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7/08 22:03:10
Name Sgt. Hammer
Link #1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4780
Subject [일반] [리뷰][스포]잔예 - 살아서는 안되는 방


오랫동안 일본 괴담을 번역하다보니 운좋게도 공포 영화를 공짜로 볼 일이 종종 생깁니다.

7월 7일 국내 개봉한 잔예 역시 좋은 분이 전해주신 덕에 날로 보고 왔네요.



잔예는 국내에는 십이국기, 시귀 등으로 알려져 있는 여류 공포 소설가 오노 후유미가 쓴 동명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포 영화입니다.

2003년 이후 한동안 괴담 단편들로만 창작을 이어오던 오노 후유미가, 9년여만에 출간한 장편 소설로 많은 관심을 받았죠.

1999년 시귀로 못 받았던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이 작품으로 2013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이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든 작품이었다는 점이죠.

잔예는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넣은 모큐멘터리 형식의 르포르타주 소설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고스트 헌터 시리즈나 시귀 등,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호러 소설을 기대했을 팬들에게는 당연히 불만족스러운 작품일 수 밖에요.

그 뿐 아니라 자극적인 묘사는 나오지도 않고, 어디까지나 공포의 근원과 주변을 탐구하는 내용이다보니 화끈한 호러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땅과 집에 얽힌 액운이라는 소재는 매일 같이 개발이 이어지고 오래된 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국내에서 공감하기 더욱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영화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궁금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한 소설을, 어떤 식으로 영화화했을지 알고 싶었거든요.



영화는 말 그대로 책을 완벽하게 영상화했습니다.

도입부, 작가가 쿠보에게 제보를 받아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를 파헤치는 부분부터, 책의 마지막 마무리까지 온전하게 영화 안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영화 전체의 서사가 무척 단절적으로 나타나게 되어버렸네요.





집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현상을 시작으로, 그 원인을 추론하고, 과거 그 집과 땅에 있었던 일들을 역으로 추적해나가는 스토리 자체는 흥미로울 여지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단서를 찾고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을 엮어 나가는 이야기가 책과 똑같은 순서대로 나타나다보니, 정작 한 이야기와 다음 이야기의 연결이 느슨하고 애매해져버렸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얽히고 섥히는데 정작 이야기가 하나씩 뚝뚝 끊어지다보니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한데 엮어내는 게 어려울 수 밖에요.

더불어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공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보니, 단순한 호러를 원한 사람이라면 금새 질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책이 가지고 있던 단점을 영화가 그대로 물려받은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전적으로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괴담이라는 소재는 기본적으로 글로 적히고,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구현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죠.





영화화된 잔예는 그런 부분들을 아주 만족스럽게 채워줍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바닥이 쓸리는 소리, 마루 밑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신음소리, 내 귓가에만 울려퍼지는 아기 울음소리...

이런 소리들이 대단히 사실적으로 구현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켜주고, 책에서 상상만 하던 부분을 아주 만족스럽게 메워줍니다.

책을 그대로 영상화한 덕에, 책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리고 어떤 이미지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원작을 읽은 관객에게는 플러스가 될 수 있겠고요.



일본 괴담은 대개 음습하고 끝맺음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어떤 의미에서 잔예는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정확히 일치하는 작품입니다.

공포의 근원을 찾아나가며 마주치게 되는 사건들은 대개 음산하고 고독하며, 알 수 없는 광기가 서려 있습니다.

근원에 가까워지면서 재앙이 점차 퍼져나가고, 그걸 두려워한 나머지 끝을 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마저 전형적인 일본 괴담과 닮아있네요.

그나마 엔딩 직전, 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왔다 머리 끝까지 화만 났을 관객들을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호러 씬이 몇 있기는 하지만요.

여러번 언급했듯,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무서운 장면이 딱딱 나오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이 영화는 꼭 피하셔야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다들 훌륭했습니다.

한때 일드의 여왕이었던 다케우치 유코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떠오르는 신예 하시모토 아이와 사카구치 켄타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신 스틸러 역할을 맡은 사사키 쿠라노스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기본적인 영화 평점은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

만약 단절된 서사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좋아한다면 +2점.

일본 괴담을 정말 좋아한다면 +2점.

원작 잔예를 읽어봤다면 +3점.






정작 예고편은 평범한 하우스 호러처럼 뽑아놨습니다.

저도 예고편만 보고 원작을 완전히 무시한 망작일거라 예상했는데, 왠걸.

오히려 지독하리만치 원작에 집착한 작품이었습니다.

원작자 오노 후유미가 직접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를 찾아가 제작을 의뢰했다던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납득이 가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마스터충달
16/07/08 22:10
수정 아이콘
최근 원작이 따로 있는 일본 영화들을 보면 원작을 온전히 살리려는 노력이 과하다 못해 집착이 되는 기분입니다. 원작을 미리 본 작품의 경우 영화를 접하면 "와~ 잘 살렸네. 하나도 안 놓지려고 애썼네."하며 감탄하는데, 원작을 모를 경우 "음... 재밌는 얘기구나. 스토리는 여러가지를 많이 담아놨는데 그걸 다 욱여 넣었네"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게다가 기술력도 없으면서 괜히 만화 원작 블록버스터를 열심히 구현하는 것도 좀 답답하고요.

소설, 만화, 영화는 분명 다른 매체인데, 영화 업계가 이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느꼈던 어설프고 조악한 테이스트를 요즘 여러작품에서 많이 느껴요.

한때는 한국과는 넘사벽의 작품 수준을 가졌던 일본 영화계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Sgt. Hammer
16/07/08 22:11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저 모든 +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서 한 두어번 더 보고 싶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3점짜리 영화죠 크크.
보다가 한 5분 나가시더라구요.
원작자가 직접 영화화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납득은 갔습니다.
다만 책을 읽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정말 불만족스러울 영화라는 것도 납득이 가구요.
마스터충달
16/07/08 22:21
수정 아이콘
영화라는 매체가 결국 2시간(±1시간)이라는 한계가 있는 작품인데... 이걸 간과하는 것 같아요. 이건 진짜 비교하기엔 너무 옛날 명작이긴 한데... 전 <나우시카> 만화 보고는 감탄했습니다. 거기서 2시간 짜리 이야기만 추려내서 게다가 결말마저 전혀 다른 감동작을 스크린에 옮겼거든요. 그걸 전부 다 살려서 원작의 냉소적 테이스트를 그대로 살려놨다면 과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좋은 작품이 됐을까요? 전혀 아니거든요...

원작자가 직접 영화화를 요청했다라... 그래서 그런걸까요. 전 요즘의 철저한 구현이 마니아(오타쿠)들의 원성에 겁먹은 행보가 아닐까 싶었는데, 원작자의 입김 때문이었다면 제작, 기획부터 노답인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원작자가 빡칠 정도로 원작을 훼손해서 명작이 태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죠;; (샤이닝?)

암튼 안타깝네요. 나름 호러팬이라 나중에 꼭 보긴 할텐데, 말씀하신 바대로라면 제 취향의 영화이긴 한데, 이 리뷰를 생각하면서 많이 아쉬워 할 것 같네요.
Sgt. Hammer
16/07/08 22:25
수정 아이콘
근데 시간적으로는 외려 책을 충분히 다 담아내고 조금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뒤에 쓸데없는 인위적 호러가 추가된게 오히려 아쉬웠고요.
원작을 한번 읽고 영화를 보신 후, 다시 소설을 읽어보시면 그래도 만족할 경험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과 영화 모두 만족스러웠기에 많이 아쉽네요.
물만난고기
16/07/09 16:43
수정 아이콘
만화를 원작으로하는 영화를보고있자면 너무 원작과 똑같이 구현해낼려는 욕심이 과하다는걸 느끼곤합니다.
특히 캐릭터 하나하나를 똑같이 표현해낼려고하니 만화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예컨데 헤어스타일이라든가 옷이라든가.. 뭔가 핀트가 어긋나있다는걸 종종 느끼곤합니다.

ps>나우시카 영화나 만화 둘다 미야자키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것인데 시기상 영화를 먼저 만들고 그 메세지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알지못하나 나중에 만화로 다시 그려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스터충달
16/07/09 18:12
수정 아이콘
나우시카는 만화가 먼저 시작했고 완결을 나중에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말에서 오시이 등이 비판한 점을 잘 수용했었죠.
물만난고기
16/07/09 18:50
수정 아이콘
결말부분만 따로 수용한거군요.
마스터충달
16/07/09 19:08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코믹스는 연재기간이 훨씬 길었으니까요. 극장용 애니가 출시되고 나온 비판점을 이후 코믹스에서 자연스레 적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아예 이야기 전개부터가 애니와 코믹스가 많이 달라서 딱히 비판점을 결말부분만 수용했다고 볼 수는 없을거에요.
Samothrace
16/07/09 02:03
수정 아이콘
원작을 온전히 살리려는 노력이 과하거나 집착이 되는 거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런 노력이 과하거나 집착이 되면 망하는 작품(주로 원작이 만화)에 그런 노력을 들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스터충달
16/07/09 02:52
수정 아이콘
만화 뿐만 아니라 소설도 잘 못살리고 있어서요;;; <잔예>의 원작도 소설인걸요. <골든 슬럼버> 같은 영화도 있었죠. 굳이 만화라서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진아
16/07/08 22:53
수정 아이콘
비교적 온건한 평에 비해 갑자기 점수가 너무 처참해서 깜짝놀랐습니다;
원작을 모르지만 걍 꽥꽥 소리지르거나 뻔한 서스펜스로 사람 옥죄는 것보다 정말 가슴 선득해지는 공포를 전달하는 영화는 잘 없어서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네요.
Sgt. Hammer
16/07/08 22:56
수정 아이콘
저는 저 모든 + 요소에 해당이 되서 스탭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다가 나왔거든요 크크크
나온 다음 다른 관객분들이 욕하는 걸 직접 들으면서 그럴만하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나가다...
16/07/08 23:00
수정 아이콘
조건이 맞는다면 최고의 영화지만 아니면 망작이군요.
저는 공포영화를 보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 볼 수가 없지만, 볼까 하는 생각이 있는 분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좋은 리뷰네요.
Sgt. Hammer
16/07/08 23:01
수정 아이콘
솔직히 이걸 그냥 공포영화로 여기고 본 분들이 얼마나 화가 날까 생각해보면...
소설도 노잼에 가까운 작품인데, 영화는 오죽하겠어요 ㅠㅠ
Samothrace
16/07/09 01:52
수정 아이콘
시귀가 십이국기 작가의 작품이었다니 이건 몰랐네요 크크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였는데 이 책은 왠지 마으메 들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Sgt. Hammer
16/07/09 01:53
수정 아이콘
읽어볼 가치는 있는 책입니다.
재미있을지는 별론이지만요.
물만난고기
16/07/09 16:46
수정 아이콘
편견이지만서도 몇년 전에 링으로 유명한 나카다 히데오의 극장령을 보고나선 더 이상 일본 공포영화에 손이 안가더라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6241 [일반] [오피셜] 클롭, 리버풀과 6년 재계약 [20] blackroc6616 16/07/09 6616 0
66240 [일반] 팬질과 덕후 [12] 공룡5929 16/07/09 5929 30
66239 [일반] 초보 애견인이 드리는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 [65] RoseInn13301 16/07/08 13301 15
66238 [일반] [리뷰][스포]잔예 - 살아서는 안되는 방 [17] Sgt. Hammer5734 16/07/08 5734 1
66236 [일반] 민중들은 개, 돼지 입니다. (feat.교육부 고위 간부) [134] CoMbI COLa14854 16/07/08 14854 11
66234 [일반] 미국서부여행을 시작했습니다 [33] AlPha-Zerg5281 16/07/08 5281 0
66233 [일반] 이젠 개 같은거 안 키울래 [221] 전자수도승16244 16/07/08 16244 5
66232 [일반]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와 언론 [18] blackroc5180 16/07/08 5180 0
66231 [일반] 우간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난민사유 [39] 사악군9826 16/07/08 9826 88
66230 [일반] 토니 블레어의 저주 [1] 가장자리3974 16/07/08 3974 1
66229 [일반] 미국 댈러스 총기저격 사건 현장. [33] Sandman9936 16/07/08 9936 1
66228 [일반] 사드 얘기에 지역감정을 끌어들여 죄송합니다. [46] 낙천v7966 16/07/08 7966 5
66227 [일반] 파밍(Pharming)과 해킹(hacking)이 만나면? [1] 쿠라4630 16/07/08 4630 3
66226 [일반] [KBO] LG가 예상치 못하게 용병 투수를 교체했습니다. [44] 어리버리7740 16/07/08 7740 0
66225 [일반] [웹툰] 후레자식을 소개합니다. [38] 유라8486 16/07/08 8486 2
66223 [일반] 에디 알바레즈, 라이트급 챔피언 등극/UFC 200 다니엘 코미어 vs 앤더슨 실바 확정 [6] The xian4406 16/07/08 4406 0
66222 [일반] 박유천 관련 SBS 보도는 오보일까 [46] bdrcddrrr11334 16/07/08 11334 37
66221 [일반] 국민의당 박선숙-김수민 의원 구속영장 청구 [47] ㈜스틸야드7650 16/07/08 7650 1
66220 [일반] 한반도 사드 배치 공식 발표 [349] 낙천v16337 16/07/08 16337 4
66219 [일반] [혐주의] 15년10월 사건 신호위반 레미콘 차량이 승용차 덮쳐 3명 사망 [36] swear10299 16/07/08 10299 0
66218 [일반] 내가 쓰는 제품 속 화학물질, 이렇게 확인하자 [8] 홍승식4852 16/07/08 4852 1
66217 [일반] 올해 본 비예능 영상 중 가장 웃겼던 한컷 [34] 좋아요9253 16/07/08 9253 5
66216 [일반]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울워스의 쥐덫 [62] 에버그린9290 16/07/08 9290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