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서평-
안녕하세요, 피지알에서 죄많은 청춘을 보낸 주다스페인입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양대방송사 출범 그리고 1.08패치 이후 마재윤 등장 전까지 저그는 테란에 이어 2인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게임 내적으로(그리고 외적으로도) 주목을 실력만큼 받지 못한 철저한 비주류의 종족이었습니다. 양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론 저그가 매우 이질적인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고 게임 내면의 논리를 가시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점, 종족 외형이 이질적인 점,
저그 게이머 출신의 해설이 부재했던 점, 그리고 저그를 이해한 사람들도 그것을 말로 풀어 설명하기 어려운 입스타의 난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은, 이런 몰이해로 인해 저그 선수들의 수준높은 경기가 묻히고 그들의 업적과 가치마저 지워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저저전은 방송사 흥행참패의 주 원인이었고 단조로운 외적 양상으로 인해 주목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아래는 이런 저그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저저전을 분석을 통해 좀더 쉽게 바라보며 묻혀진 저그 선수들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글입니다.
글쓴이의 주장대로 저저전의 이해는 저그의 라바회전조율이나 독특한 메카니즘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이해를 줄것이라 전해 드리며
이만 부질없는 옮긴이의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글쓴이는 꾸에에님입니다. 사진은 잊혀지고 묻혀진 저그인 조용호 선수입니다.
필자 분께선 강력하게 구지성 양의 사진을 요청하셨지만 첫글에 사용했고
이번 글의 주역인 만큼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올립니다.
*사진 각색자는 rivers님입니다.
**글에 앞서 식욕을 돋구는 에피타이저 격인 '저저전 개괄'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https://cdn.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2&page=1&sn1=&divpage=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841
***출처는 포모스 매니아칼럼입니다.
http://www.fomo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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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대 마재윤 - tide was high"
0. 마에스트로의 가장 격렬했던 대립
마재윤의 최강자 등극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우승 이후에는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었으며, 이는 방송국과 협회의 연합으로 요약되는 이스포츠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거대규모의 탄압을 박살낸 경이로움에 대한 찬사이자 패배의 인정이었다. 이후 3.3에서 일격을 맞은 이후에도 당대최강 마재윤이 희석되기까지 몇 번의 패배가 더 있었어야 했으니 참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UZOO에서 시작하여 3.3 직전까지 이어지는 마에스트로의 시절, 오로지 승리만이 기록되었어야 할 그의 기간에는 단 하나의 오점이 존재한다. 바로 조용호의 존재이다. UZOO부터 Pringles S1까지 3번의 연이은 리그에서 다전제 4번에 걸쳐, 그 중 3번이 5전3선승제였던 조용호와의 대립은 마에스트로의 가장 오랜 대립이었으며, 가장 격렬한 것이기도 했다. 둘은 3번의 리그를 보내며 16경기에서 혈전을 치뤘으며 전적은 8:8로 호각, 다전제 승부도 2:2로 호각이었다. 협회와 방송국이 뭉쳐서 발악이라고 부를 정도의 탄압을 했어도 이룰 수 없었던 일을 선수 하나가 해냈다고 하니 역시 실력에 대항할 수 있는 건 결국 실력뿐인가 하는 감상에 젖기도 하는데, 당시 둘의 전적은 아래와 같다.
UZOO 승자결승전에서 마재윤의 3:2 승리. - 마재윤 우승
CYON 승자결승전에서 조용호의 3:2 승리.
CYON 결승전에서 조용호의 3:1 승리 - 조용호 우승
Pringles S1 8강에서 마재윤의 2:0 승리 - 마재윤 우승
이기는 쪽이 그 시즌을 우승한다, 우승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무조건 넘어야 하지만 또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었던 둘의 관계는 결국 마재윤을 위한 조연에 그쳐버린 전상욱, 강민, 진영수 등과 마재윤의 관계와는 확실하게 구별이 되는 라이벌의 것이었다. 당연히 둘의 경기는 당시 등장했던 모든 빌드와 컨트롤이 집대성되고 또 축약된 밀도 높은 것이었다. 나아가 저그의 모든 것을 계승했다 평가받은 마재윤에 대항하는 조용호의 반격은 실로 집요한 것으로 1해처리라는 오래 전에 사장된 전략까지 다시 꺼내들며 당대 저저전의 모든 것에 하나까지 더 더하는 진수를 보여줬다.
1. 長江後浪推前浪
1) 지는 달, 떠오르는 태양
목동체제와 더불어 화려한 데뷔를 한 조용호는 이윤열에게 세 번 격파당하며 너무도 짧은 전성기를 마감하고 만다. 그러나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고 있었음에도 조용호는 특유의 꾸준함으로 MSL 연속출전기록을 갱신하고 있었고, 그 꾸준함이 탄탄한 실력에 의해 뒷받침된 것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정글로 통칭되었던 더블엘리미네이션 체제 아래, 3번을 거른다 하여 좁은 문이라 불리던 서바이버리그를 뚫은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으며, 나아가 패자조8강탈락시 다음 리그에 출전 자체가 불가능했던 규정 등으로 인해 당시의 MSL은 누구든 출전할 수 있는 지금의 MSL과 달리 연속출전만으로도 대단한 선수임을 증명할 수 있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이윤열과 전성기를 같이 한 이후에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언제나 결승 바로 앞에서 주저앉았으며 이마저도 강민의 등장과 최연성의 반격 및 박성준의 우승과 삼신전의 도래라는 여러 이슈들 앞에서 묻혀버렸으니 조용호라는 선수는 그 꾸준함과 빛바래지 않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잊혀져버리는 것 같았다, 아니 잊혀져버렸다.
이에 비해 마재윤은 데뷔하자마자 조명을 받은 선수는 아니었으나, 그를 주목한 몇몇 사람들에게 일찍부터 거목의 가능성을 보이며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었다. 팀리그 결승에서도 활약했으나, 엠비씨게임의 여러 리그를 중심으로 활약했다는 것이 제대로 된 주목을 받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는데 덕분에 그는 자신의 스타일이 정립되기까지 꽤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계기는 UZOO MSL이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리그 역사상의 대립 중 유일하게 압도적인 승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막을 내린 삼신전의 선수들과 함께 참가한 리그에서 이 대립의 일원이었던 앞마당 먹은 이윤열을 압도적으로 눌러버리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나아가 삼신전의 박성준, 박태민, 이윤열이 모두 조기탈락해버리고 지금 최강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아무도 자신있게 답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우승 트로피를 쟁취할 기회까지 생겼다. 이후 당시 프로토스들 중에서는 저그전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전태규를 이기고, 박정석마저도 격파하며 승승장구. 결국 조용호와 승자결승전에서 격돌하게 된다.
2) 당시 저저전의 절반
당시의 마재윤이라는 선수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1경기에서 바로 드러났다. 마재윤은 12스포닝으로 조용호의 9스포닝 이후의 조급한 저글링 컨트롤을 드론블럭을 동반해 막아내며, 네오 레퀴엠의 짧은 러시거리를 노린 조용호의 저글링은 마재윤의 저글링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본진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호에게 이것은 자신의 자랑인 컨트롤에서 밀려버린 것을 의미했으며, 두번째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마당을 가져간 조용호가 발업을 포기하고 레어를 가는 것을 확인한 마재윤은 다수의 저글링을 둘로 나눠 하나로는 조용호의 수비병력을 끌어내고 다른 하나로는 본진을 공격하는 대규모 저글링 컨트롤의 진수를 통해 멀티태스킹의 우위를 보여주며 2:0으로 달아나버리고 만다. 특히 조용호는 1경기에서의 빠른 저글링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패배, 이어 2경기에서도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레이드어설트의 12시에 위치하고도 무릎을 꿇으며 대부분이 조용호의 셧아웃을 예상하는 상황까지 와버리고 만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조용호는 스포닝을 생략하고 앞마당부터 가져가며, 안전하게 경기하려는 마재윤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시작한다. 이후의 경기는 무탈리스크와 스커지 싸움으로 흘러갔는데, 건맨무탈과 예상요격을 하는 스커지의 싸움에서 조용호는 원류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저력을 발휘, 끝까지 유리함을 지켜내며 결국 한점을 만회한다. 이후의 경기에서도 먼저 앞마당을 가져가는 빌드로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스포어 콜로니를 통해 마재윤의 저글링-스커지를 방어해내며 먼저 무탈리스크의 방1업을 완료하는데까지 성공하고 반격에 나선다. 마재윤은 늦은 앞마당 멀티를 해처리 추가를 통해 만회하며 하나 더 많은 해처리로 끝까지 조용호를 괴롭히나 조용호는 무탈리스크를 통해 마재윤의 시야를 막아버리고 몰래멀티까지 성공해내며 극적으로 2:2까지 따라잡는데 성공한다.
마재윤의 기세는 강력했지만, MSL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저그인 조용호는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특히 본진 트윈 해처리 중심의 마재윤을 상대로 네오레퀴엠의 1경기 이후로 계속해서 앞마당을 가져가는 조용호의 심리전은 마재윤으로 하여금 이를 갈게할 정도로 교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승부처는 네오 레퀴엠으로 돌아왔다. 승부를 낼 상황에서 조용호가 던진 카드는 1경기의 9스포닝과 정반대인 12해처리라는 극단적인 빌드.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마재윤은 조용호의 앞마당지향빌드를 확신하고 9스포닝을 던진다.
그리고..
마재윤은 조용호를 3:2로 격파하고 결승전에 안착, 먼저 해운대로 초청받는다.
3) 평가
이미 전성기가 지나버린 조용호로서 기세가 오르는 신인인 마재윤을 상대하는 것은 참으로 껄끄러운 일이었으며, 빌드나 위치의 우위를 점하고도 패배했던 1,2경기는 조용호가 이제는 구시대의 저그이자 쇠퇴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용호가 저저전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요인은 당시 저그로서는 따라할 자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손빠르기에서 나오는 미세한 컨트롤과 멀티태스킹의 우위에 있었는데, 이것이 봉쇄되어버린 것은 마재윤에 비해 조용호가 갖는 장점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경기에서 미세한 우위를 끝까지 지켜내는 조용호의 모습은 그가 MSL와 궤적을 같이 한 저그가 어떤 저력을 갖고 있는지 확인한 것이었으며 문제는 마재윤이 그보다 더욱 뛰어났다는 것 뿐이다. 한 번이나 두 번이라면 몰라도 세 번 연속 앞마당을 가져간 저그를 상대로 마지막 경기까지 몰린 저그라면 머릿 속이 복잡해지는 것이 당연하며,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카드는 9스포닝과 같은 극단적인 빌드를 막을 수 있으면서도 어정쩡하게나마 앞마당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것을 노린 조용호이기에 앞마당을 가져가는 빌드 중 가장 부유하며, 또 앞마당을 가져가는 다른 빌드를 압도하는 12해처리를 네오레퀴엠이라는 맵에서 자신있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재윤은 9스포닝을 선택했고 오버로드 서치로 조용호의 앞마당을 확인하고 승리를 확신한다. 패자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박정석이니 도박수를 던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이후 심리전의 달인이자 낙시의 대가로 이름을 떨친 마재윤을 고려하면 조용호의 앞마당을 예상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아직까지 별명 하나 없는 저그 마재윤은 그렇게 MSL 저그의 중심이었던 조용호를 밀어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현재 MSL 상대전적
조용호 2 : 3 마재윤
2. Counter Attacks
1) Take off
마재윤은 UZOO MSL 우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건 처음 봤다는 말은 사라져버리고 프로토스만 잡고 우승한 운빨 우승자로 몰려버렸으며, 최연성과 조용호마저 꺾은 박정석, 영웅의 귀환마저 막고 흥행까지 엉망으로 만든 역적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마재윤을 발견한 사람들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으며, 양박 이후 다시 한 번 이 바닥의 중심을 저그로 돌릴 재목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조용호는 결승을 눈앞에 두고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말았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테란전이 무너졌고 프로토스전마저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양박의 등장 이후 흥행카드로서도 가치가 없어진 조용호는 MSL에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리그 관계자들에게는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마재윤에게도 조용호에게도 UZOO MSL은 아쉬움이 큰 대회였으며, 차기 리그는 이 개운치못한 상황을 해소할 기회로 둘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일정조절 실패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CYON MSL이 개막했다.
2) Rise of Maestro
CYON MSL에서는 김성제의 견제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성학승의 박정석에 대한 설욕극, 강민의 연속역전극이 나오기도 하며 대회 자체는 풍성한 내용을 자랑했는데 무엇보다 마재윤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대회였다. 바로 최연성을 압도하는 저그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전까지 박성준에게 발목을 잡혔던 것을 제외하면-삼신전 시절의 박태민마저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저그 중에는 적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받은 최연성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마재윤에게 패배하며 마재윤의 테란검증론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최연성이 2:0으로 저그에게 졌다는 소식은 최연성의 무적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재윤에게 관심을 보이기기 시작했다. 이때 PGR21이라는 곳의 felix라는 사람이 주도한 마재윤의 별명짓기도 성공적으로 끝나 마재윤은 결승전에서부터는 마에스트로라는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공식석상에서 소개되기 시작했다. 흥행의 역적, 운빨우승자가 드디어 저그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마재윤에 비해 조용호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경기를 조용히 풀어나갔으나, 이번에도 스팟라이트는 그를 비껴 이번에는 박정석 대신 마재윤을 비추고 있었다. 당시 네오 포르테와 더불어 저그의 무덤으로 평가받은 알포인트에서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주며 서지훈을 패자조로 떨어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듀얼토너먼트 때문에 서지훈이 경기를 포기했다는 루머가 퍼진 이후에는 운빨로 이기는 저그로 낙인까지 찍혀버렸다. 주위에 대한 평가마저도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는 결국 승자결승까지 진출했으며, 그의 대진상대는 이전 리그와 마찬가지로 마재윤이었다. 두 시즌 연속 똑같은 선수가 승자결승에서 맞붙게 되었으나 이전 리그와 비교하면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그나마 KTF 출신에 인지도 있는 저그이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응원을 받았던 UZOO 때와 비교하면, 지금에 와서는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재윤의 결승진출을 바라고 있었고 패자결승에서 최연성이 올라와서 다시 한 번 5전제에서 자웅을 겨루기만을 염원하고 있었다. 최연성의 팬들은 최연성이 높은 곳에서 마재윤을 박살냄으로써 2:0의 수모를 잊고 최연성을 이기는 저그는 있을 수 없음이 증명되기를, 마재윤의 팬들은 마재윤이 최연성을 결승에서 꺾음으로써 최연성 시대의 확실한 종식이 선언되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조용호로서는 어느 쪽으로든 자신의 패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좋지 않은 상황, 나아가 마재윤에게 패배한 전례까지 추가되어 CYON MSL은 KPGA 때부터 짧지 않은 세월을 투쟁해온 조용호를 위해 마련된 묘지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내의 저그로 불리던 조용호라는 선수의 진가가 드디어 드러나며, 승자결승이라는 리그의 막바지에서 조용호는 뒤늦은 자신의 반격을 준비하게 된다.
3. 구시대의 유물
1) 역전된 위치
마재윤은 조용호 따위는 자신의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UZOO 당시 그가 신경썼던 것은 이윤열이었고, 지금 그가 쳐다보고 있는 건 최연성 하나였다. 이미 우승자에 가장 어울리는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었으며, 필요한 건 인기가 많고 강하다 평가받는 선수들을 조금 더 높은 무대에서 격파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 뿐이었다. 저저전마저 그를 자극하지는 못했는데, 이전 리그의 승자리그에서 조용호에게 2번 패배한 것은 빌드파악이 늦었기 때문이었으며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오만이 아님은 경기를 통해서도 드러났으며 조용호는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단순한 명제가 먹혀들어가지 않는 저저전이었지만 최소한 마재윤에게는 통하는 것이었다. 9오버 이후 상황을 파악하여 스포닝풀을 짓거나 드론을 뽑아 빌드 간의 강약관계에서 최대한 우위에 선다. 혹시 손해를 보더라도 그 상황에 맞는 최적화-예를 들어 가스채취에서 뒤진 경우, 해처리 추가를 통해 더욱 강한 압박을 함으로써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걸 막아버린다. 압도적인 컨트롤과 멀티태스킹으로 격차를 좁히고 경기를 뒤집는다. 이 마재윤의 승리공식은 저저전의 시대적 분류에서 중기 저저전의 진수였던 조용호와 홍진호가 보여준 선도적인 면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저저전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려 함을 의미하고 있었다.
조용호는 말그대로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그의 장기였던 대규모 저글링 운용 속에서 빛나는 미세한 컨트롤과 동시교전 시 멀티태스킹은 결코 마재윤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었으며, 빌드 우위조차 마재윤의 강한 압박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임요환과 연계되지 못했기에 흥행과도 관련이 없었으니 이제는 그만 사라져버리기를 종용하는 수많은 시청자들과 리그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결승진출을 이야기한다면 KTF 준우승자 징크스를 들먹이며 비웃던 사람들이었고 팀에서도 MSL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세마저도 마재윤의 편에 있었으니 조용호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악재 속에서 CYON 승자결승이 시작되었다.
2) 난타전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의 1경기는 아주 싱겁게 끝났다. 9오버스포닝을 한 마재윤이 12멀티해처리를 한 조용호를 저글링만으로 격파해버렸다. 승자결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허무한 경기, 마재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이후 조용호의 집요함에 마재윤답지 않은 대처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조용호의 손바닥 위로 한걸음씩 몸을 옮기기 시작한다.
러시아워2에서 조용호는 오버로드서치에 실패하고, 12멀티해처리를 가져간 마재윤에 비해 12스포닝멀티해처리를 가져가며 불리하게 시작한다. 개스마저 마재윤이 먼저 채취하기 시작하며 이후의 무탈리스크 싸움에서 불리한 위치를 점할 것을 모두 예상한 가운데 순식간에 경기의 추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조용호의 건맨무탈이 무탈리스크 교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작렬하며 마재윤의 스커지를 모두 떨어뜨린 것이다. 마재윤답지 않은 스커지와 무탈리스크 컨트롤이나 동시에 조용호의 컨트롤이 빛난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경기는 저글링과 무탈리스크의 난타전 속에서 조용호가 조금씩 격차를 벌려나가다가 마재윤의 본진에서 그의 무탈리스크를 전멸시키며 거기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재윤은 결코 쉽게 지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도 저글링의 조용호 본진난입을 성공시키며 두 번이나 조용호의 무탈리스크를 그의 본진에서 물리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조용호는 한 번 벌어진 격차를 유지하고 스커지와 저글링을 이용하여 결국 gg를 받아낸다.
경기상황은 1:1이었지만 기세는 조용호에게 있었다. 마재윤은 빌드의 우위를 두 번이나 점하고도 한 번밖에 승리를 가져가지 못했다. 그나마 초반에 벌려놓은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한계 같았던 예전의 조용호와 비교하면 지금의 조용호는 완전히 다른 선수 같았다. 물론 마재윤은 당황했다. 그러나 흔들리지는 않았다. 조용호를 과소평가한 자신을 반성하고 어떻게 해서든 기세를 다시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먼저 결승으로 올라가 최연성을 기다리겠다는 심정으로 3경기 다크사우론으로 돌입한다.
3) 구시대의 유물
'정말 바보님하, 가르쳐줄까?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타이밍이라 생각하거든.'
- 小倉優子
훗날 마재윤은 CYON 당시를 회상하며 '조용호의 1해처리에 자신이 희생당했다'고 인터뷰한다. 그러나 CYON MSL이 끝나기 전까지 마재윤은 자신이 처형대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머리회전과 눈치가 빠르고 그래서 라바관리를 최대한 활용한 순간최적화에서 홍진호만큼 또는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던 마재윤마저도 모르고 그대로 당해버린 것은 조용호가 1해처리를 전가의 보도인양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마재윤은 CYON MSL이 끝나기까지 자신이 왜 졌는지조차 알아차릴 수 없었다.
물론 1해처리는 지금의 테란더블컴이나 프로토스더블넥처럼 사용될 수 있는 빌드는 아니다. 저저전의 특성상 그것은 상대방이 알아차린다면 조금만 자신의 체제를 비틀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대항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에 사장되어버린 빌드였다. 따라서 조용호는 1해처리를 남용할 수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기에서 이미 현대적 저그전을 하고 있는 마재윤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것으로만 상대해야 했다. 물론 조용호는 이때 개안을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이전 리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며 그래서 마재윤과 용호상박의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재윤은 이미 시대가 원하는 저그였으며 시대의 맹렬한 돌풍을 조용호가 버텨내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이 조용호의 목을 조르며 이제는 사라지라고 속삭이기 시작한 가운데, 조용호는 이미 사라져서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는 1해처리를, 그것이 흡사 지금 자신의 모습 그 자체인 것처럼 꺼내든다.
현재 MSL 상대전적
조용호 3 : 4 마재윤
4) 1해처리레어
다크사우론은 멀티가 쉽다고 하지만 병력의 기동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추세였던 당시에는 오히려 멀티방어가 어려운 맵이 되었고, 따라서 조용호와 마재윤 둘 다 9스포닝으로 경기를 시작한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차이는 개스를 어디에 사용하는가에 있었는데 조용호는 소수의 저글링 확보 이후 바로 레어테크를 탔고, 마재윤은 대세를 따라 저글링 압박을 위해 발업에 투자했다. 마재윤은 저글링을 더 확보한 이후 둘로 나눠 소수의 저글링으로 조용호의 진출한 저글링을 상대하며 다른 저글링들을 조용호의 본진에 난입케 한다. 이때 마재윤의 저글링 컨트롤이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또는 조용호의 드론블럭이 생각보다 좋아서 조용호에게 드론피해를 확실하게 입혔으나 자신의 저글링부대까지 전멸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조용호의 레어가 완성되고 성큰과 스파이어가 동시에 지어지며 아직 레어조차 가지 못한 마재윤을 압박했다. 게다가 아직까지 발업도 되지 않은 조용호의 저글링은 자신의 성큰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싸울 생각조차 없었으며, 이미 피해를 입어 적은 드론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탈을 뽑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본진 2해처리의 라바를 저글링에 모두 활용한 마재윤은 무탈이 등장하기 이전에 조용호의 본진을 밀어버릴 생각으로 드론 2기까지 동반한 성큰러시를 시도한다. 조용호는 본진에 성큰을 두 개나 추가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마저도 막아버리고 무탈이 등장했을 때 마재윤은 스포어 콜로니를 짓는 것 이외에는 무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후는 마재윤이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는 모양이었다. 저글링 발업을 포기한 조용호는 적은 드론 숫자에도 불구하고 축적된 개스를 활용하여 얼마든지 무탈리스크를 뽑을 수 있었고, 이 무탈리스크들은 스포어콜로니의 사정거리 바깥에서 마재윤의 스포닝풀을 파괴하고 익스트랙터를 날려버렸다. 마재윤은 스포어콜로니를 하나 더 추가하며 방어하려 했으나 이 시점에서 마재윤이 조용호보다 앞서나가는 점은 드론의 숫자 하나 뿐이었고, 이마저도 조용호의 저글링이 난입한 시점에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조용호의 저글링은 발업조차 되지 않았다. 마재윤으로서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굴욕이었으나 더 큰 비극은 자신의 패인을 무모한 2성큰러시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1해처리레어는 저글링 확보의 취약성과 가난함으로 인한 추가병력 생산의 한계로 인해 이미 사장되어 버린 빌드이며, 드론피해를 준 이후 생긴 자원확보의 우위를 살리는 것이 바른 방법이었다고 마재윤은 판단했으나 이것은 절반만 맞은 것으로 이것은 더 큰 무대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는 악재로 작용하고 만다.
조용호와 마재윤의 대결이 MSL에서 시작되고 드디어 조용호가 처음으로 앞서나가는 순간이었다. 다음 맵은 알포인트. 조용호의 리드에 리그 관계자들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어쨌든 4경기가 시작되었다.
5) Victory but nothing
마재윤은 9오버스포닝이후 저글링을 뽑았고 바로 트윈해처리를 가져갔다. 이것은 마재윤이 가장 자신있어 했던 빌드이며, 빌드 간의 강약관계에서 가장 안전함은 물론 본인의 뛰어난 컨트롤과 멀티태스킹을 적극활용해 얼마든지 경기양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조용호는 무리하지 않고 12드론까지 뽑은 이후 익스트랙터를 먼저 지었다. 조용호는 12드론의 힘을 활용하여 바로 성큰을 지었으며, 마재윤의 6저글링을 맞이한 것은 2저글링과 1성큰, 그리고 바로 추가된 2저글링이었다. 마재윤은 저글링을 물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번에도 조용호의 레어가 올라가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1분 가까이 차이나는 레어테크, 아무리 빨리 따라잡아도 스파이어 차이 그 자체. 조용호의 결승진출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신했고, 그때 마재윤의 드론이 본진에서 나간다. 다시 한 번 성큰러시 시도인가, 그러나 마재윤이 선택한 것은 몰래멀티였다. 어차피 저글링이 적은 조용호는 본진에서 나올 수 없으며, 무탈리스크가 자신의 본진을 공략대상으로 삼을 것이 확실한 바 어차피 수비할 수 없다면 자신의 앞마당보다는 타스타팅의 앞마당이 더 안전하다는 당연한 결론이었으나 누구도 그것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가운데, 다크 사우론의 패배 이후 한 경기만에 해법을 찾아낸 마재윤의 능력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본진을 2스포어콜로니로 수비하며 바로 레어를 따라간 마재윤의 멀티태스킹 능력이 빛을 발하며 이후 조용호의 무탈리스크와 저글링은 빠른 레어의 이점을 살리지도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마재윤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뒤늦게 몰래멀티를 발견하기는 했으나 너무 늦은 때였고, 조용호는 gg를 선언한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이 경기는 훗날 중기 저저전의 명경기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이 경기의 승리로 인해 오히려 마재윤은 CYON MSL이 끝나기까지 조용호의 1해처리레어를 제대로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버린다.
6) 초짜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로 돌아와 UZOO MSL 이후로 두번의 다전제가 모두 5전까지 간 상황이었으나 모든 것이 달랐다. 경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분위기도 달랐으나 무엇보다 마재윤은 예상 외로 강렬한 조용호의 저항에 당황하고 있었고 이것은 최종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마당 멀티기지의 방어가 용이한 맵의 특성을 살려 마재윤과 조용호 모두 12스포닝멀티해처리로 경기를 시작하나 바로 차이가 생기는데, 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