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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4/17 15:55:43
Name OrBef
Subject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 유년기의 끝.
오버로드는 피200에 기본방어 0 ->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그 종족 컨셉의 모티브가 되었던 책, '유년기의 끝'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제법 스타크래프트 저그 종족과 관련된 부분도 있지만, 조금 지루한 얘기가 될 듯하니.. 조금 읽어보시고 아니다 싶으시면 바로 '뒤로' 버튼을 누르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서 저그 종족은 거의 '절대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의 생명체를 동화시켜 자기 종족을 강화해나가는 '오버마인드'를 수장으로, 그 의지를 저그 군단에 전달하는 '세러브레이트'와 '오버로드', 마지막으로 각 생물체의 뇌를 조종하는 '라바'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파시즘의 사회를 이루고 있죠. 아마 오렌지색 저그 군단이 블리자드 설정집에서 '라바의 지배에서 벗어나 원래의 생명체로 돌아간 일탈자들을 죽이는.. 일종의 예니체리 군단'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로써 저그의 지배를 개별 생명체로서는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라는 얘기가 돼죠. 결국 '이기적인 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1953년에 출판되었던 Arthur C Clarke 의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의 오버마인드와 오버로드는 일단은 '악'한 존재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오버마인드가 어째서 존재하게 되었는지, 궁극적인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같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오버마인드의 수족인 오버로드로서도 오버마인드가 진정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오버마인드는, 말하자면 '수많은 생명체들이 소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서로간에 동화해버린, 집단적 의식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과 동화할 수 있는 또다른 지적 생명체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도달한 너무 높은 지적 수준때문에 미물에 불과한 인간같은 원시종족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런 원시종족을 자신의 수준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수족으로 오버로드라는 종족을 부립니다. 오버로드는.. 어마어마한 지적 수준을 지닌 생명체지만, 오버마인드가 원하는 '동화'의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마지막 챕터인 'The last generation'에 나오는 묘사입니다.
--------------------
'우주에 이르는 길은, 마지막에 이르면 두갈래로 갈라지게 된다. 그 어느것도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다'

'한쪽 끝에는 오버로드가 있다. 개별성을 유지하고 자의식이 있으며, '나'라는 개념이 의미를 갖는 종족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진화의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설령 우리 인간의 수백 수천배로 강력한 마음을 가졌다한들, 무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 매한가지인 것이다. 수억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계, 수억개의 은하계로 이루어진 우주라는 규모를 그들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끝에는? 그곳에 오버마인드가 있다. 아메바와 인간이 가지는 만큼의 차이가 인간과 오버마인드 사이에 존재한다. 잠재적으로 무한하며 불멸의 존재. 태초부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종족이 그것에 동화됐을까? 그것에게도 욕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제 그것은 온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것도 흡수해버렸다. 그건 비극은 아니다. 일종의 성취인 것이다. 인류의 존재는 헛되지 않았다.'
--------------------

소설의 시작은, 인간이 우주여행을 처음으로 시도하려는 순간, 오버로드의 대 선단이 지구에 강림하는 것입니다. 오버로드는 그들의 진짜 목적 - 인간의 순조로운 진화 - 를 숨긴채 지구를 약 150년간 감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버마인드와 동화할 수 있는 수준의 어린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하고, 그 어린이들이 물질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적인 존재로 진화한 후, 기존의 인류는 폭발하는 지구와 함께 멸망한다는 것이 소설의 끝입니다.

클라크씨의 다른 소설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스탠리 큐브릭의 동명의 영화 - 진정한 불명의 명작이죠 - 로 다시 태어나 많은 SF 매니아의 가슴을 달궜죠.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다룬 인간과 컴퓨터의 싸움이나 우주 스테이션, 유년기의 끝에 나오는 웹기반의 통신/교통망은.. 클라크씨가 현대 기술에 대해 어느정도의 선견지명을 가졌는지를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소설들이 50년전에 쓰여졌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클라크는 인공위성의 기초개념을 닦은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제대로 천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크씨의 소설들은 몇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ㅇ '지성'이라는 것이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궁극의 능력이며 인간이 그것에 있어 유니크하다는 편견 - 사자는 인간보다 싸움을 잘하고, 벌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바이러스는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에 위치하죠. 생명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은 굉장히 많고, '지성'은 그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옆집 똥개도 어느정도의 지적능력은 지니고 있죠. 결국 인간은 그 '지성'에 있어서도 아주 약간 앞서나가고 있을 뿐이죠.
ㅇ '물질'과 '정신'을 매번 양분하려한다는 점 - 생명체에게 '정신'이라는 특별한 것이 있고, 그것은 '물질'이전의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성향. 설령 정신과 물질이 따로노는 것이라고 치더라도, 정신이 물질보다 위대할 이유같은 것은 없죠. 결국 극히 추상적이고 인간적인 환상 - 영성, 신성, 지성 - 에 사로잡혀, 인간을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가는 중간 단계로서만 의미를 부여하려합니다. 저런 종교적 개념을 가진 클라크씨가 매번 소설에서마다 기존 종교의 파괴를 꼭 다룬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ㅇ '한단계 올라가는 진화'를 통해 '궁극'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점. 둘 다 인간의 '말'에 불과한 것인데, 위에서도 볼 수있듯이 '오버마인드는 잠재적으로 무한한 능력을 지녔다'라고 단정해버리는 우를 종종 범합니다. 클라크 특유의 우기기인데, 그의 소설에서는 거의 언제나, 오버로드처럼 '과학'을 통해서 도달할 수 없는 '무한'이라는 놈을, 영혼으로 진화만 한번 해주면 바로 도달하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세뇌된 사람은, 그것에서 벗어났다고 외쳐봤자 결국 부처님 손바닥인가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난 왜 다른 사람하고 소통을 하는가
소통하려는 욕구는 과연 만족될 수 있는가
그게 완벽하게 만족되는 합일의 경지에 이르면 난 행복할 수 있을까
애초에 합일을 바라긴 하는가

같은.. 담배피우게 만드는 질문이 한보따리 생기는 책입니다.

꼭 한번은 읽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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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17 16:14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주제의 글 +_+

글 읽으며 임요환vs장육 전에서 엄재경 해설의

"이 저그라는 종족이 오버마인드라는 하나의 수뇌부에 의해서 명령이 내려지고 움직이는거 아니겠어요? 근데 지금 진짜 하나의 생명체의 수족인 것 처럼.." 이 부분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했구요.

몇주간 유게에서만 깔짝거렸는데.. 오랜만에 자게의 글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

저는 담배를 안펴서 지금 초코렛 물고 있습니다..

(쩝쩝)


음.. 재밌는 책일 거 같네요.
문화상품권 받을 일이 있는데 그거 받음 빨리 사서 봐야겠네요 ^^;;
06/04/17 16:39
수정 아이콘
저도 저 책 대학교 들어와서 읽었습니다.
실제로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이 만들어질 당시 많은 sf 소설을 참조했고 아서 클라크의 소설도 참고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버로드 오버마인드 등등 저도 흥미있게 봤었구요.

말씀해주신 것 이외에도 인간의 욕망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라든지 등등 클라크의 소설이 갖는 한계는 더 있긴 합니다. 그래도 아이작 이사모프보다는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
오름 엠바르
06/04/17 16:58
수정 아이콘
저도 담배는 안피우니까 껌을 씹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도 스타크래프트지만 에반게리온에서 표현되는 부분과 비교하는 맛도 나름 쏠쏠하죠. 확실히 8~90년대의 일본 sf애니메이션은 클라크가 없었다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글루미선데이
06/04/17 17:23
수정 아이콘
좋은 정보네요 한번 읽어봐야지
06/04/17 17:28
수정 아이콘
ㅠ.ㅠ

비흡연이 대세군요. 뭐 그게 글의 주제는 아니니까요 ^^

요즘 라마를 읽어볼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유년기의 끝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우울증이 무서워서.. 함부로 손을 못대고 있죠.
정지환
06/04/17 17:33
수정 아이콘
저는 흡연파 입니다만... ^^
좋은 책 추천해주신 것 같아서 시험 끝나면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전 라마 전집으로 사놓고 손도 못댔습니다 ㅠ_-
오름 엠바르
06/04/17 17:35
수정 아이콘
라마 가지고 계시는 분은 상호 대여 좀...ㅜ_ㅜ 한참 판매 중일때는 너무 어렸고 다 커서는 절판이더군요.(2권인가 3권인가 까지만 가지고 있습니다)
아큐브
06/04/17 17:44
수정 아이콘
유년기의 끝.... 물론 클라크노사를 만만히 본건 아니지만

다읽고 난뒤 제 느낌은 절망적이더군요
그뒤로는 어떤 에스에프을 봐도 왠지 시시해지는...아아
06/04/17 18:07
수정 아이콘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저그와 테란의 모티브를 '스타쉽 트루퍼즈'에서 가져온게 아닐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저는 한참 부족했군요.. ㅠㅠ
06/04/17 18:09
수정 아이콘
아큐브님/
사실 저정도 규모의 상상력을 한번 보고나면.. 다른 책은 지질해보이는건 어쩔수 없는거 같아요. 저도 한동안 그랬거든요 ^^
22raptor
06/04/17 18:11
수정 아이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창궁의 파프너"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분들은 한번쯤 감상해보심이.. 훗
06/04/17 18:12
수정 아이콘
안군님/
아..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즈가 저그/테란의 외형을 가져온건 맞아요. 하지만 하인라인은 유명한 파시스트니만큼.. 그런 미래의 인간 사회가 멋지다고 그려버렸죠 -_-;; 세러브레이트도 분명히 스타쉽의 브레인 버그에서 따온게 맞는거 같습니다. 결국 '종족 동화를 통한 진화' 라는 개념만 유년기의 끝에서 착안한 셈이죠.
06/04/17 18:16
수정 아이콘
유년기.. 도 읽어봤지만 주제가 저와는 영 맞질 않더군요. 그보다는 라마시리즈가 훨씬 적절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보다는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로봇을 더 좋아합니다.
06/04/17 18:16
수정 아이콘
유년기의 끝을 읽어보면 에반게리온과 겹칩니다. ^^
06/04/17 18:17
수정 아이콘
랩터님/
애니쪽은 제가 거의 문외한이라.. 에반게리온 보면서도 두근두근하는게 없어서 한때 제게 뭔가 문제가 있나하고 고민도 했었죠. 감독놈이 낚시라길래 안심했습니다. 사실은 낚시라기보다는.. 써금써금하게 만들다가 일이 너무 커져버리니까 회피숙련300을 달성한거라고 생각하긴 해요 ^^
T1팬_이상윤
06/04/17 19:18
수정 아이콘
스타십 트루퍼스 제가 중3때(아마 2000년이겠죠) 투니버스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해주던거 조금 봤었는데 테란vs저그 느낌이 팍 오더군요. 예전에 영화로 나온적도 있어서 아마도 스타크래프트가 외형상으로 스타십 트루퍼스의 영향을 받았을거라 생각이 들었었죠.
라구요
06/04/17 19:25
수정 아이콘
Demian 님 //

오버마인드하면..........
저 역시 장육밖에 생각이 나질않네요... ^^
엄해설의 그 대목이 너무 강하게 꽂혀서..
장육선수 분루를 삼켰지만... 정말 대성할 선수입니다.
06/04/18 07:25
수정 아이콘
유년기... 생각할게 많은 내용이죠.

저 역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더 좋아한답니다.
06/04/18 11:20
수정 아이콘
유년기의 끝을 사다놓고 안본건가...본건가..계속 헷갈리는군요.
한동안 그리폰북스를 미친듯이 사모으다가 요새 마구 풀리는 sf에 꽤 만족. 저는 르 귄의 헤인시리즈와 어스시의 마법사를 좋아합니다. (쿵)

저 같은 경우에, 스타크래프트에 심취하게 된 동기 자체가
그 시나리오의 방대함과 개방성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보니..

그런데, 일본 애니들은 대체적으로 보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지 않는다'에서 출발한 '자아'의 문제에 심취하는 경향이 많은 듯 합니다. 마치 불교에서도 대승보다는 소승 쪽 사고, 혹은 도교와 결합한 선종적 사고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이는거죠. 자아와 우주와의 합일은 자아의 끊임없는 수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그런 쪽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 즉, 끊임없이 주어지는 미션은 개인자아가 우주에 합일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나가는 단계들로 읽혀지는 거죠 - 이러한 주제들은 대체로 아키라나 버블검크라이시스, 혹은 에반겔리온에서도 잘 보인다고 생각하는데.(끊임없이 주어지는 미션...또 미션..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저 역시 아시모프가 좋더라구요.(이게 무슨소리?)
06/04/18 21:24
수정 아이콘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

얼핏 보면 같은 설정이고, 비슷한 전개이지만 느낌은 전혀 다른 세 소설입니다.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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