를 위해 패키지 판매 외 부분 유료화도 검토중”이라고 강조했다. 매츠거 이사는 이어 “그동안 패키지 판매 이후 대규모 패치가 유일한 추가 수익원이었지만 이제는 추가 미션이 필요한 게이머들을 위해 별도 방식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확실한 ‘금맥’을 찾은 만큼 유럽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가볍고 단시간만 즐기는 콘솔게임과는 달리, 충성도 높은 하드코어 유저들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엔씨소프트의 MMORPG 장르는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오는 10월 5일 유럽과 북미에서 동시 출시될 ‘리차드게리엇의 타뷸라라사’는 엔씨소프트의 부상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매츠거 이사는 “와우와 길드워로 대표되는 MMORPG 시장에서 FPS적인 슈팅 요소를 가미한 ‘타뷸라라사’는 전혀 다른 묘미를 제공할 것”이라며 “리차드 게리엇이라는 검증된 개발자가 참여한 만큼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타뷸라라사’의 개발 프로듀서인 엔씨소프트 북미법인의 스타 롱 역시 “롤플레잉과 슈팅 요소에 실제감을 담은 전장 분위기를 더해냈다는 점에서 ‘타뷸라라사’는 RPG에 무관심했던 유저들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차별화된 게임 개발 외에도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은 27개에 달하는 유럽 내 게임 유통사와의 협력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권으로 형성된 유럽 시장에서 현지 서비스에 적합한 서비스 및 수익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협력사 간 긴밀한 공조체제가 그려지고 있다. ‘길드워’와 ‘리니지’가 영어와 독일어 등 7개 언어로 서비스 되고 있고 ‘타뷸라라사’는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등 총 3개 언어로 먼저 선보일 예정이다.
라이프치히(독일)=스포츠월드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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