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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8 17:33
사원이 누구인지 궁금해 급히 찾아보니
촉한의 유지인데다가 황보숭의 사위였군요. 명분에 있어서는 더할나위 없었다고 봅니다. 저정도의 위치라면.
18/03/28 17:45
한나라의 오래된 신하 집안이긴 한데, 기록을 보면 형 사견이 대단한 사람이고 사원은 그냥 원플러스 원 수준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흐흐.
18/03/28 17:39
미축은 재산이 많았다뿐이지 장사치는 아닙니다. 애초에 도겸 휘하에서 서주의 2인자인 별가종사로 있었고, 편장군이 되었으며, 이후 조조가 영군태수로 삼으려 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자 명사였습니다.
18/03/28 18:16
호위대장은 절대 아니지요. 정 억지를 쓰자면 아문장군의 직책이 총사령관을 지키는 것이라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유비가 입촉할 때 아문장군 조운은 유영사마로 형주에 남았죠. 이후 유비를 지원하러 입촉할 때도 제갈량과 함께 했다가 도중에 별도의 부대를 이끌고 강양으로 갔고, 한중에서도 황충과 함께 최전선에 있었으며, 이릉대전 때는 독강주로 후방을 맡았으니, 유비의 호위대장 역할을 한 적은 없습니다.
18/03/28 18:37
정사나 자치통감 같은 데에 기록이 거의 없거나 혹은 별다른 내용 없이 기록되었다고 해도 저는 무조건 삼국연의 소설 기준으로 게임을 대하기 때문에 그냥 조운이 제일 좋습니다. ^^
18/03/28 17:51
이 시점에 미방은 개국공신의 일원으로 남군태수였습니다. 전후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미방이 배신자가 된 건 이후의 일로 보입니다.
조운은 위에 언급했다시피 관우 마초 장비 황충보다는 아래였고, 대충 위연과 엇비슷했을 것으로 봅니다.
18/03/28 18:03
서촉입성->한중정벌->한중왕 즉위->관우 북벌->오나라 통수->관우 사망->조조사망, 조비 즉위->유비 즉위->이릉대전->유비사망 순입니다
18/03/28 18:04
전 마지막 전투에서 30번 넘게 좌절하고 끝내 엔딩 못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는데요....ㅠㅠ
하지만 다시 시작해서 하다보니 또 꿀잼이라 신남신남!
18/03/28 18:03
군악대 저도 처음에는 뭐 이런 부대가 다 있어?하고 참전 안 시킨 적 많았어요. 삼국지 공명전 영걸전 또 해보고 싶네요. ^^ 지금껏 나온 삼국지 게임 중 공명전 영걸전이 제일 재밌어요. 조조전은 조조가 주인공이라 안 합니다. ^^
18/03/28 17:59
미방도 같이 없다면 외척이라 뺀 게 맞는 거 같긴 한데
꼭 그게 아니라도 미방의 경우 남군태수라는 직함이 120명 안에 들어갈 정도는 아닐 수도 있으니....
18/03/28 18:01
120명이지만 이름이 언급된 사람은 딱 열 명입니다. (나머지는 원문에서도 그냥 '등'으로 퉁쳐버립니다.)
미방은 열 명 중에 들어갈 건덕지가 없었지요.
18/03/28 17:59
그냥 썰을 풀자면
유비 보위세력이 대략 유협집단+형주+익주인데 합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익주세력에 대한 보상과 함께 '한중왕'이라는 칭호 때문에 저 명단에 익주세력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초기 유협집단은 상대적으로 양보가 필요했고 그 중에서 의전 순위는 높지만 전공이 살짝 후달리는 미축이 빠진게 아닐까 합니다. 워낙 오랜 세월 함께 했다보니 그 명단에 넣고 빼는 거에 신뢰가 흔들릴 만한 사이도 아니었겠구요.
18/03/28 18:07
저는 유비집단을 유협+형주+익주로 가르는 의견에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아예 아니라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유비는 어느 정도 정치적 고려를 했을망정 요직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갔습니다. 게다가 유비 생전에 익주 출신은 숫자에 비해 별로 중용되지도 않았어요. 기껏해야 황권에 양홍 정도입니다. 실제로 저 열 명 중 익주 출신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허정, 방희, 사원, 뇌공, 법정, 이엄 모두 외지 출신입니다.
18/03/28 18:30
한의 이름으로 내린(조조가내렸지만 황제의이름이니) 태수자리를 거절하고 한중왕의 신하로 등재한다면 황실의 위엄에 먹칠이 되므로....?
18/03/28 18:31
근데 사실 세상 살다보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실수하나쯤은 있게 마련인데 진지하게 '그냥' 혹은 '실수' 였을수도 있습니다 -_-;
작업 다 해놓고 몇명이 수십번 검토했는데 발표직전에 '어라? 이게 왜 지금발견됐지???' 할때도 있고요...크크
18/03/28 18:31
미축은 서주 호족으로 유비를 많이 도운건 맞지만, 능력 상으로 그 이후에 손건, 간옹보다도 뭘 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어서 외척으로서 대접을 해줬다는 느낌만 들지요
그리고 나중에 황제로 올리는 표에 등장한 것은 미방이 배반 때리고 나서 미축이 정말 수치스러워했고, 주위의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 예우 차원에서 집어넣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18/03/28 18:37
제갈량에 대한 대우는 정말 화끈했네요. 물론 임관한 이후 제갈량이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줬기에 다른 신하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겠지만요.
18/03/29 09:04
화끈한 정도가 아니죠. 심지어 승상이 되었을 때조차 겨우 마흔 한 살이었습니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한나라 황제라는 인간들이 다들 그랬네요. '야 소하가 너 대장감이라더라'라는 이유만으로 한신을 대장군에 덜컥 앉힌 한고제라든지, 스물이 갓 넘은 처조카 곽거병을 표기장군으로 삼아 막북으로 내보낸 한무제라든지...... 다들 제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죠.
18/03/29 09:08
그딴 놈하고 내가 동급이라니! 하고 자존심이 상해서는 전장군 관직을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정말이지 성질머리하고는....
하지만 이후 비시의 설득을 듣고는 깨달아서 즉시 머리를 숙이지요. 더러운 성질머리와, 동시에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자세가 관우라는 인물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18/03/28 20:10
미축은 명예직의 느낌이죠 여동생도 주고 재산도 줘서 대접은 높은데 실권은 없습니다! 지금도 직원 만명이면 대단한데 그때도 만명임 상당하죠...
유비가 미축의 재산이 없었음 훨씬 힘들었겠죠
18/03/28 20:25
정말 당시에 대한 지식 없는 사람이 그냥 추리해 보자면..
1. 미축이 조조로부터(=헌제로부터) 태수 자리를 받았는데 유비한테로 튀어 버린거라 천자에게 올릴 표문에 이름 붙이긴 좀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초나 관우의 경우는 제후의 반열이라 독립적인 활동을 해도 세상 사람들이 인정한다고 보고요. 2. 숫자 12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비 포함하면 12명인데, 황제를 보위할 제왕과 그 부하들이 12간지를 상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 싶습니다. 상소하는 인원도 120명이고요. 유비 제외 11명 이름으로 누구를 달까 하다가 표문이 가지는 의미를 나름대로 따진 끝에 미축이 빠진 건 아니었을까 합니다. 3. 요즘도 출신지역이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에 뽑히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옛날에는 오죽했겠나 싶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왼팔, 오른팔인 관우, 장비를 제외하고는 익주나 형주의 인사들이 ‘한중왕’을 추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축은 이미 서주의 유명 인사로 천하에 알려진 사람이니 ‘한중왕’ 표문엔 빠진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8/03/29 09:14
짬으로는 소위 불알친구인 간옹을 따라갈 자가 없지요.
그래서 기록에 보면 회의 때 유비가 자리에 있어도 간옹만 혼자 다리 쭉 뻗고 뒤로 기댔으며, 제갈량 이하를 상대로는 걍 베개를 베고 침상에 누워서 말했다 합니다. 무려 [성품은 찬찬하지 않고 오만, 방종, 질탕하여]라는 평가를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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