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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22 15:22:12
Name 마술사얀
Subject 천재의 마지막 벌쳐
천재가 악마의 본진을 확인하러 SCV 를 보낸 순간이 어쩌면 악마가 짜온 계획의 성공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악마는 최근 천재의 전투 성향을 철저히 분석해왔던거지. 빠른 타이밍의 정찰을 예상하고.

천재의 더블 커맨드를 유도하기 위해 보란듯 노게이트 더블넥을 선택했어.

천재의 대응 악마의 예상대로였지. 천재는 배럭은 짓고 있었지만. 가스채취는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선택의 폭은 넓었어. 그러나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더블 커맨드는

악마의 의도였어.

그러나 아직 관용어구처럼 쓰이던 '앞마당 먹은 이윤열 ' 이란 말을 떠올리면

그때까지만 해도 천재가 불리하다고 할 수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천재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바로 정찰 scv 의

소홀함인데.  드라군이 나오기 전까지 꾸준히 물량과 테크를 파악해야 할 scv 가

어이없이 프로브에게 잡히고 만거야. 천재는 입술을 깨물며 씻을 수 없는 실수를

자책하며 이제 눈을 감은채 신경을  곤두 세우고 악마의 의중을 파악해야 했어.

게이트 물량? 리버? 다크?

그러나 천재는 다른 한가지를 가능성에 포함하지 않았어. 바로 무한 확장이었어.

그도 그럴것이 당시 상식으로는 거기서 더 멀티를 가져가는것은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야.상대가 치고 나오는 물량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 밖에 없는 타이밍이 너무

길거든.  그런데 악마는 그런 상식을 기반으로 한 고정관념을 딛고 바로 또 하나의

넥서스를 건설한거야.

천재는 다른 세가지에 대항하기 위해 수세적으로 움직이느라 악마의 확장을 상상조차

못했지. 방금 말했지만. 그건 분명 scv 가 너무 일찍 잡혔기 때문에 취해야 할 필연적인

상황이랄밖에.

여기 천재는 눈을 감은채 그 미묘한 전장의 이질감에 대해 냄새를 맡았던것일까?

과감하게 다른 멀티를 감행했지만. 악마는 이미 그 시점에 두개의 확장을 더 시도하고

있는 상태였어.천재가 하나를 쫓아가면 악마는 두개를 달아나는 형국이랄까.

난 잘 모르겠다. 그때 천재가 SCV 로 두 본진 사이의 미네랄을 뚫던 그 시각. 몹시 서둘러

벌쳐 없이 탱크로만 전진하려는 그 타이밍. 벌쳐는 전투중에라도 보충하겠다는 각오로

서둘렀던 그 모습....

전투 한번 벌이지 않았는데 이미 전장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천재는 알고

있었던걸까. 천재가 봉인된 그의 오른쪽 어깨를 여는 순간 이미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그것이 되어버린 후였다

탐색전만 벌이던 그들의 아우성 치는 침묵을 천재가 물리치고 오른쪽 펀치를 날리려

어깨를 빼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악마의 오른쪽 펀치가 먼저 천재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한것이다. 헤비급과 라이트급 복서간의 경기가 있다면 바로 그럴것 같다.

옆구리를 강타당한 천재는 휘청이는 몸의 무게중심을 다시 수습하고 뻗으려던 오른쪽

펀치를 되돌려 가드를 올린채 몰아쳐오는 메가톤급 핵펀지를 정신없이 막아내고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가격당해 그쪽으로 잔뜩 수그리고 있는 천재의 무방비 왼쪽 옆구리를

강타하는 악마. 다시 왼쪽으로 수그리면 이죽거리듯 다시 오른쪽을 후려치고.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면서 휘몰아치는 악마의 공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돌리게

할정도로 가혹했지만 그만큼 천재의 맷집은 상상을 초월했지.

그러나 올멀티에서 비롯된 악마의 스태미너는 떨어질줄 몰랐고. 막아도 막아도 몰려오는

질럿과 드라군의 숫자는 불어만 났어. 신기에 가까운 맷집을 자랑하는 천재도 더

이상은 무리였지.

얻어맞더라도 발바닥에서 뿌리라도 뻗은듯 자리를 지키던 그의 스텝이 꼬이고

오른쪽 왼쪽 가드 모두 거의 열려 샌드백 맞든 묻매를 맞아 휘청이기 시작했어.

그래... 이렇게 경기가 끝났다면 난 이 싸움을 그저 흔한 경기로 잊어버리고 말았을거야.




난 거기서 기이한 한줄기 병력이동을 보았다.

약 한부대가량의 벌쳐. 자원을 짜내고 짜내서 병력을 모았다면 응당 마인을 깔고

입구를 지키며 날아드는 펀치를 막는데 사용해야 하건만. 이제 천재는 가드를 완전히

풀어버린채 남은 미약한 힘을 모아 휘청이며 마지막 스트레이트를 뻗은것이다.

악마의 병력이 곳곳에서 랠리를 찍혀 강물처럼 천재의 본진으로 흐르는 가운데 미약한

힘이  역류하는 그 모습. 경기에 대세는 못미치더라도. 그래도 탱크 몇대 벌쳐 몇대가

형태는 갖춰서 나오는 모습이었으면 그런 알 수 없는 기분은 느끼지 못할것 같다.

지금까지의 부대단위의 공격을 보다가 겨우 한부대 안되는 값싼 벌쳐부대가

본진방어를 포기한채 악마의 본진으로 내달리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 슬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이 풀리고, 마우스 피스는 날아갔고. 두발 지탱하기 힘든 상태에서

뻗는 스트레이트. 지지않겠어가 아니라. 그래도 이겨야겠어라는 무모한 저항.

물론 본진 구경도 하지 못한채 이동 도중 그대로 산화했지만. 그 마지막 한기 벌쳐까지

악마의 본진으로 돌진하던 그 마지막 병력들.

2차세계대전 자신의 조국을 침공하는 독일 전차부대에 창을 들고 돌진하던 폴란드의

마지막  기마병 부대를 떠올렸다면 지나친 상상력의 비약일까.

난 이 한부대의 벌처를 이야기 하기 위해 너에게 긴긴,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모르겠다.

말없이 리플레이를 지켜보고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겨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천재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맹세컨대 그건 연민과 동정의 시선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이기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그의 집념에 대한 경외였지. 그건 틀림없어. 무너지는 복서의 마지막 스트레이트.

난 한동안 천재를 응원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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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22 16:03
수정 아이콘
와우 멋진 글입니다. 리플을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겠네여..
너무 멋진 글이라 정말 현장에서 경기를 본듯 싶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space_rabbit
06/09/22 16:11
수정 아이콘
마지막 벌처 한부대가 달려가는 그 순간에도, 이윤열 선수의 손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윤열 선수를 응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METALLICA
06/09/22 16:12
수정 아이콘
어제의 경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레드나다 힘내라 힘
06/09/22 16:13
수정 아이콘
으..정말 잘읽었습니다..^^아주 집중해서 잘읽었어요..
이윤열선수가 이기는경기도 무수히봤고..
지는경기도 정말 많이봤었는데..
지고나서 어제처럼 아쉬워하는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거라 생각되네요..
저희집엔 엠겜이 유료라서 돈을안내면 흑백비슷하게 나오는데..
그걸로라도 봤는데..그 흐릿한 화면에서도 나다의 아쉬워하는모습이 너무 잘나타나서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먹고살기힘들
06/09/22 16:49
수정 아이콘
이상하게 박용욱 선수는 패자조로 내려가면 각성해서 다시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구요.
MSL뿐만이 아니라 듀얼 토너먼트에서도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윤열 선수가 조금만 더 정찰에 신경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는 절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박용욱 선수가 그려온 그림이 왠만해선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죠.
Peppermint
06/09/22 16:53
수정 아이콘
에게로!! 전장의 묘사가 탁월하시네요. 나다 화이팅!!!!
SimpleLife
06/09/22 17:23
수정 아이콘
윤열 선수가 어제 지고 나서 아쉬워 하는 장면은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승부욕이 상승해서 끝이 아니라 다시 전투가 시작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경기들이 기대가 됩니다..
윤열 선수 아쉬워만 하지 마시고 자신 부족함을 다시 하나씩 채워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윤열 화이팅!!!!!
완전소중류크
06/09/22 17:26
수정 아이콘
이윤열 화이팅!
06/09/22 17:31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들어왔는데 와.. 같은 경기를 보고도 이렇게 묘사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이윤열 선수 어제 많이 아쉬워하던데 앞으로 또 경기가 있으니까요.. 화이팅!
모로윈드
06/09/22 17:31
수정 아이콘
경기를 보지 못했는데,,,,
견우님 말처럼 정말 생생하게 다 지켜본 느낌입니다
으와...나다도 화이팅..!!
임요환의 DVD
06/09/22 17:36
수정 아이콘
연민과 동정이 아니었다면 경외敬畏->경의敬意를 의도하신 거죠? 글 멋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하나로충분
06/09/22 17:44
수정 아이콘
이윤열의 경악스런 경기가 너무 그립네요.. 기대하긴 이제 무린가요?
이제 온겜만 남았군요..
글루미선데이
06/09/22 18:28
수정 아이콘
하긴...팬분들이 슬플만한 공격이였습니다
저도 보면서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공격태세겠구나 싶었으니..
어제 나다 컨디션 좋아보였는데 참 아깝게 됐어요
막강테란☆
06/09/22 23:06
수정 아이콘
천재의 심정을 대변한 이야기 같군요. 마치 속삭이는것 같네요
묵향짱이얌
06/09/23 01:25
수정 아이콘
이윤열선수의 전성기시절 스타일... 초반에 기가막힌 컨트롤로 상대방에게 타격을주고, 거기서 나온 이득으로 앞마당을 먼저먹은후 물량폭발시킨뒤 상대방을 제압하는 그런스타일이 자신한테 잘맞는듯 싶은데, 왜 자꾸 최연성식의 일단먹고보자 스타일을 고집하는지.. 그런식으로 해서 이기는 경기를 못봤건만.. 제발 자신이 제일 잘하는 플레이를 했으면 합니다.
06/09/23 10:28
수정 아이콘
천재의 마지막 벌처...
06/09/23 17:04
수정 아이콘
title이 인상깊네요~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던 그의 손...악마와의 경기.....미치도록 이기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OSL에서의 나다의 활약이 너무나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나다의 근성을 보고 싶네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프로게이머들의 근성과 열정이 끝나지 않도록........
new[lovestory]
06/09/23 17:46
수정 아이콘
이윤열 선수의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 끈기를 저는 높이삽니다. 늘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이윤열 선수의 장점인듯 합니다.
06/09/23 18:52
수정 아이콘
쉽게 포기 하지 않아서 안드로메다행 관광도 많이 다녀오기도 했죠;;
어쨌든....전 패색이 짙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각하고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게이머들의 게임이 좋습니다. 물론 마지막엔 보기가 힘들 때도 있지만요..
누가 나와도 안질것 같은 강력함이 사라진 나다지만, 그래서 경기 보기가 참 힘들지만 그래도 옛날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
온겜넷에서의 그의 향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빕니다.
나다 고고!
06/09/24 02:13
수정 아이콘
마술사얀님 글 좀 많이 올려주세요... 정말 한편 소설을 읽는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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