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출발하기로 예정 된, 밤 10시 바라나시(갠지스 강)행 기차는 다음날 점심에도 오지 않았다. 차라리 기차 취소가 되었다면 마음 편하게 숙소를 다시 잡고 예약을 했으면 됐을 터인데, 매표소 직원이 "일단 기다려봐~"라는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하얀 천이랑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침낭과 후리스만 있으면 어디든 잘 수 있어.'라고.
직원의 말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됐는데, 기존 숙소는 이미 체크아웃을 했고 거기까지 다시 가자니 왕복 릭샤 값이 아까웠고 주변 숙소는 예산을 벗어났다
뭐 어쩔 수 없다. 현지인들처럼 기차 지연으로 당황하지 않고 가슴 한켠에 숨겨둔 침낭을 바닥에 펴고 있었다. '나도 현지인들처럼 큰 비닐 좀 가지고 다닐걸.'라는 생각과 함께.
'12시간 지연이니깐 내일 점심에는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후리스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12월 중순의 아그라 역은 가을밤처럼 쌀쌀했다.
기차역의 외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현지인들도 누워있는 내가 신기했는지 나를 힐끔 쳐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선글라스라도 가져올 걸 그랬다.
결론적으로 기차는 21시간 지연으로 전날 밤 10시 출발이었던 기차는 다음날 19시에 출발을 했다. 난 거지마냥 매점이 열기만을 기다리면서 한 손에는 유통기한도 모르는 빵과 다른 손에는 따뜻한 짜이를 마시고 있었다.
얼마나 갠지스 강이 멋진 곳이길래 파괴의 신 시바신이 내 멘탈을 충분히 무너뜨렸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기차역에서 21시간을 기다렸는데 바라나시 역까지는 기차로 18시간이 걸린다. 아뿔싸! 그래도 카주라호를 포기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거기도 겨울에 기차 지연이 많다던데...
간신히 탄 기차에서 다음날 점심이 되어서야 바라나시 역에 도착을 했다.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Upper 자리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하기사 타지마할을 본다고 새벽부터 돌아다녔으니 피곤 할만했다.
바라나시 역에 도착을 하니 여기도 릭샤 정찰제로 가격이 어느정도 정해져있었다. 문제는 숙소까지 예약을 못하고 왔기에 빨리 숙소에 방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찌나 바라나시 골목길은 좁고 복잡한지 그 좁은 골목길에는 소들이 머리를 들이밀며 길막을 하고 있었다. 길을 돌아서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도착한 숙소는 옴 레스트하우스. 과연 몇 메가옴이나 나오길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인지 사뭇 궁금해졌다.
다행히 빈방이 있었다. 그것도 원룸으로!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었다. 인도여행의 절반이 지났는데 혼자 방을 써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400루피였으니 가격은 대략 6000원. 저번에 바라나시에 먼저 갔던 한국인 커플이 여기에 묶는다고 이 숙소를 추천해줬다. 옴 레스트하우스는 예전에 한국 사장님이 운영을 했는데 지금은 인도 현지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숙소에는 다 한국인이었고 코너 모퉁이에 있는 쿠미 하우스라고 일본 할머니가 운영하는 숙소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 앞을 지나가면 일본어만 들렸다.
짐을 풀고 있던 와중에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인도에 오면 꼭 물갈이를 한다고 하던데 '내 똥꼬는 그냥 똥꼬가 아니야.' 라면서 이제까지 잘 버텨왔는데 컨디션 난조와 자칫하면 입이 돌아갈 수 있는 기차역 바닥에서 잤더니 물갈이가 시작됐다. 갠지스 강에 오면 누구든 물갈이를 한다고 하던데 사실이었다.
먼저 바라나시로 간 동갑내기 한국인 커플이 물갈이엔 현지약이 최고라면서 두 알을 줬는데 먹고 나니 살만해졌다. 얼마나 독한 것을 많이 넣었으면 한국약은 전혀 안먹히는데 현지약은 바로 낫는다며 모두들 공감했다.
사실 이 커플은 SL좌석이 취소가 되면서 우다이푸르 여행사에 환불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 당시 우다이푸르에 있던 내게 연락이 왔다. 친절한 현지 사장님에게 좌초지명을 하니 카카오 폰으로 본인인증을 받고 1000루피가 넘는 돈을 환불 받았다. 그 돈을 커플에게 건내줬고 내게 고맙다며 점심밥으로 김치 볶음밥, 갠지스 강 골목도 구경시켜주고 빵도 사주겠다며 갠지스 강에 프랑스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Bhumi 빵집에 갔는데 어찌나 빵이 맛있던지. 역시 빵은 프랑스인건가. 파리 바게트..
훗날 이 훈훈한 커플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친구는 군대 제대 후 인도여행을 이미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일을 그만 두면서 인도에 가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남자친구가 여행을 따라 온 케이스였다. 남자친구는 옆에서 궁시렁하지도 않고 묵묵히 여자친구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멋진 모습이었다. 나도 같이 따라가줄 수 있는데 여자친구가 없...
이 커플을 델리, 자이살메르, 우다이푸르, 갠지스 강에서 만났으니 인연이 참 깊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새소리는 아니고 '우끼끼' 라면서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베란다를 보니 원숭이가 소리치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는 원숭이가 꽤 많은데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원숭이들이 건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어쩐지 옥상이며 베란다며 철조망이 있는 이유가 있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바나나를 사러 갠지스 강 바로 앞 재래시장에 갔는데 강 주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과연 여기는 힌두교 성지가 맞는 것일까? 부산 자갈치 시장인가?' 싶을 정도로 흡사했다.
일단 강 주변 길가에는 온통 잡상인들이 넘쳐났다. 힌두교 사람들이 목욕세례 후 갠지스 강 물을 뜨기 위해 필요한 생수통부터 온갖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길은 어찌나 지저분한지 소똥이 넘쳐났다. 그래서 골목길에는 라씨를 먹을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갠지스 강 쪽으로 다녔다. 최근에 갠지스 강에서 다시 만난 욕쟁이 누님은 '여긴 너무 더러워서 못지내겠다.'며 새해는 고사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나도 직접 느껴보고 한국 여행객들과도 얘기 해보니 갠지스 강은 인도여행에서도 호불호가 심한 곳이었다.
갠지스 강에는 이것저것 할 거리가 있는데 일단 여행객들이 모여서 발리우드를 보러 바라나시 영화관에 간다던지, 악기를 배운다던지, 숙소 사장님에게 맥주를 공수해서 늦은 밤 옥상에 올라가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인도 썰을 듣기도 하고 아니면 갠지스 강 계단에 앉아서 현지인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도에서는 지나가다 보면 와인샵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서 술을 구입할 수 있다. 나도 맥주를 참 좋아하는데 우다이푸르에서 우연히 와인샵을 발견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새 모양으로 그려진 킹피셔 맥주를 구입했는데 사장님이 맥주를 길거리에 들고 다니면 경찰한테 걸린다고 신문지에 돌돌 말아줬다.
그만큼 인도여행에서 술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간혹 식당에서 술 파는 곳도 있긴했다. 가격이 인도치고 비싸서 문제였지만.
갠지스 강을 걷다보면 현지인들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다. '형. 이거 마시면 뿅가. 싼거는 5만원 비싼건 10만원이야.' 라며 누구에게 한글을 배웠는지 대마초를 판매한다.
세계 어딜가나 장기여행자들이 많은 곳에는 약이 빠질 수 없다던데 맞나보다. 대마초 썰을 들어보니 흡연자들은 대마초 느낌이 더 늦게 온다던데 난 비흡연자라서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무슨 변기에서 우주를 봤다. 베란다를 봤더니 공룡이 지나갔다. 사막에서 피웠는데 공중부양을 했다며 엄청난 썰을 인도 장기여행자들에게 들었다. 그것도 인도 건물 옥상 평상에서 치맥 조합으로. '나 인도에 온거 맞는건가.'
예전 고대 제사장들도 약 냄새를 맡고 신전에 올라갔다고 하던데 그들이 봤던 이상한 형체나 하늘의 목소리도 과연 약의 기운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갠지스 강에서 철수네 보트라고 하면 갠지스 강을 다녀 온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지 않을까 싶다.
한국말을 독학으로 배운 철수 아저씨는 치킨도 팔고 나룻배를 운영하면서 일출, 일몰시간에 맞춰서 손님을 태우고 갠지스 강 건너편도 가고 인도의 궁금한 얘기도 들려주었다.
5년이 더 지난 내용이지만 다 맞는 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철수 아저씨가 해준 얘기를 들려주자면.
예전에 PGR 유머게시판에서 봤던 갠지스 강의 시체들은 보통 몬순 기간에 강에 가라앉았던 시체들의 배에서 가스가 부풀어 올라서 강에 떠오르고 겨울에는 간혹 시체가 보이긴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에는 갠지스 강이 엄청나게 덥고 습해서 모기도 많고 갠지스 강 주변의 계단 끝까지 물이 차오른다며 지금처럼 갠지스 강을 걸을 수는 없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뱀에 물린 아이나 임산부가 죽는 경우엔 힌두교 교리에 따라서 성지인 갠지스 강에서 나무 화장이 불가하다고 한다. 이런 시체들을 돌에 묶어서 그냥 강에 버린다고 하는데 이 시체들이 여름에 떠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 화장은 죽고 난 후 24시간 내에 해야되는데 시한부 사람들은 갠지스 강 근처에 지내면서 죽을 날을 기다린다고 한다.
갠지스 강이 왜 유명하냐면 파괴의 신 시바신과 강가의 여신이 만난 곳이라서 힌두교 성지이고 힌두교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오고 싶은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인도 여기저기를 다니다보면 두 갈레의 물이 하나의 물로 합쳐지는 곳이 모두 힌두교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물 세례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갠지스 강도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아서 여러 물이 모여서 하나의 강으로 이루어지고 그 강이 바다로 가니 기운으로 치면 얼마나 대단할지 이해가 되었다.
밤이 되면 강가 여신을 위한 의식이 진행되는데 정말 많은 인파들이 몰린다. 이럴 때 소매치기는 항상 조심해야 된다.
낮에 보면 갠지스강 한쪽에서는 방망이를 두드리거나 빨래를 넓쩍한 돌에 내치면서 빨래를 하는 부류가 있고 다른 곳에서는 소를 목욕 시키는 사람도 있고, 다른 곳에선 힌두교 사람들이 강물에 들어가서 목욕 세례를 하고 있다.
난 계단에 앉아 짜이를 마시면서 쿠미 하우스 앞에 강물에서 목욕 세례를 하겠다며 열정이 넘치는 일본 청년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물에서 나온 그들의 단어는 '스게에~'
갠지스 강에는 큰 나무 화장터가 두 군데가 있었는데 나는 매일 두번 씩 화장터에 가서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화장터에서는 당연히 사진 또는 소음은 금지다. 자주 가보니 나무 품질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남아있는지 화장이나 의식을 진행하는 직급은 높은 신분이고 하루 종일 무거운 나무를 나르거나 자르는 인부들은 하층민으로 간주 된다고 한다.
인도여행 에세이로 유명한 책에선 대략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슬퍼하면 죽은이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울지 않는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누가 봐도 낡은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나무 위에 그나마 괜찮은 복장의 옷을 입은 나이든 여인이 누워있었다. 나무의 상태를 보니 이제까지 봤던 나무와는 다를 정도로 누추했지만 죽은 여인을 위해 괜찮은 옷을 입힌 것이 느껴졌다.
누가봐도 어머니 시신으로 보였는데 현지인 한명이 사람들 뒤에서 서럽게 울고 있고 삼촌처럼 보이는 사람이 울지말라며 우는 사람을 다그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이 자갈치 시장 같던 곳에서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군대 입대 전,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도 이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예쁜 옷 입기를 참 좋아하셨던 어머니에게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한 미안함이였을까. 중학교때는 게임만 한다고 학업을 멀리 해서 말썽만 피웠는데, 나이 먹고 그나마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다는 걸 들으셨다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이미 늦어버렸다.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철수 아저씨가 화장터에 가면 사기꾼들이 있다고 조심하라고 했는데 '내가 사진찍기 좋은 장소로 알려줄게. 돈을 주면 말이야.'
아니면 '내가 카스트 제도에서 높은 사람인데 너를 위해 기도해줄게.' 처음에는 사뭇 친한 척 다가오더니 나중에는 모두 돈을 달라며 정말 정내미 떨어지는 인간들이 있었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들. 인생의 덧 없었음을 느끼고 있던 내 마음은 바뀌었다. 인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갠지스 강이었지만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 다른 곳으로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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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비행기로 갠지스 강에 가는 방법도 있던 걸로 기억해요. 나중에 가게 된다면 가이드북 교통수단 쪽을 보면 될거에요.
간혹 버스로 갈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기차는 지연이 빈번하지만 누워서 갈 수 있고 버스는 기차보단 지연은 덜해도 앉아서 간다는 불편함이 있어요. 워낙 인도는 넓고 그렇다고 차량이 빠른 것도 아니라서 각자의 장단점이 있네요.
골목길은 아직도 기억나요. 라씨 가게며 맛집도 진짜 많았는데 다들 물갈이를 꼭 한번 거쳤으니깐 아이러니 했죠. 겐지스강 물 때문이 아니겠냐고 그랬는데 막상 물갈이 제대로 한 다음부터는 괜찮더라구요.
갠지스 강이 뭔가 인도 진짜의 본모습 같다고 해야될까요. 뭔가 되게 함축 적이면서도 볼거리가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