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4/13 13:48:11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호칭 '님'에 대해서. |
온라인에서 몇 안 되는 맘에 드는 점 중 하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사용되는 '님'이라는 호칭이다.
시에나 나오고,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이 옛스럽고도 고즈넉한 호칭을 붙임으로서
우니는 모니터 너머 저 편,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상대에게
겸허와 존대와 공손의 의미를 부여하며
한 번 더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이다.
프로게이머는 흔히들
연예인적인 속성과 스포츠 선수적인 속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게이머가 그들과 다른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그들은 프로게이머이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네티즌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크기를 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황량하고 광대한 공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 속을 거닐며
어린 여고생 여중생들이 길거리를 걷다가 연예인을 만나는 것보다는
조금은 더 높은 비율로
그들의 흔적이나, 혹은 그들 자체를 만날 수 있다.
카페에서든, 아니면 스타 사이트든, 아니면 베틀넷에서든.
선수를 부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편하게 이름만을 부르는 방법도 있겠고
선수 라는 무난한 호칭을 붙이는 방법도 있겠으며
베틀넷에서 그들의 개성과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아이디를 쓰는 방법도 있고
아주 내키지 않는 방법이지만 욕지거리를 섞을 수도 있다.
그 중에 내가 택하는 방법은
그냥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는 방법이다.
그 때의 '님'이란 호칭은, 일반적인 네티즌들끼리의
'**씨'를 대용할 때의 님보다는
조금은 더 존경어린 공대가 섞인 뉘앙스이다.
...그들은 대부분 어리다.
기껏해야 스무 살 남짓, 그보다 어린 사람들도 제법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게임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 버려
어느 정도는 한편에 치우친 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것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서워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밟아갈 수 밖에 없었던
평범한 우리들이 보기엔
조금은 비정상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쳐야 미칠수 있다'는 진리를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또한 실천한 사람들이다.
많지도 않은 나이에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일에 매진해 일가를 이룬
나이와 이력을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써 존경하고 아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게임 관련 회사에 다니고 이런 저런 현장을 쫓아다니며
꽤 많은 게이머와 안면을 익혔고
그 중 몇몇과는 이제 제법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들에게 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언제나 존댓말을 하며
그들을 만나기 전엔 한 번더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들은
'님'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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