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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12 19:31:22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끽해야 디 스테파노급 : 디 스테파노는 이무기가 아니다.
1.
한국의 해외 축구 팬덤 사이에서 디 스테파노에 대한 취급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야 전설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야 별 이견이 없지만,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실려 있지 않은 공치사에 가깝습니다. 애당초 스테파노는 커뮤니티에서 잘 운위되지 않습니다. 기껏 그가 운위되는 경우의 8할은 이런 식입니다.

"월드컵 우승 못하면 끽해야 디 스테파노 급."

그리하여, 디 스테파뇨에 대해 별 관심도 애정도 없는 이들에 의해, 멀쩡하디 멀쩡한, 아니,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할만큼, 그 위가 더 이상 없는 천외천의 높은 곳에서 거닐던 디 스테파노가 별안간에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마냥 갑자기 땅바닥에 쳐박혀서 실패자가 되고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인양 낙인찍히죠.

이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라 가소로운 일입니다. 억울함은 약자가 강자에게 억압당하는 데에서 오는 감정인 반면, 가소로움은 강자가 약자로부터 조롱당하는 데에서 오는 감정입니다. 억울함은 호소하는 반면, 가소로움은 재롱을 즐깁니다. 다시 말해, 이 글은 하소연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그저 '끽해야 디 스테파노'라는 언명이 재롱 수준에 불과함을 지적하고자 하는 글입니다.


* 이를테면 이런 거.



2.
2차대전 직후에는 그 이후처럼 대륙 내지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대회가 없었습니다. 각각 국가별/지역별로 분산되어 그들만의 리그를 펼칠 따름이었으며, 국제적인 교류의 장은 제한적이었죠. <세계축구>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며, 축구의 중세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지리적 인근성에 근거하여 산발적으로 소규모나마 국제적인 대회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대륙단위의 대회로 서서히 통합되어 가는 양상을 보입니다. 월드컵이 1950년에 재개되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 시티 페어스 컵이 1955년에 발족되며, 유로컵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컵 위너스 컵이 1960년부터 시작된 것이라든가,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 같은 경우도 1956년에 처음으로 수여된 것과 같은 것이 당대의 흐름을 말해줍니다. 스테파노는 이러한 <세계 축구>의 형성기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월드스타를 논하자면 응당 유럽에서는 푸슈카시를, 남미에서는 디 스테파노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 군웅할거. 개판잼..



3.
흔히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경력만으로 기억됩니다만, 그는 그 이전에도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21세였던 1947년에 리베르 플라테가 30전에서 22승 4무 4패 90득점 37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고, 이때 디 스테파노는 30경기에서 27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획득합니다(2위 르네 폰토니는 23골). 약관의 나이에 이미 팀득점의 30%를 책임질 수 있었다는 거죠.

같은 해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현재의 코파 아메리카의 전신인 남아메리카 챔피언쉽에 출전했는데, 이를 보면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디 스테파노의 역량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대회에서 스테파노는 7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끕니다. 이는 전체 득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다음 해인 1948년에는 리그 2위에 그쳤습니다만, 지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동일한 성격의 대회인 남아메리카 챔피언쉽 오브 챔피언스에 출전했습니다. 이 대회는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열렸고, 아르헨티나/브라질/우루과이/볼리비아/칠레/에콰도르/페루 7개국에서 리그 우승팀 내지 주요팀이 각 하나씩 참가하여 총 7개팀 - 이중 4개팀이 자국 리그 우승팀이었고, 1개팀은 준우승팀, 2개팀은 주州 대회 우승팀이었습니다 - 이 무려 풀리그를 펼쳤습니다. 이 대회에서 스테파노의 리베르 플라테는 4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4승 2무를 기록한 바스코 다 가마에게 승점 1점 차로 아깝게 우승을 내줍니다. 디 스테파노는 6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였습니다.



4.
이후에는 콜롬비아 리그의 미요나리오스로 이적하여 4시즌을 보내고,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맛 보며, 두 차례 득점왕을 차지합니다. 공식기록으로는 121경기 109골이 확인되며, 친선경기까지 포함하면 297경기 262골을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시기에 열린 국제적인 대회로는 스몰 클럽 월드컵(원어로는 페퀘냐 코파 델 문도)이란 대회가 있는데, 1952년에는 미요나리오스와 더불어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브라질의 보타포구, 베네수엘라의 라 살레 등 4팀이 참가하여 라운드 로빈을 2번 돌렸습니다. 각 팀은 6전을 치렀고, 미요나리오스는 2승 3무 1패로 2승 4무를 기록한 레알 마드리드와 보타포구에 이어 3위에 그치지만 디 스테파노는 6경기에서 6골을 기록합니다. 다음 해인 1953년에는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오스, 아르헨티나의 리베르 플라테, 오스트리아의 라피드 빈 등 3팀이 참가했고, 미요나리오스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디 스테파노는 3경기에서 3득점을 합니다.

1952년 스몰 클럽 월드컵이 열리기 4달 전인 3월 31일, 미요나리오스와 레알 마드리드는 마드리드에서 한 차례의 경기를 더 가진 바 있습니다. 이 원정 경기에서 디 스테파노는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4-2 승리를 이끕니다. 이 경기를 통해 미요나리오스는 스페인 언론으로부터 세계 최강팀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이것이 디 스테파노의 레알 행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 남만왕 맹...아니 남미왕 스테파노.



5.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11시즌 동안 뛰면서 396경기 동안 307골을 넣었고, 8번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트로피와 5번의 유러피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발롱도르를 2번 수상하는 등 맹위를 떨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러피언 컵 5연패는 그와 레알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경력입니다.

간과되곤 하는 사실이지만, 디 스테파노는 이미 레알 입성 당시에 만 27세였으며, 유러피언 컵이 처음 열렸을 때에는 29세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 선수들은 26~27세에 정점에 도달하며, 현대의 선수들은 과거의 선수들에 비해 만개하는 시기는 빨라졌고, 노쇠하는 시기도 늦어지며 보다 완만한 에이징 커브를 그리게 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시 말해 과거의 선수들이 현대의 선수들에 비해 신체적인 하락이 훨씬 빨리 진행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디 스테파노는 유러피언컵이 시작된 시점에서 자신의 정점을 지난 상태였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차범근이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분데스리가에 데뷔했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곤 하는데, 디 스테파노는 그보다도 훨씬 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제 놀 물을 만났다는 이야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파노는 유러피언 컵을 5번 연속으로 제패합니다. 그것도 팀의 독보적인 No.1으로.


* 23세 즈음에 만개하여 26~27 즈음에 정점에 도달하며, 이후 하락세를 그리지만 30까지는 경사가 완만하고, 30 이후에는 급격히 떨어진다.

기록을 보면 더욱 경이롭죠. 디 스테파노는 유러피언 컵을 5연패 하는 동안 모든 결승전에서 빠짐없이 골을 넣었으며, 마지막 1959-60 시즌에는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5번의 결승전에서 총 7골을 기록했습니다. 유러피언 컵에서의 통산 누적 득점은 58경기 49골인데, 당시의 유러피언 컵이 16강부터 녹아웃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는 점, 즉 지금의 챔피언스리그에서 조별리그가 삭제된 형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녹아웃 토너먼트 득점이 49골인 셈입니다. 참고로 현역 선수 중 녹아웃 토너먼트에서 최다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34골의 호날두죠.


* 34세의 나이로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다.


* 노익장의 전설

이 당시의 유러피언 컵에 대해 흔히 가지는 편견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참가하여 아무나 우승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55-56 시즌의 초대 대회 때에도 이미 각 리그의 우승팀들이 주축이 되어 16개국의 강자들이 자웅을 가렸으며, 56-57시즌부터는 점차 참가 리그가 늘어나 예선까지 치러야 할 정도였죠.

물론 현재의 챔피언스리그에 비해 유러피언 컵의 규모와 난이도는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본선 참가팀 자체가 16팀에서 32팀으로 증가했으며, 각 리그의 우승팀만이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리그 랭킹에 따라 빅리그의 유수 강호들이 총출동하죠. 게다가 녹아웃 토너먼트 이전에 조별리그를 거치기 때문에 우승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경기 수도 7경기에서 13경기로 증가했고요. 챔피언스리그에서 연속 우승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디언 지의 저명한 풋볼 칼럼니스트 조나단 윌슨 역시 유러피언 컵과 챔피언스 리그의 차이를 지적합니다.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blog/2013/may/21/champions-league-super-clubs

"이전의 강팀은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힘든 매치업을 2회 이상 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 가장 강한 국가들에서 다수의 참가로 인해, 그것은 3회 미만이기 어렵고, 종종 4회는 되며, 만약 팀이 조별 리그에서 불운하다면, 5회에서 6회조차 될 수 있다. 더 많은 강팀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더 큰 패배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 점에서 현재의 챔피언스리그와 50년대 유러피언 컵의 우승의 가치는 분명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챔피언스리그와 비교할 때의 이야기고, 유러피언 컵 내에서는 시즌이나 시기에 따른 차등을 두기 어렵습니다. 어찌되었든 유러피언 컵은 출범할 때부터 유럽 최고의 리그였으며, 그보다 위상이 높은 리그는 유럽 내에 존재하지 않았고, 유러피언 컵의 말미인 80년대에든지 태동기인 50년대에든지 대회 규모나 진행 방식 등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 컵 5연패가 폄하받아야 한다면, 아약스나 바이언의 3연패, 리버풀이나 벤피카나 노팅험 포레스트나 밀란의 백투백 우승 등도 똑같이 폄하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그렇게 하는 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6.
그가 월드컵을 우승하지 못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 스테파노가 월드컵에서 뛸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이지 월드컵에서 뛸 실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스테파뇨가 젊었던 시절의 월드컵은 아직 그 규격와 외연이 정립되지 않은 대회였습니다. 1950년 월드컵, 그러니까 디 스테파노가 24살 이었을 때만 하더라도 월드컵이 2차대전으로 중단된지 12년이나 되었던 터라, 이후에도 월드컵이 이어질지 어떨지 불투명한 시점이었습니다. 실제로 본선 직전에 많은 팀들이 무단으로 불참 통보를 하는 바람에,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16개 팀이 아니라 13개 팀만으로 대회를 치러야 했고, 그로 인해 대진표에 구멍이 숭숭 나기도 했죠. 심지어 우루과이 같은 경우에는 단 한 경기만 치르고 결선리그(4강 풀리그)에 진출했으며, 총 4경기만을 치르고 우승했죠(이때 브라질과의 마지막 경기가 그 유명한 마라카낭의 비극입니다.). 스테파뇨가 28살이었던 1954년 월드컵 같은 경우도 지역 예선 참가팀이 전세계를 합해봐야 40개국도 안 되었고, 녹아웃 토너먼트 대진 같은 경우에도 각 조의 1위와 다른 조의 2위를 크로스 시켜 대진을 붙인 게 아니라 조1위는 조1위끼리, 조2위는 조2위끼리 붙이는, 다시 말해 조 1위를 하면 손해를 보는 졸속적인 시스템을 운영했고요.

이렇듯, 도때기 시장배 시기의 월드컵을 우승 못했다고, 그것도 나가서 패배하고 온 것도 아니고 아예 나간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월드컵 경력을 가지고 깎아내리는 것은 누가봐도 온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임요환을 두고서 MSL을 우승 한 적 없고, 그 전신인 KPGA 투어도 1번 밖에 우승하지 못했으니 후대 선수들에 못 미치는 선수였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7.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트로피로 유러피언 컵만이 회자됩니다만, 그 외에도 많은 국제적인 대회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먼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의 우승팀들이 참가하던 대회인 라틴 컵에서,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는 1955년과 1957년 두 차례의 우승을 차지합니다. 1955년에는 레알 외에 AC 밀란과 스타드 드 렝스, 벨레넨스스가 참가했으며, 1957년에는 벤피카와 밀란, 생테티엔이 참가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스몰 클럽 월드컵이 1956년에 5번째로 열렸는데, 이때는 대회 규모가 보다 확장되어 레알/로마/포르투/바스코 다 가마 등 4개의 클럽이 참가했고, 라운드 로빈이 2번 돌아가서 각 클럽당 6경기를 치렀습니다. 이때 레알은 4승 1무 1패 14득점 9실점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존재하는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가서 어지간하면 다 우승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가 우승하지 못한 대회는 그가 출전하지 않은 대회 뿐이라고 말해도 크게 허언은 아닙니다.


* 김수겸이 이야기하면 허세스럽지만, 디 스테파노가 말한다면야 뭐...



8.
앞서 언급했듯이, 발롱도르는 1956년부터 수여되기 시작했습니다. 디 스테파노의 나이 서른일 때이죠. 즉 디 스테파노는 발롱도르보다 오래된 선수입니다. 평범한 선수 같으면 한 번도 받지 못했겠죠. 아니, 평범과는 거리가 먼, 축구사를 논할 때에 반드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스테파노의 팀 동료 푸슈카시조차도 33살의 나이에 2위에 머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디 스테파노는 1957년과 59년에 발롱도르를 두 번이나 수상하죠. 서른을 넘기고 발롱도르를 두 번이나 접수한 선수는 지금까지 스테파노 뿐입니다. 게다가 초대 시상식이 열린 1956년에도 3표 차로 2위에 올랐는데, 이때의 수상자는 41세의, 이미 전성기가 지난 스탠리 매튜스였습니다. 즉, 스탠리 매튜스의 공헌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에게 초대 수상이 돌아갔을 뿐, 이 시즌의 유럽 최고의 선수는 디 스테파노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프랑스 풋볼은 1989년에 디 스테파노에게 수퍼 발롱도르, 즉 명예 발롱도르를 수여했습니다. 지금까지 수퍼 발롱도르를 받은 것은 단 3명인데, 디 스테파노 외의 수상자로는 1996년의 마라도나와 2013년의 펠레가 있습니다. 이들은 남미 출신이었기에 발롱도르를 수상하지 못한 선수들이니, 이들에게 수퍼 발롱도르를 수여하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미 두 번이나 발롱도르를 수상한 바 있는, 굳이 추가로 명예상을 주지 않아도 될 스테파노에게, 프랑스 풋볼은 발롱도르가 수여된 이래 처음으로 수퍼 발롱도르라는 특별상을 제정하면서까지 추가로 상을 안겨주죠. 이를 볼 때, 프랑스 풋볼에서 얼마나 디 스테파노를 높게 평가했는지 알만 합니다.


* 디 스테파노가 수상한 두 차례의 발롱도르와 수퍼 발롱도르.



9.
이렇듯 디 스테파노는 그저 워낙 오래 전의, 미디어의 수혜를 입기 이전 시대의, 그리고 세계 축구의 태동기에 있던 선수인지라 자료가 많지 않기도 하고, 후대의 선수들과 동일한 기준에 의해 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가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논외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주목을 덜 받을 뿐입니다. 진지하게 스테파노를 복마전의 선수 비교의 토론장으로 놓고 나오면 그 누구에게도 밀릴 것이 없습니다. 농구로 치면 빌 러셀이나 윌트 체임벌린, 복싱으로 치면 슈거 레이 로빈슨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타임 급의 독보적인 클럽팀을 축조하고, 그 팀에서 독보적인 비중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독보성을 단시간이 아니라 10년에 가까운 독보인 기간 동안 이어나갔던, 즉 매 경기 매 달 매 시즌마다 <유아독존 그 자체>였던 인물은 축구사에서 단 세 명도 꼽기 힘듭니다. 더불어, 1년을 호령한 선수는 흔하고, 3년을 호령한 선수는 드물지 않고, 5년을 호령한 선수는 간혹 있지만, 20년을 호령한 선수는 스테파노 이외에는 팀동료였던 푸슈카시 정도 뿐입니다.

직접적인 비교가 쉽지 않을 때에는 상대비교가 고하를 가늠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예컨대 푸슈카시는 스테파노보다는 약간 아래로 평가되곤 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팀에서 뛸 때의 팀내 비중에 있어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푸슈카시조차도 펠레나 마라도나 바로 밑에 있다는, 74월드컵 결승 단 한 경기만 더 이겼다면 넥스트 펠레가 되었을 것이라는 크라위프와 비교해도 우위에 설법한 요소가 많습니다. 푸슈카시가 속해있던 50년대 헝가리 골든팀이든 70년대 아약스든 축구사적인 의의나 당대 최강팀으로서의 지위에서나 특출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리고 푸슈카시나 크라위프나 비슷하게 독보적인 팀내 입지를 가졌죠. 크라위프가 60년대 말-70년대 초의 아이콘이었다면, 푸슈카시는 2차대전 후 처음으로 등장한 최초의 월드스타였죠. 후대에 MVP로 추존될 정도로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우승에 실패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푸슈카시는 헝가리에서 끝난 게 아니라 31살에 레알에 입단하여 약 8년 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죠. 이쯤 되면 푸슈카시를 두고 최소 크라위프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푸슈카시를 팀내 2인자로 밀어낸 것이 디 스테파노였고요.

이런 전설을 두고서 '끽해야 디 스테파노 급'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못 받으면 시민케인 급, 노벨 문학상 못 받으면 보르헤스 급이라는 이야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죠. 대관절 '디 스테파노 급'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기에 저런 형용모순의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 의문일 따름입니다.




* 오손 웰즈, 보르헤스, 디 스테파노에게 돌아가면서 뺨 한 대씩 맞아야 정신 차릴래?




RIP. 그에게 행해지는 고인 능욕을 바라보며 천국에서 코웃음치고 있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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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2 19:44
수정 아이콘
"Alfredo Di Stéfano was the greatest footballer of all time - far better even than Pelé. He was, simultaneously, the anchor in defence, the playmaker in midfield, and the most dangerous marksman in attack."
디 스테파노는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였다 - 그는 펠레조차도 능가했다. 디 스테파노는 수비의 축이었고 미드필드의 플레이메이커였으며 그와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골잡이였다. - 엘레니오 에레라

"I don't know if I had been a better player than Pelé, but I can say without any doubt that Di Stéfano was better than Pelé. I am proud when one speaks of Di Stéfano. Pelé would have flopped had he played in Europe, whereas Alfredo has played very well throughout the world. I can say that Maradona could be worse than Pelé. But I emphasize Di Stéfano was better".
내가 펠레보다 나은 선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디 스테파노는 펠레보다 나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디 스테파노를 논하는 것은 영광이다. 펠레가 유럽에서 뛰었다면 그는 부진했을 것이지만 디 스테파노는 세계 전역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나(마라도나)는 펠레보다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 스테파노는 펠레 이상이었다. - [디에고 마라도나]

"The greatness of Di Stéfano was that, with him in your side, you had two players in every position."
디 스테파노를 보유한다는 것은 모든 포지션에 두 명의 선수를 보유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디 스테파노의 위대함이다. - 미겔 뮤노즈
구밀복검
14/07/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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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이야기들이 과장이 아닌 것이, 실제로 디 스테파노는 공격 시에는 탑 아래 공미로서 빌드업을 리드했고, 수비 시에는 리베로 마냥 후방으로 내려와 선수들에게 수비 위치를 지정하며 본인은 상대 에이스를 맨마크하곤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수시로 박스로 침투하여 득점을 노릴 만한 여력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것이 서른 살 이후에 남은 영상들에서 나오는 모습들이니, 20대의 팔팔하던 시절에는 어땠을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14/07/1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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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선수들을 평가하기란 참 어렵죠. 그런 과거의 선수들은 인터넷을 거쳐가면서 형편없이 폄하되거나 이상할 정도로 미화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고요.

제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로베르토 만치니가 올스타군단 맨시티에 감독으로 부임하자 (전 그때 만치니를 인테르 연속우승을 이끈 감독으로나 기억했지 선수로서는 뭘 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누군가가 ["선수로서의 만치니의 클래스에 근접한 선수는 맨시티에 없다."]고 평했을 때였습니다. 전 만치니가 뭘했길래 야야투레나 아구에로보다도 나았단 말인가 헐~ 하고 놀랐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선수로서의 만치니는 아구에로나 야야투레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지요. 그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구밀복검
14/07/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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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수여 주체가 각기 다릅니다만 세리에A MVP만 3번을 받은 선수니까요. 중위권 클럽에 불과했던 삼돌이를 세리에A 최고 팀 중 하나로 이끌었죠. 당시 삼돌이 경기 보면 후방에서 날아온 볼을 측면으로 빠진 만치니가 받은 다음, 수비수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안간힘을 쓰며 키핑해내는 장면만 주구장창 나올 정도니.. 월드컵 게시판에서 만치니와 마라도나의 세리에A 경력을 두고 이야기가 오갔던데, 세리에A에 한정하면 만치니는 마라도나 이상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비슷한 포지션의 선수였던 로베르토 바지오가 아니었다면 이탈리아 국가대표 경력도 제법 쌓았을 텐데 여러 모로 아쉽죠.
Plutonia
14/07/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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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의 만치니의 클래스에 근접한 선수는 맨시티에 없다" 그멘트는 아마 이피엘해설하면서 장지현위원이 했던 멘트일겁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입니다
14/07/1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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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dona was great but the best ever was Alfredo Di Stefano."
마라도나는 위대했지만 (아르헨티나의) 역대 최고는 디 스테파노였다. - 펠레 (참고로 이 발언은 2009년의 것이라 메시가 고려되진 않았음)
14/07/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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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저주를 하다니 펠레옹.....
14/07/1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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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비가 남긴건 마나비 라인이라는 용어와 저 짤방 뿐
구밀복검
14/07/1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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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해도 저 밈만 알 뿐, 마나비가 뭔지도 모르긴 합니다..-0-;
카시와자키세나
14/07/1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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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유토피아 마나비 스트레이트가 저 애니 이름입니다.
저 신경쓰여요
14/07/12 19:47
수정 아이콘
오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축구 역사에 대해서 또 한 가지 배워 갑니다.
저 신경쓰여요
14/07/1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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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문을 정독해보니 확실히 디 스테파노는 온갖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격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라는 것은 분명한데, 펠레랑 마라도나의 평가는 왠지 둘 다 디 스테파노를 이용해서 서로를 디스하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크크

펠레 : 마라도나는 디 스테파노만 못함 쯔쯔 그리고 나와 디 스테파노의 비교는 생략한다
마라도나 : 펠레는 디 스테파노만 못함 쯔쯔 그리고 나와 디 스테파노의 비교도 생략한다
구밀복검
14/07/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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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치적인 수사긴 하죠. 그러나 저런 정치적인 수사에 동원될 수 있는 인물이 디 스테파노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발언의 의도들과 무관하게 디 스테파노라는 인물이 가지는 무게감을 방증하지 않나 합니다.
저 신경쓰여요
14/07/1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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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디 스테파노에 대한 두 사람의 언급이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언급이 갖는 무게를 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최소한 저 언급을 한 시점에서도 충분히 어른이었을)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이 재미있어서 리플을 썼네요 흐흐
14/07/1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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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알못이지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4/07/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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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왕 긱스, 이빨 짱 수아레즈, 축신 JMS에 비하면 명성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스테파노 정도면 본좌라 칭할 만합니다.
https://cdn.pgr21.com/?b=10&n=157067
저 신경쓰여요
14/07/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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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이 이 결혼에 반대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난 내 삶에만 관심있을 뿐이다. 게다가 큰 분쟁을 일으킬 일도 아니다", 디 스테파노(86세의 나이로 50세 연하의 비서와 결혼하며)

역시 필드에서 멋진 패기를 발하는 선수는 삶에서도 멋진 패기를 발하는군요!
14/07/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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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이름을 떨친 선수는 어디서나 물러섬이 없는 패자의 모습을 보이네요.
동네형
14/07/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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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짱짱맨. 링크영상 잘봤습니다. 우습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마 수준이 높았군요 백년전인데...
14/07/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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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어이가 없었던게...아무리 옛날이라도 챔스 5연패는 아무나 하는줄 아나 하는 댓글에 달린 대댓글이었습니다.
"전쟁나서 사람들 다 죽었는데 그게 뭔 큰일이냐." 라던.
아무리 모르고 혹시나 어릴지라도 철좀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네요.

이분 영상 몇개 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좀 많이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저 신경쓰여요
14/07/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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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치면 조 디마지오랑 테드 윌리엄스를 한 큐에 까는 댓글이네요. 무서운 두 아저씨들이 무덤에서 빠따 들고 뛰쳐나올 소리를...
지금뭐하고있니
14/07/1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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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면 테드는 절대 까면 안 됩니다..흐흐흐 - 6.25 당시 미군 비행기 조종사
구밀복검
14/07/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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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_-;
14/07/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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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상대편만 죽었나 자기편도 죽었는데 -_-;;;;;;;;
14/07/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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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없으면 보르헤스급", "노벨상 받았으니 카뮈>카프카"란 헛소리는 이들의 작품을 한 줄이라도 읽은 이라면 하지 않을 망발이죠. 한다면 아예 읽지도 않고 떠들기나 좋아하는 자일테구요. 헌데 그런 빌어먹을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14/07/1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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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독교인과 성경을 비난하시면 곤란합니다..
은수저
14/07/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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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얼렁 배거슨의 뒤를 따라서 성공한 싸줄인이 되시길...
구밀복검
14/07/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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엌크크 저는 뭐 그런 건 전혀 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마음 먹는다고 될 수 있을만큼 쉬운 길도 아닐 뿐더러, 아마추어라서 좋은 부분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덕질은 자발적일 때 즐거운 법이죠.
멜라니남편월콧
14/07/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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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uanjosemonge.files.wordpress.com/2011/04/alfredo-di-stefano.jpg

이 포스 앞에선 그저 굽신굽신.

뭐 능욕은 계속되겠지만(...) 이딴 잡소리는 알 바가 아니고, 그저 디 스테파노옹이 라 데시마라도 보고 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네요. 갑자기 옆 나라의 표범왕님하가 유로12 직관갔던게 떠오르기도 하고...
아마짱 레나
14/07/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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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해야 디 스테파노 급' 이라고 거칠게 표현하셨지만 '월드컵을 못들면 디 스테파노 같은 평가를 받을것이다' 란 말은 메시와 디 스테파노를 높이면 높였지 까내리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대단한 실력으로 오랜 선수생활동안 포스를 보여줬음에도 결국 축구의 아이콘, 황제의 자리는 펠레에게 돌아갔듯이 '실력에 비해 억울한 평가를 받을것이다' 라는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4/07/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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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글로, 댓글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티레브
14/07/1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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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와 5. 사이의 이야기를 하고싶다...

아무튼 메시는 30살 넘긴다음 발롱 두개 들고온 다음에 디 스테파노에 비벼봅시다
Darwin4078
14/07/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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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스테파뇨 옹 경기는 그냥 스페셜 영상 몇개만 봤는데, 이냥반, 골키퍼 빼고 전포지션에서 다 뛰던데요? -_-;
수비에서 수비라인 잡고 미들에서 경기 조율도 하고 포워드에서 골도 넣고...;;;
네드베드가 두개의 심장이면 이분은 온몸이 심장인듯..
14/07/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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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있을때 골키퍼도 뛰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구밀복검
14/07/1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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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디 스테파노의 볼 터치 영상과 같은 것에 아쉬움이 큽니다. 디 스테파노의 진정한 가치는 수비 시의 움직임이나 오프 더 볼 무브에 있는데, 볼터치 영상에서는 그런 것을 보기가 어렵거든요. 말하자면 반쪽짜리 영상..
노네임
14/07/1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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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알면 알 수록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에 입이 떡 벌어집니다. 허허헛
쓸데없는 기우이긴 한데 디 스테파노의 업적이나 실체(?)가 드러날 수록 메시에 대한 기준은 더욱더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위에서 사티레브님이 농담처럼 언급했지만 30대 이후 발롱도르 수상 횟수를 들먹이며 메시가 3회 이상 수상하지 못하면 펠레보다도 아래인 디 스테파노 보다 못한 선수가 어떻게 펠레보다 위냐 라는 장판파가 시전되겠죠. 그래서 그냥 디 스테파노의 실체에 대해선 더 이상 알려지지 않고 그냥 신화 속 인물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흐흐흐 고인이 되시기도 했지만 인터넷 장판파들에게 자주 이용 당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R.I.P 라 말하고 싶습니다.
MoveCrowd
14/07/1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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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현재 유럽리그 팬들은 나이가 어리니 뭐...
14/07/1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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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레알로 입문해서인것도 있지만 유럽 축구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기준이 디 스테파노 아닌가 생각하는게 있는...
14/07/1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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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스테파뇨 옹 입장에선 참 억울하죠

내가 월드컵 실력이 없어서 못나간게 아니라 기회가 없어서 못 나간건데 ...

만약 디 스테파뇨가 월드컵에 나가서 우승이라도 했다면 그 엄청난 클럽 커리어를 볼때 우리는 축구의 아이콘이자 축구황제 넘버원으로 펠레가 아닌 디스테파뇨를 꼽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펠마가 아닌 디펠이라고 부르고 다녔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신은 그에게 월드컵의 기회를 주지 않으셨네요. 그것도 디스테파뇨가 못해서 실력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일이 꼬이고 꼬여서...


1944년 월드컵: 제2차 세계대전으로 열리지도 못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아르헨티나가 불참했다. 1938년 월드컵 개최권 분쟁에 더해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분쟁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의 이중국적이었고, 이 직전까지는 어느 국적을 가지고 있든 출장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부터 규정이 꼬이기 시작했고, FIFA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어느 국적으로든 월드컵에 출장하는 것을 막아버렸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때에는 1957년에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상황이어서 스페인 국적으로 참여하려고 했다. 디 스테파노는 전성기를 맞아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을 쓰고 있었고, 이 시기 스페인은 디 스테파노, 프란시스코 헨토,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인 쿠발라 등 최상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스페인이 귀신 같이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1962년 칠레 월드컵: 이때에도 스페인 대표 팀의 전력은 최상이었고, 당시 나이 36세였던 디 스테파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페렌츠 푸스카스도 국가 대표 팀에 속해서 '이번에는 정말...'이라는 생각뿐인 상황이었다. 지역 예선도 무난하게 통과해서 이젠 정말 본선 경기에서 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디 스테파노는 월드컵 본선 개막전 직전에 치른 경기에서 부상당한다. 결국 디 스테파노는 본선 경기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월드컵 직전에 40세의 디 스테파노는 허리 부상을 당했고, 결국 은퇴했다.


안구에 습기가 차네요
14/07/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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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황선홍 감독을 뛰어넘는 불운이네요.
낭만토스
14/07/13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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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키드갱에서
돼지가 출연하려고 하면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서 포탄이 날아오고 그걸 버텨냈더니 UFO가 날아와서 레이저빔을 쏘는 수준이네요
돼지가 가출해서 찾으러 가려고 했더니 블리자드가 막 불어오고......
14/07/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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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 스테파노급이라고 말하는거 자체가 나 유럽축구 해외축구 잘 모른다고 자백하는 거나 진배없죠 -_- 흐흐
OnlyJustForYou
14/07/1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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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와 마라도나가 서로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 물론 이 점에는 서로가 서로를 디스하는 면도 있지만 왜 하필 디 스테파노냐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답이 나오는 그런 선수죠 흐흐
레알 팬으로 이 분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자부하는데 본문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참 이 분은 시대의 불운아라고 해야할까요. 발롱도르에서도 손해였고 월드컵도 여러 이유로 못 뛰고 시대를 잘못타고 난 게 죄죠.
만약 저 당시가 전쟁 전후가 아니었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디 스테파노를 평가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많이 남았을텐데 참 아쉬워요.
그래서 아쉬운 게 축구선수들 평가할 때 펠마를 제일 위에 놓고 뒤에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중에 가장 밑으로 평가받고 때론 플라티니에게도 밀리기도 하고..
아무래도 가장 오래된 선수다보니 평가할 사람이 적은 탓일까요. 소위 축구판 초대 본좌라고 해야할까요. 여하튼 아쉽고 또 아쉬운 그런 대단한 선수죠.
낭만토스
14/07/13 02:53
수정 아이콘
또 어떤 면으로 보자면 그만큼 메시의 위엄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_-;;
난나무가될꺼야
14/07/13 12:15
수정 아이콘
그저 고등학생들이 흔히 문과 서열 얘기할때 스카이-서성한-중경외시처럼 펠레-마라도나, 크루이프-베켄바워-디 스테파노 라고만 알고있었고 사실 펠마, 베켄크루이프 보다 언급되는 빈도도적어서 그냥 서열 5위정도되는 선수인가보다 했는데 생각보다 대단한 선수였나 보군요 이렇게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메시가 월드컵든다고 저들을 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싶기도하고...;;
애패는 엄마
14/07/14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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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현시대의 메시도 부족한 거 하나 없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단지 동시대라서 체감이 덜 될뿐이죠
꽃보다할배
14/07/1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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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나 디스테파뇨를 들이밀진 않죠 메시니까 들이미는거고 클럽 커리어는 이미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구지 메시한테 들이밀었는가라고 한다면 이번 월드컵전까지 메시가 국대에서 보여준게 미미해서겠지요 물론 디스테파뇨는 국대 월드컵 출전 역사가 없지만요
시대 불문하고 최고 레전드는 파울리뉴 알칸타라라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태생의 바르샤 선수 350공식전에 367골인가 필리핀 국대 데리고 일본 국대 15대2로 승리라던지 만화 축구 실천자입니다
이분은 중간에 의사된다고 쉰적까지 있죠 디스테파뇨 시절엔 스페인감독까지
아직 메시가 라리가 기록은 넘었는데 공식전 기록은 못넘은(내년에 넘겠죠 라울 챔스와 알칸타라 최대골) 그야알로 전설 오브 전설입니다
꽃보다할배
14/07/1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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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메시 대견하지 않나요?
디스테파뇨에 알칸타라 펠레 마라도나 세상에 어느현역이 위의 클럽 자국 레전드 선배들과 비비고 올타임 넘버 원이냐 아니냐를 논할 수 있을까요
이제 6시간 남았습니다 역대 전설의 탄생을 랑브로 볼 시간이요
제 생각이지만 30년안엔 메시를 누를 축구스타는 못볼것 같습니다
14/07/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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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줄 메인 정벅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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