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알 자게의 무거운 글쓰기 버튼을 이런 이야기를 쓰기 위해 처음으로 누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영양가 없는 넋두리지만, 순전히 제 감정의 해소를 위해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십사 하는 말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제 지인들이 혹여라도 제 여과없이 무너져있는 모습을 볼까 부끄러워 고양이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날이 오고 명복을 빌고자 하는 날이 오게 되면 그 때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진과 이름을 올릴까 합니다.)
제 반려 고양이가 약 7시간 전 동물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계속 차오르는 흉수(Pleural effusion) 때문이었습니다. 엑스레이나 초음파를 찍어보지는 않았지만 흉수의 원인은 심장병이나 암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 경우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더군요. 희박한 확률로 단순 폐렴일 수도 있고 이 경우 치료가 가능하긴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드문 경우라 앞선 두 이유가 맞을거라 했습니다.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통한 검사비만 4~500만원(캐나다 현지 가격)인데, 그렇게 정확한 원인을 조사해봐야 치료할 수 없는 병명만 알게 되는 셈이 될테니 차라리 흉수만 빼줘보고 이별을 준비하는 게 낫겠다... 그런 말을 듣고, 흉수 제거와 후속 조치를 위해 우선 24시간 입원을 시켜놓은 상태고, 최대한 미루고 미뤄 이번 주말쯤 안락사를 준비하려 하는 중입니다.
고양이가 갑자기 밥을 안 먹고 시름시름 하기에 찾아간 동네 동물병원에서는 피 검사, 소변 검사 결과를 두고 '흔히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겪는 신장 문제다'며 잘 돌보면 괜찮을 거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하길래 잘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녀와서도 차도는 없고, 기운이 없어 널브러져 누워있을 때 호흡이 가쁘길래 응급실이 있는 병원으로 가보니 저런 이야기가 나오네요. 이렇게 큰 문제일 줄 알았으면 마음의 준비를 조금이라도 먼저 했을텐데... 괜시레 야속함을 느낍니다.
제가 고양이를 만난 건 약 14년 전, 20대 대학 시절 즈음이었습니다. 친구가 여행을 가 맡게 된 고양이가 너무 착하고 귀여워 반해버린 저는, 고양이의 마력에 빠져 두 살이 조금 넘은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습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딘가의 언어로 그 이름이 '호기심'을 의미한다 했는데, 첫 날부터 집 이곳저곳을 탐험하는 걸 보고 퍽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굉장히 멘탈이 약합니다. 고양이를 입양하고 머지 않아 제 인생에 큰 굴곡이 찾아왔습니다. 그간 계획해왔던 인생 계획이 뒤틀리는 이 사건에 저는 정신과를 찾아다닐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고, 눈물바다는 기본에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아무것도 모르고 제 옆에서 저를 멀뚱히 바라보는 고양이를 안았습니다. 참 우습게도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체온이, 그리고 부드러움이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더라구요. 곧 불편하다며 발버둥치는 고양이를 안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집 고양이는 천사같던 친구네 고양이와는 달리 까탈스러운 편이었습니다. 고양이 중에서도 상고양이 성격이라, 세상 순했던 친구의 고양이와는 달리 자신의 몸을 만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얼추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기까지 거진 2년이 가깝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끝내 친해졌을 때 더욱 각별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첫 번째 병원에서 '그냥 아플 뿐이다'라는 진단을 받아 아직 고양이에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지 못했던 며칠 전의 아침, 힘없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의 옆에 나란히 누웠더니 그 아픈 와중에도 좋다고 고롱고롱 소리를 크게 내는 걸 보고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내가 너를 의지해 살았듯, 나도 너에게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은 사람'인거구나 하는 생각이 반, 말 못하는 저 조그만것이 날 이렇게 의지하는구나 하는 가여이 여기는 마음이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시간 전, 고양이의 건강상태를 설명하던 의사의 입에서 끝내 시한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자연스럽게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위에서 반려동물을 보내는 경우를 보며, 그리고 인터넷의 글들을 읽으며 그 끝이 언젠가 찾아오리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는데 막상 닥치니 현실감이 안 느껴지기도 하는 동시에 앞으로 그녀가 없을 현실에 대한 감각이 무섭도록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내심 '우리 고양이는 잡종이라 튼튼해서 여지껏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았어. 그러니까 20살까지도 살 수 있을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그간 외면해온 현실 앞에 머릿속 꽃밭은 무참히 깨져버렸습니다.
암 투병하는 고양이를 끝까지 연명치료하다 보낸 여자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하며 여자친구에게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내 욕심으로 고양이를 고생시키는 건 이기적이니 편히 보내주는 게 맞는 것 같고, 나는 그리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현실은 역시 다르더군요. 저도 '혹시라도'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고, 지금까지도 '단 한 달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욕심을 내서라도 보고싶다'는 마음에 더 연명을 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입원을 시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고양이를 안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르는, 그리고 너무나도 멀쩡해보이는 귀여운 얼굴을 보고 짜증이 나 눈물이 또 터졌습니다. 왜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건데. 그러니까 더 포기하기가 싫잖아. 이게 맞는거야? 사실은 계속 살 수 있는거 아냐?
검색을 해보니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던데, 하나같이 제 지금 상태와 맞아떨어지더군요. 고양이에게 못 해준 일들만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지난 몇달 간 이상하게 고양이가 저에게 들러붙는 일이 많았습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으면 계속 옆에 와서 제 다리를 툭툭 치거나 책상에 올라오거나 하는 식으로, 자길 상대해달라며 이리저리 어필을 했습니다. 그동안은 절대 안 하던 행동이기에 '야, 같이 한 지 15년이 되니 그 도도했던 애가 드디어 나한테 이렇게 들러붙어오네' 하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하필이면 지난 두어달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는 기간이었던지라 많은 경우 간식을 몇 개 주고 마무리를 하곤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돌이켜보니 얘가 몸이 안 좋아 불안하니 나를 계속 찾은건가, 나는 '지금은 내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는 핑계를 대며 귀찮아했을 뿐이었던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이며 자기개발이야 당장 안 한다고 죽는 게 아닌데, 생명이 다 해가는 아이의 한정적인 시간보다 그런 것들을 우선했음에 까마득한 후회가 몰려옵니다.
장난감이며 사료며, 그깟 한두푼 아낀다고 고급품이 아닌 걸 샀던 게 후회되고, 무엇보다 물 멀쩡히 잘 먹는데 굳이 필요가 있겠냐며 다른 집들 다 쓰는 고양이 분수를 안 사줬던 게 후회됐습니다. 아이러니 한 게, 요새들어 물을 잘 안 마시는 것 같아서 주문했던 고양이 분수가, 하필이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입원시키고 오니 집 문 앞에 도착해 있더군요. 환불 안 할거라고,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은 쓰게 해줄거라고 엉엉 울며 포장을 뜯었습니다.
저는 가까운 누군가를 영영 떠나보내는 경험이 처음입니다. 부모님도 모두 잘 계시고, 굳이 따지자면 중학생 무렵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경험이 있긴 했지만 철들고서는 왕래가 그리 잦지 않았습니다. 굳이 눈물겨운 이별의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태평양을 가운데에 두고 장거리연애를 하게 됐을 때 펑펑 운 경험이 있지만 그건 마음만 먹으면 다시 만날 수 있는 헤어짐이었고, 실제로 돌이켜 보니 별 것 아닌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을 잃기도 하는 마당에 내가 고작 반려동물 하나 가지고 이 호들갑을 떠는 건 그래서인가, 역시 나는 멘탈이 너무 약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반려동물을 파양하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정이 들어서 저럴테고, 이렇게 슬픈 끝을 보지 않아도 될테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무딘 사람들이라 저런 일을 자행하는거니 이런 가슴아픔을 안 느끼지 않을까 하고요.
양로원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는 사람이 죽는것도 많이 보다보니 고양이의 죽음은 덤덤하게 받아들여지신다 하십니다. 저도 이별을 많이 경험하다보면 이런 일에 무뎌질 수 있는걸까요?...
집에 오니 밥그릇, 화장실, 캣타워 등을 보고 눈물이 또 쏟아지더군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두드리면 또 눈물이 나오고의 반복이었습니다. 저걸 도저히 치울 자신이 없습니다. 그 흔적마저 사라지면 버티기가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고양이가 아픈 걸 보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무의식중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지난 며칠 잠을 제대로 안 자고 고양이와 보냈는데, 안락사를 하는 그 시점까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젠 마우스 휠에 털이 껴 고장나는 바람에 1년에 한 번 마우스를 갈 일도, 방에 언제나 털이 풀풀 날릴 일도, 털범벅이 되는 바람에 검은 옷을 못 입을 일도, 방바닥의 엄한 물건을 보고 고양이인줄로 착각해 깜짝 놀랄 일도, 안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다그칠 일도, 그러면서도 슬쩍 들여보내 신나게 모험하는 걸 볼 일도 없어지겠습니다.
그러나 그 체온이, 그 냄새가, 그 감촉이, 그 소리가, 언제나 돌아보면 있던 그 자리에 있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워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방 어딘가에서 나는 부스럭 소리에 한 번 돌아보고, 캣타워 위에 고양이가 올라가 있을 것 같아 괜히 한번 보고 했네요.
안락사... 계획된 이별시간이 있으니 조금은 더 계획적으로, 덤덤하게, 시원하게 보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임의로 정해진 카운트다운이 있다는 것 역시 또다른 종류의 슬픔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 안락사 후기, 펫로스 신드롬 등 이런저런 정보를 뒤져보며 이 슬픔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우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최대한 즐겁게, 이기적이지만 저 자신을 위한 추억을 만들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발도장 액자도 만들고, 유리병에 털도 조금 잘라 보관하고요.
혹시 오랜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경험해보신 피지알 회원분들이 계시다면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앞으로 고양이를 어떻게 추억하면 좋을 지(상기했지만 각종 고양이 물품을 못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액자며 털 들어간 유리병도 만들려 하고 있고요), 혹여 수의학 지식이 있으신 분이라면 제가 이 상황에서 연명치료를 해도 괜찮을 지 등에 대해 조언해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까 하도 울어서 그런지 계속 밤을 새는 바람에 머리가 멍해서 그런지 글을 다 쓰고 난 지금은 오히려 눈물이 그쳐있습니다. 이 건조함이 계속 갔으면 좋겠는데 자고 일어나서 말짱해진 정신으로 현실을 마주하면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두렵습니다. 14시간 후 쯤에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의연한 마음이 되어있기를 바래봅니다.
안그래도 글재주가 없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정신없는 글이 된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감정적으로 써갈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