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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2/30 03:51:35
Name 라쇼
File #1 비스크돌.jpg (135.3 KB), Download : 61
Subject [일반] [리뷰]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스포) (수정됨)


소년 소녀를 만나다. 이 보이 밋 걸은 로맨스 장르가 탄생된 순간부터 현재까지 계속 사용되어오는 유서깊은 플롯입니다. 원수집안이라는 장벽을 사랑으로 극복하려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첫만남은 최악이었으나 상대의 본모습을 알아가면서 사랑하게 되는 오만과 편견 같이, 로맨스물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이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그려냅니다. 주인공과 히로인의 사랑은 이루어 질 것인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인가? 그게 바로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이겠죠.

로맨스물의 하위 장르인 러브 코메디는 일본 만화에서 선호하는 소재입니다. 로맨스가 해피엔딩과 배드엔딩 같이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한다면 럽코는 좀 단순한 편이죠. 갈등을 빚고 이를 극복하여 사랑하게 되는 과정보다 여성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을 받는 내용을 더욱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이른바 유사연애를 가상 이야기 속에서 체험하는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셈이죠. 좀 심하게 말하면 연애 경험이 적은 독자들이 미소녀들의 구애를 원없이 만끽하도록 타겟을 잡고 만든 창작물입니다. 그래서 유독 럽코 만화엔 소위 오덕물로 지칭되는 얄딱구리한 스토리가 많습니다. 일본 만화를 접하지 않는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한데, 어째서 굳이 러브 코메디 만화를 소개하느냐 물으신다면 그 중에서도 좋은 작품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소개 할 후쿠다 신이치의 만화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보고나서 후회가 들지 않는 웰메이드 만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재미도 있고, 약간의 감동도 느껴지고, 사랑이야기도 달달한 좋은 만화에요.

우선 작품 개요를 설명해 볼까요.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줄여서 비스크돌은 코스프레를 소재로 다룹니다. 주인공은 코스프레 옷을 만들고 여주는 그 옷을 입고 코스프레에 나가는 이야기에요. 허이구 오덕만화인데 코스프레까지 한다고 안봐요 안봐 하시겠지만 잠시 더 이야기를 들어주십쇼. 좋은 건 다 좋은 이유가 있다니까요.

주인공 고죠 와카나는 히나 인형 장인인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고등학생입니다.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장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불철주야 인형 공예 연습에 매진하는 성실한 청년이죠. 하지만 고죠군에겐 남에게 말 못할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어릴 적 여자애나 가지고 놀 인형을 좋아한다고 소꿉친구에게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듯한 원망을 들었기 때문이죠. 남자아이 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고죠군은 그토록 좋아하는 히나 인형에 대한 열정을 남들에게 밝히지 못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대인관계도 서툴고 오로지 히나 인형만 만지작 거리는 내성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하죠.

아까 서두에서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고 얘기 했듯이 남자 주인공이 있으면 여성 히로인이 나와야겠죠. 집에서 쓰던 재봉틀이 망가져서 학교 실습실에서 연습을 하던 고죠군은 학급에서 가장 잘나가는 무리의 중심에 있는 키타가와 마린에게 그 광경을 들킵니다. 오타쿠처럼 히나 인형을 가지고 히히덕 거리는 모습을 보여서 왕따가 되겠다 걱정하지만, 기우와 달리 마린은 다른 곳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마린은 코스프레를 하는 취미를 커밍아웃하면서 옷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고죠군은 처음에 당황했으나 좋아하는 건 당당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마린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감화되어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흔쾌히 승락하죠. 여기까지가 바로 비스크돌의 발단입니다.

비스크돌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부정당해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남자가 대단한 친화력을 가진 여자를 만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서사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유사연애를 대리만족 시켜주는 뽕빨물을 아니라는 얘기죠. 저는 창작물을 볼때 등장인물끼리 만나게 되어 벌어지는 사건의 인과를 통해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즐겨 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처음과 끝의 변화가 있어야만 비로소 서사라고 생각하죠. 그 점이 제가 비스크 돌을 좋게 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점을 설명하느라 좀 무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는데 비스크돌은 진지한 작품은 아닙니다. 밝고 유쾌하면서 달달한 러브 코메디의 정석을 밟고 있죠. 가벼운 러브 코메디이면서 등장인물의 서사가 느껴진다는게 저만의 가산점이 붙는다고 해야 할까요?

처음부터 칭찬을 늘어놨는데 사실 이 만화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너무 히로인의 매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게 장점이면서 단점이죠. 두 남녀가 호감을 쌓고 가까워지는 초중반부는 재밌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전개가 더뎌서 살짝 루즈해집니다. 조역인 신쥬 자매 에피소드까진 매력있는 캐릭터가 나와서 재밌으나 계속 다음화가 거듭될 수록 코스프레하는 지엽적인 소재에만 매달리고 신 캐릭터는 매력이 없어서 흥미가 떨어지는 느낌이죠. 하지만 히로인 키타가와 마린의 매력이 뛰어나서 언급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키타가와 마린이 얼마나 매력적인 히로인인가 얘기를 해볼까요. 마린은 갸루 스타일 미인입니다. 일본 현지에선 멸종한 까무잡잡한 화장의 그 갸루말고 패션 유행에 민감하고 화려하게 꾸민 인싸 여고생 같은 느낌이죠. 말투도 잘노는 여고생 같이 사용해서 갸루 느낌을 잘살렸습니다. 거기다 긍정의 화신 같은 성격이어서, 행동력도 과감하고 곁에 있으면 기운을 건네받는 매우 활력 넘치는 캐릭터지요.

사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마린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후쿠다 신이치의 작화가 속된 말로 쩔기 때문입니다. 럽코 만화를 여럿 봤지만 마린 같이 예쁘게 그려진 히로인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림체가 정말 예뻐요. pc가 만연한 요즘 현실에서 너무 외모지상주의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인간의 미의식은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쁜 걸 예뻐서 좋아하는게 잘못일까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샜는데, 예쁘고 붙임성 좋다는 것 만으론 뭔가 2% 부족해 보입니다. 마린을 더욱 호감가는 인물로 만들어주는 숨겨진 장치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자신이 잘못한 점을 솔직하게 사과할 줄 아는 공감력입니다.

이건 좀 스포성 설명인데, 마린이 고죠에게 옷을 만들어달라고 처음 부탁했을때 갈등이 빚어집니다. 코스프레회장에 나가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고, 거기다 할아버지가 다쳐서 병원에 가거나 중간고사까지 겹치는 등, 마린이 부탁한 옷을 만들려면 시일이 너무나 축박했죠. 고죠는 중압감을 느끼며 번민하게 되고, 고죠 입장에서 마린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자기 부탁만 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구석까지 몰린 고죠는 포기하려다가 고된 작업 끝에 인형을 받은 사람들의 미소를 보며 성취감을 느낀다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꿈인 히나인형을 긍정해준 마린을 위해 밤을 새가며 옷을 완성하죠.

다음날 옷이 완성됐다는 문자를 받고 집에 찾아온 마린은 고죠를 보고는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당연히 시일이 촉박하니 다음으로 미룰 줄 알고 있었는데 고죠가 그렇게 마음 고생한 줄은 생각도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보인 거죠. 저는 마린의 외모보다 그런 상냥한 마음씨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현실에서 상대의 호의를 인질삼아 갑질하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는 걸 감안하면, 가상의 이야기에서나마 외면과 내면 모두 아름다운 히로인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져 오더군요.

아까 작품이 히로인인 마린의 매력에 의존한다고 말햇었는데, 마린보다 캐릭터 매력이 다소 옅긴 하지만 주인공 고죠 와카나도 상당히 호감가는 성격입니다. 바라카몬이란 만화를 모르는 분들껜 그리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으나, 제가 바라카몬을 좋아하는 이유는 서예를 향한 주인공 한다의 진지한 마음가짐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고죠 또한 히나 인형 장인이 되겠다는 일념이 작품 곳곳에서 묘사되는데요. 마린의 과감한 행동에 여성한텐 쑥맥이라 당황하면서도 옷을 만들 때면 무섭도록 집중력을 발휘하는 장인정신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여성이 꼽는 남성의 매력 중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고 거기에 전력으로 매진하는 모습에서 호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로 고죠가 그런 남성상인데 옷을 만드는 재주도 뛰어날 뿐만아니라, 코스프레나 서브컬쳐에 문외한이면서도 자신을 긍정해준 마린을 위해 마린이 좋아하는 분야도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내가 관심이 없다면 남이 아무리 좋다며 추천한들 거들떠 보지도 않는게 현실입니다. 상대의 관심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성실한 자세. 마린이 좋아하는 코스프레 옷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관심사까지 귀기울여 들어주는데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일에 집중하면 온 정신을 한점으로 집중하는 예술가의 면모와, 친구의 말을 경청하는 성실함이 바로 고죠라는 캐릭터의 매력입니다.

더구나 마린이 고죠에게 반하는 빌드업이 또 재밌습니다. 히나인형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머지 진심으로 예쁘다고 느낀 것에만 예쁘다고 말하는 고죠의 성격. 이 빌드업이 소녀를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하는지에 대한 연출도 비스크 돌을 보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슬슬 설명도 마무리해야겠군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비스크돌은 명작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고나서 공허함이 밀려드는 양산형 만화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남에게 인정 받는 다는 것만큼 인간관계에서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요? 보고 나면 마린의 매력에 푹빠지며 훈훈한 이야기에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되는 만화 그 비스크 돌은 사랑한다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성실한 고죠군과 요망하면서 성격좋은 마린양의 달콤한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애니 1차 pv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애니 2차 pv


설명을 깜빡했는데 1월 9일에 애니메이션도 나옵니다. 작화 퀄리티가 괜찮아 보이는데 애니로 감상하시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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