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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09 20:45
지금 미국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갖추는 일이지만 미국이 망하고 나면 재조지은이고 뭐고 없습니다.
하지만 사대주의가 조선을 망쳤다? 이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18/07/09 20:51
애초에 사대주의란 것도 말이 사대지 실리 다 챙긴 거 아닌지... 전에 신불해님이 올려주신 영락제의 굴욕적인 기록이 우리 실록엔 고스란히 남은 걸 봐도;
18/07/09 20:53
근데 사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실리적으로 봐도 저 때 명이 파병하는게 명나라 입장에서도 수지가 맞았다는 의견이 꽤 많습니다. 어차피 히데요시의 목표는 명나라 정벌이었고, 명나라 본토에 왜군을 들일 바엔 조선으로 전장을 한정시키는 게 명 입장에선 훨씬 나은 선택지였어요. 물론 만력제가 그걸 고려해서 저런 선택을 한 건 아무리 봐도 아니긴 합니다만 크크크
18/07/09 21:06
국가간의 외교를 개인간의 의리로 생각하면 안돼죠. 명에 대한 의리 한참 이전에 자국민에 대한 위정자로서의 의무라는게 있습니다. 제아무리 시대보정을 하고 해도 괴상할정도의 저 '의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거의 종교에 가까워요. 하긴 그럴만도 한게 성리학도 나중엔 결국 교조화되다보니 더 결벽증을 띄게되었으니 뭐...
명에 대해 감사한건 감사한거고 이미 명이 멸망하고 청이 부흥하는 시대를 못따라가서 백성들을 전란에 빠뜨린 위정자들은 어떤 변명거리로도 용서할만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만력제한테 감사하고나발이고 자기네 국민조차도 지키지 못한 치들입니다. 그리고 웃긴게, 그렇다고 완전 청이랑 등지고 복수의 칼날만 갈았느냐? 그것도 아니고 결국 어쨌든 청의 요구는 다 들어주고 말만 못한다 뿐이지 거의뭐 형님의 나라였죠.
18/07/09 21:16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까지만 하더라도 명나라를 섬기는게 중립 외교니 나발이니 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게 함정...
오삼계가 산해관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명나라 대신 이자성의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청나라는 말라 죽는 것으로 끝났을 겁니다. 이자성의 개뻘짓 때문이기는 하지만, 오삼계가 청나라에게 산해관을 고스란히 넘기리라고는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결론인즉, 사대주의를 결과에 끼워맞춰서 마냥 적폐라고 까기보다는 당대의 상황에 맞춰서 평가를 해야...
18/07/09 21:19
명-청 교체는 산해관 크리가 어마어마하게 터져서 그렇게 된거지 소모전 들어갔으면 결국 청이 밀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왜란 후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전쟁의 참상을 겪은 세대가 아직도 살아있던 시대기도 했구요. 제반 정황을 따져보면 명을 지지하는게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결국 문제는 그 놈의 이자성과 인조....
18/07/09 21:21
인조는 그나마 정상참작이 된다고 보는데, 이자성 이 작자는 진짜...
북경 먹고나서 저지른 막장짓을 생각하면 이 인간은 그냥 홍승주한테 죽어버렸어야 했습니다. 틈왕은 개뿔... 농민 반란 이끌었던 지도자 중에서도 이 인간은 최악의 지도자였다고 봅니다.
18/07/09 21:31
숭정제가 죽어라 고생해서 명나라 심폐소생 시키려고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미 나라 전체가 워낙 막장으로 치달았는지라...;;
이자성도 막장이기는 한데 그나마 명나라에 비하면 덜 막장처럼 보이고, 일단은 흙수저가 나라를 엎었다는 나름의 간지도 있어서... 마오쩌둥은 이자성 뿐만 아니라 한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모문룡도 빨아제낀 특이한 역사관 가진 인간이라서 뭐 그러려니 합니다.
18/07/09 21:59
하긴 또 이자성 욕하기도 뭐한게 이자성이 나올만큼 만력제 덕에 명나라가 지옥이 됬던건 맞거든요. 돌고돌아보면 결국 모든 똥은 만력제가 싼겁니다.
18/07/09 21:25
https://cdn.pgr21.com/pb/pb.php?id=humor&no=328654
임진왜란 만화 - 만력제편 예전에 유게에서 한 번 봤던 거 같아서 찾아보니까 여기 있네요.
18/07/09 21:25
사대주의는 원래 대국에 명분을 주고 우리는 실리를 챙기는 외교형태였죠. 근데 이게 후대로 갈수록 변질된게 문제.
그리고 유교사상 사대주의 공맹사상이 주류였던 와중에도 실사구시 북학파 이런 움직임 또한 국내에서 생겨났었죠. 하지만 조선후기 기득권층이 과거시험을 무기로 권력을 독점한탓에 사회적으로 주류학파만 우대받고 실사구시같은 비주류학파들은 아예 씨를 말려버린게 문제..(과학을 천시하고 여자에 대한 차별이 강해지고 한게 거의 다 조선후기들어서죠) 거기다가 그 기득권층을 뒤집어엎고 마지막에 집권한 대원군조차 본인 권력욕심때문에 (뭐 이때는 이미 많이 늦긴 했습니다만)일본이 개항하는동안 쇄국정책으로 일관해버려서. 조선후기 나라꼴 돌아가는거 보면 임진왜란때 망했어야될 나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닌것 같습니다.
18/07/09 21:28
이게 명나라 남아있던 시절에 조선이 계속 명나라 편든건 명분은 물론 실리상으로도 맞았다고 봅니다. 이걸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건, 후금이 떠오르는 나라로써 지는 해인 명나라를 이기는 구도에서 조선이 명나라를 편들었다 이런 식으로 잘못 해석해서 나온거에요. 현실은 후금이 떠오르는 나라로서 명나라를 이긴게 아니라, 이자성이 명나라를 조졌고 다 죽은 명나라를 후금이 꿀꺽 한거거든요. 이래서 이자성 xxx론이 나온것이고... 당대 조선이 이자성이 명나라 조지는것까지 예측하는건 정보력의 한계상 불가능했다 보고, 그러면 명나라-후금 구도만 생각하면 명나라 편든게 당연하긴 합니다.
의아한건 명나라 망한 뒤로도 계속 명나라에 대한 마음을 못버린것... 이게 문제겠죠.
18/07/09 21:35
잘 쳐줘서 남명이 짧게나마 강남에서 발악할 때까지는 명나라 추종하는게 납득 가능하죠.
그 이후 시대로 가면 도대체 왜 명나라에 미련을 가졌는지 저도 이해가 잘 안 갑니다.
18/07/09 21:37
1) 국제정세의 변화에 상관없이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도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에 맞춰 청에게 복종을 하는게 맞는것인가 ?
이걸 명청 교체기와 현대에 대입해 보자면 미국이 갑작스런 내부 정변으로 세컨드 시빌 워가 발발하고 이 기회를 노린 중국이 북한에 진주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우리가 중국에게 복종하는 시나리오에 거부감 하나 없이 대세를 따른 결정이라며 선뜻 선택할 수 있을까요? KBS 역사저널 해당 편 보면서 모든걸 성리학과 사대주의의 탓으로 떠넘겨 버리는 몇십년전의 굳어버린 역사인식이 아직도 메인스트림이라는 것에 다시금 착잡해졌습니다.
18/07/09 22:00
심지어 병자호란 직전이면 홍승주가 반란군을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개박살내고 이자성만 부하 몇 명 이끌고 도망다니던 시절이라
청나라 편을 들려고 해도 뭐 건덕지가 있어야지....
18/07/09 21:34
역만없 은 진리긴 한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는가 명분으로만 썼는가 하는 구분도 좀 해야 보다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죠 1. 정말로 광해군은 실리외교를 위해 명나라와의 의리를 져버린 것인가? 사르후 전투때 조선에서 파견한 병사는 만이 넘는 정예군이었습니다 임란의 상처를 복구하기도 전에 만명 짜리 상비군을 파견한 것을 보면 나름 조선도 무리한 것이죠 그리고 전투 결과 강홍립은 '패잔병'들과 함께 항복했는데, 이는 눈치보다 항복한게 아니라 군사의 3할 이상이 상해서 사실상 전멸 판정이 나고 명나라 군대도 패퇴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즉 애초에 우리나라도 명나라에게 할 만큼은 했죠 그러니 광해군은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일 뿐입니다 서인들의 주장처럼 욕을 먹을 이유는 없죠 2. 서인 정권은 정말로 명분론에만 집착했는가? 사실 서인들도 실체적 위협이 된 후금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를 양성하며 대비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군세가 나름 강성했다 판단했던 조선에서는 후금한테 나름 큰 소리 치기도 했고, 누르하치도 복합적인 이유가 섞이긴 했지만 결국 생전에 조선의 국경선을 넘는 일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군사 양성의 담당자가 이괄이었고, 인조와 서인 반정공신들이 정치적 삽질을 거하게 하면서 이 군사력의 태반이 반란 중에 소모됐다는 점이었죠 게다가 반란군측 생존자들이 청나라로 건너가 길잡이까지 했으니..... 하지만 어찌됐건 호란이 벌어진 책임은 서인들과 인조의 구질구질한 정치력 때문이었으니 후대에게 욕을 안 먹을 수는 없겠죠 그리고 진짜 욕 먹을 부분이 바로 이건데 상황이 급변했는데 방침이 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결과 2차례 호란이 터졌죠 3. 국가의 존재의의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국가의 존재의의는 국민의 삶을 안정화시키는 일종의 보험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건 공자의 말과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했던 대담 중에 나온 말이 대충 축약하자면 '군대<식량<<<<<<<<<백성' 이런 내용입니다 게다가 공자의 이론은 구체화되지 않았을지언정 융통성이 부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효를 어떻게 실천하는가 에 대한 증삼이 에피소드를 보자면 '애비가 팬다고 다 맞다 죽으면 니 애비가 살인자가 되는데 도망 안 치다니 그건 불효다' 라며 한 소리 했었죠 물론 조선의 유학자들이 이런 공자의 사고방식을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겁니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더 중요했을 뿐이지 상황에 맞는 논리를 고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논리를 골랐죠
18/07/09 21:36
성리학이든 사대주의든 원래는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입맛에 다 맞는 건 아니라도 최소한 그걸 따를때 실질적으로 얻는 이득이라는게 있었죠. 겉으로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전 그 당시 위정자들도 바보가 아니고 실리를 위해서 이렇게 움직인다는 의식은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근데 그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외부의 위협요소없이 고이다보니까 겉으로는 그렇게 명분찾고 안으로는 실리찾던게 진짜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된거죠 뭐..조선중기부터 우리가 혐오하는 성리학관련 병크가 터지는게 그것때문이고. 지금보면 미친것같은 짓이라도 그 당시에 국가적으로 이득이 되는 면이 있다면 납득할만하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말그대로 목적그자체가 되어버린 사상. 어떻게 보면 고이고 고여서 섞어서 나라망하고 뒤집어 엎히고 명분상 전조의 사상은 백안시되고 새로운 동력이 발생하는 그런 일련의 싸이클을 만력제가 막아버린걸지도 모르죠. 물론 역만없이니 만력제 없으면 그냥 일본한테 먹히고 땡일수도 있지만
18/07/09 21:37
교과서나 학교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기로는 명나라가 와서 한 손 슬쩍 거든것처럼 나와있는데 국뽕걷고 뜯어보면 안 왔으면 진짜 망했거든요...
재조지은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몰랐을 땐 어휴 유교 탈레반 하고 저도 깠는데 알고나니까 신종황제폐하 만세만세 만만세 소리가 절로...
18/07/09 21:39
사대고 뭐고 조선이 무능하다 까이는건 결국 근대화를 못하고 일본에게 잡아먹혔다는건데...
이건 어쩔수가 없죠 (...) 조선이 영국옆에 붙어있었으면 세도정치시대였어도 근대화했을겁니다.
18/07/09 21:53
식근론 그만 좀;; 말씀의 의도는 잘 알겠는데 세계 귀축 중의 귀축 영국 옆에 조선 붙여놓으면 아일랜드 흡혈의 500% 이상을 해쳐먹었을 놈들이라 상상만으로 끔찍합니다.
18/07/09 22:00
근데 개인적으로 조선은 근대화 빼고 생각해도 무능해요 걍..
일본이 조선보다 강국이었던건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임진왜란때 그렇게 차이가 날 정도로 포텐차이가 나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병사의 질이야 몇백년동안 쌈박질만 한 나라가 좋은게 당연하다 치더라도 5만 정병 요동에도 보낼 엄두도 못내는나라, 20만을 배태워서 원정군 보내는 나라. 그렇다고 평화의 시기라서 국방력을 낮추는대신 다른쪽으로 뭘 했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좋은말로는 작은정부, 나쁜말로는 세금이라는 형태로 받았어야될 국가적인 에너지를 제대로 흡수못하고 엉뚱한데 다 써버리는. 그 무능한 행정력의 시작이 교조적이 된 성리학이라고 보는거죠. 진짜 국가를 컨트롤해야될 엘리트들이 행정이라는 실무에는 힘안쓰고 철학에 가까운 내용들을 익히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는 그런 형태말이죠.
18/07/09 22:17
유럽은 종교전쟁으로 한창 피터지게 치고박고 싸울때였고
중국 역시 성리학이 중심이였던 시대였습니다. 딱히 조선이 이상했던것은 아니였죠.
18/07/09 22:20
임란 전, 동시대에 조선보다 행정력 뛰어난 당시 국가 예좀 들어주시죠;;; 전국에 행정력을 미치면서 중앙집권 컨트롤한 나라가 중국 조선 빼고 어딨죠?
18/07/09 22:40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그 국가의 명에의해 파견된 지방관이 토호를 억누르고 즉각적으로 권력을 행사할수 있는 그런 행정력을 얘기하는거라면 조선은 한반도를 컨트롤하고 있었던게 맞죠. 뭐 지방관과 토호의 관계야 완전히 일방적이었던건 아니라지만 여튼 국가가 영토를 지배하고있다고 충분히 말할수 있죠.
제가 얘기하는건 그런 행정력이 아니고,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실무적인 영역인거죠. 생산력을 늘리고, 인구를 증대시키고, 그렇게 늘어난 인구에서 국방과 경제등 국가의 파워를 늘리는 그런 행정말입니다. 추가)심지어 200년가까이 마땅한 외부적인 압력도 없는 상태였죠. 국가의 행정능력을 보여주기에는 정말 최고의 상태 아닙니까. 오히려 내전이나 전쟁등으로 황폐해진 나라들보다 더 엄격히 봐야죠 그런면에서. 조선이 동체급의 국가에 비해서, 혹은 러프하게 생각해서 단순 인구수대비 비교해서 국가재정이나 군사력등에서 조선보다 열위에 있는 나라를 그럼 반대로 예시 들어주시겠습니까?
18/07/09 23:30
발전이란게 할 수 있다고 그냥 발전하는게 아니라 필요해야 발전하는거죠. 일본이랑은 외교 단절하고 주변의 가장 강대국인 중국의 반속국 상태로 있으니 조선 지배층들은 굳이 발전할 필요 없이 자기 백성들 쥐어짜면서 잘먹고 잘 살면 되는거라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역사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정도 빼면 외부의 침입은 거의 없는 셈이었으니까요.
18/07/10 12:54
뭐 전근대에서 큰 정부라는 것은 결국 필연적으로 수탈을 불러오는지라 왜 나라 발전 못시켰냐고 따지는 것에 공감이 안되네요. 국방력 강화를 위해 군대 4년 징집하고 세금 70프로 내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들고일어나실텐데 조상들은 왜 그러면서 위대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18/07/10 13:34
엄한놈들이 수탈안해가게 막는 거라도 잘했으면 괜찮았겠지만요. 작은정부라는건 그냥 좋게좋게 얘기한거고 백성들 뜯어가는건 똑같고 그냥 주체가 달라진것일 뿐이죠. 그럴바엔 차라리 국가가 수탈해가는게 낫습니다.
말은 바르게 해야지 얘들이 수탈을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죠. 백성들 효율적으로 빨아먹을 능력도 없어서. 이미 엄한입으로 다 들어가고 있으니 그 이상 수탈하면 진짜 죽거든요. 이게 위대한 국가를 바라는 환빠적인 사고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자급자족, 있는 자원,인력,인프라 안에서도 빌빌대는데 뭘 위대하게 되길 바래요.
18/07/10 23:07
무슨 소리세요 전근대에 일반 농민한테 조선보다 후한 나라가 어디있었다고 ㅡㅡ;;
조선 행정력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왕이 직접 조사에 관여할 수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전근대에서 폭력이 어느정도 통제될 수 있다는 소리에요.. 임란 못막은걸로 뭐라 하는데 그 임란 전 계속 평화기 유지한건 왜 무시하죠? 일본처럼 무사계층 기르기 위해서 줄창 내전했어야 만족하실까요? 고려 후기 혼란에서 백여년간 평화기 만들어놨더니 왜 지들끼리 안싸워제껴서 국방력 낮아졌냐는건가요.
18/07/09 22:25
일본이 그렇게 차이가 날 정도로 포텐차이가 나지 않나요? 전근대국가에서는 인구가 곧 국력인데 당시에도 이미 인구수에서 일본이 조선의 1.5배정도였고요, 일본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인들의 숙련정도부터 차이 났고요. 그리고 선조는 임란 전까지만 해도 상급 인재카드 쓩쓩 뽑아대며 국가 하드캐리하던 명군이었습니다. 임란 후 멘붕오고 맛이 가서 그렇지...
18/07/09 21:48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 참패해서 그 여파로 죽었던데다 도저히 만리장성을 넘을 길이 안보였고 기근과 경제난까지 겹친 후금과,
만리장성을 탄탄히 틀어막고 교역차단으로 후금의 경제를 뒤흔든데다 내부 반란까지 개박살내버린 명나라. 당시 조선으로선 사대고 뭐고 후금 밑으로 들어갈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조선의 정세예측이 정확했던겁니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서 조선 조정은 후금에게도 형 대우는 꼬박꼬박 해주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줄타기를 하고 있을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고요. 이걸 깨뜨린 건 순전히 멋대로 칭제해놓고 남의 나라 왕비 장례식 와서 자기들 황제국 됐으니 어디 붙을지 양자택일하라는 청의 깽판이었죠.
18/07/09 22:12
아니요 후금은 지금 북경 코앞인 산해관 근처 만리장성을 못 넘은 것이고 그후 명나라를 교란 목적으로 화북의 서방으로 횡단해서 저기 오르도스 지역 근처 까지 진격해서 거기 휩쓸고 현지의 가축을 노략질 한후 자기나라로 끌고온후 식량으로 삼고 했습니다 ..북방민족은 강력하고 기동력 있는 기마 군단을 가지고한지라 식량이 소모되면 언제든 주변을 약탈하고해서 위기하에서 굶주리지 않습니다..후금만 해도 무력에서 당대에 절대 강자라 심지어 몽골 부족들도 격파 시켜 자기네에다 예속 시키고할 정도였지요
후금이 정묘년에 조선에 침공 하고도 화친조건으로 조선으로부터 공물위주로 받아가고 했습니다 계속 명에서 후금을 틀어막았다면 굶으려서 자멸 했을거란 주장이 많던데 당시에 동북아 정세가 그렇지 않앗죠. 명나라가 후기에 들어가 국가기능 마비에다 기아빈발로 체제가 흔들리는 틈을 타 각지 농민 반란으로 먼저 북경이 이자성군에 점령되는등으로 사실은 명나라정권이 먼저 망하는 클라스 엿던게죠 그렇타고 명에서 먼저 후금을 격파를 할수가 있었느냐 하면 이것도 불가능이고 ..후기에 들어가 세금 누수에다다 기걍 해이 내부 부패등으로 군사력이 급속히 쇠약해져 야지에서 만나면 일방적으로 패배 당하는게 명군 실정 였죠..후금측의 침공을 막기에도 힘이 부쳐 수비에 급급하던 차에 결국에 고작 반란군에 불과한 이자성군에다 먼저 망하는 등으로 지리멸멸.. 자체 엿죠
18/07/09 21:58
조선이 명나라에 사대 함은 초기엔 중원왕조의 침략 전쟁 방지 하려는 안보적 이유가 컷고(고려조에서 요나라 금나라에다 사대 군신관계도 같은 이유)..정신적측면에서 유학자가 사대부 자격으로 지배층이 되어서 군림하던 조선 국가 체제 성격상 무반이 경시당하고 동시에 문반들은 중국문화에 열렬히 숭배하던 인적인 바탕 베이스에서 자연히 형성되서 나온바,,, 사대주의는 원인이라기 보다 결과 같은게죠,,,체제가 그렇게 만듬검니다..일례로 고려는 그 정도까지 안 갔고 역동적이고 누구에도 의존 안하는 자주국방에다 훨 자주적이고 했지요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망하지만 않고 했어도 대륙의 강국들에다 ,혹은 내전을 종식시킨 일본에다 침공을 당해도 무릅 끓고 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워 이기고 했을검니다
18/07/09 22:16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망하지 않았다 한들 무슨 수로 대륙의 강국이 되었겠습니까. 무인들에 대한 경시라면 무신정변까지 일어난 고려가 더하면 더했지요. 게다가 고려는 일본 본국은커녕 왜구들도 감당하지 못하고 탈탈 털리다 못해 반쯤 쓰러진 나라였습니다. 이성계의 쿠데타가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진 것도 그의 군사력과 함께 그가 왜구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기 때문이고요.
18/07/09 22:18
강국이 될수 있죠.고려가 이성계의 사병들 없이 계속 왜구한테 얻어맞으면서 계속 빌빌 거리는 상태였으면 그렇게 침략 꺼려하던 주원장이라도 총독부정도는 세우고 갔을테니까 강력한 명나라의 일부로...
물론 조선-고구려-고려는 중국의 역사로 들어갔겠죠.
18/07/09 22:28
대륙의 강국이 될수는 없겟지만 군사력약화로 인해 왜적의 침공을 당하단든지 여진 침공군에다 국왕이 항복하고 그 속국으로 전락 같은 비참 지경까지는 안갔을게죠
일본왜구에 시달리고 한것은 명나라부터도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햇을 정도인데..정규군 침공이 아닌지라 해안을 노략질 해대는 왜구에게는 국가 존망 사태 까지 안감니다 고려가 후반기에 권신 호족들로인해 나라가 막장 상태까지 가고는 했으나,,단 한가지 국방은 튼튼한 나라엿죠..심지어 2회나 요동정벌 까지도 단행하고 한 나람니다 조선초만해도 고려 군사체제를 고대로 물러받아 운영하고 할정도엿죠
18/07/09 22:32
고려의 무신들의 용감함과 과단함은 왕은 윽박지르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루지만 강력한 유목민이 처들어 오자 섬에 쳐박혀서 미천한 백성들이야 육포가 되거나 말거나 기도메타를 지낸거만 봐도 누구나 인정할수밖에 없죠.정말 드문 용감합니다.
18/07/09 22:48
그건 최씨들 실권자들이 자기 욕심에서..그리고 자기에다가 반란을 두려워한 군사정권 성격으로인해 그런것이지 원래 고려는 그런나라는 아니엿죠..요나라로부터 8번 침공에서 막아내고한게 고려의 원래 실력입니다 ..
왕정 복고가 이루워진 홍건적 침공시부터는 정상적 외침 대응이 나타남니다..,,왜구들에다 당하는것도 기습적으로 해안을 치고 들어오는 것이라 방비하기는 애초에 힘듬니다..왜구들이 그들 본토가 오랜 내전 기간을 거치고한지라 개인전투력은 아주 강한 넘들이고 했죠 고려말에 호족들이 강해지고 사병이 발달하고 반면에 국병이 약해지고 한게 왜구침탈에 제대로 대응못한 이유로 제가 보는데 ..심지어 17만명이란 대군을 양성후에 의종 시기 동북면에서 대형원정 전쟁도 벌이고한 정도 였죠
18/07/09 22:35
고려 말 왜구에 의해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국방이 튼튼이라니요. '해안을 노략질'이라고 말할 수준이 아닙니다. 이미 내륙 깊숙히 진출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요. 조선 역시 대마도 정벌, 4군 6진 개척을 이루어냈고, 여진족의 침략들도 전부 막아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18/07/09 22:54
조선 태종시절 대마도 원정에 들어갓는데 대마도에 상륙한 정규군인 조선군이 야지에서 단병전에서 지방 도둑에 불과한 왜구들에다가 일방적으로 썰림니다 ..기마전이나 수성전에서 강하고 했어도 원래가 단병전에 이정도로 약한 취약점을 가진게 고려나 조선군이 당시에 그랫지요
조선초 여진이라야 제대로 된 정규군도 아닌 현지토착민들 기백 기천명 단위의 습격수준이라 이들 저지는 어렵진 않은게죠 그럼에도 압록강이북 북방으로 진출은 엄두도 못낸게 조선의 능력적 한계 였죠
18/07/09 22:37
글씨유...우왕시절 요동정벌에 실패 한다해도 명군이든 누구이든 외적이 고려를 침공해서 장악하기는 호락호락 허락 되지않습니다 ,,고려 정도 동원능력에 명나라 본진으로부터 이동거리를 감안시에 쉽게 못 처들어 옴니다..
1차로 압록강에서 막을것이고 여기가 돌파되면 청천강에서 막습니다..그다음이 대동강에서 저지할게고..이렇죠 ....고수전쟁 및 고당전쟁을 다 이렇게 하천을 이용해서 싸우고한검니다 주원장 시절만 해도 북원이 아직 망하기 전이고 몽골초원에서부터 역공을 당할것이라 명에게 최대 안보 위협인 여기 놔두고서 장거리로 대군 파병이 어려운 거이죠 근본적 한계로 고려이든 조선이든 단일 왕조로 다시 돌아간 중원으로 처어들어갈 국력이나 군사력에서 건설이 될수가 없죠
18/07/09 23:16
고려정도 동원능력이 어떤걸 말씀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요동정벌한다고 병력 징집해서 위화도로 향하고 있을 때 남쪽 지역이 죄다 왜구들에게 털리면서 헬프를 요청해도 별 뾰족한 수도 없었는데요
18/07/10 21:15
허헝 왜구에다 죄다 털리긴요...요동정벌군 이외 나머지 병력들은 남부로 보내서 왜구들 습격에 대응시켯다고 합니다 ,,우왕이 너무 보내버리는 바람에 개경 지키는 병사가 부족하여 갑자기 들이닥친 요동정벌군에다 개경이 함락 당하면서 최영 일파가 제거 당하고 한게죠
고려의 군사 동원체제가 조선보다 그래도 낫었다 라고 내가 말하는 건데 이를 부정하고자 한다면 이점을 반박 하든해야 하는게죠
18/07/10 21:39
http://db.history.go.kr/KOREA/document.do?recordId=kr_137_0010_0050_0030
넵 왜구 80척이 준동하고 있었는데 요동정벌군 이외 나머지 병력들로 대응을 시켰다고요? 대응이야 했죠 대응을 하려고 했는데 안됬으니깐 문제지 우왕이 아무리 바보라도 그런 상황조차 파악 못할 왕은 아니었으니깐요 근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데 무슨? 당시 고려의 군사 동원 체제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데 고려의 정규군 (관군)이란 건 이미 무신정변 이후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무신집권기때 이미 집권자들의 사병화가 되었고 이후에도 주요 무장들 (대표적인게 이성계)의 사병이 되어있엇고 당시 고려의 최강의 군대라면 이성계의 동북면 군사들이었는데 이걸 전부 이성계가 데리고 위화도에 있었는데 대응시켰다고 합니다? 그냥 남쪽만 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개경 인근 부분에도 왔다갔다하고 당시 우왕이 서경에 있었는데 그게 아무일도 아니었다고 말씀하시려고요? 도대체 어떤점에서 고려의 군사 동원 체제가 조선보다 그래도 낫었다고 말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때 이미 왜구에게 위협받으며 털리고 있었고 장계마저도 막을 병력이 없어서 막을 수가 없다라는 장계가 올라오는 데 뭐요? 얘네 막은 시점도 결국엔 위화도회군을 하고 난 뒤에야 수습을 한 건 알고나 하시는 말씀이신지?
18/07/10 21:54
허허 공민왕 시절 홍건적 침공에다 20만명 국병이 소집되어서 홍건적을 격파 한거가 사실이구..고려 후기에 가면 호족들이 강성해지고 각자 사병을 거느리고 햇단 점이라 사병들 합치면 상당한 전투력이 나옴니다
계속 내가 말하지만...왜구들이 들어와서 뭔 짓 했느냐 검니다.. 기습만 하고 도주한 거에 대해 고려군이 잘 대응을 못한것이지 패배 당한거는 아니란거를 이해 못하시네..해안이 길고해서 고려측은 왜구들이 어느 한 장소를 노리고서 기습하면 다 못막아요 왜구들이 사전에 정찰병을 보내서 고려군 방비가 허술한곳을 골라서 상륙하고 햇다고 기록에 나올 정도라
18/07/10 22:43
왜구가 말그대로 해적 수준이구 여진족들의 동북부에서 노략질수준이라,,,
그 노략질 수준에 나라 거덜날 뻔하고 홍건적 침공에 공민왕이 몽진한건 모르시는거에요 아니면 알고도 입 싹 닫고 있으신거에요? 어이고 노략질 수준에 나라 거덜나는 나라가 참 대단하네요
18/07/10 18:42
1. 조선이 명에 사대하는 것은 안보적 이유도 있지만, 안보적 이유가 크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유학에서 말하는 '사대' 개념을 먼저 알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상적 배경과 현실적 필요가 병존하는 것인데 사상적 배경 자체를 쏙 빼놓고 이야기하시면 안되죠. 2. 조선의 지배층을 단순히 '문반'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중국문화를 열렬히 숭배하지도 않았습니다. 문반, 사대주의 이 두 단어로 조선의 성격을 규정하시는데 조선이라는 국가의 역사를 3분법으로 나누면 전-중-후기의 조선에서 '체제로 자리잡고, 지식인 사이에서 연구되는 유학'의 성격이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달라지는 이유가 단순히 중국문화를 숭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제유지를 위해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고요. 3. 고려가 역동적이고 자주적이라고 하셨는데, '역동적'이면서 '자주적'이라는 표현을 쓰신 기준은 뭐죠? 댓글에서 조선이 속국이었느니 하시는데, 그런 기준이면 애초에 고려사 시기구분에서는 '원 간섭기'가 아예 따로 설정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조선은 청이 시키는 대로 왕명 바꾸고 관직명 바꾸고 그러지는 않았죠. 고려말기 부원세력같은 부청세력이 조선에 있었던가요? 4.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서 망했다 라고 단순화시켜서 서술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 국가가 멸망하고 왕조교체가 이루어지는 건 그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부터 살펴봐야 하는거죠. 고려 말기에 국가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나요? 한국중세사 전공자 수준의 서술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인터넷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을 고치지 않고 그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의 서술을 자꾸 반복하시면 곤란합니다.
18/07/09 22:39
조선을 호구로, 고려를 갓국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조선은 고려후기 등장한 온갖 부작용을 개혁하고 성립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일부학자들은 중세인 고려와 대비해서 근세라고 부를 정도죠. 조선에 대한 인식은 정말 땅바닥을 기네요(...)
18/07/09 23:02
고려가 현대 민족주의 사관에서 뽕맞을 부분이 좀 많긴 하죠....외왕내제 체제라든가, 3차요여전쟁이후 한국사 최초로 레알 동북아균형자(...)가 되어 쌍방에 갑질하던 거라든가....근데 그건 최전성기 얘긴데 조선이 비판받을때는 언제나 조선쇠락기랑 고려최전성기를 비교하는 식인게 좀 그렇더라고요
18/07/10 12:27
그런측면이 좀 강하네요.
군사력을 국력의 전부로 보는 분들도 있고 근대화라면 무조건 식근론만 떠올리는 분도 있고.. 역사가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만큼 어설프게 알고 어설프게 알고있는 지식으로 단정지어버리는 빈도가 다른 분야보다 높은것 같습니다.
18/07/09 22:41
1.국가 간의 상호 신뢰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의리라는 가치는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2.유학과 명에 대한 '의리'가 기존 기득권에 의한 정책 방향인게 대단히 문제였다고 봅니다 3.미래는 알기 힘들고 무엇이 옳다고 단언할수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것도 모호하고요 그렇지만 지금 문재인 정부는 외교 정책에서는 최선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오히려 그 오래된 공동체의 가치관 때문에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되네요 직업에 귀천은 '있다' '남자는 여자를 무조건적으로 부양해야하며 시집'오는'여성들을 위해 내집 마련을 해야한다'
18/07/09 22:45
[세상에는....사람새끼라면...배신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근래에 본 가장 멋진 명대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나이 먹으니 생각이 바뀌긴 하네요.지식 정도가 다른 것도 있겠고... 어렸을땐 조선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는데 지금은 광해가 탄핵된게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인조는 에러지만.....
18/07/09 22:46
그 당시의 의리와 충이라는게 제거 되면. 유교라는게 쉽게 버릴수 있는 가치라면 왕의 나라와 양반이라는것 역시 성립될수가 없죠.
18/07/09 22:59
저 어릴 때만 해도 조선시대 사대외교는 그야말로 굴종 , 굴욕외교의 표본이라고 할 정도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는데 고작 20년 만에 '그 시대엔 충분히 저럴 수 있어~' 라는 식으로 바뀌는 것 보고 흠좀무했었죠.
죽은 역사조차 이렇게 인식이 확확 바뀌는데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평가하는 건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18/07/09 23:08
명이 망하고 청이 흥할줄 알았는가? 라고 다른 쪽에서는 말할 수 있어도 조선은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게
조선이 호란 때 그토록 무기력하게 순식간에 털리고 약탈만 안 당했어도 청이 흥하기는 커녕 다 굶어죽고 흩어졌을 건데요. 사대외교, 실리외교, 주전, 주화 뭐 어느 방안을 쓰건 상관 없는데 아무거나 똑바로 썼으면 그렇게 처참하게 깨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니, 병란이 있고 나서라도 정신 차렸으면 모르겠는데 도망쳤다가 기어들어와서는 하는 짓이 아내하고 이혼하겠다는 상소나 보내고, 인질로 잡혀간 사람들을 공식적인 몸값보다 몇십 배를 주면서 사적으로 먼저 빼돌리는 바람에 일반 백성들은 몸값 지불을 못하고.. 이게 나라입니까? 명분이 어쩌고 저쩌고를 따질 것도 없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짓이에요.
18/07/09 23:58
뭐 지도자는 결과론에 따라 책임을 져야죠
당시로썬 청이 이길줄 몰랐어도 명에 베팅했고 그 결과 청한테 탈탈털린건 역사적 사실이니 일반 민심과 여론이야 감정이 들어가서 사실 인간적으로도 명에대한 사대가 이해가 안가는거야 아닌데 어쨋든 역사앞에서 지도자의 결정은 결과로 말해야한다고 봅니다. 결과론적으로 베팅잘못했고 베팅때문에 나라가 털린건 사실이니
18/07/10 02:34
생각해 보면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는 명청 간 전쟁의 향방을 알 수가 없었응 테니 이때의 외교를 까는 건 결과론적인 것 같고
그 후에도 승부가 갈린 후에는 말로만 국내에서 떠들어댔지 실질적으로 청에 거스르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본처럽 바다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니라 육지로 연결돼 있는데다 국력 차이가 뻔한 상황에서 사대교린을 쌩깔 수도 없으니, 이 시기의 외교정책은 좀 지나치게 까이는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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