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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7/31 22:05:09 |
Name |
秀SOO수 |
Subject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새로 전학온 한병태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저 4 분단 뒤에...
그가 있었다. 그래. 그 때 처음 그를 보았던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남을 굽어보는 눈빛...그렇지만 그것은 남으로부터 존경을 이끌어
낼 수 있을만한 성질의 눈빛이 아니였다. 그래. 남을 짓밟아봤음직한 눈빛.
그래. 2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나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난 그리 특별한 놈이 아니었다. 그저 남보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시골이 아닌 서울
에서 전학왔다는 것이 첫 번째요, 붓을 조금씩 끄적거릴 수 있단 게 두 번째...?
전학온 몇일 뒤는 평온해보였다. 난 그것이 폭풍전야의 날들인지도 모른체...
그는 나를 불렀고, 나는 그 눈빛. 그래. 그 복종하란 눈빛, 복종해야만 한다는 그 눈빛.
그 눈빛에 압도된채 그를 따라갔다. 그는 내게 무엇을 요구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거부했다. 그것이 부당했기에, 정당하지 못했기에, 내 마음속의 도덕관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거부한 뒤에 나는 내 자신속에 감춰진 정의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래. 나는 그 때 그 정의감이란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정의의 천사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거부하고 저항해야만 하는 유혹의 악마 였다.
하지만 내가 거부 할 수 있는 정신은 있었지만 피폐해지고 피로해진 몸이 있었다.
그는 급장이었다. 흥. 모르지 그가 어떻게 해서 급장이 된 건지는...나처럼 다른 이들도
그 눈빛에 압도되어 그를 선택해야만 했을지도...무엇이 어찌되었든 난 지금 피로하다.
왜냐구? 난 지금 그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굴복한 것이다...아니아니!! 내 정신만은
아직도 멀쩡하다. 절대로 그에게 굴복하지 않을 불굴의 정의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데...너무 힘들다..하지만 정의는 굴복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악이 숨쉬고 있는 한
내 정의도 사라지지 않고 불타오를 것이다, 그렇게 믿었던 나였다. 하지만 내 심장 깊은
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을 줄만 알았던 정의는 이미 국어사전에 명시된 그것이 아니였다.
그래...이렇게 힘든데...남들은 그에게 자신의 능력 조금씩을 할당하고 평안과 안락,
그리고 조금의 보상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럼 나는? 나도 그에게 줄만한 능력은 있다
믿었다. 그래...내 그림 실력이면...그는 미술에서 수 를 받고 나도 예의 그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정의...를 지켜봤자 이렇게 힘들어...
내 속의 정의는 죽었다. 내 마음 속엔 이미 선악과의 달콤한 수액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그의 힘을 내 능력과 바꾼 채 평안함, 약간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래...정의 따위...지켜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데...흐...누가 알아주기나 한대?
그래. 그래.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것은 이거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바에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코 앞, 눈 앞에 있다구. 난 그것을 선택했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거야. 절대로. 그리고 이 선악과의 수액을 달콤하게 즐기겠지. 말라
비틀어져 그 씨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즐기는 거야.
난 수액을 맛있게 즐거이 흡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오면서 부터
그 수액의 물줄기는 조금씩 미약해져가고만 있었다. 아니, 이제 선악과를 제공해주던
아낌없이 주던 나무는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뿌리 속부터 썩어있었던
상태다. 그래. 이제 말라 죽을 때가 다 되었지. 이제 서서히 발을 뗄 때도 되었지.
그래. 다시 정의를 실현하는 거다. 이미 내가 원하던 경지는 다 이룬거야. 내가 하던
행동들을 보던 이들은 아부하고 아첨하고 비겁한 삶이라 욕하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이고 내 의지가 원하던 것이니 그 누가 욕해도 상관없다. 내가
결정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의지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내 의지는 언제부터인가
지금의 상황에 따라서, 매끄럽고 유동적으로 변해있었다. 모든 상황에 나에게만 유리
하도록, 나만이 적응할 수 있는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내 손이, 내 발이,
내 몸이, 내 의지가.
`이봐...이제 니가 니 손으로 죽였던 정의가 살아나고 있어..`
-아냐..난 이미 옛날의 정의를 살릴 수 없어...
`아니야...잘 보라구...이제 너는 정의를 외치면 영웅이 될 수 있어.`
-아냐...그럼 난 위선자가 될 거라고...난 위선자가 되는 거야...
`그렇지 않을꺼야...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해...하지만 이젠 아니잖아?`
-정말...사람들은...이제 두려워 하지 않는 걸까...?
`물론이지...과거에 있었던 니가 생각한 부정한 행위란 잊어버려.`
-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날 보고 위선자라고 욕할 꺼야...
`아니야...아니라구...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뿐야...넌 한 병태야...정의의 한 병태...`
-저..정의..저..정의의 한 병태?...그...한 병태.....?
`그래..하늘에서 내려온 불협과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 천사...넌....한...병태야...
-저...정의의 천사...? 불협과 타협하지 않는...?....
이윽고 그를 잘라내기 위한 톱질이 시작되었다. 난 진두에 서서 톱질을 암암리에
지지하고 있었다. 톱질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선악과를 먹던 아이들 대다수가
차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릴 지원해 주는 커다란 정의. 담임 선생님.
그래. 결국 그 나무는 쓰러졌다. 하지만 달콤한 선악과 또한 이젠 없다. 그래도 나는
이 한 병태는! 정의의 천사 한 병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이 순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정의의 천사! 하늘에서 내려온 정의의 천사!
비록 과거에 현실과 타협한 위선자라고 욕하겠지만 나는 오늘을 위해 그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욕할 수 있겠지만, 난 지금 영광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예와 영광이 내 손아귀에 있었고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날 찬양하고
있을테지? 저 아이가 그 무섭던 유혹의 눈빛을 이겨내고 톱질을 시작했다고!
그래! 나는 한 병태다.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천사! 고결한 천사!
그렇게 자아도취되어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셨다.
"빼앗긴 권리를 찾을 생각도 안하고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난 그렇게 그 말 한 마디에 위선자가 되고 말았다.
그래...나는 일그러진 영웅이 되고 만것이다. 결국 내가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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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원작과 달리 한 병태의 양면성을 조금 부여했습니다. 그는...기회주의자죠.
제 눈에는 그렇게 비쳤습니다.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천사인척 하는
인물이죠. 막상 자신에게 위해가 끼치자 그 유혹의 선악과를 자청해서 먹어버린...
왠지 유혹의 손길이란 무섭습니다. 저도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정말 우리는 이렇게 유혹의 손길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데도
약간의 메스꺼움이 느껴지는 군요. 저는 위선자 입니다. 글 속의 한 병태가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안락과 평안만을 위하는 그런 위선자가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지요. 하하하...지금 그들도 그럴까요? 저처럼 위선자였습니까?
평소 GG 를 외치던 그들이 위선자란 말입니까? 한 순간의 유혹은 못이기는 걸까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위선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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