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4/22 14:40:54 |
Name |
T@eJoN |
Subject |
박신영 저그 일낸닷. |
제가 그를 처음 본 것은 2000년 3월 초 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그는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상당히 정진하는 중이었습니다. 전 당시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느 정도 남는 시간을 그 특이한 경험을 하기 위해 상경을 했을 당시의 일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상당히 큰 키에 그가 고1 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쩜 고1 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의 놀라운 손놀림과 겜 운영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에 [WindC] 라는 팀(정식: 바람의 군단 WindCrew 현재 카운터 스트라이크, 아트록스 등에 상당히 이름을 날리고있음.)에 소속되어있었고 처음 봤을 때는 )N(Yama 라는 고수(이름은 기억이 없음)와 팀플레이를 하던 것으로 기억이 나고 있습니다. 질럿이 쏟아져 나오고 키보드가 부서져라 두드려 대는 모습이 정말 제가 기대하고 서울에 올라온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어쨌든 말없는 그와의 처음의 인사로 그의 대강의 성격을 짐작하며, 아직도 이어지는 인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게임방은 역삼동의 N PC방(그렇게만 기억이 납니다). 평강이라는 아뒤를 쓰는 '김인경' 누님도 그곳에서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만난 다음날이 바로 'pko 2000 게임 페스티벌'(제가 참가했던 대회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대회) 이었고 그([WindC]BlaCK)와 [WindC]팀원들([WindC]leader 황순성, [WindC]Typoon 박대용, [WindC]mini 김지훈)그리고 저([WindC]T@eJoN)는 그 대회에 (예선이 대단히 쉬웠음) 참가했습니다. 신영의 처음 모습에 반했던 저는 저보다도 (당시 저도 가림토님이나 임성춘님등을 꺽으며 승승장구했었을 때임) 그의 성적을 더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그처럼 경험이 부족했었던 탓일까? 입구에 (저그전) 저글링을 홀드해 버리는 어이없는 실수로 1 차전 탈락이라는 쓴 경험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 게임이 그의 징크스를 만들었을까. 그는 온라인에서 정말 고수들을 상대로 80-90%라는 믿기지 않는 승률로 신의 경지에 다다른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계속되는 초반의 부진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까 그는 항상 운과는 멀리 있는 듯 했습니다.
팀의 베이스 였던 역삼동의 '접속'에서 팀의 계속 된 활동이 있었습니다. 제데로 된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고 간간히 작은 대회나 비메이저 대회에서만 두각을 보였지만 언제나 그는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힘들어 진다는 친구들과 저는 다만 점점 재미만을 추구하며 게임 그 자체로의 스타크래프트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무렵 저를 비롯한 모든 팀원들이 베이스인 '접속'에서 나오게 되는 계기가 발생하고 새로운 베이스인 블루넷으로 거점을 옮기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객지 생활을 하던 저와 저의 동료 게이머 지훈군은 대전으로 돌아 왔고, 게임아이를 통해 간간히 신영군의 플레이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때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제가 군입대(2001.11.13)를 하기 직전 신영(당시 블루 스카이 프로팀으로이적)과 온라인에서 몇차례 게임을 주고 받으면서 예전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그래도 10게임 중에 2~3게임은 제가 딸 수 있었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신영 군에게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 대전중에 계속해서 느껴야 했고 재도전, 재도전을 할 때마다 어찌할 수 없는 큰 벽에 부딪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콘트롤 이야 예전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정말 귀신 같다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의 탐색을 간신히 저지하며 몰래 시도한 전술도 그의 예상된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도 가림토, 김정민, 유병준, 김동준 선수들과 간혹 게임을 할 경우가 있었음으로 비교가능한 게임이었고, 분명 그 선수들과 다른 그 무엇인가가 존재했던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분명 콘트롤이 뛰어난 게이머 정도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게이머로 큰 변모를 한 것이었습니다. 게임내내 압도적인 병력으로 한몸처럼 움직이는 유닛들, 그리고 약한 부분이 있으면 여지 없이 파고 들어 언제든 GG를 받아내고, 게임을 마무리 하고 난 후의 저의 손은 흔건히 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기 싫어서 몇 번이고 도전에 재도전을 했고 결국 5게임만에 더 이상 도전할 수 없는 공황을 격게 되었고, 결국 저의 몰락과 더불어 신영의 큰 발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부터 그의 실력과 다른 부분에 대한 의구심은 없었지만 그때 바로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에 따라 군입을 앞둔 제게 게임을 접은 맘이 편해짐을 느꼈습니다.
군입대를 하고 전혀 소식을 접할 수 없었던 저의 첫 휴가에서 다시 온라인 상의 신영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몇 개월의 군생활로 굳어진 손가락이었지만 게임을 볼수 있는 능력은 죽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실력은 더욱 더 다듬어진 실력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임아이에서 2차례의 주장원전 우승 그리고 게임라이프에 이적등의 그의 행로도 알게 되었고 날 보자마자 전해지는 채팅창의 말도 똑같았습니다. 2게임을 하고 난 후 그의 게임을 옵을 통해 보아야 했고(역시 실력이 부족했기에), 연파하고 난후의 상대방들은 누구든지 제대로 손을 써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이었고(당시 누군지는 기억이 없음..-_-;) 안면까지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실력에는 믿음이 가는 실력자 들이었습니다. 더욱 강해진 실력, 그러나 줄지 않은 열의. 그의 도전에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귀 후 인터넷을 통해 그의 활동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옵하거나 직접대화를 할 순 없었지만 그의 행로는 드디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2살이라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일까? 솔직히 그가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스타에 대한 멋있는 집착은 결국 그런 저의 조그만 걱정마저도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나이 고3, 아직 이르지만 그는 영광이라는 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습니다. 누구보다 대단했던 연습과 고집이 그렇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볼 때 마다 항상 걸어왔던 채팅창의 말이 생각납니다.
'' 와나 겜?-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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