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한번 한적이 없었고~♬...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집은 분명 유복한편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인생을 바친 헌신을 생각하면 감히 열악이나 불행 따위의 못된 말을 입에 담을 수 는 없지만,
외풍이 드는 단칸방에서 이불을 부여잡고 벌벌떨었던 기억들은 나의 유, 청소년시절의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추억이란 놈이 없습니다. 오직 기억만 있을뿐이죠.
둘은 사전적으로는 지나간일을 떠올린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뜻을 지녔지만, 둘이 가진 감성적인 느낌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기억이란건 그냥 떠오르는 사건 그 자체라면, 추억은 떠올렸을때 무언가 좋은 감정이 드는, 그런것이겠죠.
힘들었던 청소년시절, 아르바이트에 정신없었던 대학생시절, 제대후에는 정신없이 취업준비를, 취직한 후에는 직장일을..
내게 인생은 살아내기위한 투쟁의 역사였기때문입니다.
그러한 기억들은 분명 추억이라고 말하기엔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것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장장 삼십년에 가까운 투쟁의 역사를 버틴끝에 거의 서른에 다다라서야 겨우 긴 빚의 터널을 빠져나와,
지방의 작은 전세집을 얻어 한숨돌릴만한 여유와 발뻗을만한 공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돌아본 내가 지나온 길은 새카맣게 칠해져있었습니다.
남들이 추억이라고 말하는, 어쩐지 돌아보면 따뜻해지고 기분좋아지는 것들이 내게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남들의 추억을 기록한 매체인 영화, 드라마, 게임을 향유하며 추억의 관음을 즐긴게 유일한 낙일 정도 였으니 말이죠.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여행이란걸 가보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담양의 죽녹원.
이곳은 담양의 명물인 대나무가 푸르게 우거진곳으로 대나무를 따라 쭉 걸을 수 있는 길과 죽림폭포, 그리고 몇채의 한옥들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는 먹은 담양의 떡갈비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까놓고 엄청 인상적이라던가, 엄청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대나무숲이야 우리 시골에도 있는거고 떡갈비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놈이니..
거기까지 차를 편도 두시간 가까이 몰아서 가는 피곤함은 덤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심 궁금했습니다.
그냥 어딜가든 있는 대나무숲이고, 어디서나 먹을수 있는 떡갈비인데 왜 그렇게 좋으시냐고..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그냥 좋으시대요.
그냥 집에 있었으면 아무일도 없었을텐데, 나와서 여기 봤으니까..
먼 훗날에 아무일도 없었을 20xx년 x월을 xx일을 기억했으면 아무것도 기억이 안났을텐데
너랑 여기 왔으니까 "그때 죽녹원 참 좋았지"하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된거 아니겠냐고..
저와 어머니는 그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기억이라는 추상적이고 휘발적인 개념은, 죽녹원이라는 이름을 만나 추억이라는 형태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새카맣게 칠해져있던 제 인생에 그날 대나무잎색의 초록색 점을 하나 찍었습니다.
그날 집안에 박혀서 롤을 했으면 똥 몇번싸고 말았을 날로 사라졌을 그 날이.
대나무의 향기로, 떡갈비의 맛으로, 어머니와의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지금도 집밖으로 나가는 일은 힘든 결심이고, 운전은 귀찮은 일이고, 여전히 집에서 쉬는게 더 좋습니다.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는 더더욱 조심해야할 일이겠죠..
하지만 가끔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밖으로 나갑니다.
어느날은 나주곰탕의 하얀점도 찍고, 군산짬뽕의 빨간점도 찍고, 신안의 전경을 떠올리며 파란점도 찍습니다.
꼭 누군가와 함께 가지 않더라도, 가끔은 혼자서라도 좋습니다.
나는 가끔 여행을 갑니다.
기억을 추억으로 만드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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