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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7 10:54:40
Name 노틸러스
Subject [기타] 내가 사랑하는 이 곳이 오래오래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
대학생 때 죄를 많이 지어 대학에 남아버린 저와, 사회로 진출한 친구들이 시간을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월간 쿨타임'의 유무인 것 같습니다. 대학에 있으면 한 해가 겨울방학(1~2) - 1학기(3~6) - 여름방학(7~8) - 2학기(9~12) 의 사이클로 돌아가다보니, 쿨타임이 돌 때 마다 시간의 흐름을 상대적으로 규칙있게, 그리고 빠르게 느끼게 되는 효과가 있죠.

이제는 몇몇 분들이 아시겠지만, 저는 모 대학에서 e스포츠 산업에 대한 이론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장 어제 수업에 저는 e스포츠팀들의 컨텐츠 제작에 대한 의견을 학생들과 나누었고, Worlds와 콜라보레이션 하는 여러 스폰서십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오늘 퇴근 후에는 광화문에 갈 생각에 들떠있기도 하구요.

이제 학생들은 두 번의 전문가 초청 특강을 듣게 될 것이고, 2주 간에 걸친 개인 발표, 기말고사 대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저는 편하지만 학생들은 힘든 시기에 접어든다는 소리입니다. 하하.

-------------------------

지난 3년간, 저는 제 수업에서 제가 강의하는 파트가 끝날 때 쯤,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이번학기도 마찬가지겠구요.

"저는 겜돌이입니다. 학생들이 보다시피, 저는 게임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e스포츠가 영원히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전공이 더 넓은 범위라, e스포츠를 전공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e스포츠산업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고자 뭐라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끝나던 2012년, 저는 잠실 학생체육관에 제 삶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두고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모든 추억을 잃는 기분이었고, 이제 다시는 게임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열광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여러 종목이 있지만).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가 느꼈던 그 느낌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세상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 판도 상호호혜성을 기반으로 유지됩니다. 
수업에서 들었다시피 e스포츠산업은 구조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구성하는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유지될 수 있는 동력을 가집니다.
이건 누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고, 내가 사랑하는 게임을 지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제가 가진 능력은 너무 부족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있고 너무 작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제 수업을 통해 e스포츠를 알게 되고, e스포츠 산업을 잘 이해하여서 비록 이 판에 구조적 문제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거나,
한 명의 팬으로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니까 강의평가좀 잘.. 나 담학기도 수업하고 싶어.."

------------------------------

이 산업이 유지되기 위해서,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소중합니다.
이 산업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하나하나는 비록 큰 영향력을 가지진 않지만, 더해질 때 산업의 구성요소로서 큰 기능을 담당합니다. 이들 역시 대단히 소중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산업을 움직이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수와 팀을 응원하고,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소비합니다. 이들은 정말로 소중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e스포츠라는 친구는 몸이 조금 약한 친구입니다. 예전에는 지인한테 뒤통수맞고 사기당해서 힘들어하더니, 좀 살만 해지니까 겨울이 온다고 자꾸 춥대요. 그래서 많이 배려해주어야 오래오래 같이 놀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사우디에 뭐시기 친구가 자꾸 용돈을 준다는데, 좋아하는 거 보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지가 좋다니까 저도 좋은갑다 하고 뭐 그렇습니다.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싫어합니다. 까고 까서 우리에게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누군가는 젠지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T1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롤을 하고, 누군가는 발로란트를 하고, 누군가는 히오스를 하고, 누군가는 하스스톤을 합니다. 서로의 팀과 선수를 존중하고, 게임을 존중할 때. 이 판이 더 오래가고, 지속가능성을 담보받으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히 흘러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 재밌고 즐겁게 게임합시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합시다. 그러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우정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P.S. 웨이보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게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5-03-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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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때까치
23/11/17 11:00
수정 아이콘
저도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스포츠 판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많이 됩니다. 한사람의 힘은 너무 미약하지만. 같이 노력해서 오래오래 이 감동을 느낄수 있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합니다! 화이팅!!
노틸러스
23/11/17 11:22
수정 아이콘
사실 원래 어제 올리려던 글이, 여러 팀들 유튜브 컨텐츠 소개하면서 많이들 봐주십사.. 였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23/11/17 11:05
수정 아이콘
좋아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노틸러스
23/11/17 11:22
수정 아이콘
요즘 들어 더더욱 느낍니다
Winter_SkaDi
23/11/17 11:11
수정 아이콘
가끔 노틸러스님의 글을 읽는데 "저도 사랑하는 이곳'을 위해 대신 힘써주시는 것 같아서 응원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노틸러스
23/11/17 11:23
수정 아이콘
저는 하는거 하나도 없구요, e스포츠에 진심이신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그런분들 뵐 때 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3/11/17 11:20
수정 아이콘
웨어강 웨어강...
최종병기캐리어
23/11/17 11:27
수정 아이콘
누군가는 히오스를 하고... ?!
노틸러스
23/11/17 11:31
수정 아이콘
우리 가게 정상 영업 합..
푸른잔향
23/11/17 11:40
수정 아이콘
웨이보 진짜 무서워요
샤오후가 일 한번 낼듯
코우사카 호노카
23/11/17 11:52
수정 아이콘
착한 생각 착한 말...
선행 적립... 후우후우...
왕립해군
23/11/17 11:58
수정 아이콘
야구나 축구보면 공공의적으로 취급하던게 커뮤니티의 양면인 폐쇄적인 속성과 개방성이 공존하는 것이 시너지내서 이렇게 된거라봅니다.. 별개로 그런 악의는 꼭 어떤 스포츠 팬덤(기성이든 E스포츠든)에만 있는게 아니고 게임 혹은 게임사 그 자체에게도 많이 나타나죠.
노틸러스
23/11/17 12:21
수정 아이콘
대부분의 필드가 유사하겠지만, 저희 e스포츠라는 친구가 좀 몸이 약해서 그게 걱정입니다.
디지엔
23/11/17 12:16
수정 아이콘
웨어강
Capernaum
23/11/17 12:57
수정 아이콘
좀 뜬금없지만 북미 리그 위험하다는 게 걱정이네요

미쿡 분들이 많이 좋아해줘야 올림픽 정식 종목도 되고

할 것 같은데...

2024 롤드컵은 북미 우승 기원...
노틸러스
23/11/17 13:49
수정 아이콘
올림픽은 여러 이유로 정식종목이 안되거나, 예상하는 방식과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당 부분은 이미 글을 적어놓은 게 있어, 조만간에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及時雨
23/11/17 13:08
수정 아이콘
페이커 이후의 시대가 어떻게 될까 아주 궁금하긴 하네요.
노틸러스
23/11/17 13:50
수정 아이콘
잘될것이라 장담하긴 어렵지만, 연착륙 할 것이라 믿습니다
brightics
23/11/17 14:54
수정 아이콘
LOL 이라는 친구가 무한정 갈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이 친구도 몸살에도 걸려봤고, 지독한 감기에도 걸려봤고 정말 생사의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순간도 겪었었지만 우리가 이전에 사랑했던 '스타' 처럼 언젠가는 떠나가겠죠. (누구가 끝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

하지만 이 업계에서 일하고자 준비하는 저도 , 이 글을 쓰시는 노틸러스님도 , 그리고 이 곳을 즐기시는 여러분과 며칠 전 혼자 눈물을 흘리신 선구자 '전용준'캐스터님도.. 선플이든 악플이든 이 곳이 좋으니까, 관심이 있으니까, 뭐라도 적는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스타'라는 친구가 급작스레 떠나고 'LOL' 이라는 친구가 왔듯이 언젠간 'LOL' 이라는 친구가 떠나고 새로운 친구가 올텐데 그때까지 '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냐' 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우리들을 아껴야 인정받고 더 커질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더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나름 선행스택을 쌓아 나아가야 겠습니다. 크크
사다하루
23/11/17 15:29
수정 아이콘
저는 그래서 응원팀의 승리를 위해 덕을 쌓는 요즈음의 분위기가 매우 좋습니다
아름다워… 오타니 짱짱맨
SAS Tony Parker
23/11/17 15:41
수정 아이콘
제가 최상위급 랭커로 활약하면 게임이 망하고
못하면 흥합니다
롤 골딱이라 다행입니다 다이아라도 갔으면..
1등급 저지방 우유
23/11/17 17:22
수정 아이콘
교수님도 화이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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