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애가 없었던 시절에는 육아라는 것에 대한 만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안좋은 점은 쉽게 말할수 있습니다.
자유시간의 부재, 잠을 잘 수 없음, 끝없이 들어가는 육아 및 교육 비용 등등
너무나 쉽게 수치화, 객관화 할수 있지요.

반면에 아이의 장점에 대해서는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보통 아이 부모에게 애를 키워서 뭐가 좋냐하면,

[아, 그게 부모에게 참 좋은데 말로 설명을 할수가 없네]

이정도 느낌으로만 이야기 하더라고요.
육아 그거 엄청 힘들다던데, 사랑스럽다,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그런 고행을 하는지에 대해 항상 의문이었지요.

그런데 꽤 오랜시간동안 인류는 아이를 낳아왔고 또 키워왔지요.
아직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일이 좋은점은 별로 없고 나쁜점이 많은 바보같은 일이라면 왜 그리 많은 인류가 몇만년전부터 시기를 가리지 않고 계속 해왔을까요.

애를 낳아보니 왜 애를 낳는지 알겠더라고요.

....아, 그게 부모에게 참 좋은데 말로 설명을 할수가 없네.



2.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입니다.
낳아서 키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뱃속에서 키우는 것도 꽤 힘든 일입니다.
내 몸을 갈아서 애를 키우고 있구나 라는 것이 매우 느껴집니다.
이건 뱃속에서 키워본 사람만 알아요.

사실, 아무도 여자에게 얼마나 그것이 힘든일인지는 거의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죠.
임신은 축복이다. 그런 소리나 하고 말이죠.

마치, 대학가면 여자/남자 친구 생기고 살도 저절로 다 빠지고 그러니까 일단 공부해서 대학 준비나 해라 하는 말과 똑같아요.

사실 대학가도 애인 생기는 사람들은 정해져있고 살도 저절로 빠지진 않습니다.
대학이 행복을 정의해주지는 않죠. 그래서인지 대학가서 갑자기 고비풀린듯 미친듯이 노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임신을 끝낸 여성에겐 육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되죠.
임신이 축복인 이유는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라는 것을...
굿바이 휴먼 인큐베이터...

이때문에 막연히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 질거야, 하고 가볍게 생각한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햄복할수없어 짤 )


아이를 낳는 과정도 전혀 유쾌하지 않죠.
이건 너무나 유명해서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것이 힘들다는 건 다들 인정해줍니다.
의술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가끔 죽는 사람이 나오는게 출산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고 나서의 여성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별로 안알려진 부분중 하나입니다.

임신의 장점 = 생리를 안한다.
라고 많은 임산부들이 이야기 함을 알아채기라도 하듯 아이를 낳고나면 그 10달 어치의 생리를 한달내내, 그리고 간혹 두세달까지도 합니다.

아이를 품으며 갈라진 살은 붙지 않고 늘어난 피부도 쉽게 돌아오지 않죠. 낳으며 틀어진 뼈도 재활이 없다면 돌아오지 않죠. 아이의 뼈를 만들기 위해 비워진 뼈도 다시 채워지려면 한참 걸립니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 여성의 매력이 많이 사라져 버립니다.
육아까지 거치면서 몸을 돌볼 시간도 부족해지니 더욱더 초라해지죠.

많은 여성들이 산후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이런 급격한 호르몬적, 그리고 신체적, 외모적 변화가 2년동안 급격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은것이죠.

그래서 여자들끼리는 산후 우울증에 안걸리는 여자는 없다, 다만 가볍게 지나가거나 심하게 오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 아이를 낳았는데 왜 행복해 하지 않아?' 하는 주변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우울증이 더 심해집니다.
죄책감이 더해지거든요.
나는 엄마가 아닌가? 왜 아이를 낳았는데 행복하지 않지? 힘들기만 하지? 하고요.

사실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고 낳는다는 행위 자체로는 행복해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인정해줘야해요.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을 샐수도 있지만 우는 애 달래며 밤을 새는 행위 자체가 유쾌하고 즐거운것이 아닌것처럼요.


그래서 맘카페에서는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다는 글이 많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평범하다는 댓글도 달리죠.

[너만 힘든거 아냐. 원래 그런거야. 다 그래. 나도 그랬어. 지나면 나아져. 하고요.]

대부분 그 말에 힘을 얻지요.
저만 그런거 아니죠? 제가 이상한 엄마아니죠? 모성애가 부족한건 아니죠? 하고 확인 받아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리고 힘든 시기는 지나간다는 사실도요. (진짜로 지나는 갑니다. 힘듬의 종류가 달라질뿐..)

가끔 정도가 조금 심한글이 올라오는 경우엔 이런 답글이 달립니다.

[지금 넌 쉬어야 할때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봐.]
[넌 우울증인것 같아. 정신과에 가서 약을 먹으면 나아질수 있어. 산후 우울증 그냥 두면 안돼. 심해지기만 하니까 꼭 도움을 요청해 하고요.]

우울증 걸린사람에게 정신력 운운하면 안되는 것처럼 산후 우울증도 동일 합니다.
거기에 대고 엄마자격이 없다니 하는 소리는 전혀 도움이 안되죠.
그래서 더욱 그런 글에서 한국여성 어쩌고 하는 댓글은 보고싶지 않아요.

많은 우울증처럼 산후 우울증도 규칙적인 식사와 휴식, 운동 그리고 호르몬 요법이 가장 큰 도움이 될 뿐이지요.

아이낳지 마라 하는 글을 보면 결혼하지 마라 하는 글을 보는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행복한 육아를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인터넷상 글읽고 난 그런 희생은 못해 하며 결혼을 포기할 사람이라면 결혼할 준비가 안된 사람인것 처럼,

인터넷상 글읽고 난 그런 희생은 못해 하며 육아를 포기할 사람이면 육아할 준비가 안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 처럼 육아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무를수라도 있지, 육아는 그것도 안되요.

이미 결혼한 사람에게 결혼하지마 글이 큰 의미가 없듯,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아이낳지마 글은 큰 의미 없기는 합니다.
왜 좋은지는 이미 알고 있거든요.
징징글 봐도, 너는 그렇구나 하고 말죠.

행복한 사람은 굳이 그 행복을 광고할 필요는 못 느끼니까요.


3.

아이에 대한 기쁨을 느끼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른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으니 천상의 기쁨을 누렸다, 라는 식은 드문것 같습니다.
저도 애를 품에 안았을때 기쁨보다는 이 작은 녀석을 잘 키워야 하는구나, 하는 책임감이 더 무거웠으니까요.

갓난아기는 사실 그렇게 이쁘지는 않아요.
작고 볼품없는 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더 가여워서 품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은 있지만요.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찾아옵니다.
첫 스킨쉽, 첫 눈 마주침, 첫 웃음 등등

일단 아이는 나와 내가 사랑해서 반려로 삼은 사람의 유전자를 섞어 만들었기에 사랑하기 않기가 힘듭니다.
심지어 그 사람보다 더 어립니다 (?)

미트콘드리아가 분위기 띄워준다고 호르몬까지 뿌려주죠.
사랑할수밖에 없게 되요.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다 괜찮은 것이 되어버리죠. 이 아이를 위해 감수할수 있는 것이 되어요.
두달째 하루 1-2시간밖에 자지 못해도, 아이의 미소 하나면 참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
힘들지 않은건 아니에요.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감내할만해지는 것이지요.

게다가 아이에 대한 사랑은 점점 자라납니다.
아이는 자라나고 매일매일 더 사랑스러워지죠.

겨우 눈만 깜빡거리던 아이가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베시시 웃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아기가 나 좋다고 바동거려요.
움직이지도 못하던 아이가 꼬물꼬물 기어와 손을 잡습니다.

이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한번도 사랑을 안해본 사람에게 첫사랑의 애뜻함을 설명하는 것 같죠. 감정으로는 알겠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첫사랑과 같이 애뜻하고, 상대가 날 바라만 줘도 기쁘고 상대가 날 바라보고 웃어주는 것이 즐겁죠.
존재 자체가 축복이라 느껴집니다.
더 해주고 싶고 더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싶어져요.

그렇게 아이덕질이 시작됩니다.

핸드폰 사진첩은 아이 사진으로 가득차게되죠.
아이에 대한 주제만 나오면 같이 참여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집니다.
누가 내 아이 칭찬이라도 하면 입에서 웃음이 걸리는 걸 숨기기 어려워져요.

연예인 덕질을 해도 이정도 중증은 아니게 됩니다.
해줘도, 더 해줘도 부족합니다.

이런 부모 마음가지고 상술도 많죠.
알면서도 지갑을 열게되는것이 부모마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애를 낳으라 하는걸지도 모릅니다.
나는 네가 있어서 좋았단다. 너도 그 행복 누려보렴 이라는 뜻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쯤되면 육아의 고통은 거의 잊으셨을것도 같고요)

저도 낳고나니 알겠더라고요.

....아, 애라는게 그게 부모에게 참 좋은데 말로 설명을 할수가 없네.



4.

아이를 가지고싶은데 아이를 자신이 없는 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랑을 해봤고, 사랑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다면 아마 아이를 가져도 행복하실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보다 더 깊고 순수하며 진하더라고요.
더 오래가기도 합니다.
아이 덕에 행복하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죠.
(행복하다고 안 힘든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참 좋아요)

아이를 안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내자식은 다르다라는 말인데, 제 남편을 본 결과, 진짜 다르다는 말이 맞나 보더라고요.

애 안좋아한다던 남편이라 걱정했는데 저보다도 애를 더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뻐할거면 좀더 일찍 낳지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 남편 반대로 아이를 늦게 가졌으니까요 )


아이를 키우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힘들기도 하고요.
꼭 철저히 준비하셔서 낳으세요.
인생이 바뀌는 일이에요. 돌이킬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왕 낳는다면 젊을 때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밤새는 것 등 여러가지 정말 힘들어요...
애는 체력으로 키웁니다. 진짜로요..


아이를 키우시고 계시는 다른 부모님들, 그리고 선배님들.

행복육아 화이팅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