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불황일 때 엄청 뜨는 괴상한 상품이 있습니다. 바로 라면입니다. 라면은 저렴한 가격에 제법 괜찮은 맛을 보장해 사정이 좋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자를 자처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캠핑 가는 사람들, 재해로 집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 혹은 그냥 면이 좋아서 라면을 찾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라면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조상님들에겐 칡뿌리나 도토리가 구황식품이었지만, 우리의 구황식품이 라면이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가 중에서 ‘여가계의 구황식품’을 자처하는 것이 바로 컴퓨터 게임입니다. 상당한 저비용에 시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어서, 시간이나 비용 문제로 다른 여가를 누리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게임 역시 훌륭한 구원자입니다. 특히 OECD 기준 최장 공부시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의 청소년들과 직장인들은 여가 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게임이 크게 인기를 끄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IMF 시절에 라면 매출이 는 것과 같은 원리다’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일부 어르신들은 게임을 자꾸 마약으로 규정하고 압박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웃기지 마십시오. 게임은 안 좋게 봐도 딱 인스턴트 라면입니다. 게임을 끊게 하는 가장 좋은 해법은 다른 여가생활이며, 이를 누리게 하려면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지금보다 많은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누려야 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 없이 게임 셧다운제 같은 걸 시행하는 행태는 가난한 자들에게 라면을 뺏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고된 노동, 고된 공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은 게임 열풍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것 외에도 여러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너무 낮다고 다들 걱정하던 출산율과 독서 권수가 오르고, 프로스포츠 관객이 늘어나며, 가수들의 앨범 판매량이 늘어납니다. 여행 갈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관광으로 먹고 사는 지역 소도시의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경쟁과 생산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든 단계에 들어섰으며, 이를 해결할 수단은 복지와 여가입니다.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여가계의 구황식품을 없애버리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직무 유기입니다. 더군다나 한때 놀기를 정말 좋아했다는 한국 사람들이 구황 여가를 몰아내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