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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13 01:00:34
Name 양정현
Subject 제목없음.
저는 불가항력을 좋아합니다. 왜냐?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많이들 보셨겠지만 헤드윅이란 영화에 사랑의 기원이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누군가가 그랬듯 미첼이 향연을 뒤져가며 시나리오를 썼을지,
그렇게 상상해보면 퍽 웃음이 나오는 광경입니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많이들 익숙한 이야기일 거예요.

태초에 인간은 두 명(이 말에 어폐가 있지만요.)이 등을 맞댄 형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남남, 남녀, 여여-이렇게 세 성이 있었구요.
그러던 어느 날 점점 강대해지는 인간들의 저항을 두려워 한 나머지,
제우스는 번개칼로 우리 인간들을 정 가운데로 쪼개버렸죠.
오시리스가 어쩌구 배꼽이 생기고 블롸블롸...

하여간 그리하여 우리는 갈라진 자신의 반쪽을 줄곧 갈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알고싶으신 분은 네이버로, 혹은 플라톤의 향연을 읽으셔도 좋습니다.)

한창 사랑(!)에 애가 타던 시절, 인간이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다는 내용의
이 노래는 제게 매우 강력하게 다가왔고, 근 이 년간 제 mp3에서 빠졌던 적이 거의 없네요.
어째 요즘은 살짝 질려가긴 합니다만 :)


고민할 필요가 없어 불가항력이 좋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심각하게 고뇌하고 있지요.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흠흠, 그래서 보니 어째 첫 화두를 이어나가는 예화로써 무색한 것 같네요.


좌우간에.
불가항력, 그냥 그렇다는 것,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어. 인과의 정점, 신- 이라는 것이죠, 편한 것들이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 고루한 예에 기겁을 하시겠지만 들어보세요,
2+2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러니까요.
왜 폭력을 당하면 화가 나지요? 글쎄요, 역시 그냥 그런 것 아닙니까.

한 번 더 가볼까요. 선험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인과'를 들덥디다.
전 아직 아이를 안 키워봤습니다만,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때에는 '왜'를 끝없이 연발하여
부모를 곤혹스럽게 하곤 하지요. 그리고 대개는 '그냥 그런 줄 알어!'로 끝나구요. 아이는 '에이...그게 뭐야'하고 새침해집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이걸 알까요. 아이가 '이게 이러해서 왜 저렇게 되는데?'라고 물을 때
그러한 인과라는 개념도 결국 '그냥' 들어가있는 것이라는 것을요.


자,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잠은 자야겠고, 저기서 뭐 어찌해야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하나를 생각해냈습니다.
절대 일관된 주제는 없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의 제 문법에, 저러한 '신'의 문제를 왜 꺼냈는지를요.


결국 어떠한 답답함 하나에 의해서입니다.

가끔 다음 아고라에 들어갑니다만 매번 후회하고 맙니다. 소화불량에 걸리거든요.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저는 같은 설원 위를 달리는 듯 하지만 아래에는 초특급 크레바스가 숨겨져 있습니다.
저걸 뭘로 메울까요? 캐리어?

네, 답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근본적인, 인과의 정점을 이루는 생각이 다른 사람하고는 도무지 소통이 되질 않아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하려면 일단 말이 같아야 할 터인데, 이건 읽는 것은 같되 의미는 천양지차입니다.


*나라

저같은 빨갱이라면 저것은 나라-라고 읽고 뜻은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느슨한 공동체라고 할 것이고

아고라의 파쇼들이라면 저것은 나라-라고 읽고 뜻은 그것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우리가 몸바쳐야 할 자신들의 존재이유라고 할 것입니다.


어떠한 토론글을 읽다가, 에 아마 저번에도 언급했던 국기에 대한 경례 건이었을겁니다.
'나라가 있고 니가 있지 니가 있고 나라 났냐?'라는 리플을 보고 그대로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이건 시간낭비예요, 어쩌면 저 사람한테는 회심의 리플이었을겁니다. 핵심을 찌르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저한테 저것은 옆집 땡순이가 밥달라는 소리보다도 의미가 없습니다. 전 그렇게 생겨먹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그 경례건의 본질은 생판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폐지-라는 법안은 그것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명문화된 법령에
속하는 것을 막는 내용이었거든요.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생~뚱맞게 국가 운운할 필요가 없어요.

...아니 뭐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그래도 그럴 것 같긴 합니다만...


불가항력,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참 편하지요.
그러나 때때로 답은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무엇이 불가항력인지 누가 알죠?




자정이 넘었네요,


이 빨갱이는 합리, 이성, 논리... 암튼 이런 것들을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의 뒤틀린 역사에 의해 형성된  대한민국의 기형적 이데올로기와 그 피해자들의
억압된 의식, 그것이 표출되는 야만적 방식을 증오하구요.

박정희에 대해 여전히 말이 많습니다.
저는 그에 대한 논의는 옛저녁에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쁜 놈' 아닌가요?

하지만 당시의 경제적 고통에서 허덕이다 그것을 '초인'처럼 해결해버린 그를
향수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건 정말 어찌할 수가 없어요.
그들도 아마 알 것입니다. 이성의 이름으로는요.
그러나 그들이 갖는 박정희에 대한 호감의 근저에는 그것이 깔려 있는 게 아니죠.
거기엔 정말 막연한 감성, 그 시대의 내음으로 채워진 가슴 한 켠이 있을 겝니다.

과학이 득세하고, 이성이 사랑받는 시대예요.

그러나 어쩌면 그 뿌리에는 불가항력적 출발점인 감성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네요.
어떤 논리의 출발점은 결국 좋고 나쁨이거든요.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밤이 깊었네요, 모두들 좋은 꿈 꾸시길.

- 어쩌면 주제 비스무리한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착상은 '처음' '정점'에서 시작되었어요.
- 그러면 살짝 고백할까요. 이 세 번째로 지은 제목은 우연에서 시작된 컨셉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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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레로
06/09/13 01:30
수정 아이콘
또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6/09/13 02:08
수정 아이콘
평을 하자는것이 아닙니다만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신것 같습니다.
기억하기론 제목없음이란 세편의 글을 올리신거 같은데
잘 읽고 있습니다.
06/09/13 10:07
수정 아이콘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에 따라서 글을 써 내려가시는 듯 해 보이는데도 글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포스란... ^^;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합니다~~
utopia0716
06/09/13 10:54
수정 아이콘
계속해서 '제목없음'으로 글을 올려주세요. 제목만 보고도 기대하고 들어올 수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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