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2/24 00:38:12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2656175720
Subject [일반] <나이트메어 앨리> - 한 겨울밤의 악몽(약스포)

자, 여러분들은 '기예르모 델 토로'라면 어떤 분위기,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뽑자면 기묘, 기괴, 독특함 정도가 떠오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하면 저는 어두운 판타지나 (크리쳐가 등장하지만) 음울한 현실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조금 다릅니다.


이 영화를 표현하는 단어는 많은 단어들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영화라고 하고 싶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와 암시들은 영화의 빈 부분을 채우고 있고, 인물 간의 관계는 그 미묘한 선과 긴장감이 혼재합니다. 가장 처음부터, 이야기가 심화되는 중후반부 까지, 영화는 많은 수수께끼들을 던져주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수수께끼와 암시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의 서사는 트릭과 관찰 몇 가지로 이루어진 이야기일 뿐이지만, 영화의 내용과 이야기들은 수많은 암시와 수수께끼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떡밥들은 영화 상에서 해소되긴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끝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 스포일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죠.


영화는 (후에 밝혀지기론 아버지인) 시체를 태우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 그러니까 나이 있는 중년 이상의 남자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납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요. 아니, 세 번이라고 해야할까요? 왜냐면 몰리도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영화의 앞에서, 시작 전에, 무슨 일이 또 있었을까요?


영화 상에서 '기인'이 되는 것은 아편과 술에 중독되어 철저하게 몰락한, 이를 테면 폐인을 데려다가 속여서 기인으로 '만드는' 성격의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영화 전체는 어찌보면 주인공 '스탠턴'의 비상과 추락의 이야기로, 처절하게 결국 '기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오죠. 어떤 점에서 영화는 이거 어쩌면, 한 겨울 밤의 기나긴 꿈, 악몽과도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리학자 '릴리스 리터'는 말 그대로 영화의 모든 수수께끼를 품에 넣은 사람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긴장감을 자아내고 인물들의 비밀을 한데 모아 숨겨놓는 사람이죠. 상처는 무엇인가, 완성된 형태로 그려졌던 다른 모든 이들에 비해 왜 이 인물은 그려지다 만 형태로만 그려지는가. 이에 대해 저의 개인적인 해석을 물어보신다면, 전 이 영화가 피카레스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영화 상에서 선인이라곤 없는, 악인들만 가득한 이야기요. '현실을 경험한 댓가'라고 말하는 것도 실제로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말했다기 보단, 거짓말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영화 상에서 아마 가장 강렬한 이미지 두 장을 뽑자면, 불타오르는, 아니 오히려 역재생으로 불이 달라붙는 장면의 반복과 내리는 눈을 뚫고 등장한 '몰리'의 등장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이 영화의 배경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불로 시작해, 물을 거쳐 눈으로 끝나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영화의 상당 부분은 그런 점에서 철저하게 하강합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장면은 짧지만 인상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며 끝끝내 몰락하는 장면은 철저하고 확실하게.


배우들의 호연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어느 시점부터 브래들리 쿠퍼도 참 능글맞게 연기 잘한다 싶은 생각입니다. 웃으면서 우는 엔딩 장면도 그렇고,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로서 매력적이네요.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의뭉스럽고 독특한 인물을 잘 소화해냈구요.


이 영화를 단순히 '느와르'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심리극, 혹은 음울한 이야기, 혹은 한편의 장대하고 혼이 담긴 구라, 시대극 등등 다양한 언어로 이 영화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장르적으로 한 단어로 이 영화를 표현하기는 꽤 난감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영화를 보고 걸어 오는 동안 이상하게도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다 만난 영화는 <프레스티지>였습니다. 사실인 척 하면서 실상은 SF였던 <프레스티지>와 달리 판타지인 척 영화 안의 인물들을 속이고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음울한 피카레스크 작품이었던 <나이트메어 앨리>가 대비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우주전쟁
22/02/24 10:00
수정 아이콘
한 번 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aDayInTheLife
22/02/24 10:43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orschach
22/02/24 10:45
수정 아이콘
제법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보긴 했는데, 아쉬움도 제법 컸습니다.
제가 몇 년 전 부터 볼 생각 있는 영화는 예고편도 아예 안보고 정보를 최소한만 접하고 가다보니... 일단 판의 미로나 셰이프 오브 워터 느낌을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전형적인 느와르였던 부분이 하나, 그리고 포스터 카피에 적힌 10년 어쩌고 충격적 결말 이라는 문구 때문에 결말에 그래도 뭔가 크게 오는 게 있겠지 생각했지만 전체적으로 예상 범위 안에서 흘러갔다는 점 때문에 영화관 나올 땐 아쉬움이 좀 컸습니다.

뭐 그 아쉬움과 별개로 배우들의 호연과 영화의 분위기는 정말 끝내줘서 다시 생각해보니 재밌게 보긴 했네요 크크
브래들리 쿠퍼와 케이트 블란쳇을 원래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두 배우 연기 보는 것도 매우 좋았습니다.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팬이신 분들은 그냥 일단 가서 보셔도 될 듯...
aDayInTheLife
22/02/24 10:59
수정 아이콘
뭔가 기예르모 델 토로하면 개인적으로 '슬픔'의 정서가 깊게 배여있어서 그에 따른 온정적인 시선이 꽤 들어가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이번 영화는 반대로 굉장히 서늘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일품인 영화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느와르라는 단어는 뭔가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약간 아직까지는 저한테 뺀질거리는 캐릭터가 떠오르긴 하는데 뭔가 묘하게 브래드 피트처럼 뜨고 나선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도 이번 영화를 보면서 들더라구요. 케이트 블란챗은 말할 것도 없고, 루니 마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배우가 <캐롤>에서 같이 나왔었죠? 스틸컷 보고 그 생각이 좀 나던데 크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120 [일반] [펌글] 러시아/중국/한국 국방비의 실제 가치는? feat. 군사PPP [39] 야옹도령13318 22/02/25 13318 15
95119 [일반] 여성운동의 기묘한 언어 [30] meson11868 22/02/25 11868 16
95118 [일반] 모두들 음악 하나 듣고 가세요(feat. 방탄) [4] 포졸작곡가7503 22/02/25 7503 9
95117 [일반]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독일의 시각 [106] 캡틴골드24452 22/02/24 24452 14
95116 [일반] 신신냉전도 아니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릴거 같습니다. [113] NT_rANDom16932 22/02/24 16932 2
95115 [일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외곽인 고스토멜까지 진격한 러시아군 [165] 아롱이다롱이20027 22/02/24 20027 0
95114 [일반]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 [176] 아롱이다롱이20970 22/02/24 20970 2
95113 [일반] "유화정책"과 "소련": 어떻게 같은 것을 두 번 당하겠는가? [76] Farce14528 22/02/24 14528 72
95112 [일반] 의외로 76%의 한국인이 가지고 싶어하는 '그것' [200] 오곡물티슈21799 22/02/24 21799 4
95111 [일반] 요로결석 고양이 치료후기 [10] 날아가고 싶어.7758 22/02/24 7758 13
95110 [일반] 푸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사작전 실시한다" 선포 [249] EpicSide23101 22/02/24 23101 1
95109 [일반] 루머: RTX 4080,4090 9월 출시 [88] SAS Tony Parker 16066 22/02/24 16066 0
95107 [일반] <나이트메어 앨리> - 한 겨울밤의 악몽(약스포) [4] aDayInTheLife6504 22/02/24 6504 2
95106 [일반] 떡배단배 이야기 [13] 과수원옆집6098 22/02/23 6098 3
95105 [일반] 작지만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책 - 난임지원 [81] VictoryFood12518 22/02/23 12518 49
95103 [일반] 작년 합계출산율 0.81명, OECD 꼴찌…적게, 늦게 낳는다 [147] 맥스웰방정식15582 22/02/23 15582 22
95101 [일반] 코로나 걸리신 분들 여기 모여봐요~ [57] 해바라기12106 22/02/23 12106 5
95100 [일반] 분노조절잘해... [28] 우주전쟁14975 22/02/23 14975 10
95099 [일반] 전장연 지하철 시위가 중단됩니다 [223] Endless Rain22446 22/02/23 22446 11
95098 [일반] 영화 추천 및 후기 2개 해봅니다. 퍼스트 리폼드, 얼라이드(스포최소화노력) [12] SigurRos5862 22/02/23 5862 0
95097 [일반]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설 전문 해석 [95] KOZE25442 22/02/23 25442 22
95096 [일반] 2등 홍진호 [22] 할러퀸9376 22/02/22 9376 44
95095 [일반] 헤비 메탈을 듣자: 0. 그래서 헤비 메탈이 뭔데? [59] 찌단9189 22/02/22 9189 1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