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봤던 경기중 가장 압도적인 밴픽 압살경기가 이 경기가 아닌 가 싶습니다. 생방으로 볼때 정말 감탄했고 실제로 김동준해설 역시 SKT의 밴픽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떤 상황이 진행된건지 복기해보고 싶었습니다.(좀 늦었지만요)
밴장면은 생략되었지만 안 쓸 순 없죠.
우선 SKT는 블루팀임에도 불구하고 칼리스타와 그라가스 그리고 르블랑까지 모두 밴합니다. 칼리스타와 그라가스는 풀리면 선픽으로 무조건 가져가려 할 정도로 핫한 챔프들입니다. 근데 그런 챔프들을 블루진영인 SKT에서 모두 밴해줍니다. 마치 나진에게 너네 이거 밴하고 싶었지?우리가 대신 밴해줄테니 다른거 밴해봐 하는 듯 보입니다. 더불어 르블랑도 밴해줍니다. SKT를 상대로 레드진영에서 밴할법한 것들을 모두 자체밴을 했네요 뭔가 꿍꿍이가 있어보이지만 밴만으로는 확신하기 힘듭니다.
나진은 아지르를 첫번째로 밴합니다. 요즘 미드라인에서 가장 강한 챔프중 하나로 평가받다보니 레드진영에서 자주 밴해주는 모습이 나오죠 SKT쪽에서 칼리스타에 이어 그라가스를 밴하자 나진은 카시오페아를 밴합니다. 1경기에서 카시오페아에게 제대로 게임이 터졌기때문에 카시오페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카시 자체가 워낙 강한것도 있고요. 뒤이어 알리스타를 밴합니다. 1경기에서 울프의 알리스타에게 당한것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SKT쪽에서 르블랑을 밴해줬기때문에 (나진 입장에선) 밴카드 한장이 여유가 생겼고 그 한장을 알리스타에게 투자해줍니다. 전판을 생각해보면 나쁜 판단은 아니였을 겁니다. (하지만...)
밴이 완료된 뒤 SKT는 바로 세주아니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SKT의 밴픽 설계가 시작됩니다.
세주아니 선픽을 보고 나진은 쓰래쉬와 렉사이를 가져갑니다. 렉사이의 경우 섬머시즌 들어와 승률이 별로 좋지 않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각광받는 정글중 하나입니다. 보통 롤챔스를 보면 그라가스 세주아니 누누 이블린 렉사이 이렇게 5가지 챔프들이 많이 등장하더군요. 쓰래쉬는 서포터계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을 만큼 선픽박기도 무난합니다. 성능도 좋고요
여기까지의 그림을 보면 나진은 그냥 무난하게 가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거 같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나진만 하는 건 아니긴 합니다.)
이를 본 SKT는 잔나와 루시안을 가져갑니다. 잔나는 라인전도 준수한 데다 아군을 지키기도 용이하고 시야싸움에서도 굉장히 좋은 서포터입니다. 연약하게 생긴것과는 달리 미드로밍을 갈 떄도 쏠쏠하게 활약하는 챔프죠. 그리고 뒤에 최종조합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잔나픽은 SKT에겐 수호신이 되고 나진에겐 대재앙이 되어버립니다.
나진의 다음 선택은 나르와 징크스입니다.
탑의 선택지로는 마오카이 / 나르 / 럼블 / 헤카림 / 노틸러스 / 쉬바나 정도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무난한 건 앞선 4개의 챔프들이라고 생각되고요.
나진 입장에서 마오카이를 가져가자니 마린의 럼블이 부담스럽습니다. 당장 1경기에서 마오카이를 픽했으나 럼블에게 당하기도 했고요.. 역으로 럼블을 가져가자니 나르랑 헤카림이 부담됩니다. 헤카림을 가져가기엔 또 마오카이랑 나르가 부담되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진 입장에서 제일 무난한 건 나르였습니다. 왜냐면 적어도 위의 챔프들 사이에선 딱히 상성을 타지 않고 라인전 주도권을 잡을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나르가 한타가 나쁜 챔프도 아니고요 한가지 꺼림칙한 건 라인전주도권과는 별개로 텔포 주도권은 항상 적 탑솔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고 이니시 역시 조건부라는 점입니다. (이 역시 분노때문)
나진 입장에선 탑을 마지막까지 숨기느냐 아니면 미드를 마지막까지 숨기느냐를 놓고 고민했겠습니다만 결국 일단 탑은 항상 무난무난하게 흘러가는 편이니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나르를 픽하고 대신 미드를 보고 픽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나르와 징크스를 픽합니다. 그리고 이 무난무난이 나진에게 대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초석이 되고 맙니다.
SKT의 마지막 2개의 픽은 바루스와 누누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픽은 나진에게 제대로 카운터펀치를 날려버리고 맙니다.
미드 바루스가 나올 수 있는 근거는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바루스에게 라인전과 한타에서 부담을 줄 수 있는 미드 챔프가 없다.
-> 르블랑은 밴, 카시오페아는 상대가 밴
둘째 상대 탑이 마오카이랑 럼블이 아니다
-> 뚜벅이인 바루스에게 확정 CC를 갖고 있는 마오카이와 원거리 이니시가 가능하며 진형을 붕괴시키는 이퀄라이저를 갖고 있는 럼블은 매우 큰 부담입니다. 근데 그 둘다 아니네요?
셋째 바루스에게 가장 큰 위협을 줄 정글러들과 서포터가 없다.
-> 배치기에 이은 술통은 바루스에게 위협적일 것입니다. 근데 SKT가 먼저 밴했습니다. 세주아니의 궁극기 역시 바루스에겐 부담될 겁니다. 근데 SKT가 먼저 가져갔습니다. 알리스타는 바루스의 궁극기를 씹고 전장이탈을 시켜 딜로스를 유발시킬 수 있는 바루스가 상대하는 서포터중에선 최악의 상성중 하나입니다. 나진이 밴해줬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루스에게 위협이 될만한 챔피언이 밴을 하는 과정에서 4가지나 떨어져나갔습니다. SKT가 나진입장에서 밴하고 싶었던 것들을 선수쳐서 밴해주자 나진은 1경기에서 자신들을 고통받게 했던 챔피언들(+아지르)를 밴하면서 바루스가 미쳐날뛸 판을 만드는데 동조하게 된 셈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루스를 픽하기 가장 껄그럽게 하는 탑챔프라면 아마도 럼블과 마오카이였을 겁니다. 특히 럼블의 경우 제 아무리 잔나라 해도 원거리에서 날라오는 이퀄을 바람으로 날려주진 못합니다. 하지만 위에도 적었듯이 나진 입장에선 나르 외에는 딱히 선택지가 없던 상황입니다. 마오카이로는 이미 마린의 럼블에게 패배했고 럼블을 자신들이 가져가자니 그럼 마린은 나르를 가져갈거니깐요.
너무 바루스 얘기만 한거 같네요 누누로 넘어가죠
누누 라인전 쎕니다. 유지력도 좋아요 (패시브와 Q때문이죠) 나르는 맞라인전이 성립될 경우 마방템을 반드시 먼저 가야합니다. (실제 경기에서도 맞라인전이 형성됩니다.) 나르의 마방템 = SKT 2원딜이 딜 넣기 좋아짐으로 연결될 거고요 그렇다고 마방템 안가자니 누누 깡딜 쎕니다. 영겁의 지팡이만 맞춰도 깡뎀도 좋고 계수도 좋기때문에 엄청나게 아픕니다. 마방템 안갈 수 없어요 꼭 가야합니다.
거기다 이 누누는 아군 원딜에게 버프도 걸어줍니다. 들어오는 거 차단하는 것도 장난아닙니다. 잔나까지 있으니 그 시너지는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근데 나진의 픽은 쓰래쉬의 사형선고를 맞추는 게 아니면 강제 이니시가 안됩니다.
럼블처럼 원거리 이니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오카이처럼 타겟CC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글러는 렉사이인데 누누랑 잔나 뚫는 게 너무 빡셉니다. 그라가스랑 세주아니가 생각날 겁니다..(..)
나르는 일단 궁극기가 꽂히기만 하면 엄청난 포스를 내뿜습니다만 분노관리때문에 자기들이 원할때마다 이니시를 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챔프는 쿨타임만 신경쓰면 되지만 나르는 분노도 신경써야하고 그 사이에 바루스 포킹에 두들겨 맞겠죠
나진은 마지막 픽으로 룰루를 픽합니다.
징크스의 캐리력을 보조해줄 수 있고 라인전도 무난무난합니다.
문제는 적 팀 조합이 2원딜이라는 거죠
무난무난하게 징크스 보좌해서 이길 수 있는 조합이 아닙니다. 빡세게 압박을 가해야하는 데 룰루를 상대로 바루스가 얼만큼 라인전에서 압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룰루 Q쿨마다 바루스가 두들겨 맞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크게 압박을 받을 거 같진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요.)
결과적으로 나진의 이 무난무난하게 하자는 무난한 생각은 이번시즌 최고의 고통을 받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SKT는 무난하게만 하려고 한 나진에게 절묘한 밴픽 심리전을 보여주며 그들을 괴롭히며(..) 승점 하나를 추가하게 되고요
ps. 글 쓰는 거 어렵네요 머릿속에 든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마 이번 걸 끝으로 더 못 쓸듯(..) 원래 계획은 SKT의 설계가 어떤식으로 이뤄졌는지 클템해설이나 김동준해설로 빙의해서 써보고 싶었는데 제 능력으론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