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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며 서로가 아무런 말없이, 똑딱 똑딱 흐르는 시간, 나 이제는 알아요. 그대의 마음을. 돌리기엔 늦다는 걸.
그렇게 우리는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서로를 마주 보며 말이 없었고, 그렇게 그는 후회하기엔 많이 늦었다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그는 나와 동갑이거나 약간은 어려보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초반의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CCTV에선 좀 커보이던데 실제로는 약간 왜소하다. 화면빨이었구만. 마음은 그에게로 다가가 돈내기 할당량을 부여받은 작목반 구성원처럼 매생이를 채취함과 동시에 깡냉이를 탈곡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일 뿐이고 행동은 그리 할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려 하자 세사람이 움직인다. 한사람은 입주자 대표. 젊은 여자 한명과 젊은 남자 한명. 이 둘은 누구지? 아, 안그랍니더, 안그랍니더. 하면서 입주자 대표님의 손을 잡아 내리고 그에게 다가가 고함을 치며 물었다.
- 와 그랬심미까.
=...예?
- 와 나무 차로 발로 주찼냔 말입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아저씨 미쳤심미까. 돌았심미까.
= .......
- 내 오면서 만나가 사람을 주 차뿌까, 차로가서 차를 주 차뿌가 우예뿌꼬 그카면서 왔슴미더.
= 정말 죄송합니다.
- 와 죄송할 짓을 함니꺼. 내가 뭐 잘몬했는데.
= 제가 그때 미쳤었나 봅니다.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하! 진짜 이냥반이 누 보궐 채우나.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그사람에게 한동안 울분을 토했다. 속에서 뜨근한 것이 많이 빠져 나왔다. 정수기로 가서 물을 한잔 마시자 화끈거리는 얼굴이 진정된다.
- 앉읍시더. 내 진짜 궁금해서 그라는데 진짜 와 그랬심미까.
=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날 안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나빠서 나도 모르게 그만.
- 그카머 그 많은 차중에 왜 내차만 주찼는데요.
= 그러게요.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동기에 대한 궁금증은 풀수 없을 것 같다. 일어나서 차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와 그가 일어나자 세사람이 같이 일어난다. 입주자대표에겐 내가 고맙다며 내가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에겐 그가 집에 가있으라고 말을 한다. 혼자 오기엔 용기가 좀 부족했었나 보다.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나와 그사람을 보는 두사람의 눈에 걱정이 그득하다.
- 차 보니까 우떻슴니꺼
= 죄송합니다.
- 오늘 신 뭐 신고 왔슴미꺼.
= 예?
- 그 때 그 신 신고 왔냐꼬예
= .....안신고 왔습니다.
차 앞에 서자 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범죄의 동기가 하나 연상 된다.
- 혹시 그날 음주 운전했슴니꺼.
= 아니요. 아닙니다. 아니요. 아니요.
- 근데 와 뭐 때문에 그랬는지 모릅니꺼.
= 그날 안좋은 일이 있어서...
- 그렇슴니꺼.
차 앞에서 울분을 토하다 경찰 얘기를 꺼냈다.
- 경찰에 신고한거는 알고 있슴미꺼.
= 예. 입주자 대표분이 그러시던데요.
- 내일 경찰서 같이 갈랍니까.
= .........죄송합니다.
- 죄송한거 경찰서 가서 우째되는지 같이 알아봅시더
= 죄송합니다. 제가 알아서 변상하겠습니다.
- 나는 차만 변상 받아가 될끼 에이고, 내 지금 눈도 아파 죽겠고. 내 하루 일당이 얼만줄 압니꺼.
뱉고 나니 일당이 얼만지 되 물어올까 걱정이다. 너무 적어서.
= 선생님 제가 좀 요즘 안 좋은 일도 있고 힘들어서 그런데 적당히 변상해드리면 안되겠습니까? 사정 좀 봐 주실수 있을까요. 같은 아파트 입주민인데요.
같은 아파트 사는게 뭐가 대순가 싶다. 나는 그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았다.
- 그런말을 말라고 합니까. 경찰서 가면 된다 아입니까. 경찰한테 가서 물어봅시더.
= 제발 선생님. 부탁입니다.
찌그러진 차 앞에서 몇분을 옥신각신 했다. 사실 경찰에 갈 마음은 크게 없었다. 마음이 좀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내일 정비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들어와서 티비를 트니 생각만큼 기분이 통쾌하지가 않다. 분명 기분이 나아진것은 사실이나 먹을 때 달달한 깡냉이 뻥튀기가 뒷맛은 씁쓸한 것처럼 마음이 씁쓸했다. 목구멍에 깡냉이 티끌이 걸려 까끌한 것 같다.
다음날 문과장에게 벌집 삼겹살에 백세주를 사주는 조건으로 반차 사용을 허락 받고 정비소로 갔다. 정비소 입구에서 기다리니 회사 승합차를 타고 와서 차에서 내려 쭈뼛거리는 그와 함께 정비소로 들어갔다. 입고 된 차가 많아 대기실에서 기다라는데 지도 나도 뻘쭘하다. 곧 은실이 차주를 찾기에 그와 함께 차로 갔다.
= 본네트가 완전히 찌그러졌네요.
- 예, 얼마나 나올까요.
= 어쩌다가 그러셨어요. 와. 이거 보통 이렇게 안 되는데.
- 예, 얼마나 나올까요.
= 어.. 이거 가만보니까 발모양이네요. 이거 누가...
- 그..대리님이신가 과장님이신가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얼마라꼬요.
그 사람 여기 있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더 뻘쭘해질까 싶어 견적 보는 사람의 말을 자른다. 판금 도색에 사십 정도고 교체하면 육칠십 나온다고 한다. 슬쩍보니 멋쩍은 웃음인 걸 보니 자기 생각보다 많이 나온 모양이다. 나중에 올께요 하며 차를 끌고 나와서 도로변에 둘다 앞을 보며 옆으로 나란히 섰다. 권하는 담배를 고개를 저어 거절하며 말을 했다.
- 내가 기분이 너무 나빠가 판금 도색해서 몬타겠으니까, 교체합니더. 그래 알고 처리해 주이소.
= ................
내가 굳이 거기서 확답을 들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흥정의 문제가 아니잖여.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였다. 그래, 저때는 담배만한 것이 없지. 담배를 찾는 흡연자의 심경을 비흡연자인 내가 알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외벽 도색 작업자들이 왔다고 한다. 바로 작업 시킨다는 1공구장에게 갖은 애교를 부려 겨우 신규 안전교육 시간을 얻어냈다. 작업자들을 모아두고 교육을 들어가니 외벽 도색 작업자들이라고 해서 그런줄 아는거지 방금 화개장터에서 리사이틀을 마치고 돌아온 각설이 꼴로 작업자들이 앉아있다. 기선 제압용이라면 그 작전은 유효했다. 능글 능글하게 교육 내용을 받아치는 반장에게 보조 로프 설치를 꼭 부탁했다. 반장은 나에게 알았다고 하는데 분명히 좀 있다 옥상에 가보면 보조 로프는 없을 것 같다. 남자의 평균 수명이 여자 보다 짧은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이유일 것이다. 반장님 우리 현장 말고 다른 현장가서 그렇게 일하세요.라고 하니 그게 안전관리자가 할 말이냐며 껄껄대고 웃는다. 웃지마세요. 각설이 아저씨. 엿 안 사줄꺼에요.
교육을 마치고 세팀으로 나뉘어진 작업팀 중 한팀을 확인하고 내려 오던 중 그치에게 문자가 왔다. 어디냐고. 전화 할 것이지. 귀찮게. 전화를 걸어 뭔 일이냐고 물으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뭔 얘기.하니까 얼굴 보면서 얘기 하잔다. 마음에 들꺼라면서. 주소를 불러 줬다. 두번째 작업팀을 확인하려 건물 중반 정도 올라 갔을 때. 문자가 온다. 도착했으니 현장 밖에서 보자한다. 전화 좀 하라고. 나이 먹으면 문자 귀찮으니께.
현장 밖으로 나가자 꾸벅 인사를 하며 차에 타라고 한다. 차에 타니, 지금 본인이 힘든 상황을 주절 주절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집안 이야기, 회사 이야기. 오전 시간 내내에 천년바위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다스려 놓은 마음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스콜 현상이 발생한다.
- 아, 근데 그 얘기를 말라 하는데요. 뭐 때문에요.
= 사정 좀 봐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 뭔 사정요. 댁은 내 사정 봐주고 차 발로 찼습니꺼.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하면 본네트 교체 하라꼬요.
= 제가 사정이 안 좋아서. 죄송합니다.
본인 잘못은 생각도 않고 사정만 얘기 하는 꼴이 둘리마냥 얄밉다. 그래도 계속 그러니 또 마음이 약해진다.
- 그라머 마지막으로 내가 묻겠심미더.
= 예 말씀하세요.
- 그날 술 먹었습니까.
= ............예. 음주 운전 했습니다.
그게 아니면 동기가 없다. 지하주차장에서 나름의 조사할 적에 한바퀴 돌아 직진할 시 정면에 내 차가 서 있었다. 그게 이유 였다. 내차가 그자리에 주차되어 있지 않고 비어 있었다면 자기가 직진으로 주차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허탈했다.
- 우짤라고 그랍니까. 술 묵고 운전을 와 합니까. 그라고 나무 차는 와 차뿝니까.
= 죄송합니다.
- 그래서 뭐 우짜고 싶은데요.
그의 얼굴에 화색이 좀 돈다. 내 느낌이다.
= 예, 제가 좀 알아 봤는데요. 그...
- 퍼뜩 말하소. 옥상에 각설이 춤추고 있을지도 모림미다.
= 예? 예. 요즘에 덴트 기술이 많이 좋은거 아시죠. 제가 기가 막히게 잘하는 곳을 알아 뒀습니다.
고마, 확 바라시 팀캉 와서 오함마하고 빠루 가와가 직끔 궁디 붙이고 앉아 있는 차로 다 빠뿌끼. 정말로 그라고 싶었다. 황당했다. 그치의 황망한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그치의 두눈을 똑바로 보며 조수석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 벨트 메이소.
= 벨트는 왜...
- 경찰서 가는 길에 단속하면 우짭니까. 과태료라도 한푼 애끼야지.
= 갑자기 왜..
- 갑자기. 갑자기?? 그게 할 말입니꺼. 덴트 하라꼬? 죄송하다메요. 그라머 그 값을 치루라꼬. 돈 칠십 아까버 하지 말라꼬!
= 죄송합니다.
- 내 말 길게 더 안합니더. 본네트 갈고, pps 코팅도 합니다. 그거 싫으머 경찰서 갑시더.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번만 사정봐...
- 렌트도 하까요.
= .............차보험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내한테 전화 오머 음주라 할꺼니까 그건 알아서 하이소.
조수석에서 내려 현장으로 들어왔다. 씩씩거리며 들어오는데 경비 김씨 아저씨가 또 다시 무슨 일인지 물어 온다. 날이 더버서요. 한마디 하며 아저씨를 지나쳐 들어왔다. 오후께 전화가 왔다. 원하는대로 해주겠다고 한다. 대답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차를 맡긴 뒤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본네트 교체가 완료 되었으니 찾으러 오라고 한다. 수리비는요. 아직 입금 전 인데요. 정비소 계좌와 내 계좌, 각각의 금액을 찍어 문자를 보냈다.
정비소로 가니 은실이가 나를 기다린다. 내 통장을 확인하니 돈이 들어왔다. 도장면의 +- 전하를 재배열해 도장의 광과 내구성을 높인다는 무안단물 쓰러운 pps 코팅은 안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래도 촌놈이 속은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뭐 먹냐. 부어 치킨이나 먹어야지 하면서 은실이를 타고 정비소를 빠져 나왔다. 세차 한지가 오래 되어 차가 꼬질꼬질하고 광이 안난다.
본네트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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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입니다. 재미는 좀 보탰지만 거진 제 경험을 밑바탕으로 작성한 경함담입니다. 두편 써야지 했던게 네편이 되었네요. 몸도 확대하고, 키우는 고양이도 확대하고, 글도 확대하고. 연쇄 확대범은 이제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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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세요.
= 예, XX시 경찰서 누구누구 형삽니다.
- 예 형사님.
= 아 안그래도 제가 CCTV 한번 받으러 갈라했는데 바빠서 시간이 안되네요. 그거 좀 보내주시죠.
- 근데 형사님. 제가 뭐 물어 봐도 됩니꺼
= 예, 물어보세요.
- 그거 범인 잡으머 우예 됩니꺼.
= 벌금 내야죠.
- 합의 하면요.
= 벌금이 좀 줄어드는데 그래도 벌금 내야 됩니다. 신고가 들어왔고. 어찌되었건 범죄니까요.
- 내가 신고 취소한다케도요?
= 그게 신고가 들어오면 취소가 안 됩니다. 종결이 되어야죠.
- 아, 맞습니까. 내 취소 좀 하고 싶은데.
= 취소는 왜요. 혹시..잡으셨습니까.
- 그...뭐..
= 잡았으면 같이 경찰서로 오세요. 제가 잘 처리해드릴께요.
- 뭐 미제 사건으로 놔 두시소.
= 예?
- 전화 끊심더. 운전 중이라.
박기사가 없는 적적한 저녁, 사람 구경하러 은실이를 타고 마트를 가던 나에게 걸려운 전화를, 차 수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 온 누구누구 형사의 전화를, 그렇게 나는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