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오늘은 11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정치로 인해 너무 피곤한데 이런 재밌는 얘기 읽으면서 머리를 식힙시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시간은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져 이집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야곱 가족의 “베이비붐”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선택된 요셉은 하나님 계획대로 바로왕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안에서
앞으로 큰 대국의 지도자가 될 경제능력, 사람 인맥 & 관리능력 등등을 배우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순조로웠던 그의 인생은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앞전 형제들과의 교훈을 기억하며 변명하지 않고 보디발의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셉의 모습에 뭔가 찝찝함을 느낀 보디발은 그를 죽이지도 않고 재판에 넘기지도 않고
불법적으로 자기 집안에 있는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가둡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왔지만 이집트 최고 권세가의 집에서 떵떵거리며 자유롭게 활동했던 요셉은
이번에는 감옥에서도 간수장의 눈에 들어 모든 범죄자들과 감옥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즉 그는 계속 자유롭지 않은 몸 이었지만, 반대로 어디에 있던지 계속 자유를 누렸습니다.
지금까지 바로왕과 경호대장에게 잘 보일려는 여당쪽 인사들하고만 친분이 있던 요셉은 이 감옥에서 색다른 경험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왕을 반대하는 야당쪽 거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고충을 들을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정치는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보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더 날카로운 지적이 나옵니다.
[요셉은 이 정치 감옥에 있으면서 겉으로는 세계 최강국으로써 위용을 뽐내던 이집트가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 깨닫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렇게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하던 요셉에게 새로운 죄수 2명이 들어옵니다.
하나는 바로왕의 술 맡은 관원장 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떡 굽는 관원장 이었습니다.
즉 왕의 음료와 음식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고 이들은 경호대장 보디발보다 더 강한 이집트의 제일가는 권력가 였습니다.
옛날 이 당시의 권력가들은 지금처럼 체계적인 CCTV, 통신, 의료 기술 등등이 부족하다보니 언제나 암살에 취약했습니다.
틈만 있으면 원수들이 칼이나 활로 암살하거나 혹은 몰래 음식에 독을 타서 암살하는 경우가 매우 잦았습니다.
특히 음식은 제 아무리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루에 몇 끼는 계속 먹어야 하는 만큼 각별히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음식을 담당한다는 것은 단순 요리를 하는 쉐프가 아닙니다.
왕이 직속으로 다스리는 영토(밭)에서 농업&축산을 담당하고,
그곳에서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수확물을 매년 꾸준히 추수해야하고,
그 안전한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어 왕에게 바쳐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단 한명이라도 배신자가 있거나 혹은 실수가 있으면 왕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음식을 담당하는 사람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따라서 왕의 음식을 담당한다는 것은 그 당시 왕이 자신의 생명을 맡길 정도로 신임할 수 있으면서도 또한 능력도 있는 사람임을 뜻합니다.]
그리고 왕이 매일 식사를 할 때마다 그 옆에서 말 상대가 되어줘야 합니다.
이 당시의 바로왕은 = 곧 신입니다.
왕의 옆에서 왕에게 살짝 언급하는 단어들은 온 이집트에 영향을 끼칠 만큼 파워가 있었습니다.
요셉도 보디발의 집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주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할 수 있는 최고 지위를 허락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주인의 음식]을 책임지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보디발은 아무래도 이방인인 요셉을 자기의 생명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진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훗날 이스라엘 민족에서 역사상 최고의 제국에 왕의 음식을 담당하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바로왕이 세상에서 가장 신임하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 둘 다 어떤 잘못으로 인해 왕의 감옥에 갇힙니다.
왕의 감옥이 어디에 있다고 했죠? 네,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있습니다.
이때의 보디발은 이미 요셉에게 어느 정도 오해를 푼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요셉이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
오히려 감옥을 통치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요셉의 무죄를 알아챘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오자 보디발은 이들을 특별히 요셉에게 부탁합니다.
이들이 워낙에 거물들인 만큼 언제든지 다시 바로왕의 용서를 받고 호출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들을 감옥에서 섭섭하게 대접하다가는 이들이 복귀해서 앙심을 품고 보디발에게 복수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요셉도 이들을 단순 범죄자 취급하지 않고 이들을 감옥에서 잘 대접합니다.
비록 자신을 감옥에 가둔 주인이지만 그래도 주인을 위해 묵묵히 선을 베푸는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둘은 감옥에서 꿈을 꿉니다.
꿈의 내용이 워낙 기괴하였고 해몽을 못하여 불안해합니다.
아무리 이들이 거물이라고 한들 이들은 현재 감옥에 갇혀 있으며,
언제라도 왕의 마음이 바뀌면 죽어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 챈 요셉이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로 꿈을 해몽해보겠다고 했고 그들은 꿈의 내용을 알려줍니다.
술 맡은 자의 꿈은 이랬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포도나무를 봤고 나무에 세 가지가 있었고 거기서 포도송이가 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그 포도를 따서 즉석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바로왕에게 바쳤습니다.
[즉 그는 꿈속에서도 마실 것을 보자마자 자신이 먼저 마시기보다는 왕에게 먼저 바치는 충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요셉도 꿈 해몽으로 당신은 3일후에 바로왕으로부터 호출되어 다시 원래 직위로 복직되어 바로왕에게 계속 술을 바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술 맡은 자는 진짜로 3일후에 바로왕의 용서를 받고 원래의 자리로 복직합니다.
그리고 떡 굽는 자의 꿈은 이랬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흰 떡 세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바구니가 세 개나 있다보니 양 손으로는 들 수가 없어 자기 머리 위에 끼얹었습니다.
그리고 세 개의 바구니 중 맨 위의 바구니에는 바로왕을 위해 바칠 떡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들이 날라 와서 그 맨 위의 바로왕에게 바칠 떡을 먹고 있었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떡 굽는 자가 3일 후에 바로왕에 의해 사형 당하고 새들이 당신의 시신을 뜯어 먹을거라는 끔찍한 예언을 해몽으로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이들의 꿈은 곧 이들의 마음가짐을 뜻하고 있었습니다.
술 맡은 자는 세(3) 가지에서 난 포도송이를 봤습니다.
하지만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빨리 하나의 가지에서 난 포도송이로 포도즙을 만들어 바로에게 바칩니다.
그는 세 가지에서 모두 포도즙을 짜서 세 개의 잔을 준비해서 하나는 바로왕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차지하려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떡 굽는 자는 꿈속에서 무려 3개 바구니의 떡을 다 들고 다녔습니다.
하나만 들었으면 새가 날라왔을 때 빨리 내려놓고 새를 쫓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무리하게 3개의 바구니를 들려고 하니 너무 무거워서 어쩔 수 없이 머리 위에 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은 아래 그림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왜 무겁게 3개 바구니를 전부 다 들려고 했을까요?
분명 바로에게 바칠 떡은 맨 위에 있는 바구니였습니다.
즉 이 사람은 나머지 2개 바구니의 떡은 자기가 먹으려고 했던 욕심이 있던 겁니다.
어차피 밭은 바로왕의 밭이고, 수확물은 다 바로왕의 것인데 이자가 욕심을 부린거죠.
그걸 욕심 부려 억지로 머리 위에 3개의 바구니를 나뒀으니..
아마 머리 위의 시야는 보이지도 않을 테니 애초에 그는 새들이 떡을 먹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알았어도 그걸 힘들게 다시 땅에 내리다가 올리다가 하다보면 그 사이에 새들이 다 먹겠네요.
(술 맡은 자도 만약 잔을 3개 준비해서 3개의 포도나무 가지에서 즙을 짜고,
하나를 바로왕에게 바치고 나머지 2잔은 자기가 챙길려고 했다면? 두개의 손으로 세 개의 잔을 챙기려면 뭔가 사고가 생겼겠죠?)
결국 충성된 술 맡은 관원장과 비교되게 떡 굽는 관원장은 바로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근데 여기서 요셉이 실수를 합니다.
요셉이 비록 이집트로 온 이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정직하게 일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게 됩니다.
요셉이 왕의 감옥에 갇힌 건 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임을 제가 설명한 적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서도 자유를 누리며 정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래도 솔직히 이 감옥이 싫었던 모양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이들의 꿈 해몽을 하고
술 맡은 자는 살아남고, 떡 굽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경에서는 수많은 예언들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언은 절대적이라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무조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만약 절대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예언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특히 3일 뒤에 죽을거라는 저주의 예언을 받은 사람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죽을 때까지 알아서 기다리다 죽어라~~... 설마 이런 뜻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예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대로라면 넌 틀림없이 망할 테니 회개해서 그 예언을 좋은 방향으로 이루라는 뜻입니다.
예언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을 절대적이니까요.
하지만 예언을 좋은 방향으로 이룰 수는 있습니다.
(창세기 마지막~출애굽기 시작 할 때 이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즉 요셉은 이 꿈의 해몽을 하면서 죄 있는 떡 굽는 자를 설득해서 회개하게끔 했어야 합니다.
빨리 회개해서 자신의 모든 죄를 바로왕에게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혹시 살 수도 있는 기회가 있었겠지만 요셉은 나쁜 꿈을 꾼 이자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3일의 시간이 있었지만 요셉은 이 떡 굽는 자에게 당신이 죽을거라는 절망적인 말만 하고,
그 다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관심은 오로지 감옥을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좋은 꿈을 꾼 술 맡은 자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자신은 이곳 감옥에 갇힐 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니 당신이 바로 왕의 곁에 복직하면 자신을 잊지 말고 도와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술 맡은 자는 복직하고 더 이상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냉정하게 잊어버립니다.
왜?
[솔직히 술 맡은 자에게 요셉이 도움 준 것이 무엇입니까...?]
술 맡은 자는 애초에 잘못이 없는 자였고 충신이었습니다.
그는 바로왕의 오해 때문에 잠시 감옥에 갇혔던 것이고 바로왕의 오해가 풀려 복직한 겁니다.
좋은 꿈은 술 맡은 자가 꾸었고 애초에 좋은 꿈이었기에 요셉이 나쁘게 해몽할 껀덕지가 없었습니다.
[즉 술 맡은 자는 요셉의 해몽 때문에 복직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가 잘해서 복직한 겁니다.]
물론 감옥에서 요셉이 술 맡은 자에게 잘해주기는 했죠.
그렇다고 굳이 바로왕 옆에서 하찮은 이방인의 억울함을 고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바로왕은 신입니다.
신의 옆에서 술 맡은 자는 언제나 언행을 신중히 해야하고,
신에게 도움 될 공적인 말을 해야 하고, 신에게 기쁨을 줄 사적일 말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 그 위대한 신에게 고작 자신의 개인적인 요셉 얘기를 한다는 것은 솔직히 직무유기인거죠..
때문에 술 맡은 자가 요셉을 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술 맡은 자를 의지해서 감옥에서 풀려날 기대를 했던 요셉 역시 어리석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요셉이 떡 굽는 자를 회개시켜 복직시켰다면?
이것은 떡 굽는 자가 잘해서 복직된 것이 아니고 요셉이 잘 경고를 해주어서 복직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평생 요셉의 은혜를 잊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바로왕에게 요셉의 억울함을 알렸을 겁니다.
설령 그런 사적인 부탁으로 인해 바로왕의 노여움을 사더라도, 그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요셉을 구명했을 겁니다.
요셉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자니까요.
[즉 요셉은 자신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줄 수 있는 절호의 인물과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에게는 아직 훈련이 더 필요했습니다.
요셉은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단순히 꿈을 해몽 - 앞으로의 일을 예언 한다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예언을 활용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해결하는 방법까지 제시해야 완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회를 놓친 요셉은 2년간 정치 감옥에서 더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2년간 공부한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작 왕의 주변에서 놀던 권력자 따위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집트의 신 = 바로왕의 문제에 직접 연관되기 시작합니다.
바로왕이 불길한 꿈을 연속으로 2번이나 꾸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매우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앞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정말 완벽한 대응을 선보입니다.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 내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