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간만에 여자 후배 셋을 만났습니다다. 처음 만났을때는 신입생 꼬꼬마였었는데 어느새 20대 후반의 아가씨 아니 미씨 아니 이것도 아니고 여튼 그 중간쯤의 성숙한 여인네들로 성장해있었네요. 어째든 셋은 하나같이 현재 남자친구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날 수가 있었던거죠.
이야기 하다보니 연애이야기가 나왔는데 글쎄 그동안의 연애 이야기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힐링을 해주더군요. 20대 초반에는 더없이 도도하게 연애를 하던 그녀들도 이제 정말 한풀 꺾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도도하겠지만요. 연애에 있어서 적극성이라고는 주변에 소개팅해달라고 조를때 말고는 없었던 그녀들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봤자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들'만' 푸쉬해오고, 자신이 원하는 남자들은 본인에게 시큰둥하거나 큰 푸쉬를 해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 이제 그녀들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연애 자세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글쎄 먼저 고백도 해봤다네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일인데.
A는 배우던 수영강사에게 번호를 달라고 했다가 자신은 요즘 너무 바빠서 사적으로 누구 만날 상황같은거 아니다라며 거절당했습니다. 속칭 까인거죠. A는 그래도 고객님이라서 좋은 말로 웃으며 죄송하다며 거절당했나봅니다. 그럼에도 멘붕에서 아직 못벗어나고 있더군요. 취한 뒤 '내가 어디가서 까이고 이럴 사람 아닌데..'라는 말만 무한 반복했습니다. 뭐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습니다. B는 모임에서 알게된 세살 연하에게 개인적으로 밥먹자고 제안했다가 바빠서 죄송하단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바빠서 그런가 싶어서 몇번 더 밥먹자고 했다가 그뒤로 차단당한거 같답니다. B는 겉보기에는 가장 멘붕이 심해보였는데 그 뒤로 모임에 안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걱정말고 나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너보단 걔가 앞으로 안나올거라고. C의 경우는 A,B와는 달리 시간이 좀 지난 올초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C는 적당히 썸을 타고 있던 남자가 자신은 맘에 들었는데 상대가 도무 지 고백을 해오지 않더랍니다. 그런 그 남자가 연애경험도 크게 없어보이고 보기에도 흔히 듣던 '초식남'분위기가 물씬 풍겨, 아 이 남자 잘 몰라서 그러는 구나 요즘은 남녀가 구분이 어딨어 내가 고백해야지 라며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고백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소위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한마디로 이성적 매력이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상황을 낙관한 만큼 몇배는 더 큰 좌절감을 맛보았답니다. 본인의 여자로서의 매력에 대한 자신감까지 제대로 상실했죠. 들여다보니 C가 가장 멘붕이 심하더군요.
20대 초반에 저와 친구들이 겪던 이야기를 보는것 같았습니다. 그땐 정말 별거아닌 거절멘트에도 멘붕하고 그랬죠. 사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요. 어째든 그녀들은 수라의 길에 들어서서 맞았던 거절에 멘붕하며 하나같이 상대 남자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런식으로 거절하느냐! 였어요.
A는 A 나름대로 번호 그거 뭐가 별거라고 좀 주지, 주고나서 연락했을때 저런 이야기 해도 됐잖아라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름 수영을 계속 다니는 입장에서 사람들도 주변에 몇 있었는데 앞으로 자기 얼굴이 뭐가 되냐 이런거였죠. B의 말은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으면 딱 잘라 이유를 말하고 얘기를 해주면 되지 왜 차단을 하냐는 거였죠. 모욕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C의 입장은 반대로 굳이 이유를 이야기했어야 하냐는 겁니다. 그냥 죄송하다 안맞는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면 이런 좌절감은 안느껴졌을텐데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뭐 다들 위로를 해주면서 니들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들이었을거란 이야기를 덧붙혀주었습니다. 오빠!!!! 라며 원성을 들었지만요. 흐흐 근데 저는 과연 이런 상황에서 고백을 거절 하는데 예의가 필요한가 싶습니다.
1. 좋게 둘러 이야기를 하면 거절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마음이 커서 그렇죠. '그냥 정말 여유가 없어서 그런거지 이게 나에대한 거절이 아닐지 몰라.' 어떻게든 확정판결 전까지는 작은 확률이라도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이 나중에 왜 제대로 안끊어줬냐고 하면 더 어이없는 일이죠.
2. 좋게 둘러 이야기를 하면 거절임을 인식해도 밀어붙히는 유형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 요즘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서 다음에 먹어요.' 라고 하면 '바빠도 밥은 먹을거잖아. 내가 니네 도서관으로 갈게. 밥만 먹자'라는 식이죠. 개인적으로 주변에 있는데 매우 피곤합니다. 자기는 안되면 말을 하라고 해놓고, 안된다고 말을 하면 먹히질 않아요. 그래놓고 일을 추진하다가 파토나면 왜 미리 거절하지 않았냐라고 하면 정말 어이없죠. 다만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이런 스타일 충분히 좋은 면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신 이런 분들은 저돌적으로 추진해서 열매를 따는 만큼 반대급부가 생길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봐요. 차단도 각오해야합니다.
3.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면 괜찮을까요? 안될거 같아요라고 하면 대부분 이유를 물어봅니다. 여기서 둘러 이야기하면 다시 1,2번으로 가는겁니다.
4. 단호하게 이야기해서 이유를 답했을때 직접적으로 명시적 이유를 이야기하면 이제 상처받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단순히 홀로 괴로워하는게 아닌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는 수준으로 앙심을 품는 경우도 생각보다 꽤 많이 나옵니다. 싸X지 없다 매너 없다 이런 소문도 날수 있고요.
5. 그래서 그냥 씹으면 또 씹는다고 싫어합니다. 예의가 없다는거죠. 어떻게 보면 거절당한 사람의 출구전략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너없는 사람인줄 알아서 다행이다 라며 신포도 작업하는 근거로도 쓰이죠. 신포도 작업이 정말 좋은 출구전략이거든요.
꼭 이게 끝이 아니고 다른 경우도 많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한사람이 한패턴이 아니란겁니다. 1.2.3.4.5 모두 한사람이 동시에 가능합니다. 애매하게 거절하면 제대로 말을 안해준다고 불만을 갖다가, 단호하게 하면 말을 그렇게 하냐며 불만을 갖고 그러다 씹으면 씹는다고 뭐라 한다는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절당하는 상대보다 거절하는 본인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에도 말했듯 거절하는 방식이 상대의 출구전략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우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많습니다. 이게. 본인부터 지켜야죠.
위의 이야기들은 거절의 어려움을 이야기한것이고 실제로 거절에 매너가 어디까지나 요구될지도 의문입니다. 내가 원치 않는 이성의 들이댐 그거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게 유쾌한 일이 될 사람들은 대충 거절해도 척척 알아서 해줘요. 예전 어떤 여자분이 싸이의 오글멘트로 썼다는 '제발 고백하지마'란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닙니다. 일단 기분좋게 거절하려면 제안을 기분 좋게 해야합니다. 내가 제안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나쁘다면? 그렇다고 제안하지 말라는건 아닙니다. 거절의 매너를 너무 따질 필요가 없다는거죠. 알고보면 대부분 거절방식보다는 거절 사실이 나를 기분나쁘게 하는거거든요. 나는 상대를 좋아한단 이유로 상대가 바라지도 않는 고백 혹은 추파를 던지면서, 자신을 약자로 포장하며 내 기분에 맞추어 거절해야 한다는건 좀 아닌거같아요. 내 제안이, 내 데이트 신청이 내 고백이 더 큰 노매너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거절을 당할때 내가 더 실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내가 해볼때 까지는 해봅니다. 그리고 상대의 거절 예의는 굳이 크게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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