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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7/27 22:22:26
Name SEIJI
Subject 한국의 후삼국 시대에 대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대망을 즐겨보며 이것을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국시대 책에서 나오는 수많은 인간군상
들이 생생한 모습을 보며 그들의 모습에서 여러가지를 배우고 깨닫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좋은 쪽으로든 혹은 나쁜 쪽으로든...)

저도 삼국지를 즐겨보며 대망을 읽고 일본 센고쿠시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습니다.
삼국지는 중국의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소설화한 역사소설이고
대망은 일본의 센고쿠시대를 배경으로 소설화한 역사소설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편의 멋진 역사소설을 만들어 자국인
들은 물론 수많은 동아시아인들을 매료시키는데 반해 왜 한국은 그러한 역사소설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저는 세가지로 봅니다.

첫째, 한국은 전국시대가 적었다.
수많은 나라들이 나뉘고 바뀌며 서로 치고박고 했던 중국이나 전국이 여러 영주들에
의해 갈기갈기 나뉘었던 일본에 비해 한국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이후로 통일
신라 - 고려 - 조선을 거치며 서울 중심의 왕권중심국가로 이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수
많은 영웅들이 천하를 걸고 싸우는 전국시대가 적다보니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대망
같은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거지요. 삼국시대가 있지않느
냐 할수도 있겠지만 고구려, 신라, 백제가 대립한건 한편의 소설로 만들기에는 너무 기간
이 긴게 문제가 됩니다. 특정 시대를 가지고 소설로 만들기는 가능하나 전 시대를 가지고
소설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길고 긴 기간이라 자칫 지루할수가 있지요.

둘째, 한 인물 중심의 역사소설.
우리나라의 군담소설등을 보면 거의 한 인물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외 홍길동전, 임꺽정전을 봐도 우리는 주인공 홍길동, 임꺽정만 뚜렷이
기억되지 그 외 주변인물들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주인공 중심으로 씌여지다 보니
다른 주변인물들은 개성이 부족한거죠. 그리고 주인공은 절대 선 주인공에게 맞서는 적은
악인이라는 공식은 소설을 단순한 구도로 만들곤 합니다. 그에 반해 중국, 일본의 역사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여러 주변인물들에게 까지 개성을 주려고 하지요.
삼국지가 주인공 유비만 뚜렷이 부각되는게 아니라 유비의 적인 조조 그리고 다른 수많은
장수들과 모사들에게까지 개성을 부여해 정말 수많은 영웅들이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수호지의 108명에게 일일이 개성을 준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구요. 일본의 대망
역시 정말 수많은 인물이 나오고 그 인물하나하나가 주인공의 들러리가 아닌 생생히 살아
숨쉬는 개성적인 인물들로 나옵니다. 그 결과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스토리가
진행될수 있는거죠. 한국에서 삼국지가 나왔다면 아마 삼국지가 아닌 유비전으로 나오고
수호지는 송강전등으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첫째 이유가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
되네요.

셋째,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다.
어쩌면 이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역사소설을 쓰려고 해도 분명 충분한
사료등이 바탕이 되어야 쓸수 있습니다. 삼국지가 아무리 허구가 많은 소설이라고 하나
그 바탕에는 7할의 사실이 있었고 그 사실을 증명해줄 사료등이 있었기에 훌륭한 역사
소설이 만들어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고대역사에 대해선 역사적사료가 부족
하지요. 여러 외침을 겪으며 그러한 전란속에서 수많은 역사자료가 소실되기도 한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조선시대야 조선왕조실록등 역사자료가 충분하다고 하지만 고려
시대이전은 역사자료가 부족하고 그것이 한국에 삼국지나 대망같은 역사소설이 나오지
않은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뭐 어느나라처럼 100%창작에 의해 역사교과서를 만들면
또 모르지만요.


대충 여러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놔 보았는데, 그래도 삼국지매니아이며 대망을 즐겨
보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전국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이 없는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과연 한국에는 중국의 삼국시대나 일본의 센고쿠시대에 버금가는 전국시대가 없던걸
까요?

전 후삼국 시대가 역사소설화 하기 좋은 한국의 거의 유일한 전국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신라가 부패해지며 그 와중에 여러 호족들이 득세하며 고려, 후백제, 통일신라 세나라
로 나뉘어 50년간의 전란속에 고려 한나라로 통일된 후삼국시대는 소설화해도 삼국지나
대망에 뒤질게 없는 정말 흥미넘치고 재미있는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에 태조왕건이라고 후삼국시대를 그린 사극이 방영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
니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잊혀졌던 후삼국시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 이전에는 역사 교과서에도 한두페이지로 다루었던 시대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저 왕건이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견훤까지 몰아내어 고려로
통일시킨 시대라고만 생각했었지 그 자세한 전투나 여러 숱한 영웅들에는 관심이 없었죠.
후삼국시대는 어쩌면 한국인들에겐 잊혀진 역사였었습니다.

하지만 태조왕건 방영이후로 사람들이 후삼국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후삼국시대에
관련한 많은 소설들이 나오고 나중에는 게임도 나오기까지 하더군요.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대망에 더 많은 관심을 갖던 한국인들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저
나름대로 기뻐했었습니다. 태조왕건 작가 이환경씨가 쓴 태조왕건 소설책도 샀었죠.
(이환경씨의 태조왕건은 너무 무협지 스럽고 삼국지를 베낀티가 나는게 그렇게 추천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후삼국시대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수
있겠죠.)
그런데 태조왕건이 종영되고 시간이 지나니 더이상의 후삼국시대를 다룬 문화상품은
나오지 않고 그대로 다시 잠잠해지더군요. 후삼국시대가 다시 사람들의 기억속에 서서히
잊혀져가더군요. 삼국지가 여러 작가들이 연례행사인양 번갈아 가며 내며 이것이 정통
삼국지다 아니다 내게 진정한 삼국지다라고 다툴동안 한국의 후삼국시대는 그야말로
찬밥이었습니다.
글 잘쓰는 소설가에 의해 후삼국시대가 한편의 멋진 역사소설로 탄생되고 그 소설이
대히트를 하여 게임, 영화, 만화등 여러 문화상품등으로 만들어져 더이상 한국인들의 딴
나라의 역사소설에 심취하지않고 한국이 후삼국시대에 심취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요? 하여간 심히 안타까웠습니다.

수많은 영웅들이 득세하며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후삼국시대.
그 후삼국 시대에서 천하의 민심을 얻으며 신라와는 달리 외세의 도움을 받지않는 한민족
만의 힘으로 마침표를 찍었던 왕건의 고려. 그 치열하고 역동적이었던 50년간의 한국의
역사가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은 후삼국 시대에 관련한 여러 간략한 자료들입니다.
-------------------------------------------------------------------------------
* 후삼국 시대의 전투(네이버 검색 : -> 부분은 제가 첨부한 글입니다.)

후삼국시대는 신라의 사회구조가 급격히 파괴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는 개혁의 시기였다. 그 시기 속에 후삼국은 서로 투쟁하며 많은 전쟁을 겪는다. 혼란의 시기이자 투쟁의 시기였던 만큼 전쟁은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했으며 전쟁에 따라 후삼국시대의 판도도 변화해갔다. 후삼국시대의 판도를 바꾸었던 주요전투에 대해 살펴보자.

*비뇌성 전투(899.7)
양길의 원조를 받아 군대를 얻은 궁예는 명주(강릉)지역을 장악하는 것을 기점으로 강원도 일대와 패서지역의 호족을 장악함으로써 큰 세력으로 급부상한다. 그러자 양길은 너무나 커진 궁예의 세력에 위기를 느끼고 지방 성주들의 군대를 모아 북진한다. 궁예 또한 양길의 군대에 맞서 남진, 비뇌성을 기점으로 격전을 벌였다. 그 결과, 양길은 대패하고 역사에서 이름이 사라졌으며 궁예는 양길의 세력까지 흡수, 국토의 2/3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 삼국지로 따지면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에 비견될수 있는 전투. 본래 양길의 부하
였던 궁예는 양길의 군대로 강원도 일대를 차지하자 양길을 배반하고 양길과 피할수 없는
전투를 벌인다. 결국 이 전투의 승리로 궁예는 후삼국중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나주전투(909)
후고구려, 후백제, 신라로 굳혀진 판도는 후삼국시대로 정립된다. 후고구려와 후백제는 패권을 다투며 국지전을 펼친다. 이 와중에 왕건은 나주를 재차 공격하면서 허를 찌른다. 진도와 고이도를 공략한 왕건은 더 깊숙이 내습하며 견훤의 배후를 뒤흔든다. 그러자 견훤은 수군을 이끌고 왕건을 압박, 수적으로 불리했던 왕건군은 한때 수축되지만 왕건의 지휘 아래 움직인 수군은 화공을 펼쳐 후백제의 수군을 격파시킴으로서 백제의 배후를 계속 교란할 수 있게 되었다.

-> 903년 왕건은 정말 아무도 생각못했던 기습적인 작전으로 나주를 쳐 점령하고 후백제
땅에 후고구려의 깃발을 세운다. 그 뒤 909년 나주를 재침공해 확실히 후백제 끝에 기반을
마련한다. 이 나주지방은 후에 견훤이 다시 재탈환한다.

*조물성전투(925.10)
궁예를 쓰러뜨리고 고려를 창건한 왕건은 내부의 혼란을 잠식하고 안정을 꾀하였다. 이 때 견훤은 금강(수미강)과 양검을 보내어 조물성에서 격전을 벌였다. 고려장수 애선을 죽이는 전과가 있었지만 조물성을 함락시키진 못하였다. 그러자 견훤은 직접 정예기병 3천을 이끌고 조물성을 공격, 왕건과의 육지에서 첫 일전을 벌인다. 그 결과, 팽팽한 균형 속 승부가 나지않자 견훤과 왕건은 휴전을 맺고 돌아간다. 조물성전투는 이후 견훤과 왕건의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뜻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 궁예를 쓰러트린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의 첫 서전을 장식한 전투. 전투는 양군
이 휴전을 맺고 무승부로 끝냈으며 그 이후로 고려와 후백제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지긋지긋할정도로 수많은 전투를 한다.

*공산전투(927.9)
견훤은 신라 급습하여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죽이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자 왕건은 신라의 구원 소식을 받고 정예기병 5천을 이끌고 급히 출동한다. 그리고 왕건은 견훤이 돌아가는 길목을 지키다가 견훤을 기습하는 전략을 세운다. 공산 동수를 지키고 있던 왕건은 견훤의 군대를 만나자 기습하였으나 오히려 견훤의 군대에게 전멸당했으며 장군 신숭겸은 왕건을 구하고 전사, 이외 김락 등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다. 대승을 한 견훤은 이후 고창전투 이전까지 고려를 압도하게 된다.

-> 왕건이 927년 후백제의 대야성을 치고 추허조등 후백제 장수들을 사로잡자 견훤은
전황을 뒤바꿀 계략을 세우는데 그게 바로 신라의 경주 침공이다. 후백제의 견훤은 경주
를 침공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을 세우고 고려는 신라를 돕기위해 공산
에 왔으나 견훤에게 대패한다. 이 전투에서 신숭겸, 김락등 고려의 8명의 장수가 왕건을
살리기 위해 전사하는데 그래서 이곳을 팔공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전투로 견훤은
얼마동안 고려를 압도하며 후삼국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된다.

*고창전투(930.1)
견훤에게 번번히 패하며 밀리고 있던 왕건은 고려의 고창성이 견훤에게 포위되자 다시한번 견훤과 일전을 맞는다. 한 달을 넘기며 계속된 전투는 왕건에게 점점 불리해졌다. 그때 고창의 호족 김선평, 권행 등이 고려를 지원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된다. 이로써 견훤의 군대는 참패하고 이 격전으로 8천명이 전사, 참모 김악 등이 잡히고 말았다. 이 전투 이후 다시 전세는 역전되어 왕건이 후삼국의 패권을 잡게된다.

-> 왕건이 공산전투의 패배이후 삼년산성전투에서 다시 패배, 나주도 빼았기면서 수세에
몰리던중 고창전투에서 견훤에게 대승하면서 전황은 뒤바뀌고 왕건은 경상북도를 완전히
지배하며 후삼국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 송악습격(932.9)

수세에 몰리던 견훤은 해군장군 상귀에게 명해 황해를 따라 고려의 예성강으로 습격 송악
으로 쳐들어가 배 100척을 불사르고 저산도 목장에 있는 말 3백필을 약탈했다. 다음달
다시 해군장군 상애로 하여 대우도(평북 용천)를 침략하게 하는데 이 결과 후백제는 서해
의 해상권을 장악한다.

*운주성전투(934.9)
전세가 점점 왕건쪽으로 기울면서 왕건의 공세는 더 거세진다. 왕건이 운주성을 공격하자 진훤은 갑사 5천을 이끌고 운주성에서 맞섰다. 견훤은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휴전을 제의했으나 왕건은 거부, 오히려 유금필에게 기병을 보내 견훤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휴전을 노렸던 견훤의 군대는 격파당했고 3천명이 전사, 견훤의 참모 종훈, 의사 훈겸, 용장 최필, 상달이 생포되었다. 이로써 왕건은 패권주도를 더욱 굳혀나갔고 더불어 통일의 승기를 잡게되었다.

-> 고려와 후백제의 승패를 가름지은 전투. 이 전투의 승리로 고려는 후삼국의 주도권을
확실히하며 통일의 승기를 잡았다. 이 전투의 패배로 견훤은 물러날 결심을 하며 후계를
자신이 아끼는 금강에게 주려고 하나 맏아들 신검의 반발을 부르고 결국 신검은 아찬
능환의 도움을 받아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유폐시켜 후백제의 왕위에 오르게된다. 그러한
후백제의 내분은 더욱더 후백제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일리천전투(936.9)
견훤을 쫓아내어 왕위를 얻은 신검은 후백제의 다수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노린 왕건은 항복한 견훤을 위시하고 국가의 총력을 다해 일리천에서 국운을 건 일전을 벌인다. 왕건의 군대가 8만명이 넘었을만큼 후삼국역사상 가장 많은 대군을 동원한 통일전투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전투는 견훤을 내쫓은 신검에게 불만을 품은 장병들이 고려에 항복하면서 신검의 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결국 신검이 항복하면서 전란은 끝이 났다.

-> 후삼국시대의 최후의 전투. 고려로 도망친 견훤은 자신이 몸서 자신이 세운 나라를
치겠다며 왕건에게 요청해 전투에 나섰고 고려는 1만의 대군으로 후백제를 침공했다.
후백제의 신검도 이에 맞섰으나 후백제의 장수들이 견훤에게 항복하고 군사의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져 결국 고려에게 패배, 신검은 왕건에게 항복하고 후삼국은 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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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05/07/27 22:33
수정 아이콘
세번째 이유에 동감입니다. 실제 정사 삼국지의 경우는 그 <삼국지> 시절에 살고 있던 진수(그것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진등의 아들)가 썼죠.
이것만 보더라도 삼국시대가 끝난 후 수백년이 지나서야 삼국사기가 편찬된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입니다.
슷하급센스~
05/07/27 22:41
수정 아이콘
진등이 아니라 제갈량에게 죽임을 당한 진식이라고 하죠. 진등은 진수가 태어나기 약 20여년 전에 이미 죽었었죠.
하지만 진식의 아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슷하급센스~
05/07/27 22:43
수정 아이콘
저희 집에는 신봉승 씨가 쓴 왕건이란 책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냥:-)
05/07/27 22:45
수정 아이콘
네 진식이죠-_-; 잠시 착각했네요
최강정석
05/07/27 22:46
수정 아이콘
아~이거 역사겔에서 세이지님이 쓰신거 봤는데..반갑네요.^^
Nada-in PQ
05/07/28 00:15
수정 아이콘
진식의 아들이 맞을 겝니다.. 진식은 요참(허리를 베이는 형)으로 죽었고, 이후 진수는 진나라에 종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크기(大) 컴플렉스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것이 삼국지(중국)가 인기있는 이유죠. (말도 안 되는 백만대군..하하;;)
그리고 한창 일본배우기 열풍때문에 센고쿠가 유명해진 거기도 하구요.

아울러, 첫번째 이유가 전 제일 크다고 봅니다. 중앙집권국가 체제에서 단지 역성혁명으로 왕만 바뀔 뿐인 역사에선 소설이 기대하는 인물군상의 대립구도가 등장하기 어렵죠. 실제로 중국의 역사나 일본의 역사도 초한지, 삼국지, 센고쿠 이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제가 알기론 우리나라 삼국지 게임도 있는 걸로 압니다만, 코에이의 삼국지와 인기의 차이란...;;;
Sulla-Felix
05/07/28 05:11
수정 아이콘
일본의 전국시대라는 것은 패전이후 실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기 위해 소설가들이 지어낸 날조된 스토리 입니다.
(실제로 작가가 서문에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와 똑같은 허구죠. 실제 다께다의 기마병이라는건 존재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서술도 자서전이 그러하듯 가문에서 과장된 기록
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러한 스케일의 이름있는
소설이 대중화 되지 않은 탓이 크죠. 사실 역사소설은 여러편 나왔는데
생각보다 인기를 끌지 못하니 점점 뭍혀 가는 거죠.
후삼국시대나 삼국통일기는 정말 다이나믹 한 시대입니다. 임진왜란조차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흥미로운 시대입니다만 아직 그걸 대중화 시킬
작가가 나오지 않은것이 아쉽습니다. 김경진작가의 소설임진왜란이
괜찮긴 한데 원균명장론등의 반작용으로 너무 사실고증에만 치우쳐
소설로서의 호흡이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피지알 식구들이 꼭 봤으면
하는 책입니다만. 암튼 작가나 방송인등 대중문화 제작자들이
조금더 분발했으면 합니다. 사실 '바람의 나라'가 아니었으면 고구려
초기에 대해서 이만큼이나마 알고들 있었을까요?
연구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러한 대중화도 참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이런
면에서 아쉽네요.
강은희
05/07/28 10:25
수정 아이콘
음..맞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에 무관심한게 아닐까요?현재 우리나라 국보들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없어져가고 있는데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05/07/28 13:09
수정 아이콘
김경진 작가의 임진왜란. 정말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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