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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01 16:47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한국에서 사이비 도덕주의는 해결될일 요원해보이는군요.
인본주의로 해결되긴엔 너무 멀리왔군요. 최소 하나는 죽어야하지 않을지
25/05/01 17:12
(수정됨) 저는 도덕 또는 미덕이 지켜지는 것은 풍요의 시대에만 지켜진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극단주의 현상은 파편화된 도덕 때문이라기 보단, 관성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관성에서 튕겨저 나가기 시작하니까 각자 자기만의 해답을 찾고있는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현재 이런 극단주의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그만큼 그 동안 풍요의 시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미래의 자원을 가져다 쓰며 유지해온 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하니, 동일한 노력으로 과거에는 유지되었던게 붕괴되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안을 찾고, 또 그 구심점으로 모이기 좋은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것이다보니 튀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는것 같습니다
25/05/01 19:10
(수정됨)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도덕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내치는 메커니즘이라는 이야기나, 도덕이 법과 종교보다 더 근본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흥미롭네요. 저는 도덕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무리를 이루는 동물들은 집단을 유지하고 협력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해온 사회적 본능의 결과물이 인간에게는 도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겠죠. 예컨대,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좋은 맛'이 있어서 인간이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을 '좋은 맛'으로 느끼도록 진화한 것과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을 '나쁘다'고 판단할 때 먼저 작동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편도체 같은 감정 처리 영역입니다. 혐오, 불쾌감, 분노 같은 감정 반응이 먼저 활성화되고, 그다음에 전전두엽이 그 감정을 합리화하는 식으로 작동한다고 하죠. 결국 우리는 먼저 '느끼고', 나중에 '판단'합니다. 그래서도 저는 도덕을 객관적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화된 표현이라고 봅니다. 이 감정 시스템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종에게 진화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전략입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집단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죠.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감정 기반의 도덕이 절대화될 때 발생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회의 도덕률(마녀사냥, 명예살인, 동성애 금기 등)은 다른 사회의 관점에서는 명백한 폭력일 수 있습니다. 한 사회의 '옳음'이 다른 사회에서는 '그름'이 될 수 있고, 지금 우리 사회의 도덕도 다른 사회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도덕은 그 사회라는 환경에서 진화한 감정적 규범일 뿐이며, 절대적인 도덕률은 결국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물이 그렇듯, 생물인 인간의 도덕 또한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문화적 복제자(meme)입니다. (더 나아가, 유발 하라리가 '상호주관적 현실'이라 칭하는 일반적인 추상적 개념들 (진리, 정의, 선, 미, 기업, 시장, 민족 등) 역시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meme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이나 위인에서 비롯되지 않은 도덕은 무엇에 근거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도덕이 생물학적, 진화적 메커니즘에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은 당연한 것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절대윤리, 절대선, 절대진리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본문에서 제시된 태도처럼,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감정 시스템은 종종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오용되며 고정될 경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성찰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그것이 더 유연하고 생존에 유리한 전략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찰과 조정이란 건 일반적인 종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사고 기능이 발달한 인간에게만 가능한 고유한 현상입니다. 기린이 목을 길게 진화시킨 것이나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게 된 건 의지를 갖고 선택한 결과가 아니지만, 인간은 사고 능력이 발달한 나머지 스스로의 진화 방향에 대해서도 사고할 수 있게 된 거지요. 달리 말하자면, 진화 혹은 우주 자체가 마침내 자신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5/05/01 19:25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사상가들의 주장을 보다가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야생의 법칙과 인간의 본능에만 의존하다가는 사회가 존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사상가들과 지배층이 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 또한, 공동체, 집단, 국가의 단위가 더 강력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변을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과 의를 중요시 하기도 하고, 강력한 규율을 우선시 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먼저라고 하기도 하며, 그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가 제일 좋다는 사람도 나타나고 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도덕이 먼저고 사회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유지를 위한 필요에 의해 도덕이 생겨났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다듬어져 왔다고 봅니다.
25/05/01 19:48
저도 결론에 동의하고,
말씀하시는 게 소위 축의 시대라고 하는 시기일 텐데,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인구가 밀집하고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복잡해지고, 기존의 신화나 전통적인 종교만으로는 사회를 설명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워져서 보편적 윤리나 자기 수양, 이성에 기반한 도덕체계 같은 것이 필요해졌고 (신앙의 형태도 '신의 기분 맞추기' 같은 의례 중심에서 구원, 도덕적 삶, 자기 성찰 같은 것을 중시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게 공자, 싯다르타, 소크라테스 등등 이라고 하는 거 같습니다.
25/05/01 20:24
생명이 gene에 기반해 진화하는 정보생명체이듯, meme(도덕)도 그를 구성하는 생명, 정확히는 인류의 뇌가소성에 기반해 진화하는 정보생명체입니다.
다양한 관점에 따라 정보와 정보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며, 이는 시간축에 따라 끊임없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리 근처를 나선의 형태로 맴돕니다. 그러니 한 가지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서도 안되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았다 하더라도 그 작용을 그만두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폐기한 관점에서도 언젠가는 다시금 의미가 도출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학, 철학, 과학, 모든 것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이러한 나선의 과정을 깨닫고 우리가 그의 일부임을 자각해 다음 발자국을 내딛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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