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우리는 명승부를 꿈꾼다.
야구라면 작년 월드시리즈 7차전 애리조나의 극적인 승부, 루이스 곤잘레스의 끝내기 안타처럼...
축구라면 이번 월드컵 스페인:아일랜드 전, 후반 루즈타임 로비 킨의 동점골처럼...(우리 경기는 제외^^;;)

스타에서의 명승부라면?
역전승부여야 한다든지, 게임시간이 25분 이상은 되어야 한다든지,
정말 이전에 보지 못했던 기발한 전략이 나온다든지...항상 그런다.
그렇다. 명승부는 물론 인정받아야 하고, 오래오래 기억되어야 한다.
훌륭한 선수, 좋은 기록을 남긴 선수도 오래 남아야 한다.

하지만...가끔 그렇지 않은 경기에 너무나도 냉혹한 경우가 있다.
7분짜리 9드론 저글링 러쉬에 끝난 경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열의가
45분짜리 역전이 오간 경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열의보다 적었을까?
캐논러쉬, 치즈러쉬로 끝난 경기는 찝찝한 경기라고? 어째서?
바둑에서는 많은 경기들이 불계로 끝난다.
지루하게 수비만 열심히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라도 팬들은 이긴 선수의 어떤 면이 돋보였으며, 진 선수는 이 점이 아쉬웠다고 하지
그 경기가 형편없는 경기라고 하지 않는다.
2회 잉창치배 때 서봉수九단은 오다케九단과의 최종국에서 다 진 바둑을 오다케九단이 수상전에서 먹여치는 수순 하나 착각한것 때문에(5급도 볼 수 있는 수였다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의 우승을 폄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장기전이든, 단기전이든, 원사이드 경기든 강X 모드든
이긴 선수든 진 선수든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
이기기 위해 온힘을 다한다.
언제든지 경기가 끝나면 이긴 선수는 기뻐하고, 진 선수는 아쉬워한다.
그 이유는? 그것에 열과 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열광할 이유는 충분하다.

왜 결승전에서 같은 종족싸움이 생기면 재미가 없다고 하는걸까?
그렇다면 강도경 대 홍진호, 임요환 대 최인규, 임요환 대 이윤열 등등의 결승전 조합은
나와서는 안되는 것일까?
지난 네이트배 때 테란 3, 저그 1이 4강에 올라왔었다.
준결승 한웅렬 대 강도경, 한웅렬 선수가 승리하면 결승전은 테테전.
1차전 비프로스트를 한웅렬 선수가 이겼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강도경 선수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조차도 너무나 당연하게 "결승전은 다른 종족 싸움이 되어야 해"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꼭 중요한건 아니지 않은가? 대회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두 선수가 만나는데 종족을 너무 따지는 것도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것 같다.
좋은 맵에서, 좋은 경기, 최선을 다한 경기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저그 없다고, 플토 없다고 대회 안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플토 암울하지 않다고 본다. 맵 밸런스 조정과 어린 선수들의 경험 축적이 플토를 강하게 할 것이다.)
종족비율은 좋은 참고자료이다. 하지만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종족이 강한 종족일지라도 그 선수 또한 최선을 다해서 16강,8강,4강에 올라가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자가 결국 이기는 것이다.
물론 역경을 뚫고 이긴 자는 더욱 더 깊이 각인되겠지만...)
결승전이 설령 테테전이 되더라도, 저저전이 되더라도, 그들은 실력으로 결승에 올라간 선수이고, 최선을 다해 결승전을 치룰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열광할 이유는 충분하다.

월드컵 결승은 브라질과 독일이 만나서, 브라질과 프랑스가 만나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월드컵 결승이기 때문에 흥미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올라오더라도, 실력으로 당당히 올라갔다면, 월드컵 결승의 흥미가 떨어질 일은 없다. 월드컵 결승이기 때문이다.
팀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지 결승전의 질이 떨어지거나 관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스타리그 결승전에 어느 두 선수가 올라왔다.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또다른 두 선수가 올라왔다. 흥행이 걱정된다고 한다. 무슨 일이지?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 떨어지면 스타리그 안 본다고 한다.
결승에 올라온 두 선수가 종족이 같다고 한다. 재미없을거라고 지레 짐작한다. 대체 무슨 짓이야...
종족이 같건, 이름값이 떨어지건, 그 경기는 스타리그 결승전, 4강전, 8강전이다.
그것만으로도 열광할 이유는 충분하다.

게임계를 정말 사랑한다면 재미없는 경기란 있을 수 없다.
한경기 한경기마다 사연없는 경기가 없다.
한경기 한경기, 그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역사 길다는 바둑에 비하면 훨씬 적고 단순한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한경기 한경기 곱씹어 보면
같은 마린메딕 러쉬, 같은 뮤탈게릴라라고 하더라도
맵이 다르고 전황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결과가 다를 것이다.
사실 고수들간의 경기에서 같은 모습이 나오는 경기는 거의 없지 않은가?

프로게이머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승리를 향하여 전진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젊음의 실패, 도전, 성취, 의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승부의 세계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열광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