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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17 13:46:21
Name 8시 53분
Subject [일반] [13] 여행의 단편.
여행이라는 주제를 보고 나니 문득 다녀왔던 여행을 잠깐 떠올려 봅니다.

저는 국내여행은 운전이라는 압박이 크기때문에 여행이라고 생각 하지않고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운전이 없는 해외를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격상 모든 숙박과 일정 그리고 가이드까지 도맡아 하기에 혼자여행이 아닌 여행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가면 확실하게 해드리는 스타일이라 어머니뿐 아니라 이모님도 가끔 모시고 다니긴 하지만요.

첫 해외 여행은 단기선교로 다녀온 동남아였고, 직업이 직업이었던지라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이라는
스타트를 끊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2월에 갔는데 40도를 찍는 걸 보고 동남아랑은 안 맞는다를 느꼈던 곳이었지요.

그 이후로 모든 해외여행의 목적지는 딱 한 곳이었습니다. 일본.
미국에 사는 친구가 놀러 오라고 하고, 어머니는 싱가포르에 홍콩에 태국, 중국까지 보내드렸지만.
저는 첫 여행을 제외하고 일본외엔 가본적이 없습니다.

2010년 여름에 여행은 가고싶었지만 돈이 없었기에 직장인이던 누나에게 가이드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모든 돈을 부담시키고 떠난 오사카 여행은 8월의 오사카는 가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주었고.

2011년 1월 대학을 졸업하고 곧 대학원을 진학하는 대학교 5학년(?)의 과정에서 그냥 무작정 떠난
9박 10일의 여행은 30만 원을 환전하니 1만 5천 엔을 주는 엔고로 인해 3일만 숙소에서 머물고
모든 숙박을 기차와 야간버스에서 해결하는 주마간산 하드코어 여행이었습니다.
20대니까 가능했지 지금 하라면 못할거 같긴한데. 목표가 전국일주라
고쿠라에서부터 삿포로를 찍고 나고야로 나오는 정말 기차만 원없이 탔던 여행이었습니다.
30만원정도 주고 JR패스 7일권을 끊었는데 좌석권으로 가격을 대충 계산해보니 210만원정도가 나왔으니까요.
지금도 운행 중인 선라이즈호를 타고 동경과 고베를 왕복하고.
지금은 운행 하지않는 하마나스호를 타고 아오모리와 삿포로를 왕복했던 그 여행은
다음에 꼭 가야지 하고 지나친 후쿠시마역과 
다음엔 꼭 여자친구랑 와야지 했던 하코다테의 야경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이란건.. 아직 여자친구라는 상상의 동물과는 못 갔다는 겁니다.... 있어야 가죠.. 

아무튼. 그렇게 일본여행에 빠져서
일년에 한두번씩은 나갔던것 같습니다. 
2013년에는 가족여행으로 오사카를 갔다가 단골이 되어버린 교토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났고.
그 해 여름에는 엔도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배경지를 가고 싶어서
여름에 가는게 아니라고 분명 배웠던 일본을 다시 가서. 
마치 고행처럼 38도의 운젠온천과 시마바라를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촬영지인 타카마츠 아지초.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촬영지인 교토.
애니매이션 "너의 이름은"과 "초속 5cm"의 배경이 되었던 도쿄.
그리고 2018년 프로듀스 48에 빠져서 1픽 고향 가보겠다고 또다시 배움을 까먹고 간 한여름의 가고시마까지.
 
약 15번정도 다녀온 일본여행에서 일본어는 조금 늘기는 했지만 유창하지는 않고.
대충 음식주문하고 알아는 듣는 정도였고요.

어느날 도대체 나는 왜 틈만 나면 여기에 올까?라고
교토에 가면 꼭 멍때리러 찾아가는 교토 산조다리의 "스타벅스"에서 생각을 해보니.

일본이라는 나라가 좋아서라기 보단 일종의 도피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피라고 해서 뭐 다른건 아니고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탈출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수십번을 왔기때문에 그다지 그곳은 낮설지는 않지만.
말을 100% 이해할수 없고 가장 중요한건 나를 잘 모르고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점이 가장 컸습니다.
물론 저도 그다지 관심은 없고요. 그러니 편안하게 내가 하고싶은걸 할수 있고.
생각을 정리할수도 있고, 종교를 가지고 있기에 조용히 기도하면서 순례를 할수도 있고요.

그래서 코로나가 터지고 좀 힘들긴 했습니다. 여행도 못가고 스트레스를 풀러가던 코인노래방도 못가니.
사람이 점점 뭔가 이상해지고. 안되겠다 싶어서.
종종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다녀오긴 하지만 일본에서 느꼈던 그 느낌은 아직 받지 못해서.
얼른 코로나가 끝나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다녀오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모두 가지고 있는 여행의 기억과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그냥 문득 글을 써봤습니다.

글 쓰기가 무서워 댓글만 달았는데.
진짜 글쓰는건 어렵습니다. 글 잘쓰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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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7 14:38
수정 아이콘
본인 얘기 잘 쓰시고 기승전결 갖춰져 있으면 좋은 글이죠. 좋은 글입니다.
8시 53분
21/03/18 00: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라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nergy Poor
21/03/17 23:59
수정 아이콘
2월에 40도 찍는 곳은 어디인가요?
8시 53분
21/03/18 00:33
수정 아이콘
라오스입니다. 건기라 습하지는 않아서 그늘 밑에 가면 괜찮았는데 내리쬐는 햇빛은 정말 세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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