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졸렬하나마 글 솜씨를 좀 발휘해 보려고 했더니 게임 게시판이 닫혀 있네요... 열리는 대로 운영진께서 옮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억하는 글이니만큼, 경어를 쓰지 않는 게 좀더 나아 보입니다. 선수들에게도 존칭을 생략하고자 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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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글을 쓰면서 조PD의 친구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게, 아마도 이 글에 딱 맞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가사 하나하나가 참으로 깊게 다가오는데, 여유가 된다면 음악을 틀어놓고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싶다.
2007년이었던가... 2008년이었던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AWL이라는 게 생겼던 게 아마 2007년 겨울이었지. 그 때 나는 열심히 방 안에 박혀서 수능 공부를 빙자한 1일 3게임을 하고 있었고, 2006년에 룸메이트에게서 물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엄청나게 푹 빠져 있었던 그런 시기였었다. 룸메이트 덕분에 홍진호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었고, 나는 순식간에 홍진호의 팬이 되었었던 그로부터 약 1년 반 만의 일이었을 것이다.
AWL이라는 게 열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이스게임TV라는 웬 내가 처음 들어보는 회사가 방송을? 그것도 스타도 아니고 워3를? 워3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작년 - 그러니까 2006년이지 - 에 다른 룸메이트에게 그야말로 탈탈탈탈 털려서 뭐 해보지도 못하고 GG를 친(더구나 난 그 때 워3를 처음 접했던 때였다) 안 좋은 기억뿐이었기에,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래서 좀 호기심이 동했나 보다. 사실 지금도 테크트리는 잘 모른다. 워낙 워3를 한 지가 오래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것도 뭐 래더 공방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컴퓨터 중에서도 쉽다는 휴먼 인세인 혹은 오크 인세인과 쎄쎄쎄나 하던 그런 때였으니... 휴먼은 뭐 디스 뽑으면 이기고, 오크는 대충 핀드로 50 채워서 러쉬 가면 뭘 해도 질 수가 없고, 데데전이야 선리치 땡굴러쉬 한 방이면 끝나고... 아, 나엘전은 이상하게 못 이기는 것 같아서 안 하던 뭐 대충 그런 때였다. 스타크래프트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워3를 래더를 뛴다고? 나에게는 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뭐 그런 게 있으니 어디 한 번 볼까 하면서 몇 경기를 보았다. 그래, 확실히 뭘 몰라도 보는 재미는 있더라. 무슨 운명을 타고났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당시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잡을 때만 해도 테뻔뻔 프징징 저묵묵이라는 말이 오가던 시기였고 난 그 중에 제일 인기없고 제일 빡세다는(중급자 입장에서 말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테란은 손쉽게 상위권으로 갈 수 있고 토스는 상위권에서 잘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상위권까지는 쉽게 갈 수 있는 반면에 저그는 중급에서 다 걸러지기 때문에 진짜 선택받은 소수만이 할 수 있다는 그런 인식이 있었다) 저그를, 단 한 사람, 홍진호 때문에 골라잡았고, 그와 똑같은 잘못을 이어서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시기에 내가 그의 경기를 본 것이 어쩌면 내 게임 역사상 최고의 행운이자, 최고의 불행이리라. 제목에서부터 딱 감이 왔듯이, 나는 그의 플레이를 보고 언데드를 잡았다. 언데드. 야 언데드 X구려 하지마 뭐 이런 말밖에 아니 나오고, 1.22 패치로 안 그래도 안 좋던 상성이 그야말로 안드로 저편으로 넘어가버린 바로 그 언데드.
내가 그 대마왕의 이름을 처음 접한 곳은, 생각해 보니 나이스게임 홈페이지도 아니고 PGR도 아닌, 엉뚱하게도 파이터포럼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적어도 일 주일에 한 번 정도는 파이터포럼의 여러 기사를 제목만이라도 휙휙 넘기고 있던 그런 때였는데, 그 때 AWL 이야기가 나오니 마니 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케스파가 충분히 개념찬 행보를 보여주고 있지만 오랜 팬들은 알 것이다. 그 당시 케스파란 집단이 얼마나 답이 없었던 집단이었는지를. 아니 워3 선수들을 소개하는데 상대전적에 P T Z가 웬 말인가? 하여간 그렇게 찬밥 취급받던(솔직히 필자도 찬밥 취급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워3 리그가 열리고 그에 관한 기사가 꾸준히 올라오는데 안 볼 수는 없었다. 거기서 6대 언데드니 안드로장이니 하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었다. 6대 언데드... 6대 언데드라는 말을 딱 들으면 누구누구 하고 줄줄 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당시에 AWL에 올라와 있던 6대 언데드가 루시퍼, 포브, 스위트, 수시리아, 레인이었고 고스톱은 왜 안 나오지 하면서 궁금했었던 그 때다. 그리고 고스톱을 밀어내고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는, 이미 작고한, 최악의 불행을 타고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참으로 안타까운 삶을 살다 갔던 젊은 우리의 친구, 고스페가 첫 시즌부터 초초초대형사고를 치고 있던 때였고(이 말로조차 모자랄지도 모른다.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고스페가 8강에서 그것도 첫 판을 내주고 두 판을 내리 따내면서 4강 티켓을 잡는 데 바친 제물은 바로 오크 중에서도 최강의 실력자 중 하나인, 장재호의 방송경기 대 오크전 34연승을 끊어냈던 바로 그 사람, 박준이었으니까).
고스페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에 기회가 있을 때 따로 하기로 하고... 그때 참 묘했다. 그때가 아마 AWL 시즌2였을 텐데, 나는 마침 졸업을 앞두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하루 띵까띵까 놀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8강에서 스위트와 루시퍼가 격돌했는데 스위트는 (역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동족전이 싫다고 오크를 잡아서 언데드를 이겨버리는(...) 그런 선수였기 때문(심지어 동족전이 아닌데도 오크 잡아서 언데드 때려잡는 선수가 하나 더 있다. 리만두...)에,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묘하게 스위트가 짜증이 났다. 스타로 치면 테란으로 토스 잡기 힘들다고 너 토스? 그럼 나 저그할래 이래놓고서 저그로 토스를 얍삽하게(?) 밀어버리는 그런 꼴이 아닌가. 그때 첫 세트를 스위트가 따고 "오크 천정희도 많이 응원해 달라"라는 제목으로 파이터포럼에 기사가 났고, 두 번째 세트를 루시퍼가 따고 "언데드 버리지 않겠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었다.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루시퍼의 경기를 다 찾아보기 시작한 게. 근데, 물론 과거의 일이거니와 워3 판이 워낙 좁고 게다가 스타크래프트마저 과거 VOD를 구하기가 꽤나 힘들었던 때였던지라,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길래 곧 고질병인 귀차니즘이 도져서 바로 포기했다. Replays.net에 올라온 리플레이는 과거 버전을 깔아야 볼 수 있는 식이었기 때문에 몇 개 볼 수 없었고...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AWL 경기를 여럿 찾아서 봤었다. 아, 경기 재미있게 하더라. 정말 재미있게 하더라. 그 때였을 거다. 워3? 다들 장재호를 기억하고 장재호를 좋아하고 분명히 장재호란 인물이 하늘이 내린 인물인 건 맞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고 또 호감가는 선수가 있다면 그건 노재욱이라고 내가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안타깝게도 그 때와 워3 올스타전 이후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다. 16강전에서 포브를 상대로 룬드 브레이서와 스컬지드 본 챠임으로 가고일 싸움 제대로 한판 붙어서 승리를 따내고, 소주 상대로 스톤폼 엠신공을 보여주면서 또 승리를 따내고, 마지막 경기는 숫제 선드레(...) 구울 체제에 핀드를 섞어서 드래곤 호크라이더를 견제하고 선 다크레인저를 갔던 레프리살을 아주 그냥 저 멀리 보내버리고 인페르날까지 보여줬지. 스타크래프트만 할 줄 알았지 워3에 대해서는 요만큼도(아니, 요만큼 정도는 알고 있었으려나?) 몰랐던 내가 그의 플레이에 열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어디 그뿐인가. 토드와의 5경기 트메에서 옵저버가 보여준 화려한 이펙트 언홀리 3스킬(...)과 팬더렌의 근거리 흡수무적, 스톰 어스 앤 파이어 찍고 마지막까지 볼팅 흡수하면서(그때 홀스 캐스터의 해설이 대박이었다. 1번마 데나 2번마 아크메이지(아니, 그 반대였던가?) 드립에 이어서 큰 엉덩이 작은 엉덩이 드립까지 - 빨피 데나를 잡으려고 아크메이지가 쫓아가니까 어디서 튀어나온 팬더렌이 길막고, 팬더렌이 죽을 것 같으니까 또 웬 애콜라이트가 튀어나와서 길막하고, 구울 택배까지 와서 결국에는 살려내는 뭐 그런 상황이었다) 토드를 꺾은 후에 4강에서 오크를 만나 여지없이 깨지고(...솔직히 결과는 예상하던 바였기 때문에 그냥 안 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3/4위전에서 스카이를 만나서 3대 0으로 보내버리기까지...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었군. 루시프론이었나, 이 양반이 대마왕을 상대로 맵핵이었는지 사기맵이었는지 하여간 되도 않는 짓을 했는데 그걸 이긴 적도 있었다(내가 중국어를 아예 잘 몰라서 영어로 대충 번역기 돌려보니 조작게임이라고 나오더군?).
http://w3g.replays.net/doc/cn/2010-8-11/12815487654715089386.html 이 링크 참고. 참고로 루시프론은 리플레이넷에 이 경기 이후의 리플레이가 딱 하나 올라온 것으로 봐서는 이 이후로 철저하게 매장당한 듯하다.
이건 여담인데, 저 선드레 인페르날 경기에서 하는 거 보고, 오 이거 나도 컴퓨터 상대로 한 번 써먹어봐야지 크크 했는데 이게 웬걸? 더 많은 구울을 동원해도 M신공이 안 되는 거 보고 내가 플레이하다가 얼이 빠졌었다(...) 게다가 그 당시 나는 뮤탈 컨트롤에 집중하면 순간APM이 350대까지 치솟고 또 반응속도 안 좋기로 유명한 배틀넷에서조차 뮤컨으로 터렛이고 병력이고 잡아먹는 괴물 같은 컨트롤을 보여주었던 때라 - 한번은 2:2 게임에서 순식간에 한쪽이 털리고 1:2로 버티기 들어갔을 때 뮤컨으로 잡을 뻔한 경기도 있었다. 물론 그"만큼" 멀텟은 안습이었지만 - 더더욱 황당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이것이 바로 차이라는 것인가. 내가 워3를 접었던 게 아마 그 때문이었을지도...
그 해 10월에 장재호와 박준이 만나서 외계인답게 위습과 교신하고(...) 스노우 드랍에서 매스탈론 정석의 극을 보여주면서 한 방 교전으로 경기를 잡았던 바로 그 현장에 있던 그 후, 나는 그 이후로 워3리그에 대한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었고, 솔직히 큰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워3에 관련된 것은 과거의 VOD 몇십 개 정도(장재호 역시 경기를 무지하게 재밌게 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꽤나 많은 VOD를 구하려고 애를 썼었다)와 그의 플레이에 대한 추억, 그리고 내 서명뿐이다. 좀 뜬금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는데... 비록 플레이하는 게임이 다르다만 언젠가 그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화려한 모습을 내가 플레이하는 게임에서도 보여주리라는 마음에서 난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할 때 루시퍼란 아이디를 썼고, 카드 긁고 서명해야 할 때 평소 생각해 둔 서명이 있을 리가 없었기에 아 뭐 쓰지? 그래 떠오르는 것대로 쓰자... 루시퍼를 영어로... 그게 내 서명이 된 것이다(그래서 내 서명은 루시퍼를 필기체로 한 번에 흘려쓴 꼴이다). 당시 내가 얼마나 게임에 미쳐 있었는가와, 동시에 내가 얼마나 노재욱이라는 선수를 동경했는가에 대한 반증이리라.
노재욱 휴가기념 특별경기가 2009년 12월이었고 명경기 집중조명이 그 이전의 일이었으니(그때 처음 봤다. 선드레로 10레벨 찍는 경기) 어느덧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난 셈이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다. 나는 그 즈음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통에 스타크래프트를 접어 가고 있었고(뜬금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왜 그런 순간 있잖은가. 모든 게 꼬여서 모든 게 싫어지는 순간. 바로 그 암흑기였다), 동시에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관한 관심이 거의 사라져갈 때였으니 워3에 관한 관심은 더더욱 적었으면 적었지 많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타판을 떠났고, 나이를 먹었다. 대마왕이 86년생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보다 네 살은 많은 셈이고, 이제 곧 서른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는 얼마나 성장했고, 또 얼마나 변화했을까?
어쩌면 그래서 그에게 제기되는 비판과 또 최근에 그가 올린 것으로 보이는 그의 글의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내게 소중했던 게이머였던 홍진호와 김준영을 떠나보냈을 때의 그런 상실감과는 또 다른, 일종의 비애감이었을까? 그가 PGR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도, 또 그가 그렇게 글을 남겨 주는 것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런 그가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하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의 한때(이자 어쩌면 지금도) 우상이자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팬을 몰고 다닌 그가 이토록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 이런 모습을 보고자 한 것이 참으로 아니었는데.
이스포츠 팬이라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그러한데,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셋을 꼽아보라 한다면 아마도 하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홍진호요, 또 하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노재욱이다. 나머지는 이제 장재호, 김철민 캐스터, 김준영 셋 중에서 하나를 저울질하고 있겠지.
어쩌면 그의 방송을 본 적 한 번 없는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필력 하나 변변찮은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그에 대한 추억이, 요즘 들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리라.
워크래프트의 수명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제 다했다. 그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길 기대하던 순간도, 스톤폼 엠신공도, 인페르날도, 심지어 그가 온게임넷이었던가 워크래프트 전략 중 하나를 소개하는 자리에 나와서 네크로 고기차 전략이었던가 하여간 네크로맨서를 오지게 뽑는 그런 전략을 소개하던 그 장면까지(그 프로그램명이 두더지였지 아마), 그렇게 조금씩, 하나둘씩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이제는 그러한 희미함조차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을까.
면식도 없고 오프 뛴 적도 없고 방송 본 적도 없는, 팬이라고 하긴 좀 머쓱한 뭐 그런 사람이지만... 그러한 사람조차 이렇게 그의 플레이가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 워크래프트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을까.
홍진호가 내 인생에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듯이, 대마왕 노재욱 역시 나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이래저래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비록 그 순간은 대단히 짧은, 불꽃 같은 순간이었을지라도.
그가 잠시나마 나에게 보여 주었던 신선한 충격과 재미는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코 잊지 못할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걷던간에,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응원할 것이다. 홍진호, 김준영, 장재호가 어떤 길을 가고 어떤 결과를 받던간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응원하듯이.
아주 오래 된 노래의 후렴구로 이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이젠 뭘 하더라도 그 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 이젠 바쁘다 말고 가끔씩 전화를 해 보시오
이젠 뭘 하더라도 그 때와 같을 순 없으리오 / 이젠 바쁘다 말고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 줘
이젠 뭘 하더라도 그 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 이젠 바쁘다 말고 가끔씩 전화를 해 보시오
이젠 뭘 하더라도 그 때와 같을 순 없으리오 / 이젠 바쁘다 말고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 줘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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